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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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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여윈 나무들, 잿빛 진흙만 남은 물길, 시커면 뼛조각이 쌓인 땅.
어느 시대인지도 모른다. 무엇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명으로 대표되는 대지의 풍요로움은 사라졌다. 남겨진 인간은 그저 살기 위한 본능으로 서로를 공격한다. 그러한 절망속에서 한 남자와 소년이 카트를 끌고 조용히 지나간다.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조차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들에겐 미래에 대한 희망은 물론이고, 당장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도 힘겨울 뿐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코맥 맥카시는 모든 것이 사라진 미래의 지구를 <로드>를 통해 보여준다. 소설의 서두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어떠한 재앙때문에 인류가 종말을 맞았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분명 지구에서 인류가 자랑하던 번영과 영광은 이제 그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재는 모든 것을 뒤덮어 버렸고 분명 살아남은 사람은 있지만 그 실체 조차도 불분명하다. 작가는 단 두 명의 등장인물 남자와 소년을 통해 우리가 맞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이야기 한다. 남자는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기에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려 하고 있다. 치열한 생존본능은 그와 소년을 끌어 당기는 무서운 힘으로 작용한다. 생명의 흔적이 사라진 세상에서 남자의 아들인 소년은 문명을 본 적이 없다. 나약하지만 그를 믿을 수 밖엔 없다.

 

그들의 여정은 남쪽의 바다를 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그곳에 별다른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약해질지도 모르는 자신의 의지를 붙잡으려 그는 소년에게 자신들이 불을 운반하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불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다만 남자가 표현하는 불은 소년에게 꺼져가는 작은 희망의 불씨이며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소년에게 심어주는 역할을 해 내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들은 폐허속의 도시에서 그리고 농가에서 숨겨진 통조림과 말라버린 과일등을 찾아낸다. 식량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들에게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남자는 인간의 흔적이 보이기라도 하면 우선 총을 거머쥔다. 카트에 담겨 있는 통조림은 그들에겐 생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견되는 그 통조림들조차도 우선 오늘 하루를 해결할 수 있을 뿐 내일에 대한 희망의 모습일순 없다.

 

작품은 끊임없이 걷고 추위에 떨며 잠을 자는 그들의 여정을 쫓는다. 무미건조하고 마른 문체는 시종일관 절망의 모습만을 표현한다. 그간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우리는 재앙이 찾아온 뒤의 지구에 대해 만나왔다. 그리고 어디서건 희망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경고인 동시에 희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맥 맥카시는 철저하게 절망의 모습만을 전한다. 절망은 이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극한의 상황까지 연결된다. 그 상황앞에서 그들 부자는 서로가 생명의 끈을 부여잡고 있음을 확인한다. 남자는 자신의 희망조차도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자 기나긴 여정의 동지인 소년에게 그러한 못습을 보여줄수는 없었다. 그것이 어쩌면 그들을 남쪽의 해안까지 이끌어온 힘이었기 때문이다.  

 

지독히 말라보이고 너무나 차가워 냉소적이기만한 그들의 대화는 단적으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삶에 지친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본능은 우리에게 작은 희망의 흔적조차 부여잡을 기회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린 죽나요?
언젠가는 죽지. 지금은 아니지만.
여기가 어디죠?
모르겠어.
우리가 죽는거면 그렇다고 말해주실거죠?
모르겠다. 우린 안죽을 거야.


절망이란 과연 무얼까. 우리는 그들의 궤적을 쫓으며 말할 수 없는 절망만을 만난다. 책의 광고카피엔 인용된 '단 한줄의 가장 아름다운 희망'조차도 책을 읽어오면서 느낀 절망을 극복하기에는 힘겨워 보일 뿐이다. 구원과 희망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최악의 공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철저한 어둠속에 던져진 그들 부자의 여정이 더욱 험난해 보일 뿐이다. 책에 쏟아지는 수많은 극찬을 뒤로하고라도 어쩐지 우울해지기만 하는 것은 미래의 우리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그들의 단 하나의 희망조차도 없는 여정의 끝엔 과연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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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놀 청소년문학 28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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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방송에서 쓰이는 표현때문만이 아니라 초딩이란 단어는 이미 국어사전에도 실려있을만큼 보편화되어 있다. 물론 인터넷 상에서 몰지각하고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통칭하여 말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본다면 어른의 눈으로는 이미 초등학생의 눈에 비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면에서 이 책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주인공인 초등학생 조지나 헤이즈는 영악한 초딩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초딩수준으로는 최상의 분석력과 기획력을 가진 아이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작가 바바라 오코너 역시도 철저하게 조지나의 눈에 비친 세상을 통해 가난과 가족의 붕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특유의 유머와 코믹한 설정으로 극복하려 하고 있다. 
 

너무나도 평범한 가정에서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별 다르지않게 살아가던 조지나에게 어느날 불행이 닥쳤다. 갑자기 아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당장 집세 낼 돈 조차도 없어 그동안 살던 집에서 쫓겨나 버린 것이다. 엄마와 동생 토비와 함께 조지나는 주차할 공간마저도 자유롭지 못한채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하는 고물차 안에서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잠자리 마저도 불편하다. 하지만 조지나는 그 무엇보다도 주위의 친구들에게 집이 없다는 자신의 그런 처지가 알려지는게 무엇보다 싫다. 가장 친한 친구 루앤이 그 사실을 알았을때 조지나는 비참한 기분에 그저 정신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철없는 동생 토비는 그런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엄마는 두 군데에서 일을 하면서 돈이 모이면 새로 집을 장만해 들어갈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런지는 지금으로선 아무런 기약이 없다. 그때 조지나의 눈에 공중전화 박스에 누군가 붙여놓은 희미하게 바랜 개를 찾는 전단지 하나가 보인다.
'저를 보신적이 있나요? 제 이름은 미스티예요. - 사례금 500달러.'

 
500달러면 조지나에게 분명 새 집을 안겨다 줄 수 있는 금액이다. 이제 조지나에겐 분명한 목표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개를 훔치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조지나 자신을 다시 평범한 또래의 아이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게 된다. 조지나는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완벽한 계획 작성에 돌입한다. 조지나의 계획은 어찌보면 완벽에 가까워 보인다. 우선 시끄럽게 짖지 않고, 물지도 않으며, 엄청난 부자집에서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가끔은 혼자서 밖에 있기도 하는 개를 찾아야 한다. 엄마가 힘들게 구했다는 숲속의 버려진 집은 금방이라도 무너질듯 위태롭기만 하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그 집보다는 차라리 고물차안이 나을듯 하다. 그래도 엄마는 이 집이라도 감사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다음날 엄마는 일하는 세탁소에서 잘리고 숲속의 집엔 당장 나가라는 현판이 붙었다. 이제 정말 조지나는 개를 훔쳐야 할 것 같다. 하늘이 도왔을까 모든 조건에 완벽히 부합하며, 목에는 반짝반짝한 큐빅이 박힌 멋진 스카프까지 매고 있는 윌리라는 멋진 이름의 개가 으리으리한 집에 살고 있는 것이 조지나의 눈에 보인다. 이제 선택이란 없다. 윌리를 훔쳐 숲속의 버려진 집에 숨길 계획까지 세운 조지나의 계획은 모든 것이 조지나가 생각했던 대로 완벽히 진행된다. 내일이면 거리 곳곳에 윌리를 찾는 전단이 붙을 것이다. 안전하게 윌리를 집에 데려다 주면 500달러가 생기고 자신은  새 집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조지나는 꿈에 부푼다.
'오늘은, 윌리를 찾는 사례금 전단지가 붙는 역사적인 날이다!' 
 

하지만...
사건은 이상하게도 조금씩 꼬여 간다. 엄청 부자인줄 알았던 윌리의 주인 카밀라 아줌마는 500달러는 커녕 15달러가 가진 돈의 전부란다. 게다가 그저 울기만 할 뿐 도대체 윌리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조차 모른다. 하지만 조지나의 '개를 훔치는 방법' 6단계에는 이것까지도 계획의 일부다.
'전단지를 발견하지 못할 경우에는, 직접 주인을 찾아 전단지를 만들도록 도와야 한다.'   
버려진 숲속의 집에 부랑자 무키 아저씨가 찾아오면서 윌리의 존재가 발각된다. 하지만 무키 아저씨는 조지나를 꾸짖기 보다는 때로는 뒤에 남긴 삶의 자취가 앞에 놓인 길보다 더 중요한 법이라며 조지나가 이해하기 힘든 자신의 신조를 들려 준다.
"때로는 말이야.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법이라고..."   


포기할 줄 모르는 영악한 열한살 초딩 조지나의 집구하기 프로젝트는 거침이 없다. 집 조차 없이 고물차에서 살아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조지나는 그러한 아픔을 겪을새도 없이 강해지려 한다. 하지만 무키 아저씨의 말 한마디는 그동안 조지나를 괴롭혔던 모든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주인공인 조지나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자신만의 뚜렷한 캐릭터를 드러내며 이 작품에 보다 든든한 힘을 실어준다. 그것은 갑자기 가장이 되어버려 날카로워진 엄마나, 그저 사고뭉치였던 토비가 조금씩 서로를 배려하기 시작하는 모습으로 보여지면서 드러난다. 그러한 인물들의 변화는 조지나가 개를 훔칠수 밖에 없는 선택에서 조금씩 변화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반짝이는 보라색 표지가 있는 스프링 노트에 연필 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세웠던 조지나의 계획 마지막 부분처럼 어쩌면 완벽히 들어맞았다고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계획대로 하는 것, 내가 선택해야 할 결정은 바로 이것이다." 
 

작가는 분명 어느날 붕괴되어 버린 가족의 현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작품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집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겨우 열한살 초딩에게도 그것은 너무나 견디기 힘든 상황일 뿐이다. 하지만 단지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철저한 조지나의 무조건적인 자기 위주의 생각들은 어쩌면 너무나 계산적이기만한 이 시대의 어른들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 보이기만 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띠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자신에게 닥친 고난과 역경을 스스로 극복하려 하는 조지나의 의지는 분명 많은 것을 상징하고 있는듯 하다. 따뜻함과 정겨움이 사라져 가는 지금 어쩌면 천진난만한 조지나로 인해 우리가 잊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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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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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거쳐가야만 하는 청소년기 즉 성장기라는 진통의 단계를 보내야만 한다. 피끓는 청춘과 껍질이 깨지는 아픔이라는 표현이 공존하듯 각자의 삶에 있어 그 시기는 너무나 아름답기도 하지만 반면에 완전히 커버린 몸은 어른의 모습을 지녔지만 아직은 부모에게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해 표류하고 방황하기도 하는 인격적으로 아직은 미성숙한 시기이기도 하다. 아이도 아닌 어른도 아닌 모호한 우리들의 청춘은 그렇게 언제나 밝은 색만으로 비춰 보이지만은 않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이미 지난해 3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보여준 작가 김려령의 신작소설 <완득이>는 불우한 환경에서도 활력을 잃지 않는 17세의 고교생 완득이를 통해 청춘이라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시기의 아픔과 가족이라는 의미 또한 그들에게 펼쳐진 미래의 꿈까지도 제시해주는 활력있는 소설이다.


가족의 구성
요즘의 많은 작품들에서는 과거 우리가 알고있는 전형적인 가족에서 벗어나 새롭게 창조되는 가족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변화하는 시대상속에서 어쩌면 가족의 형식과 개념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 될수 밖에는 없다. 완득의 가족역시 그러하다. 캬바레 입구에서 춤을 추며 웃음을 팔아 손님을 맞이하는 아버지 그가 바로 완득의 아버지이다. 비록 신체적 장애를 지니기는 했지만 아들 완득을 위해 무슨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부성애의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완득이 '그 분'이라고 부르는 완득의 어머니는 베트남에서 왔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먼 이곳까지 왔지만 이상한 춤이나 추면서 남에게 무시당하는 남편을 이해할수 없었기에 어린 완득을 남겨두고 떠나 버렸다. 하지만 언제나 완득을 잊을수는 없었다. 완득을 다시 만난 날 '그분'은 완득에게 "잘 커줘서 고마워요."라고 얘기한다. 십여년전 새로 생긴 캬바레를 홍보하기 위해 시장에서 춤을 추던 아버지의 뒤를 며칠동안이나 졸졸 따라다니던 스무살남짓의 민구가 오늘날의 완득의 삼촌이다. 말더듬이에 정신발달능력마저 늦어 남들의 놀림을 받지만 아버지를 유일하게 어른으로 인정하고 진심으로 따르는 유일한 어른이기도 하다. 그래서 완득은 삼촌을 미워할수가 없다.    


결코 미워할수 없는 똥주
완득은 오늘도 비탈길에 있는 교회에서 하는님께 기도한다. 늘 욕지거리를 입에 달고 살며 언제나 완득의 주위에서 맴돌며 참견하고 괴롭히는 똥주를 죽여달라고. 완득이 '똥주'라고 부르는 이가 완득의 담임 이동주선생이다. 그는 부잣집의 외아들이었지만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인간이하의 대접을 하던 아버지의 모습에 염증을 느껴 집을 뛰쳐나와 완득의 옆집 옥탑방에 세들어 사는 인물이다. 또한 그는 완득에게 진정한 삶의 방향과 잃어버린 현대의 스승상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자신의 의지로 버려진 교회를 사들여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쉼터로 개방하기도 하고 기업주들의 외국인 근로자 인권유린에 맞서 그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이더라도 개의치 않고 신고할 만큼 신념에 찬 인물이기도 하다.

완득의 꿈
학교에서 완득은 공부는 비록 꼴찌였지만 싸움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않는 자신감을 지니고 있다. 그 자신감 때문이라도 완득은 정상적이라 할수 없는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결코 삐뚤어지지는 않았다. 늘 곁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야간자율학습을 반복해야만 하는 지루한 일상은 담임 똥주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는다. 그 존재조차도 몰랐던 어머니와도 만나게 되고 교회에 있던 핫산의 소개로 킥복싱체육관에 다니면서 자신의 꿈과 목표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다. 다 쓰러져 가는 체육관이지만 관장님의 눈매는 매섭다. 그는 완득이 보기에는 대충대충 건성인것 같지만 완득이 갖고 있는 울분과 완득의 능력을 개발하게 해주는 또다른 스승이기도 하다. 또한 완득에게는 윤하가 있어 힘이 난다. 언제부턴가 윤하는 항상 완득의 옆에 서 있기 때문이다. 종군기자가 되고 싶다는 윤하는 전교에서 1,2등을 다투며 서울대를 목표로 할만큼의 모범생이다. 완득의 매니저를 자처하다가 엄마의 반대로 벽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이 어린 연인들의 앞날은 상큼하기만 하다. 그들의 달콤했던 첫키스처럼...
열일곱 청춘의 밝은 내일을 향한 전진은 이제부터가 출발이다. 비록 두번이나 TKO로 링에 누워버렸지만 앞으로 두번의 TKO승을 거두고 지방으로 떠나버린 관장님을 찾아뵙겠다고 완득은 다짐해본다.

 

이 소설 <완득이>를 전체적으로 타고 흐르는 기저는 유쾌함이다. 그것은 밤마다 완득이를 찾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똥주, 그리고 그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앞집 아저씨, 언제나 자매님을 연발하는 정체모를 핫산, 그이상 똘아이의 모습을 보여줄수 없는 혁주 등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속도감있는 작가의 문체에 힘입어 유쾌라는 코드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유쾌하게 웃은 것이 얼마만인지를 모르겠다. 마치 만담하듯 시트콤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그저 우습기만 했다. 또한 한편으로 <완득이>에서는 장애인, 이주노동자, 소외받고 있는 이웃이라는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려냈지만 우리는 그안에서 완득이를 통해 희망이라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작가의 말처럼 완득이의 도전이 어제보다 나아진 나의 그 무엇에 대한 도전이 되기를 바래본다.


"흘려보낸 내 하루들, 대단한거 하나없는 내인생, 그렇게 대충 살면 되는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작은 하루가 모여 큰하루가 된다. 평범하지만 단단하고 꽉찬 하루하루를 위해 훗날 근사한 인생 목걸이를 완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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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한정주 지음 / 예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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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살아나가는 방식은 이 세상의 존재하는 사람의 수 만큼이나 다양하다. 각기 삶의 방법이 다르듯 그들이 꿈꾸고 원하는 목표 또한 다양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그 모든이의 꿈을 이루어 주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세상엔 당연히 경쟁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기꺼이 감수하며 생활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경쟁이라는 것이 그리 올바르게만 전개되지는 않는 것같다. 자신의 꿈을 위해 나아가는 길이라고 항변하기에 우리는 너무나 극단적이고 이기적인 개인주의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갖은 편법을 동원하기도 하고 사람답지 못한 행동들을 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에게도 삶은 힘든 고난의 연속이었다. 정치적으로도 시대적으로도 불안한 정국의 흐름은 그저 학문의 길을 걷고 싶었던 그를 쉽게 내버려 두질 않았다. 그때마다 그는 나라의 부름을 받아 자신의 소임을 다했고, 자신의 일생을 통해 진정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인물이다. 이 책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는 조선 최고의 지식인이며 민족의 위대한 스승이기도 한 율곡의 삶과 학문을 통해 가장 기본적인 삶의 자세를 잃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무엇이 진정한 삶의 자세인가를 일깨워 주고 있는듯 하다.

 

이 책은 율곡이 스무살 때 쓴 자경문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열여섯 율곡은 어머니 그 이상의 존재였던 신사임당을 잃고 그 충격과 슬픔으로 삶의 방향마저 잃고 방황의 날을 보낸다. 모든 것을 잃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불교에 몸을 의지하던 그는 더이상 좌절과 절망의 날을 보낼수 없다 생각하고 선비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기 위해 원래 그가 있던 사회로 복귀하며 자경문이란 글을 짓는다. 말 그대로 스스로를 경계하는 글이라는 자경문의 의미처럼 그는 자신이 스무살때 쓴 자경문의 글귀를 평생의 삶의 철학으로 지켜 나간다. 자경문은 이처럼 자신에게 닥친 혹독한 시련을 딛고 일어난 율곡이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나갈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삶의 목표와 방향을 맹서한 개인적인 글이다. 책의 지은이 한정주는 율곡의 자경문을 7개의 주제로 나누고 각 주제별로 율곡이 자경문에 맹서한 뜻을 어떻게 지켜나가고 삶에 대입시켰는지 이후 그의 삶과 철학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자경문의 첫 구절이 입지(立志)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율곡 스스로도 고통의 나날을 지나왔기에 입지란 그에게 있어 너무나도 절실한 삶의 첫 단계였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세운 뜻을 구체화하기 위해 스승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평생의 스승을 찾는 것으로 배움과 실천의 삶을 시작한다. 어진 마음과 지혜로운 뜻을 갖겠다는 그의 입지라는 목표를 위해 그는 평생 공부와 그에 맞는 행동을 중요시 여겼다. 그는 관직 생활의 대부분을 언론기관에서 보냈다. 그렇기에 말이 갖는 위력과 효과를 누구보다 깊이 체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언행이 일치하지 않으면 신뢰를 잃고, 행동으로 망친 일은 회복되지 않는다는 삶의 교훈을 얻는다. 윤원형과 심통원을 몰아낸 그의 상소는 말과 행동을 실천한 그의 사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일화인듯 하다. 때가 되면 반드시 목숨을 던질 각오를 가지고서 자신의 주장과 뜻을 펴는 것, 그것이야 말로 율곡이 우리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말의 떳떳한 도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심을 끊어 내는 것 이 정심(定心)에 담긴 의미이다. 하지만 그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어 보인다. 율곡은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는 마땅한 도리를 지켜내다 보면 정심의 목적을 깨달을 것이라 말한다. 또한 편안함과 즐거움만을 쫓다보면 후회할 일들이 생겨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되기까지 한다.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기에 홀로 있을때 더욱 경계하고 삼가 스스로를 속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율곡의 근독(謹獨)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한 삶의 지표로 되어야 할 것 같다.

 

개혁적인 정치인으로서의 율곡의 모습과 학문을 추구하는 선비로서의 율곡의 모습은 많은 대조를 보여준다. 정치인 율곡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따라 행동한다. 그저 책상에 앉아 탁상공론을 펼치는 정치인이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와 결과를 위해 언로를 열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낡고 부패한 것은 개혁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학자로서의 율곡은 그 스스로 평생을 학문의 길이라 여겨 언제나 충실히 학문에 정진해 수많은 책을 남겼다. 또한 가족과 함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장간일까지 했다는 그의 삶에 자세는 부끄럽지 않은 그의 삶의 정신을 보여주는 듯하다.
 
책은 심오하고 어려운 율곡의 사상 세계에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는 인간 율곡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에 보다 집중하려 한다. 그의 학문적 영역 보다는 스무살에 세운 뜻을 평생토록 지켜나간 율곡의 삶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사람의 도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진정한 토론이 사라지고 당파간의 이해관계만을 따지며 폭력으로 치닫고 있는 국회, 상명하복이라는 명분하에 한번 정해놓은 틀은 절대 깰 수 없다는 교육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사이버 세상에서 온갖 욕설과 비방을 서슴지 않는 우리 주변까지... 어떠한 사안이 옳고 그르다에 앞서 진정한 삶의 자세와 도리를 위해 평생을 살아갔던 대스승 율곡의 삶을 통해 한번쯤 차분하게 생각할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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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무림고수를 찾아서 - 궁극의 무예로써 몸과 마음을 평정한 한국 최고 고수 16인 이야기
박수균 지음, 박상문 사진, 최복규 해설 / 판미동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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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나 무술영화속에서 만나본 무림세계는 냉정하기만 하다. 오직 실력만이 모든 평가를 대신한다. 수많은 고수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어김없이 각자가 수행한 권법을 토대로 서로간의 자웅을 겨룬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바람을 가르며 누군가 나타나고 그는 순식간에 무림의 세계를 평정한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각종 권법으로 무장한 그가 바로 무림의 고수이다. 그러한 절대무림의 세계는 이렇듯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무협지를 통해 우리들에게도 친숙하게 전해져 오는 소재이기도 하다. 복수를 위해 사랑을 위해 험난한 고통을 이겨내며 무공을 연마하고 마침내 꿈을 이루는 고수는 어쩌면 영웅이 없는 시대, 우리가 원하는 영웅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러한 까닭에 이 책 <한국의 무림고수를 찾아서>는 그 제목만으로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 책을 펼쳐들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현대화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과연 영화속에서 만났던 무림의 고수라 불리워질 만한 사람이 존재할까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이 책에는 누가 누구를 이기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올렸는지, 그들 개개인의 무용담이 그려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러한 영웅담이 아닌 진정으로 무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세계가 그려져 있다. 극한의 자기수양을 통해 순수와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마음가짐은 누군가를 이겨야만 하는 지금 세상의 우리들에게 그것만이 모든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는 것만 같다. 책은 크게 '자신을 버리다'와 '자신을 이기다'라는 두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각각의 장에 16가지 무술의 고수들에 대한 소개가 들어있다.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권도를 비롯해 태껸, 합기도 등 한국적인 무술과 우슈, 극진 가라테 등 동양권의 무술들이 주로 다루어지고 있다. 또한 비교적 접하기 힘든 당랑권, 태극권, 팔괘장 등의 소개를 통해 무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 시도하고 있다.

 

"무술은 무술다워야 한다. 그래야 무술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책에 첫번째로 소개된 합기도의 달인 우범용 사범은 무술은 자기자신을 완성하는 첫번째 단계라며 무술의 진정한 의미를 이야기 한다. 생사를 걸고 맞섰던 전통시대의 무예와는 달리 현대사회의 무술 수련이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버린채 꾸준한 수양을 통해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그들의 생활이 어쩌면 살아있는 도인의 모습이 아닐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한 많은 무도인들을 만나면서 책의 저자는 그들에게서 사람 냄새를 느낀다고 기술하고 있다. 말만을 앞세우는 것보다 행동과 실천을 통한 자기수양은 책에 소개된 모든 무도인들이 가진 공통점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자극적인 것에 민감하다. 그렇기에 이 책에 소개된 고수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K-1이나 프라이드에 나오는 거구의 서양격투기 선수와 싸운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가져보게도 한다. 바람을 가르는 고수들의 사진들 속에서 그러한 가능성이 보여지는듯 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그러한 대결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소탈한 삶에서 묻어나는 무도인으로서 수도하고 수양을 통해 쌓아나가는 정신자세가 보다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어떠한 무술이 강하냐보다 모든 무예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자기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고수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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