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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인생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거쳐가야만 하는 청소년기 즉 성장기라는 진통의 단계를 보내야만 한다. 피끓는 청춘과 껍질이 깨지는 아픔이라는 표현이 공존하듯 각자의 삶에 있어 그 시기는 너무나 아름답기도 하지만 반면에 완전히 커버린 몸은 어른의 모습을 지녔지만 아직은 부모에게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해 표류하고 방황하기도 하는 인격적으로 아직은 미성숙한 시기이기도 하다. 아이도 아닌 어른도 아닌 모호한 우리들의 청춘은 그렇게 언제나 밝은 색만으로 비춰 보이지만은 않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이미 지난해 3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보여준 작가 김려령의 신작소설 <완득이>는 불우한 환경에서도 활력을 잃지 않는 17세의 고교생 완득이를 통해 청춘이라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시기의 아픔과 가족이라는 의미 또한 그들에게 펼쳐진 미래의 꿈까지도 제시해주는 활력있는 소설이다.
가족의 구성
요즘의 많은 작품들에서는 과거 우리가 알고있는 전형적인 가족에서 벗어나 새롭게 창조되는 가족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변화하는 시대상속에서 어쩌면 가족의 형식과 개념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 될수 밖에는 없다. 완득의 가족역시 그러하다. 캬바레 입구에서 춤을 추며 웃음을 팔아 손님을 맞이하는 아버지 그가 바로 완득의 아버지이다. 비록 신체적 장애를 지니기는 했지만 아들 완득을 위해 무슨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부성애의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완득이 '그 분'이라고 부르는 완득의 어머니는 베트남에서 왔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먼 이곳까지 왔지만 이상한 춤이나 추면서 남에게 무시당하는 남편을 이해할수 없었기에 어린 완득을 남겨두고 떠나 버렸다. 하지만 언제나 완득을 잊을수는 없었다. 완득을 다시 만난 날 '그분'은 완득에게 "잘 커줘서 고마워요."라고 얘기한다. 십여년전 새로 생긴 캬바레를 홍보하기 위해 시장에서 춤을 추던 아버지의 뒤를 며칠동안이나 졸졸 따라다니던 스무살남짓의 민구가 오늘날의 완득의 삼촌이다. 말더듬이에 정신발달능력마저 늦어 남들의 놀림을 받지만 아버지를 유일하게 어른으로 인정하고 진심으로 따르는 유일한 어른이기도 하다. 그래서 완득은 삼촌을 미워할수가 없다.
결코 미워할수 없는 똥주
완득은 오늘도 비탈길에 있는 교회에서 하는님께 기도한다. 늘 욕지거리를 입에 달고 살며 언제나 완득의 주위에서 맴돌며 참견하고 괴롭히는 똥주를 죽여달라고. 완득이 '똥주'라고 부르는 이가 완득의 담임 이동주선생이다. 그는 부잣집의 외아들이었지만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인간이하의 대접을 하던 아버지의 모습에 염증을 느껴 집을 뛰쳐나와 완득의 옆집 옥탑방에 세들어 사는 인물이다. 또한 그는 완득에게 진정한 삶의 방향과 잃어버린 현대의 스승상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자신의 의지로 버려진 교회를 사들여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쉼터로 개방하기도 하고 기업주들의 외국인 근로자 인권유린에 맞서 그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이더라도 개의치 않고 신고할 만큼 신념에 찬 인물이기도 하다.
완득의 꿈
학교에서 완득은 공부는 비록 꼴찌였지만 싸움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않는 자신감을 지니고 있다. 그 자신감 때문이라도 완득은 정상적이라 할수 없는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결코 삐뚤어지지는 않았다. 늘 곁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야간자율학습을 반복해야만 하는 지루한 일상은 담임 똥주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는다. 그 존재조차도 몰랐던 어머니와도 만나게 되고 교회에 있던 핫산의 소개로 킥복싱체육관에 다니면서 자신의 꿈과 목표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다. 다 쓰러져 가는 체육관이지만 관장님의 눈매는 매섭다. 그는 완득이 보기에는 대충대충 건성인것 같지만 완득이 갖고 있는 울분과 완득의 능력을 개발하게 해주는 또다른 스승이기도 하다. 또한 완득에게는 윤하가 있어 힘이 난다. 언제부턴가 윤하는 항상 완득의 옆에 서 있기 때문이다. 종군기자가 되고 싶다는 윤하는 전교에서 1,2등을 다투며 서울대를 목표로 할만큼의 모범생이다. 완득의 매니저를 자처하다가 엄마의 반대로 벽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이 어린 연인들의 앞날은 상큼하기만 하다. 그들의 달콤했던 첫키스처럼...
열일곱 청춘의 밝은 내일을 향한 전진은 이제부터가 출발이다. 비록 두번이나 TKO로 링에 누워버렸지만 앞으로 두번의 TKO승을 거두고 지방으로 떠나버린 관장님을 찾아뵙겠다고 완득은 다짐해본다.
이 소설 <완득이>를 전체적으로 타고 흐르는 기저는 유쾌함이다. 그것은 밤마다 완득이를 찾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똥주, 그리고 그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앞집 아저씨, 언제나 자매님을 연발하는 정체모를 핫산, 그이상 똘아이의 모습을 보여줄수 없는 혁주 등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속도감있는 작가의 문체에 힘입어 유쾌라는 코드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유쾌하게 웃은 것이 얼마만인지를 모르겠다. 마치 만담하듯 시트콤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그저 우습기만 했다. 또한 한편으로 <완득이>에서는 장애인, 이주노동자, 소외받고 있는 이웃이라는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려냈지만 우리는 그안에서 완득이를 통해 희망이라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작가의 말처럼 완득이의 도전이 어제보다 나아진 나의 그 무엇에 대한 도전이 되기를 바래본다.
"흘려보낸 내 하루들, 대단한거 하나없는 내인생, 그렇게 대충 살면 되는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작은 하루가 모여 큰하루가 된다. 평범하지만 단단하고 꽉찬 하루하루를 위해 훗날 근사한 인생 목걸이를 완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