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 랜스 암스트롱, 삶으로의 귀환
랜스 암스트롱.샐리 젠킨스 지음, 김지양 옮김 / 체온365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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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 스포츠가 사랑받는 이유는 드라마나 영화처럼 미리 짜여진 각본이 아닌 진정으로 삶의 애환이 묻어나고 진솔한 인간본연의 모습이 드러나는 살아있는 드라마의 장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자신의 종목에서 진정으로 승리한 자들은 무엇보다도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는 말을 남기기도 한다. 그만큼 모든 일에 있어서 가장 어렵고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힘든 훈련을 이겨내야 하는 고난과 땀도 있겠고 많은 유혹과 나태해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상이라든가 어느날 자신의 삶에 갑자기 다가오는 질병의 공포를 극복해 내고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스포츠맨들이 더욱 커다란 칭송을 받는 것은 아마도 그러한 삶의 승리가 우리들에게 주는 진한 감동때문 일 것이다.

많은 스포츠 종목들중 극한 인간의 한계를 체험하게 해주는 종목들이 있다. 그중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전역을 일주하는 투르 드 프랑스라는 경주는 20일 이상 매일 극한의 한계를 맛보게 해주는 점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힘든 스포츠 종목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참가선수중 대부분이 낙오하고 포기하는 사태가 매년 발생하는 것을 보면 이 경주 자체를 완주해낸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의 주인공 랜스 암스트롱은 이러한 죽음의 경주 트루 드 프랑스에서 7회 연속 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긴 위대한 스포츠맨이다. 그것도 고환암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극복해내고 이뤄낸 것이기에 그는 더욱 칭송받는 인간이기도 하다.

어머니와 단둘이 보냈던 불우하고 외로웠던 시절의 랜스에게 유일한 친구는 바로 자전거였다. 그는 자전거를 만나면서 삶의 희망을 찾았고 강인한 남자로 거듭나게 된다. 주니어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성인대회에서도 지칠줄 모르는 체력으로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던 랜스에게 어느날 찾아온 암이라는 진단은 그를 절망에 빠지게 한다.
"왜 하필 나란 말인가?"
그가 마음속으로 수 없이 외쳤던 질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질문이 너무나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왔던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랜스는 그가 암을 선고 받기전 대부분의 삶에서 승리 아니면 패배라는 아주 단순한 구조속에서 살아왔음을 느낀다. 그러나 이제 랜스에게 암이라는 존재는 모호함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게 된다. 암은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며 남아있는 삶의 확률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여기서 기어 나가시게 될겁니다."
휴스턴에서 검사를 마치고 만난 의사가 랜스에게 던진 말이다. 계속해서 그는 항암치료로 랜스를 죽이고 다시 살리고 새 삶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치료가 끝나면 랜스는 거지도 못하게 될 것이지만 그때 그가 걷는법 부터 다시 가르쳐 주겠노라고 말한다.

치열한 암과의 싸움은 랜스를 정신적으로도 성숙하게 만든다. 그리고 랜스는 깨닫게 된다. 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탄게 아니었고 다만 경주라든가 훈련프로그램같은 목적이 있었음을. 하지만 암이라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그는 이제 자전거를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가 필요함을 느낀다. 이제 랜스는 그가 암과 싸웠던 그 기간동안 벌어졌던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과 그의 주변 친구들에게 증명을 해 보이고 싶었다. 모두에게 자신의 상태가 괜찮고 여전히 그가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게 된다.

복귀후 그에게 당장 다가온 것은 그 이전같은 위대한 승리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느낀다. 암극복이라는 것이 단지 몸이 회복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것은 몸과 함께 마음과 영혼까지도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랜스 암스트롱의 인생이 묻어나는 이 책은 단순히 그가 투르 드 프랑스라는 지옥의 레이스의 우승자임을 그리는 책이 아니다. 그는 그 경주를 통해 자신의 삶과 싸웠다. 그리고 그 승부는 그를 위대한 인생의 승리자로 우리들의 기억속에 남아 있게 해 주었다. 그는 자신의 남은 인생을 자신의 생존에 놀라워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암이라는 존재가 변화시킨 그의 신체적 변화가 아직 그 안에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더이상 암이라는 존재는 그의 삶과 생각 그리고 행동을 좀먹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암을 통해 그가 배웠던 것, 그가 느꼈던 것, 그리고 찬사받던 스포츠맨에서 순식간에 추락해버리는 자신의 인생, 그리고 다시 그 모든 것을 극복해 그 이전과 사뭇 다른 자신을 만들어낸 랜스 암스트롱의 승리를 통해 우리는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그 극한 주제에 맞서는 해답을 구해 낼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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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 마케터
벤 맥코넬 외 지음, 우병현 옮김 / 미래의창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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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국내 최고의 배급망을 자랑하던 어느 한 극장 체인망에서 찍힌 UCC 동영상 하나가 큰 주목을 받은 일이 있다. 거대 기업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던 소비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기위해 우연히 찍게 된 동영상 하나는 결국 소비자의 권리 자체를 다시 생각해보게 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게 됐고 결국 기업이 굴복하고 사과성명을 발표하는 단계가 되서야 일단락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또한 우리가 길거리에서 아무일 없이 스쳐지나 보내고 마는 모습 중의 하나였던 서울역 목도리녀의 동영상은 잠시나마 모든이의 주목을 받으며 훈훈한 미담으로 우리들의 가슴속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반면 가난한 신혼부부의 지하철 결혼식 동영상은 어느 대학 연극부의 인위적인 연출로 밝혀져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것들은 UCC시대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작은 동영상하나가 주는 파급 효과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회적 변화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이미 우리의 생활속에서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모든 사회적 현상들이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방향으로만 전개되었다. 이를테면 뉴스나 신문같은 매스 미디어의 경우는 그들이 전하는 뉴스나 소식을 일방적으로 보고 들었지만 이제는 수 많은 블로그에서 그들보다 더 빠른 소식들을 전해주기도 한다, 또한 우리가 상품을 구매할 때 가장 접할수 있는 상품에의 접근은 기업의 광고 이외에는 가까운 지인에게서 듣는 입소문 정도 밖엔 없었지만 이제는 수 많은 쇼핑사이트나 소비자가 참여하는 사이트에서 상품의 정보를 미리보고 충분한 판단을 내려 상품을 구매하게 될 정도로 상품의 구매패턴 또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자신이 좋아하는 상품이나 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벗어나 적극적인 소비자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즉, 이러한 자신의 의견이나 동영상들이 모이고 소수의 공감을 얻게 되면서 그것은 서서히 위력을 갖게 되고 어느 순간 해당 상품에 대해 누구도 저지할 수 없는 커다란 사회적 모습으로 귀결되게 되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좋아하는 제품을 위해 마케터가 되어 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개인들을 우리는 '시티즌 마케터'라 부른다. 그리고 이 책 <시티즌 마케터>는 이렇게 블로그나 UCC등을 통해 전파되는 개인들의 힘이 기업 마케팅에 까지 미치는 영향과 그 효과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책이다. 시티즌 마케터라고 불리우는 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새롭게 등장한 일련의 세력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진화하며 대중을 선도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아니기에 어떤 정해진 개인의 영향력조차도 미미한 이들을 일컫는다. 시티즌 마케터들의 작업은 인터넷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들과 비교하자면 대중문화와 개인적 표현의 경계선 상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이것이 바로 입소문이라는 근원적인 접근에서 시작된 새로운 방식의 역동적 권위라는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이러한 움직임들이 모여 전통적인 미디어에 의해 제기되었던 의문이나 메세지에 대한 소비자 행동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데드우드라는 서부시대 건맨들의 이야기를 그린 미국의 드라마가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방송국과의 밀약에 의해 드라마는 중단되고 만다. 하지만 종영을 반대하던 데드우드의 팬들은 팬커뮤니티들이 조직하고 다양한 온라인 활동을 펼치게 되면서 끝내 드라마의 추가제작이 이루어지게 하는 결과를 얻어내게 된다. 이 사건은 시티즌 마케터라는 그들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들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델 컴퓨터와 제프 자비스라는 어느 한 개인과의 마찰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파급효과는 델이라는 굴지의 컴퓨터회사가 휘청거릴 정도로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고장난 노트북 하나와 성의 없는 A/S 때문에 블로그에 올려진 자비스의 글은 델 악몽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델에게 다가갔다. 결국 자비스 개인이 혼자 벌인 일이 수천 수만의 블로그에 옮겨지고 인터넷뉴스,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매체들에 전파되면서 델사의 주가를 45퍼센트나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소셜 미디어라고 하는 이 대중현상들은 상호 참여를 통해서 형성된다. 참여라s는 매개체는 관계의 생성과 유지를 더욱 쉽게 만들며 사람들을 쉽게 결속시키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활동들은 그들의 자발적이고도 거짓이 없는 진정성이라는 자세에서 비롯되며 또한 그러한 진정성은 충성심이라는 자세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충성심이란 그들의 취미활동을 위해 그들의 시간과 자원을 헌신하는 방식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기업이 변화 해야하고 진정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방법에 대한 안내도 받게 된다. 결국 그것은 소셜미디어와 대중문화의 변화라는 빠른 시대의 조류에 맞추어 현장에서 일하는 기업의 종사자 들에게 새로운 마케팅과 홍보기법으로 다가서는 한가지 방편이기도 하며 '사람들이 메세지'라는 이 책의 메인카피에 부합하는 조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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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문화의 지형도
김기봉 외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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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란 시대의 모습을 가장 나타낼 수 잇는 척도 일것이다. 그것은 문화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대중적인 관심에 의해 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왔으며 또한 앞으로 어떠한 모습의 미래를 열어갈지 함축적으로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단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사회는 고도로 발달된 생산기술에 의해 생산량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면서 단순한 재화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뿐만 아니라 문화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또한 가능한 일이 되어버리고 있다. 그것은 결국 현대적 의미의 개인이 겪는 문화활동이란 노동으로 인해 상실된 에너지를 회복하거나 긴장을 완화시키는 차원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에너지나 재화의 소비를 동반하는 현대인의 빼놓을 수 없는 영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대사회가 더이상 갖추어진 틀에 만족하는 강요된 문화가 아닌 개인 각자가 스스로 참여하는 문화로의 탈바꿈을 뜻하고 있기도 하다. 현대사회는 이제 대중문화시대라고 감히 정의 내릴 수 있다. 교육과 평등사상의 확산으로 인해 일부 유한 계급의 문화 독점은 무너지고 있으며 그에 발맞춰 기업가는 대중의 문화 욕구에 부응하여 값싸고 대중적인 서적, 잡지, 사진, 스포츠용품 등을 대량생산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그로 인한 영화, 텔레비젼, 라디오 등 대중매체를 통해 형성된 대중문화는 이제 정보화시대라는 새로운 변혁기를 맞아 초고속 인터넷, 블로그, 1인미디어, UCC라는 날마다 새로운 신조어를 토해내며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요동치고 있다.   

 

그러한 문화적 전환점을 맞아 <29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문화의 지형도>는 많은 시대적 담론들을 담아내고 있는 책이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관심이 가장 가까운 문화적 코드들을 발췌해 지금 현재 그 키워드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돌아보고 그 시선에 대해 조명해볼 기회를 갖게 한다. 또한 그것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을 넘어 우리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관심사를 통해 미래를 도출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또한 이책 <29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문화의 지형도>를 통해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는 문화의 한 단면을 발견하기도 한다. 개인적 관심이라는 것이 어느정도 한계가 있기에 주위에서 쉽게 스쳐보내기 쉬운 주제에 대해 다시 한번쯤 고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양성평등문화, 미래의 가족, 잘죽음, 탈학교와 같은 키워드를 통해 우리는 그다지 우리가 관심을 갖고 싶어하지 않는 다양한 문화라는 이름의 이면을 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이제 문화라는 코드가 그저 대중적인 관심이 아닌 우리가 직접 개척해야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시대적 사명임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다양한 모습의 문화적 코드를 접했다. 개개인의 관심도에 따라 그 이해가 다를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구성은 그 접근방식부터가 남다르다. 각 분야의 전문가를 통해 잘 정리된 우리시대의 문화 지침서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만하다. 주제의 간략한 소개와 각장에 덧붙이는 읽을거리와 볼거리는 그래서 더욱 이해의 폭을 넓혀 주는데 기여한다.

 

우리에겐 현재의 모습을 바르게 인식하고 비판하며 잘못된 것은 바로 잡는 새로운 방식의 문화로의 접근이 필요할 때다. 쏟아지는 정보의 바다에서만 헤메일게 아니라 이러한 문화적코드의 접근을 통해 이 책이 던지는 오늘의 한국 문화에 대한 시사점을 인식하고 앞으로를 예측해 본다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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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 비판적 보수주의자 이상돈이 본
이상돈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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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87년 민중항쟁으로 이뤄낸 대통령직선제로 4명의 대통령을 선출했고 그때 우리는 환호했으며, 우리 손으로 직접 뽑은 대통령의 임기말 초라한 모습 역시 게속해서 보아왔다. 그것은 퇴임 후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우리들에게도 그것은 우리가 책임져야 할 과제로 남아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쩌면 아직 성숙되지 못한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의 과정이었으며, 좀 더 발전적인 민주주의의 앞날로 나아가기 위한 아픔과 시련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비단 언론에서 강요한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언제부턴가 양비론적인 시각으로 정치권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것은 우리에게 대안없는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굳이 우파, 좌파를 따지고 싶진 않지만 결과론적으론 10년동안 우리는 좌파정권에게 나라를 맡겨왔다는 시각이 일반적이고 지배론적인 시각이기도 하다.

비판적 보수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이상돈 교수는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하며 자신의 주장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라는 책에 옮겨 놓았다. 환경문제의 전문가로 조선일보의 비상임논설위원을 지내며 사설과 칼럼을 쓰던 저자는 1997년과 2002년 두번의 대선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보며 이것은 좌파정권의 집권이라고 규정짓고 이후 좌파세력의 수면 위 부상을 우려하며 인터넷과 각종신문에 정치적인 기고문을 싣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글들이 모여 이렇게 책으로 출간되기에 이른 것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일이 잦아지고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인터넷카페를 운영하기도 하고 각자의 색깔이 드러나는 사이트에 모여 자신들의 의견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는 일이 잦아졌다. 그만큼 이제 우리도 넋놓고 바라보던 정치권에 대해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참여를 하기도 하는 적극적인 민주주의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주로 젊은 층의 의견이 지배적이고 70,80년대에 학생시절을 보낸 이들이 사회의 주체세력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며, 그러한 급진적인 진보역시 그들이 강단에 서고 후학을 가르치는 시기가 되면서 좌파가 득세하는 세상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대부분의 젊은 세대들은 대부분 진보적인 성향을 지녔으며 그저 개혁만을 외치는 허상을 쫓는 그러한 방향을 잃어버린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비판받는 현 정권에 대해 어떻게 보면 그를 대통령으로 탄생시킨 우리 세대가 책임질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집에서나 건전한 토론이 사라진 밥상머리에서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외치는 현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우리는 고스란히 감수해 내는지도 모른다.

어느 한쪽의 의견이 지배적인 성향의 글을 읽고 나면 어느 순간 부터 그러한 의견에 대해 동조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철저한 한쪽의 의견만이 강조된 두꺼운 책을 읽다 보니 그 의견에 반하는 생각들이 많아지기도 한다. 정치인들은 그래서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려 건전한 보수니 건강한 진보니 중도적 좌파니 하며 좀 더 희석된 자신만의 이미지를 내 보이려 하는 것일 게다. 그것처럼 우리 각자가 어떠한 성향을 갖고 있다고 규정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것은 진보든 보수든 어느 한쪽의 의견을 크게 내세우다 보면 그저 반대성향의 의견이라는 이유로 상대의 의견을 묵살시켜버리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되어 버릴지도 모름이다. 저자의 생각처럼 이미 우리사회는 보수가 잊혀지고 급진적인 좌파가 득세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끊임없이 그 득세한 좌파에 대항해 우파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외친다. 그것은 아마도 이전에는 금기시되던 체게바라의 책과 그의 모습이 새겨진 티셔츠가 젊음의 상징이 되고 그들의 아이콘이 된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저자는 보수주의자들의 책읽기에 대해 언급하며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자들이 그만큼 책을 멀리 해왔기에 이러한 결과가 왔다고 개탄하기도 한다. 또한 이 책에서는 저자 자신이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면서 같은 보수주의자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의견을 던지기도 한다. 

세대에 따라 나이를 들면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고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보수적인 성향을 지녔다는 것은 이미 규정지어진 고루한 시각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의견이 중시되면서 오픈 프라이머리가 각 당의 지배적인 대통령후보 선출의 한 방법으로 선택되어지며 이미 한나라당은 그러한 방식으로 대선후보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오픈 프라이머리 역시 당의 색깔이 없어지며, 이념과 정책이 다른 타인의 참여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으로 인해 정당의 기능이 약화되는 인기투표에 그치는 행위라며 분명히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이 글들이 갖고 있는 성격 때문에 쉽게 읽히기는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보다 넓게 생각하고 이해의 폭을 확대해야하는 지금 같은 시기에 이러한 비판적인 글을 한번쯤 접해 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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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경성 -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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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흔히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고들 하지만 돈의 위력은 개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우리는 꿈을 쫓는다. 그것은 사랑이나 행복같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실체이기도 하지만 돈은 명확한 실체를 가진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를 그렇게 돈을 쫓아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약 100년전인 개화기 무렵부터 돈은 이제 그 실체를 드러낸것 같다. 그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민중들에게 신분상승의 길이기도 했으며 또한 구원의 손길이기도 했다. 이 책 <럭키경성>은 그렇게 개화기부터 일제하 신기루같은 돈의 꿈을 쫓아 가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는 그 꿈이 그저 한순간의 일장춘몽으로 날아가버린 이들의 이야기가 있는 반면 각고의 노력으로 대 재산가가 되어 자신의 꿈을 이루었으나 아름답게 그 이름을 후세에 남긴 이들의 이야기가 공존하고 있다.

지금도 그렇거니와 그 시절 돈은 권력이었고 대다수 민중들에게는 큰 돈을 벌기란 여전히 어려운 시기였다. 우리나라의 근대화 시절 이 땅을 집어삼킨 광풍은 복부인들의 땅투기 열풍이었다. 한동안 나라의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그 여파는 엄청났다. 그러나 그 서막은 지금으로부터 75년전 길회선 횡단항 후보지였던 나진에서 벌어진 투기광풍이 바로 그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정도의 열기로 인해 당시 조선의 돈이 모두 그곳으로 모이고 하루에도 땅임자가 수십번이나 뒤바뀔 정도였다니 그 열기가 지금의 눈으로도 느껴진다. 조선반도를 들썩거릴 정도의 투기열풍은 몇몇의 대부호와 김기덕이라는 토지왕을 만들어 냈지만 끝내 태평양전쟁과 일제의 패망으로 하루아침에 모두 잊혀진 기억으로만 후세에 전해진다.

이렇다 할 가십거리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고 신문을 통해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거부들은 늘 민중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때로는 돈 때문에 공격대상이 되기도 하고 지금으로 보자면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생을 성공을 위해 내달렸고 그때마다 참담한 실패를 거듭했던 김기진과 이종만의 삶은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우리가 흔히 사회주의 계열의 작가로만 알고 있는 소설가이며 실업가였던 김기진은 거듭되는 실패를 끝내 딛고 일어서지 못했지만 후에 금광왕으로 부리우는 이종만은 그때마다 자신이 벌어들인 돈을 미래의 후학을 위해 아낌없이 쾌적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이후 자진월북이라는 강수를 통해 그는 북한 애국열사릉에 묻힌 유일무이의 자본가로 지금도 그 이름을 전하고 있다.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보부상으로 시작해 마침내 민족교육자로 그리고 삼일운동 민족대표 33인중의 하나로 이름을 남긴 이승훈 선생과 평생 안먹고 안입고 아끼고 절약한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평양의 백선행이라고 불렸던 백과부나 최송설당의 삶이 그것을 다시한번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젊은이 들이 게을러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 거리에 쓰레기가 날리고 악취가 풍겨서는 나라가 발전할 수없다. 제 몸이 구린 사람이 민족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

이승훈 선생의 가르침이다.

땅투기나 증권, 마두같은 것은 물론 소수 투자자에게 이익을 남기고 개인의 부를 순간에 축적하게 하지만 그 부는 모두 일반 대중 전체가 떠안는 부담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투기는 아마도 인간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계속되어질 것이다. 그 옛날 매점매석을 일삼던 상인들부터 그것은 시작 되었을 테니까. 또한 그렇게 해서 언제나 소수의 승리자는 늘 존재했기에...

지금도 우리가 매일매일 증권 현황판을 보며 일희일비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투자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자신도 어느 순간 돈으로 인한 신분상승의 기회를 엿보고 있기에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교훈처럼 어떻게 버느냐 보다는 어떻게 쓰느냐에 관한 문제가 우선이지 않을까? 시대를 앞서간 그들의 삶을 반추해본다면 어떤 삶이 보다 가치있는 삶이었는지는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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