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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서 오직 홀로 버려졌다고 생각하며 절망하고 괴로워하며 방황하던 한 사내가 있었다. 세상에서 그가 부딪히던 온갖 고뇌와 번민을 뒤로 하고 세상에서 도망쳐 나오듯이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등대지기라는 새로운 삶이었다. 육지에서 뱃길로 꼬박 세시간이 걸리는 망망바다에 떠있는 외로운 섬 구명도가 바로 그 사내 재우가 선택한 도피처였다. 그리고 8년이란 긴 시간이 흐르면서 재우도 이젠 해양수산청 소속의 지방공무원이 되어있다. 그리고 그의 곁엔 소장이기 이전에 재우의 삶에 멘토가 되어주며 등대지기란 무엇인지 또한 참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지 잔잔하고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정소장이 있다.
"등대지기는 울지 않는다. 행여 울고 싶거든 갯바위에 부딪혀 울부짖는 파도를 바라보라. 그러면 된거고, 그게 등대지기의 삶이다."
처음 재우가 구명도에 왔을 때 정소장이 들려준 말이다. 이미 바다에 자신의 가족을 묻어버린 정소장은 바다를 원망하지 않고 다시 자신의 일로 돌아온 어쩌면 냉정하고 무서운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형에게서 걸려온 그 전화를 통해 재우는 그동안 잊으려고 노력했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지독히 가난했기에 홀어머니와 재우 그리고 재우의 누나는 재우의 형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재우의 가족은 어머니가 식모로 있는 주인집의 바깥 조그마한 방에 얹혀 살았다. 또한 모든 것이 형이라는 존재가 중심이었기에 그만큼 재우역시도 형을 위해 희생해야하는 가족이라는 강요를 받게 된다. 그 중에 아무에게도 축복받지 못하는 주인집 딸 난희와의 가슴 아픈 사랑은 어쩌면 재우에게 더더욱 세상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듯했다.
고시를 포기하고 결혼후 직장인이 되어버린 형에게서 재우는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으며 자신은 외국근무를 위해 재우에게 어머니를 1년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지만 재우는 매몰차게 그 제의를 뿌리친다. 그러나 구명도까지 어머니를 데리고 와 한달이라는 시한을 달라며 눈물로 호소하는 형수를 재우는 뿌리칠 수 없었다. 그렇게해서 재우와 어머니의 기이한 동거는 시작된다. 그저 식탐밖엔 없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어머니를 바라보며 재우는 한없이 절망한다. 형이 하던데로 어머니를 가두기도 해보지만 그것마자도 소용없다. 섬으로 찾아온 난희에게서 형이 어머니를 버리고 도망치듯 이민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고, 구조조정으로 인해 구명도의 등대가 무인화가 결정되면서 재우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결국 재우는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기로 하지만 자신을 향한 어머니의 본능적인 모성을 발견하고는 함께 떠나자는 난희의 달콤한 제의도 거부하고 섬에서 조용히 무인화가 되는 날까지 묵묵히 자신의 일에 전력한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그 가치와 필요의 잣대로만 판단해야 한다면, 등대를 보듬고 있는 것은 참으로 덧없는 일이다. 굳이 산업의 종류를 따지자면 등대는 사양산업인 것이다. 하지만 등대는 등대로서 그 구실을 해야한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밤바다를 향해, 지치고 힘든 조업을 마치고 밤늦게 귀향하는 어선들에게, 한가닥 빛이 꺼져가는 생명의 모든 것으로 여길 조난자들을 위해 등대는 빛을 내어야하고 그리고 그 빛을 위해 누군가는 등대를 지켜야 한다. 재우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어머니도 그렇게 늘 재우를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는 재우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이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조창인의 소설 <등대지기>는 그렇게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그렇게 절망적으로 떨어져만 가는 재우에게 다가온 한 줄기 빛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모성이라는 본능은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만큼 강렬하고 위대한 것이었다. 독자들을 한없이 눈물짓게 하는 이 소설이 보여주고 싶은 것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또한 재우의 어머니를 통해 가끔은 잊어 버리고 사는지도 모르는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어머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