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그리스 로마인 이야기 - 서양문명을 탄생시킨 12인의 영웅들
칼 J. 리차드 지음, 박태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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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약육강식의 지구에서 인간이 그 주인으로 등장하게 된데에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이룩해낸 문명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리와 군집을 이루어 살던 인간의 모습은 다른 동물들과 그리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좀 더 강해지기를 원했고 그것은 현세와 미래를 넘나드는 기대감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간의 문명은 인간의 삶을 바꾸어 놓기 시작한다. 발달된 문명은 인간의 삶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시작한다.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러한 철학적 사고로부터 그리스 문명은 시작되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그러한 것들은 인간생활을 규정짓는 하나의 지침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현재의 우리가 사회와 국가를 이루고 사는 대부분의 모든 원리가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비롯되었으며 하나하나의 어휘나 용어 자체도 그리스 로마문화에서 유래되었다 할 것이다.

 

이 책 <한 권으로 읽는 그리스 로마인 이야기>는 그러한 현대 문명의 원류가 된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중심에 서서 오늘날까지도 사상과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열 두명의 인물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그들은 단순히 시대를 앞서간 인물들이 아니라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인류의 역사에서 누구보다도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이기도 하다. 책은 열 두명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었지만 그들의 삶 뿐만아니라 그들이 살아갔던 시대를 통사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그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인류의 문명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되었고 그들의 사후 후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통해 그리스와 로마 문명이 인류에게 선물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은 문학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호메로스부터 탈레스, 테미스토클레스, 페리클레스, 플라톤, 알렉산드로스, 스키피오, 카이사르, 키케로, 아우구스투스, 바울 그리고 고대문화 최후의 위인이라 말할수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는 열 두명의 이름을 내세워 열 두개의 챕터로 그리스와 로마 사회를 서술하고 있다. 물론 책에 언급된 열 두명의 인물들 모두가 완벽한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던 시대를 자신의 시대로 남길만큼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처럼 자신의 꿈과 희망을 향해 권력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이 있는가하면 호메로스, 탈레스, 플라톤과 같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며 인류의 역사에 기여한 인물들도 있다. 

 

"모든 소설은 호메로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삶은 그리스 로마 문명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해질 만큼 발전한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가치판단 기준이나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보편성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 다만 조금 멀리 볼 수 있는 시각과 현대의 기계문명으로 인한 삶의 윤택함 정도가 그 혜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책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 로마 문명이 오늘날의 현대문명에 끼친 영향에 관한 것인듯 하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가 단순히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고 그러한 영향은 지금까지도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탈레스의 과학 역시도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과학에 까지 영향을 끼친 것은 어떠한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 과학적 전망과 그 접근법이었다는 것을 설명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는 그 구체적인 사례들이 여러번 언급되고 있다. 그리스 문명을 그 영역 밖으로 전파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후 분열된 60여개의 폴리스의 동맹이 인구에 따라 대표자 수를 다양하게 책정하는 미국 건국시의 모델로 언급된 것이나, 서양 철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플라톤의 혼합정체론이 근대 공화주의자들에게 경제 계급들 간의 권력의 균형이라는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것이 마침내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각 권력의 균형적인 모습을 탄생하게 한 원류가 되었음을 통해 그러한 것들이 좀더 구체적으로 다가옴을 느낀다.

 

그리스와 로마 문명은 예술, 철학, 과학, 정치 등 모든 면에 있어 인류에게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또한 구체적으로도 많은 유산을 남겼다. 어쩌면 그만큼 인류의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지역과 문화는 앞으로도 존재하기 어려울듯 하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삶의 방식에 대해 구체적인 모델을 제시해준 문명이기에 지나간 시간처럼 앞으로의 역사 역시 그들의 삶과 방식에 대해 끊임없는 연구를 계속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이 남긴 유산 모두가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중요한 업적과 함께 그들이 남긴 비통한 과오를 동시에 조명하는 것이 그 시대에 대한 좀 더 균형잡힌 시각을 갖게 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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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귀울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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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미 많은 작품들을 통해 국내의 독자들과 만나 단단한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온다 리쿠는 인기작가이기도 하다. 일정한 틀에 박힌 어느 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패턴의 작품들을 통해 그녀만의 독특한 세계를 개척했고 열어갔기에 그러한 인기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의 작품 경향들이 미스터리와 판타지가 적절히 조합된 작품들인데 비해 이 책 <코끼리와 귀울음>은 본격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는듯 하다.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열 두개의 단편이 들어있지만 어느 한 주인공을 통해 전개되는 일종의 연작집이라 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또하나의 특징이 그간 온다 리쿠의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주는 친근감일 것이다. 온다 리쿠의 데뷔작이기도한 <6번째 사요코>에 등장했던 슈의 아버지 세키네 다카오가 바로 이 책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이며, 슈의 형과 누나인 슈운과 나쓰가 곳곳에 게속해서 등장하여 그러한 가족간의 연결고리들을 이어나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은퇴한 판사 세키네 다카오는 특유의 날카로운 직관력과 평소 즐겨읽는 추리소설로 인해 사물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인물로 표현된다. 때로는 알 수 없는 모호함을 연상케하기도 하지만 자그마한 단서 하나로 사건의 전말을 추리해내는 놀라운 능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첫번째로 실려있는 <요변천목의 밤>은 그러한 그의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는듯 하다.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통해 온다 리쿠는 그러한 다카오의 이미지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뉴멕시코의 달>을 통해 원인을 알 수 없는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기도 하며 <왕복서신>을 통해 가보지도 못한 곳에서 일어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놀라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은 비단 다카오 뿐만 아니라 그의 장남이자 현직 검사인 슈운 역시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대합실의 모험>을 통해 슈운 역시 아버지 못지 않은 관찰력과 예리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더욱이 순발력까지 갖춘 슈운이기에 아버지의 상대가 되기엔 충분해 보이기까지 하다. 마침내 <바다에 있는 것은 인어가 아니다>를 통해서는 그러한 날카로운 부자간의 추리 대결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카오와 슈운의 추리 모두 어느 하나가 맞다라고 하기보다는 그 추리를 이끌어내는 전개방식에 있어 특유의 날카로운 면모들을 보여주고 있는듯 하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무엇보다 날카로운 논리전개일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원인과 절차를 통해야만 독자로 부터의 이해를 끌어낼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탁상공론>에서는 다카오의 아들과 딸인 슈운과 나쓰의 대결이 펼쳐진다. 현직검사이면서 이전의 작품에서 예의 그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슈운과 변호사로 이미 유명해진 나쓰의 대결은 분명 흥미로운 대결이었다. 몇 장의 사진을 놓고 그것이 누구의 방인가를 맞추는 문제였는데 답을 떠나서 그들이 그러한 추리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통해 다카오 일가의 대단함을 엿볼수 있는듯 했다. 모든 작품은 어쨌든 다카오가 등장하거나 또는 그와 연결되어진 사람들의 일상을 쫓는다. 하지만 웬지 등장인물 모두가 다카오의 대단함을 보여주기 위한 조연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왕복서신>과 <마술사>를 통해 결국 온다 리쿠는 다카오의 날카로운 추리력이 최고임을 다시 한번 입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일상에서 벌어진 자그마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몇몇 작품들은 무언가 작가의 메세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신 D고개 살인사건>에서는 대도시의 한복판인 광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어느 한 남자가 그저 현대인의 이기적인 욕망과 무관심 때문에 그렇게 되었음을 은근히 타락천사 루시퍼에 빗대기도 하면서 어쩌면 그것이 모두의 잘못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며, <급수탑>역시 현대 문명에 급속도로 옛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을 급수탑이라는 어느 하나의 정경에 빗대어 섬뜩한 추리로 연결해 내기도 한다.

 

온다 리쿠를 그저 한마디로 표현해내기는 쉽지 않을듯 하다. 도코로 일족의 이야기를 통해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때로는 성장의 아픔을 때로는 미스터리와 SF적으로 보이기까지한 작품들로 다양한 그녀만의 세계를 연출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아마 본격 추리소설의 범주의 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5년여간의 긴 연재기간을 통해 다져진 작품속 인물의 예리한 캐릭터가 그것을 또한 증명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상상력을 배워 보는듯 하다. 살아가면서 어쩌면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요소이겠지만 우린 그것을 제대로 써먹지도 개발해낼 여력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온다리즘이란 말이 나올만큼 매력적인 그녀의 작품을 만나본 시간이 그저 즐거웠던 기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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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
신용우 지음 / 산수야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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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TV 역사드라마의 패턴이 바뀌었다. 천편일률적으로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권력 다툼이나 여인네들의 궁중 암투를 그리던 것에서 벗어나 고구려와 발해라는 대륙을 호령했던 나라들을 그 소재를 확대시키기 시작했다. 물론 자기땅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자신들의 역사라는 말도 안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기인한 바가 크긴 하지만 그러한 드라마들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자긍심을 보여주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 TV 역사드라마들은 또 한번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것은 그저 언제나 역사의 뒤편에 서서 주변인으로 비추어졌던 여성들에 대한 재해석이다. 물론 권력의 중심에 서있던 여성들을 다룬 드라마가 없진 않았지만 있다고 해도 대부분 좋지않은 말로를 보여준 인물들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천추태후'나 '선덕여왕'등 직접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여걸들의 모습은 분명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신용우의 역사소설 <천추태후>는 실제 나이 어린 국왕을 대신해 그 모후로서 권력을 쥐고 섭정을 했던 헌애왕후 즉 천추태후의 일생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천추태후는 역사속에서 여걸이라는 이미지와는 다소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조선초에 쓰여진 <고려사>에는 경종의 왕후였지만 경종 사후 천추궁이라는 곳에서 머물며 김치양이라는 인물과의 불륜을 통해 낳은 아이를 차기 국왕으로 만들려 했던 요부이자 권력에만 눈이 먼 여인으로 천추태후를 묘사하고 있다. 오랫동안 그렇게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던 천추태후가 천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새롭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재평가받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저 눈앞의 권력을 쫓던 요부였을까 아니면 진정 고토회복을 꿈꾸는 진정한 여걸이었을까.

 

천추태후가 어떠한 인물이었나 평가하기 이전 당시의 정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듯 싶다. 태조 왕건과 함께 후삼국 통일에 기여했던 많은 호족들은 대부분 광종대에 숙청되고 얼마 남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경종대에 이르러 비로소 움츠려든 권력에의 의지를 표방하고 반격에 나서기 시작한다. 그러한 혼란의 시기 경종이 맞이한 왕후가 헌애왕후이며 경종과의 사이에서 낳은 목종의 모후가 되는 천추태후가 된다. 그녀의 친동생 역시 경종에게 시집오게 되어 헌정왕후가 되면서 자매가 모두 경종의 왕후가 되지만 경종은 호족 세력들의 견제에 부딪히면서 정치 자체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정사를 게을리하게 된다. 결국 그는 그의 사촌동생이자 천추태후의 친오빠인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숨을 거둔다.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통정하고 복잡한 혼인관계는 태조 왕건이 호족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펼쳤던 혼인정책에서 기인한다. 왕건은 29명의 부인과 30명이 넘는 자식을 남겼고 왕건강화를 위해 족내혼을 적극 장려했다. 천추태후 자매가 경종에게 시집가게 된 이유도 결국 왕족간의 세력결집을 위함이기도 했다. 성종은 즉위 이후 유교적 이념아래 송과의 적극적인 외교를 펼치고 거란과 대립하게 되고 마침내 거란이 칩입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천추의 한을 풉시다."
소설은 병자호란 이후 북벌을 계획하던 효종과 어영대장 이완의 밀담속에서 효종이 북벌에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강력한 표현으로 천추태후의 원대한 꿈을 거론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외세를 이용해 힘을 키우는 방법을 택할 것을 이야기 한다. 결국 그것은 천추태후의 외교력이 어떠한 것이느냐이며 이 소설에서 가장 크게 다루는 초점이기도 하다. 천추태후가 남성스런 호방함을 갖추었다는데는 이견이 없겠지만 그 용맹함을 넘어 소설속에서 다루어진 거란 성종을 찾아갔다는 내용이나 서희의 외교담판을 지시했다는 내용 등은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 아닌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듯 소설과 이미 시작한 TV드라마는 조금은 그 포인트를 조금 달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는 오빠인 성종과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시작하지만 소설속에는 그러한 모습이 없다. 소설 속에서 그들은 동지이며 뜻을 같이하는 오누이로 묘사된다. 또한 강조 역시 천추태후와의 연결고리가 보이질 않는다. 다만 김치양과의 사랑만은 소설속에서나 드라마 속에서나 실제 역사속에서 진실처럼 보여질 뿐이다.

 

역사의 기록에 의해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릴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소설속 효종의 표현처럼 그녀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유교사상과 중국에 대한 사대가 국가이념이었던 나라가 조선이었기에 그들이 쓴 고려의 역사 역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방향으로 밖에는 해석할 수 없고 천추태후에 대한 기록 역시 그러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볼 대목이기도 하다. 목종의 죽음과 천추태후의 실각이 서기 1009년이니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천 년전이다. 그녀 스스로가 천추태후라 부르기도 했던 것처럼 천 개의 가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되는 것이 어쩌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것으로 보여지는 것 같다.

 

역동적이고 자주적인 고려인의 모습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치열한 경쟁만이 존재하는 오늘날의 국제 정세에서 과연 실리적인 외교가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을 갈망했고 권력만을 쫓던 요부와 시대를 앞서갔던 야심찬 여성리더라는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천추태후에 대한 재조명은 편협한 역사관에서 우리를 깨어날수 있게 해주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는듯 보여진다. 다만 그녀의 쓸쓸한 퇴장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지난날에 대한 자부심도 앞으로 다가올 희망도 없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잠시 머물다 사라진 구름처럼 되어버린, 고구려의 기백을 가슴에 안고 요동 땅을 차지해 그날의 영예를 다시 누려 보겠다는 빛바랜 꿈뿐이요, 바람처럼 왔다가 스쳐 가버린 권력이라는 허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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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죽었다
셔먼 영 지음, 이정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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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생기고 여러가지 획기적인 발견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문자의 발명과 그 문자를 기록할 수 있는 책의 존재는 인류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 자체를 선사시대와 그 이후의 역사시대로 구분하는 보편화된 역사구분을 통해 증명되기도 한다. 문자와 책을 가진 민족은 세계사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민족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 가곤 했다. 또한 인쇄술의 발명은 인류를 다시 한번 도약하는 계기로 만들어 주었고, 책은 언제나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호주의 책 애호가 셔먼 영은 이 책 <책은 죽었다>를 통해 그렇게 언제나 인류와 함께 해왔던 책이 이미 물리적으로는 죽었음을 선언한다. 저자가 그러한 선언을 하게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온다. 저자는 집의 내부 수리를 위해 집에 있던 수 백권의 책을 지하실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호우로 인해 모두가 젖어버리는 일을 당한다. 젖어서 훼손된 책을 바라보며 저자는 문득 책을 창고에 넣어둔 이후 한번도 꺼내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젖어 버린 책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잊고 있었던 그 책들이 이미 자신에게 죽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한 생각을 통해 저자는 상실감 보다는 오히려 해방감을 느낀다. 물리적인 책의 부피는 상상을 초월한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그 부피는 집안의 서가 뿐만 아니라 책의 유통 전반에 걸쳐서도 많은 제약을 주기도 한다. 물론 지금 현재도 유통되지 않는 책이나 팔렸어도 주인에 의해 버림받는 책들은 당연히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 역시도 저자가 언급한 책의 물리적인 죽음이다. 결국 저자가 '책은 죽었다'라는 전제를 내리는 것은 물리적인 책의 종말이지만 이를 통해 저자는 책의 탄생과 유통, 보관 그리고 책에 관한 이해관계자들 즉 저자, 출판사, 독자까지 모두 아우르는 책의 시스템 전체에 대해 새로운 도전의 시기가 직면했음을 알리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책 문화란 책을 특정짓는 그 무엇이다."
책은 단순한 활자만으로 그 본질을 파악할 수는 없다. 그 안에는 대중들이 여러가지 다양한 사상을 접해 보다 깊이있는 사고를 하며, 책을 통해 다른 이들의 생각과 의견을 배워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갖게 만드는 원천으로 작용해 왔다. 즉, 공적인 대화를 통해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 내는 이상적인 목표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에 결국 책 문화의 가장 큰 핵심은 쓰고 읽고 편집해서 사상을 출판하는 과정을 통해 보다 가치있고 인간적인 대화를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다. 결국 소설, 비소설의 형식적인 틀 보다는 사상이 우선시되어야 하며, 그러한 가치있는 저자의 주장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얼마나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에 그 성공의 여부가 달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독자는 그 활자만으로 마치 영화를 보듯이 자신이 만드는 상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이다. 하지만 빠르고 순간적인 만족을 우선시하는 현대인들에게 지속적인 시간을 투자해 읽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선택에서 밀릴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결국 현대인에게 다양히 펼쳐진 문화적 선택속에서 책을 읽는 사람 자체가 줄어드는 것을 가리켜 저자는 '책이 죽었다'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음성과 영상으로 이루어진 인터넷 속의 멀티미디어는 우리의 생활 전반을 일순간에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인터넷의 수 많은 웹 콘텐츠 역시도 완벽한 텍스트의 조합일 뿐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우리의 읽기 습관이 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읽는 방식은 물론 그 대상까지도. 발빠른 정보력과 신속함 그리고 역동적인 쌍방향의 참여를 통해 더 이상 글쓰기가 소수 이름있는 저자만들의 능력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블로그를 포함한 새로운 온라인 미디어 형식들은 생산과 소비의 경계를 허물었을뿐만 아니라 글쓰기와 출판의 경계까지도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 저자는 이를 통해 출판업계의 위기가 왔음을 알린다. 하지만 책 자체가 인간과 인간간의 소통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매개체이기에 그 문화를 보호하는 그들의 의무가 또한 중요함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출판사 역시 공익적인 측면이 있지만 경제적 수익은 그들의 존폐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요소임을 부정할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베스트 셀러가 차지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수치는 상당히 흥미로우며, 그 데이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출판사와 서점이 소수의 저자와 책에서 자유로울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추세에 맞추어 편안함과 슬림화라는 이름으로 전자책을 내세워 물리적인 형태의 책이란 존재에 대해 도전장을 던지며 책의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되었던 e-book은 기대만큼의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e-book은 단지 책이라는 외형적 모습을 없앴을뿐 비용적인 측면이나 독자들의 만족감을 이끌어 내지 못했던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어떠한 결론을 도출해낼지 궁금했다. 저자가 책이 죽었다고 선언한 것은 더이상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며, 그것은 현대 전자 정보사회에서 사람들이 책이라는 형태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식이건 여전히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읽으려 하기에 책이라는 물리적 형태는 죽을수 있지만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책 문화는 여전히 살아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죽은 책을 구하는 길은 책이라는 물리적인 형태를 없애고 새로운 형태로 대체할만한 혁신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책을 사랑하며 앞으로도 여전히 책이 그 자체로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는 미래를 원하기에 이 책을 썼으며 무엇보다 책에도 디지털의 미래를 적극 수용할 것을 권유하며 책을 맺는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물리적인 책의 형태는 이미 그 끝을 향해 있는지도 모른다. 출판인들 뿐만 아니라 책에 관련된 모든 이들이 한번쯤은 곱씹어볼 문제임이 분명한 부분이다. 저자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분명 출판업계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내외의 경제상황과 여건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책으로 만들어지는 문화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임에는 틀림없다. 새로운 기술은 위협이 아니라 기회라는 저자의 말처럼 보다 혁신적 대안을 통해 책에게서 떠나갔던 많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다시금 새로운 인간적 대화를 나눠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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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 우편기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9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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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에게 있어 <어린왕자>는 빼 놓을수 없는 작품이다. 그가 써낸 수많은 작품중에서도 세대를 초월하여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그의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어린왕자>를 출간하기 이전부터 이미 작가로서의 명성이 대단한 위치에 올라있던 사람이기도 했다. 물론 경제적인 요인도 있었겠지만 그는 촉망받는 작가 뿐만 아니라 어려서 우연히 타게 된 비행기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다. 실제 군에 입대해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으나 사고로 인해 그는 조종사라는 꿈을 잠시 접기도 한다. 이 책 <남방 우편기>는 그가 다시금 우편 비행기의 조종사로 일을 하기 시작한 직후에 집필한 작품으로 그의 처녀작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아직 비행기나 비행이라는 것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던 1920년대 후반 이미 민간 조종사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내디딘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 가운데에는 실제 비행기 조종사와 관련된 작품이 많다. <야간비행>이나 <인간의 대지>등은 조종사로 그가 겪거나 체험했던 명확한 근거아래 집필된 작품으로 그로 인해 그는 행동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기까지 한다. <남방 우편기>는 초기작인 만큼 그가 비행을 시작하면서 아직 떨쳐내지 못한 세상에 대한 여러가지 감정들이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어쩌면 20대 후반의 생텍쥐페리에게 세상은 언제나 그가 다가서야할 곳인 동시에 그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주인공 베르니스 역시 세상을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아픔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으로 기억한다. 그의 사랑 주느비에브가 사라진 곳은 더이상 그에게 애착의 대지로 남아있진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작품속의 화자는 베르니스와 어린시절부터 함께 했던 친구로서 즈느비에브와의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다른 이의 아내가 되면서 베르니스가 가져야했던 아픔들을 모두 알고 있는 이 이며 외롭고 고독한 비행중의 조종사에게 세상과의 유일한 접점을 찾아주고 있는 무선사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또한 전형적인 작가시점이 아니기에 어쩌면 베르니스와 주느비에브 둘 모두에게 조금은 더 가까이 독자들이 다가설수 있는 요인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간단하구나... 산다는 것도, 골동품을 정리한다는 것도, 그리고 죽는다는 것도..."
작품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오랜 휴가를 끝내고 베르니스는 그의 일인 우편비행을 위해 비행장으로 돌아왔다. 우울함이 들기도 했지만 그는 이제 모든 것을 남겨두고 왔다고 생각한다. 평온해진 상태에서 프랑스발 남아메리카행 우편기에 탑승한 그는 모든 것을 잊고 비행에 집중하려 한다. 잠시 잠깐 비행은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이내 평온을 되찾고 작품은 지나간 그의 두 달간의 여정에 집중한다. 그는 파리에 돌아와 이미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는 주느비에브와 재회한다. 남편과의 불화와 함께 아이의 죽음을 겪으면서 주느비에브는 탈진해버린다. 그리고 그녀는 베르니스에게 함께 떠나줄 수 있느냐 묻는다. 그렇게 두 연인의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지만 이내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어쩌면 그는 그것이 모두 미리 짜여진 각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절망한다. 그처럼 그녀는 그에게 잠깐 왔다가 사라진 꿈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베르니스는 그녀를 잊기 위해 거리의 창녀를 찾기까지 하지만 이내 그는 그녀가 머물고 있는 고향을 찾아간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그곳애서 그는 주느비에브의 마지막을 목격한다. 결국 자신의 세계로 주느비에브를 이끄려 했던 그의 기대는 그가 비행중 건너는 사막만큼의 모래장막이었던 것이다. 

 

'골동품은 이미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사랑은 이 작품속에서 작가가 그리는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베르니스는 모든 것을 남겨두고 왔다고 했지만 화자가 보기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작품속에서 여러번 언급되는 골동품은 어쩌면 그러한 의미에 대해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표현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골동품은 기억속의 잊혀진 존재이다. 어떠한 사물은 시간과 개인의 추억이 더해 지면서 여러가지 의미를 담아 골동품이 되어간다.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주목하지는 않는다. 애초부터 골동품은 주느비에브에게나 베르니스에게나 하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주느비에브는 거리의 골동품 가게를 지나면서 골동품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아이에게 생명의 빛을 담아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고한 그녀의 취향은 베르니스가 보물처럼 여기던 골동품을 보는 시각차에서도 나타나는듯 하다. 결국 그녀의 죽음을 느끼면서 베르니스가 본 어둠을 머금고 있는 골동품은 그녀가 바라보던 빛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또한 베르니스가 화자에게 보낸 편지에 보여진 골동품 역시 쓰러진 과거의 영광이란 모습으로 나타난 것처럼 지울수 없는 과거의 모습 또는 그 안에 담겨진 또하나의 의미가 아닐까.

 

어려서 읽었던 <어린왕자>나 <인간의 대지>와는 달리 <남방 우편기>는 애절한 사랑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생텍쥐페리가 실제 경험했던 삶의 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실제 생텍쥐페리 역시 비행중 사라져 버린다. 자신에게 그러한 운명이 다가올것을 예견한 것처럼 작품속의 베르니스 역시 사막에서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의 흔적을 쫓아가는 화자의 여정을 통해 <야간비행>처럼 실제 생텍쥐페리의 삶을 엿보는듯 느껴지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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