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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조선 1 - 금속활자의 길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인류가 이땅의 주인으로 올라서기까지에는 여러가지 많은 요인중에서도 문명이라는 요소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문자의 발명은 인류를 선사에서 역사시대로 전환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그 바탕아래서 인류는 문화라는 꽃을 피워 나갔다. 그리고 각각의 민족들은 그 문화를 기록하는 것을 또 하나의 힘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한 나라의 문화를 이야기할 때 책 이라는 기록문화의 유산을 빼놓고는 이야기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만들고 많이 보는 민족이 문화가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봤을때, 인쇄에 의한 책의 양산은 당대 문화의 수준을 결정짓는 직접적인 요소였기에 결국 인쇄술의 발달은 결국 그 나라와 민족의 문화적 척도를 보여주는 하나의 잣대였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는 13세기 경부터 금속활자를 이용해 책을 찍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나 발간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에 의해 우리 민족문화의 우수성은 증명되고 있다. 고려를 이은 조선 역시 계미자와 갑인자로 대표되는 우수한 주조술과 조판술을 보유하고 있는 문화국가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려나 조선의 금속활자에 비해 구텐베르크에 의해 발명된 금속활자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커다란 사건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의해 발명된 인쇄술은 어쩌면 인류가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게기가 되었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세영의 역사팩션 <구텐베르크의 조선>은 이러한 문화적, 시대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팩션의 결정적인 성공요소가 사실과 픽션의 절묘한 조합이라고 본다면 대부분의 인물이 실존인물인 이 역사소설은 그 기대에 절묘히 부합하고 있는 듯하다.
소설속의 이야기는 실존인물인 장영실에 의해 시작된다. 과학기술을 장려했던 세종에 의해 관노출신이었음에도 상호군이라는 높은 지위에 오를만큼 인정받던 장영실이 임금의 가마 받침대가 부러졌다는 이유로 곤장 80대를 맞고 홀연히 종적을 감춘다. 그의 밑에서 주자소 야금장으로 있던 석주원은 그저 스승을 그리며 보잘것없는 자신의 실력을 탓하기만 하고 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훈민정음 반포를 놓고 반대세력이 결집하고 주자소까지 장악하려 했던 시기였다. 결국 세종은 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장영실을 명으로 보내 새활자를 만들게 했고 장영실은 제자인 주원을 명으로 불러들이게 된 것이다. 명으로 떠나기 전날 주원은 집현전에서 세종을 만나고 그의 밀지를 가슴에 새기게 된다.
"훈민정음이 널리 쓰일 수 있도록 상호군을 도와 꼭 우수한 활자를 주조토록 하거라."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살아가는 주원이었지만 그에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우수한 활자의 개발을 위해 스승이 그토록 원했던 지옥불을 일으키는 해탄을 만나게 되지만 그로 인해 주원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맞게 된다. 결국 주원은 2년간의 조건으로 티무르제국으로 떠나게 된다.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일대인 사마르칸트 지역의 티무르 제국에서 금속활자공을 보내줄 것을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내것을 지키면서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스승의 가르침은 이후 주원이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진리로 남게 된다. 사마르칸트에서 주원은 그 지방의 총독 호자를 통해 이레네를 만나게 된다.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이레네는 동로마제국의 귀족이었지만 집안의 몰락으로 인해 호자의 보호아래 있었고 호자는 그녀에게 주원의 시중을 들게 한다. 주원은 사마르칸트에서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보내며 로마 교황청의 사절단으로 온 쿠자누스 신부와 만나 조선의 활자술의 우수성을 인정받게 되지만 사마르칸트에서의 일어난 권력다툼으로 인해 호자가 실각하게 되고 주원과 이레네는 쿠자누스 신부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빠져나와 머언 독일의 마인츠로 떠나게 된다. 잠깐 머물것 같던 주원의 마인츠 생활은 끝없이 이어진다. 오스만투르크제국이 동서양의 길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쿠자누스 신부의 소개에 의해 구텐베르크 공방에서 일하게 된 주원은 탁월한 기술과 그만의 열정으로 마인츠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간다.
주원의 마인츠에서의 생활은 세계사적 운명의 중심 바로 그것이었다. 1권의 대부분은 교황청의 성서 인쇄를 둘러싼 반대세력과의 경쟁을 다루고 있으며, 2권은 천년을 이어온 대제국인 동로마제국의 마지막에 주원과 이레네가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3권에서는 앞서 재판을 통해 구텐베르크 공방을 빼앗아갔던 푸스트 상사와의 운명을 건 피렌체에서의 대결이 펼쳐진다. 특히 피렌체에서 결정적으로 주원을 돕는 어린 소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등장은 절묘한 팩션의 진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주원이 조선을 그리워하며 세상의 끝이라 여겨졌던 포르투칼 사그레스에 이레네와 함께 서 있을때 하께 있던 콜럼버스의 등장까지 작품은 절묘한 실존인물의 등장으로 실제 살아 있는 역사가 아닐까 여겨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 작품은 익히 소개된대로 엘 고어의 말로 인해 알려진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작가 오세영 역시 서문에서 그러한 과장들을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창조해 낸 작가의 상상력에 탄복하지 않을수가 없다. 석주원이 장영실의 제자라는 것, 구텐베르크와의 만남, 콜럼버스의 등장 등의 많은 장면들이 억지로 짜맞춘것이 아니라 정교하고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중고교의 교과서에는 우리의 조상이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했다고만 써놓았을뿐 그것이 세계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그저 직지라는 이름만을 외우려 할 뿐... 한 나라의 문화적 상징인 책을 만들어내는 인쇄술이 얼마나 훌륭한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듯한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좀 더 우리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