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 - 악의 뿌리 미국이 지목한‘악의 축’그들은 왜 나쁜 나라가 되었을까?
권태훈 외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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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세기는 총칼을 앞세운 무력이 지배하던 세기였다. 그리고 그 무력은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양극의 리드아래 냉전이란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첨예한 그 시기가 이어지면서 세계는 겉으로 평화롭기까지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세계의 곳곳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데 열중이었다. 하지만 그 한 축인 소련의 붕괴는 세계에 여러가지 변화를 가져온다. 그렇게해서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한 강대국으로 남는다. 하지만 세계의 많은 국가들은 미국의 독주를 그저 방관하지만은 않는다. 소련 지배하의 동구권국가들을 유럽연합이 떠안아 그들만의 결속력을 새롭게 과시하며 미국에 맞서고 인구 파워를 내세운 미래의 강대국 중국과 인도 역시 그 변화의 추세에 동참한다. 또한 자원이라는 무기를 앞세운 베네수엘라를 필두로 중동의 다크호스 이란 등도 여전히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많은 국가들이 자력으로 상대하기 힘든 미국과 맞서고 있는 것인지 세계의 변방으로 밖에 취급되지 않던 쿠바, 리비아 그리고 북한은 지난 세기부터 오랜 기간 미국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것인지 이 책 <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은 그 시작과 원인에 대해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책은 7명의 각기 다른 저자가 각각 하나의 나라를 맡아 집필하고 저자들이 한데 모여 그들이 집필한 나라와 미국에 대한 토론을 다룬 내용인 좌담회를 싣고 있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미국이란 나라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좌담회는 이 책의 백미라 할 만큼 저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책의 첫번째 장은 쿠바가 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피로서 혁명을 완성한 나라이며 지난 세기 이른바 '쿠바사태'로 불리며 미국과 소련이 극한 대치까지 벌였던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이다. 그저 버려진 작은 섬이었던 쿠바는 사탕수수라는 자원을 통해 미국의 관심을 얻게 되고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경제적인 식민지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민중의 끊임없는 의지는 결국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해냈지만 미국은 경제봉쇄로 소국 쿠바를 압박한다. 결과론적이지만 미국의 경제봉쇄는 식량이 없던 쿠바를 세계적인 유기농 농업국으로 만들어냈고, 의약품이 없던 쿠바의 의사들을 남미 전체를 아우르는 '맨발의 의사들'로 탄생시켰다. 미국이 봉쇄라는 정책으로 맞설만큼 쿠바를 싫어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자주국가의 길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쿠바에서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익이 발생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혁명은 그들의 경제를 어렵게 만들긴 했지만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는 나라를 만들자'는 혁명정신은 아직까지도 미국에 맞서고 있는 그들의 의지일 것이다.

자원을 앞세운 국가주의의 선봉에 서있는 나라가 지구상에서 가장 휘발유 값이 싼 나라 베네수엘라이다. 미국의 부시를 지상 최대의 테러리스트라고 조롱하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흔히 '석유를 가진 체 게바라'라 불린다. 이 책에서 언급된 나라들중 미국에 적어도 경제적으로 부담을 가할 만큼의 능력을 갖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세계 5위의 석유수출국 베네수엘라의 석유는 그간 미국의 든든한 자원이 되어 주었지만 차베스의 집권은 그것을 자국의 이익으로 국한시킨다. 그리고 차베스는 그 석유를 이용해 남미전체를 미국에 대항하도록 하고 또한 중남미 전체를 좌익노선으로 이끌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유히 유조선을 미국의 항구에 올려보내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실속을 챙기고 있기도 하다. 바로 그것이 그를 일컬어 '석유를 가진 체 게바라'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강력한 민중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그가 선거를 통해 집권에 성공했으며, 미국의 사주를 받은 보수쿠데타가 일어났을때도 민중들에 의해 다시금 복귀했기 때문이다. 

책은 이후에도 오래도록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혁명과 보수의 정권이 반복되고 있는 니카라과, 이른바 명분없는 전쟁이라 칭해졌던 베트남 전쟁의 실상, 중동의 새로운 강자로 출현하고 있는 이란, 오래도록 미국의 골칫거리로만 여겨지는 카다피의 나라 리비아에 대해 다룬다. 또한 우리와 뗄레야 뗄수 없는 우리의 반쪽 북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북한을 그들의 정식 명칭인 '조선'이라 칭하고 있다. 사실 그들의 국호이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는 북한을 조선이라 부르는 것조차 쉽게 허락하질 못한다. 어쩌면 그것부터 우리가 북한을 제대로 된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핵을 둘러싼 주변 열강들과의 이해관계를 통해 북한의 능수능란한 외교술을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그들이 미국에 단 한번도 굴복한 적이 없으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제국주의에 대해 맞설수 있는 전략을 가장 잘 알수 있는 것이 바로 북한의 역사라 소개하고 있다.

책에 소개된 나라들이 미국과 맞섰던 것을 살펴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은 자국의 이익이 침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세계의 경찰국가임을 강조하면서도 그 이면에 자국기업들의 이익만을 쫓고 있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은 이미 남미에서 여러번 나타난 우익 쿠데다들에 의해 증명된 바 있기도 하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나라의 민중들 삶에는 전혀 상관없이 총칼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맞선 나라들은 그저 살기 위해 미국과 맞선 것 뿐이다. 그 나라의 민중이 좀더 인간답게 살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꿈은  결국 미국의 패권주의 맞서는 것 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네수엘 어느 장관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식 마인드를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무조건적인 '반미'는 아닐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국가들이 무엇 때문에 미국에 맞섰고 스스로도 힘든 싸움임을 알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버티는 그들만의 오기와 가치는 무엇인지를 알아보려는 의지일 것이다. 보다 넓은 시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객관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시도야말로 진정 우리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커다란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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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조선 1 - 금속활자의 길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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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이땅의 주인으로 올라서기까지에는 여러가지 많은 요인중에서도 문명이라는 요소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문자의 발명은 인류를 선사에서 역사시대로 전환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그 바탕아래서 인류는 문화라는 꽃을 피워 나갔다. 그리고 각각의 민족들은 그 문화를 기록하는 것을 또 하나의 힘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한 나라의 문화를 이야기할 때 책 이라는 기록문화의 유산을 빼놓고는 이야기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만들고 많이 보는 민족이 문화가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봤을때, 인쇄에 의한 책의 양산은 당대 문화의 수준을 결정짓는 직접적인 요소였기에 결국 인쇄술의 발달은 결국 그 나라와 민족의 문화적 척도를 보여주는 하나의 잣대였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는 13세기 경부터 금속활자를 이용해 책을 찍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나 발간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에 의해 우리 민족문화의 우수성은 증명되고 있다. 고려를 이은 조선 역시 계미자와 갑인자로 대표되는 우수한 주조술과 조판술을 보유하고 있는 문화국가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려나 조선의 금속활자에 비해 구텐베르크에 의해 발명된 금속활자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커다란 사건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의해 발명된 인쇄술은 어쩌면 인류가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게기가 되었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세영의 역사팩션 <구텐베르크의 조선>은 이러한 문화적, 시대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팩션의 결정적인 성공요소가 사실과 픽션의 절묘한 조합이라고 본다면 대부분의 인물이 실존인물인 이 역사소설은 그 기대에 절묘히 부합하고 있는 듯하다. 

소설속의 이야기는 실존인물인 장영실에 의해 시작된다. 과학기술을 장려했던 세종에 의해 관노출신이었음에도 상호군이라는 높은 지위에 오를만큼 인정받던 장영실이 임금의 가마 받침대가 부러졌다는 이유로 곤장 80대를 맞고 홀연히 종적을 감춘다. 그의 밑에서 주자소 야금장으로 있던 석주원은 그저 스승을 그리며 보잘것없는 자신의 실력을 탓하기만 하고 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훈민정음 반포를 놓고 반대세력이 결집하고 주자소까지 장악하려 했던 시기였다. 결국 세종은 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장영실을 명으로 보내 새활자를 만들게 했고 장영실은 제자인 주원을 명으로 불러들이게 된 것이다. 명으로 떠나기 전날 주원은 집현전에서 세종을 만나고 그의 밀지를 가슴에 새기게 된다.
"훈민정음이 널리 쓰일 수 있도록 상호군을 도와 꼭 우수한 활자를 주조토록 하거라."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살아가는 주원이었지만 그에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우수한 활자의 개발을 위해 스승이 그토록 원했던 지옥불을 일으키는 해탄을 만나게 되지만 그로 인해 주원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맞게 된다. 결국 주원은 2년간의 조건으로 티무르제국으로 떠나게 된다.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일대인 사마르칸트 지역의 티무르 제국에서 금속활자공을 보내줄 것을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내것을 지키면서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스승의 가르침은 이후 주원이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진리로 남게 된다. 사마르칸트에서 주원은 그 지방의 총독 호자를 통해 이레네를 만나게 된다.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이레네는 동로마제국의 귀족이었지만 집안의 몰락으로 인해 호자의 보호아래 있었고 호자는 그녀에게 주원의 시중을 들게 한다. 주원은 사마르칸트에서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보내며 로마 교황청의 사절단으로 온 쿠자누스 신부와 만나 조선의 활자술의 우수성을 인정받게 되지만 사마르칸트에서의 일어난 권력다툼으로 인해 호자가 실각하게 되고 주원과 이레네는 쿠자누스 신부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빠져나와 머언 독일의 마인츠로 떠나게 된다. 잠깐 머물것 같던 주원의 마인츠 생활은 끝없이 이어진다. 오스만투르크제국이 동서양의 길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쿠자누스 신부의 소개에 의해 구텐베르크 공방에서 일하게 된 주원은 탁월한 기술과 그만의 열정으로 마인츠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간다. 

주원의 마인츠에서의 생활은 세계사적 운명의 중심 바로 그것이었다. 1권의 대부분은 교황청의 성서 인쇄를 둘러싼 반대세력과의 경쟁을 다루고 있으며, 2권은 천년을 이어온 대제국인 동로마제국의 마지막에 주원과 이레네가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3권에서는 앞서 재판을 통해 구텐베르크 공방을 빼앗아갔던 푸스트 상사와의 운명을 건 피렌체에서의 대결이 펼쳐진다. 특히 피렌체에서 결정적으로 주원을 돕는 어린 소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등장은 절묘한 팩션의 진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주원이 조선을 그리워하며 세상의 끝이라 여겨졌던 포르투칼 사그레스에 이레네와 함께 서 있을때 하께 있던 콜럼버스의 등장까지 작품은 절묘한 실존인물의 등장으로 실제 살아 있는 역사가 아닐까 여겨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 작품은 익히 소개된대로 엘 고어의 말로 인해 알려진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작가 오세영 역시 서문에서 그러한 과장들을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창조해 낸 작가의 상상력에 탄복하지 않을수가 없다. 석주원이 장영실의 제자라는 것, 구텐베르크와의 만남, 콜럼버스의 등장 등의 많은 장면들이 억지로 짜맞춘것이 아니라 정교하고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중고교의 교과서에는 우리의 조상이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했다고만 써놓았을뿐 그것이 세계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그저 직지라는 이름만을 외우려 할 뿐... 한 나라의 문화적 상징인 책을 만들어내는 인쇄술이 얼마나 훌륭한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듯한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좀 더 우리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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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돌핀 프로젝트 펄프픽션 1
박범신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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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의 삶은 어쩌면 죽음이라는 삶의 종착역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삶을 살아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이유는 단하나 세상과의 결별이고,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의연해지기 쉽지 않다. 하지만 여기 자살을 하려하는 중년의 남자는 적어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듯 하다. 오히려 그는 한번뿐인 죽음을 연습하고 즐김으로서 그 행위를 자신의 삶의 마지막 축제로 만들려 하는 것으로꺼지 보이기 때문이다.

일평생 한직장에서만 일을 했던 그에게 회사가 준 선물은 권고사직이었고, 그는 퇴직금으로 조금씩 주식투자를 했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 남은 38평 아파트라도 지키기 위해 그는 아내와의 위장이혼을 선택하고 그는 어느 옥탑방에 혼자 앉아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곳에서 그는 단식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호흡을 멈추기 시작하면서 정체모를 향기와 함께 기분좋은 어떠한상태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찾아오고 있는 딸 애린의 모습이 보이지는 그는 그것을 환영이라 생각한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듯한 환영속에서 둥둥떠다니던 그는 진짜 자신을 찾아온 딸에 의해 퍼뜩 눈을 뜬다.

"너무나 단세포적인 삶이었어!"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이제 그가 환영속에서 보았던 사실들을 통해 육체와 분리될 수 있는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게 된다. 그것은 그에게 죽음이란 혼의 해방이라는 보다 실증적인 사실로 다가온다.
"... 나는 고치속의 누에가 아니야!"

마흔아홉의 그는 이제서야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통해 죽음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다가서려 한다. 도박에 빠져있는 아내, 어릴적 그의 아버지가 인위적으로 만들려 했던 고향, 어릴적 우물에 빠져 죽어 버렸던 동생 재균, 그에게 당당히 자신의 처녀성을 바라지말라던 젊은날의 아내 그리고 첫사랑 순희까지 그는 자신의 기억 저편에 있는 과거와 엄연히 존재하고 현실을 차례로 돌아본다. 그는 재균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싶었다. 어쩌면 재균의 죽음이 그가 평생 가슴 한구석에 가지고 있었던 죄의식의 연원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한번 호흡을 멈추고 재균을 찾는다. 재균은 그에게 맑고 향기로운 우물이 행복하다 말한다. 그 역시도 그 우물속에서 열락(悅樂)을 느낀다. 그는 뛰어들고 싶다 생각한다. 현실에서 그는 고향으로 찾아가지만 재균이 죽은 우물은 이미 없어져 버렸다. 대신 그는 고향마을에서 순희의 모습을 떠올리며 잠깐이나마 유포리아(euphoria)의 시간을 찾아낸다.   

"그 무엇이든, 회한이 남아있다면 아직 여기 올 준비가 안 된 거예요."
그는 다시는 어떤 틀, 어떤 허울도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새로운 삶을 준비하려 하고 그도 잠깐이나마 현실세계와의 소통을 시도해 보려하지만 결국 그는 재균의 말대로 모든 회한을 정리하려 한다. 그것이 그 어떤 일이 될지라도...

한국문단의 대표적인 중견작가 박범신의 <엔돌핀 프로젝트>는 얼핏보면 실직에 이은 이혼 그리고 혼자만의 칩거생활을 하는 중년가장의 외로운 죽음을 그리는 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한 죽음보다는 주인공이 스스로 죽음에 다가서는 과정에 주목해 봐야 할듯하다.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그 과정을 연습하기까지 한다. 결국 무엇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느냐 보다는 그가 맞이하는 향기로운 죽음의 의미에 우리들의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그가 가부좌를 틀며 근사한 작명이라 생각한 <엔돌핀 프로젝트>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욕망의 난폭한 폭발을 유도하고 있는 저 바깥세상의 포식자들은 결코 맛볼 수 없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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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08-07-07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퍼님, 안녕하세요 :) (책좋사 ㅋㅋ) 땡스투 남겨요~

재퍼 2008-07-07 20:21   좋아요 0 | URL
땡스투... 으흐흐 감사합니다...
 
백마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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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90년대 말 영화화되어 히로스에 료코라는 요정을 탄생시킨 <비밀>이후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거칠것이 없이 질주중이다. 그가 써내는 작품마다 일본을 넘어 우리나라까지도 그 판권을 따내려 안간힘이다. 무엇이 그토록 히가시노 게이고에 열광토록 했을까. 그의 작품이 워낙 많기에 전부 읽어볼 수는 없었지만 <용의자 X의 헌신>을 필두로 내가 읽은 그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책속으로 빠져들 수 밖엔 없도록 만들었던 힘이 있는듯 느껴졌다. 추리소설이라는 분야에서는 그는 이미 독보적인 존재가 된지 오래이며,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는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으로 단 한순간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그만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백마산장 살인사건>은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추리소설의 기법들을 한데 모아놓은 듯한 작품이다. 암호에 감추어진 사건의 열쇠, 밀실속에서 이루어진 의문의 죽음, 반복되는 연쇄살인,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까지 어디선가 본듯한 장면들은 이렇게 한데 모아져 전혀 어색함 없이 숨가쁘게만 흘러간다.

"마리아님은 집에 언제 돌아왔지?"
나오코의 오빠 고이치는 1년전 한겨울 지방의 작은 산장에서 독약을 먹은 사체로 발견되었다. 대학원 시험에 떨어져 불투명해진 장래를 걱정하다가 새롭게 마음먹고자 전국일주를 위해 집을 나섰지만 나오코에게 짧지만 활기찬 엽서 한장을 남기곤 죽음을 맞았다. 사건을 담당한 형사도 당시 산장에 머물던 사람들도 모두 그가 노이로제 때문에 자살했을거라는 결론을 내린채 사건은 마무리 된다. 그리고 1년이 지난후 나오코는 오빠의 죽음에 의문을 갖고 마치 남자처럼 보이는 덩치큰 친구 마코도와 함께 직접 오빠가 숨진 산장으로 찾아간다. 일년전 산장에 머물었던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때가 바로 지금이었기에 나오코는 마코토와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산장을 찾아갈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머더구스'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펜션은 모두 8개의 객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래 영국사람의 별장이었지만 어떠한 사연으로 인해 지금의 주인이 매입하여 펜션으로 개조되었으며, 각 방에는 전주인의 요청대로 영국의 전승동요집 '머더구스'에 나오는 동요들이 새겨진 벽걸이가 걸려있다. 앞면에는 영문 그대로 뒷면에는 펜션의 주인이며 마스터라 불리는 남자가 일본어로 해석한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나오코와 마코토의 방은 1년전 고이치가 사체로 발견된 '험프티 덤프티'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방이다. 마코토는 그곳에서 나오코가 오빠의 죽음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기에 그곳에 왔음을 밝힌다.
"생판 모르는 곳에서 이상한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긴 힘들죠. 우리들이 여기에 온 것은 납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이상도, 그이하의 목적도 없습니다. 물론 자살이라는 결론에 대해 의문점이 생기면 철저히 조사할 생각입니다."

이제 그녀들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다. 풍차라는 방에 묵고 있는 가미조란 남자에게서 2년전에도 이곳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정보를 입수히기도 하고, 함께 그곳에 왔던 의사의 부인으로부터 '머더구스'의 노래들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 방법들을 소개받기도 한다. 세인트 폴이라는 방에 묵고 있던 오오키란 남자는 사람들이 모두 궁금하게 여기는 벽걸이 속의 노래에 대해 그저 마케팅을 위한 수단일뿐 자신은 도통 흥미가 없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한 사람들에게서 오빠가 벽걸이 속의 노래를 암호로 여기고 그 해독에 가까이 다가섰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들도 오빠가 엽서에서 얘기한 마라아를 발견하기까지 한다. 다음날 저녁 모두를 위한 파티가 시작되고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오오키가 또다시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펜션은 또다시 공포속에 휩싸여 버린다. 자살이라 하기엔 너무나 의문점이 많기만 하다. 결국 작가는 교통조차 불편한 산간속의 오지이기에 다른 사람이 절대 근접할 수 없는 산장이라는 조건을 갖추게 했다. 이로써 3년 연속으로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의 범인은 분명 산장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소설은 마치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연상하게 만든다. '머더구스'의 동요가사를 차용한 것이나 외부와의 연결이 단절된 곳이라는 설정이 그러하다. 사건의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벽걸이 속의 동요 '머더구스'일 뿐 범인은 좀처럼 윤곽을 드러내지 않는다.  

작품을 읽는 내내 히라시노 게이고가 만들어놓은 암호를 풀어보는 재미가 쏠쏠하기만 하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듯한 벽걸이 속의 동요들은 어떠한 일정한 규칙에 의해 재조합돼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오빠의 죽음뒤엔 어떠한 비밀이 숨어 있을까. 펜션의 손님들이 전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머더구스'와 관련이 있다. 2년전에 죽은 50대의 남자도, 작년에 죽은 나오코의 오빠도, 지금 죽어버린 오오키도, 펜션의 주인인 마스터도, 그리고 전 주인이었던 영국인까지도...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그곳에서 모든 사람을 모아놓고 사건의 해결을 맡은 무라마사 경부는 범인을 지목한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가 맨 뒤에 첨부한 두개의 에필로그이다. 이를 통해 뭔가 찜찜했던 모든 것이 해결된다. 여운없이 간결하게 끝을 맺어주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선택이 놀라울 뿐이다. 1년전 그리고 또 그 1년전 그리고 또 그 몇년전 마스터가 산장을 인수하던 그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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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의 복수 -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가 경고하는 인류 최악의 위기와 그 처방전
제임스 러브록 지음, 이한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세기 폭발적인 세계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인류가 선택했던 화석연료는 이미 오존층의 파괴로 스스로 그 일을 행한 인류에게 재앙수준으로 다가와 있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오르기만 하는 원유가격은 이미 화석연료의 종말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위기감으로 다가오기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때문에 세계각국은 바이오 디젤을 위시한 친환경 에너지의 적극적 사용을 권장하고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자는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영국의 세계적인 과학자 제임스 러브룩은 이른바 '가이아 이론'을 내세워 이미 인류가 스스로 자행한 지구에 대한 훼손행위가 도를 넘었으며 이젠 너무 늦어버렸다는 다소 충격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그는 이 책 <가이아의 복수>를 통해 인류에게 닥친 최악의 위기와 그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제임스 러브록이 말하는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진화하는 하나의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미 1970년대 초에 '가이아 가설'을 통해 지구는 어떠한 생물들이 모여 살건 간에 지표면 조건을 그들에게 알맞게 능동적으로 유지한다고 추정했고, 그러한 그의 가설은 그때까지의 기존 과학계의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독창적인 주장이기도 했다. 즉 지구를 단순한 하나의 행성을 넘어 긴밀하게 결합된 생물, 지표면 암석, 바다, 대기 전체로 이루어진 자기조절 시스템하에 움직이는 살아 있는 생물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러브록이 보는 가이아 이론은 지구는 지금 있는 생명에 가능한 알맞게 늘 유지되도록 표면 조건을 조절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러브록은 자신 스스로를 '행성의사'라 일컬으며, 자신의 환자인 살아있는 지구가 열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인류의 삶 자체가 건강한 지구에 의존하고 있기에, 무엇보다도 그안에 사는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지구의 건강악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인식해야 하는 것에서 온다고 보고 있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가 살기위해 농작물을 경작하는 것이 살아있는 지구의 피부 조직을 젓겨 내는 것이고, 그로 인한 오염이 우리들 뿐만 아니라 지구에게도 유해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지구는 이미 노쇠했고 기력 또한 쉽게 회복할 수 없기에 변화에 빨리 적응하고 용이하게 스스로 온도조절하던 젊고 튼튼했을 때의 모습을 잃었음을 직시 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가이아의 땅과 물을 식량과 연료생산을 위해 징발하는 것을 중단하고 공기를 오염시키는 행위를 중단한다 하더라도 이미 인류가 지구에 입힌 피해를 지구 스스로가 회복하기까지는 1천년 이상이 걸릴것이며, 그것은 다시 말해 그러한 조치들이 취해진다 하더라도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구하기에는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러브록이 보는 전망은 우울하기만 하며, 시련의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극한의 위기에 까지 내몰릴 것이다. 하지만 러브록은 인류는 강인하기에 에측되는 기후의 격변으로 인해 인류가 멸종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정작 걱정되는 것은 인류 발전의 토대가 되어 왔던 문명의 위기라 이야기 한다. 즉, 우리들 인간이 지구에 살고 있는 여타 다른 동물들에 비해 그다지 뛰어난 점이 없으면서도 지구의 주인으로 행세해 왔던 요인은 바로 문명이며 그를 통해 인류는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매워 왔기에 문명의 종말은 결국 인류의 종말과 다를 것이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지구의 많은 과학자들은 에너지 절약과 환경파괴에 맞서 다양한 대체 가능 에너지들을 개발하고 있다. 물의 낙차를 이용한 수력발전, 바람을 이용한 풍력,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조력 등 다양한 에너지원들에 대해 러브록은 비효율적이며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에는 너무나 부족함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류에게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한 바이오디젤 역시 그를 우리가 원하는 만큼 얻으려면 지구 몇배의 면적에 해당하는 경작지가 필요하며, 이미 너무나 많은 경작지를 파헤지고 개발한 우리에겐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러브록이 제안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원자력이다. 그는 화석에너지에 비해 폐기물의 처리가 용이한 것을 핵에너지의 두드러진 장점으로 꼽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핵에너지를 폭 넓게 이용하자는 주장은 이미 대중에게 팽배해 있는 원자력의 위험도를 극복하기 너무나 힘듬을 이야기 히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2차대전의 종말을 결정지었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폭을 모든 인류가 알고 있으며, 핵무기는 냉전의 시대 양대 진영에게 서로의 우위를 나타내는 것을 넘어 문명이 하루 이침에 종말 될 수도 있는 위기를 여러번 보여 주었으며, 체르노빌의 공포는 또한 그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대중의 인식이 잘못된 보도에서 비롯되었으며, 결코 원자력은 위험한 것이 아니고 절대적으로 안전함을 이야기 한다. 또한 원자력 역시 일시적인 수단일뿐 항구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다만 우리의 필요조건을 충족 시키면서 그것을 다른 에너지원에서 나오는 청정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는 미래를 게획해야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가이아를 통해서 나는 과학과 기술을 지닌 인간이 크게 이로울 수도 있고 크게 해로울 수도 있는 형질이라고 본다. 우리는 가이아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가이아의 일부이므로 우리의 지성은 가이아에게 새로운 위험일 뿐아니라 새로운 능력과 힘이기도 하다."
책의 말미에서 러브록이 제시하는 대안들은 어쩌면 현실성이 없어보이기도 한다. 지구의 인구를 1840년 수준인 5억으로 돌려놓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러브록은 그것이야 말로 이미 죽어가는 가이아를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라 하고 있다. 또한 도시와 경작지를 줄여 남은 땅을 가이아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도 현재의 우리로선 어렵기만 한 일이다. 결국 그것은 그만큼 우리에겐 남은 선택이 얼마 되지 않음을 경고하는 것으로만 들리기 까지 한다. 일부 우주 비행사들은 지구를 고향이라 이야기했고 창밖에 비춰진 지구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이야기 한다. 그것은 우리가 지구를 바라보는 시선을 그들처럼 느껴야 할 것이며, 결국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인식 역시도 살아 있는 생물에 국한 할 것이 아니라 지구 역시도 살아있는 가이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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