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경성 -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돈은 흔히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고들 하지만 돈의 위력은 개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우리는 꿈을 쫓는다. 그것은 사랑이나 행복같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실체이기도 하지만 돈은 명확한 실체를 가진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를 그렇게 돈을 쫓아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약 100년전인 개화기 무렵부터 돈은 이제 그 실체를 드러낸것 같다. 그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민중들에게 신분상승의 길이기도 했으며 또한 구원의 손길이기도 했다. 이 책 <럭키경성>은 그렇게 개화기부터 일제하 신기루같은 돈의 꿈을 쫓아 가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는 그 꿈이 그저 한순간의 일장춘몽으로 날아가버린 이들의 이야기가 있는 반면 각고의 노력으로 대 재산가가 되어 자신의 꿈을 이루었으나 아름답게 그 이름을 후세에 남긴 이들의 이야기가 공존하고 있다.

지금도 그렇거니와 그 시절 돈은 권력이었고 대다수 민중들에게는 큰 돈을 벌기란 여전히 어려운 시기였다. 우리나라의 근대화 시절 이 땅을 집어삼킨 광풍은 복부인들의 땅투기 열풍이었다. 한동안 나라의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그 여파는 엄청났다. 그러나 그 서막은 지금으로부터 75년전 길회선 횡단항 후보지였던 나진에서 벌어진 투기광풍이 바로 그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정도의 열기로 인해 당시 조선의 돈이 모두 그곳으로 모이고 하루에도 땅임자가 수십번이나 뒤바뀔 정도였다니 그 열기가 지금의 눈으로도 느껴진다. 조선반도를 들썩거릴 정도의 투기열풍은 몇몇의 대부호와 김기덕이라는 토지왕을 만들어 냈지만 끝내 태평양전쟁과 일제의 패망으로 하루아침에 모두 잊혀진 기억으로만 후세에 전해진다.

이렇다 할 가십거리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고 신문을 통해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거부들은 늘 민중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때로는 돈 때문에 공격대상이 되기도 하고 지금으로 보자면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생을 성공을 위해 내달렸고 그때마다 참담한 실패를 거듭했던 김기진과 이종만의 삶은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우리가 흔히 사회주의 계열의 작가로만 알고 있는 소설가이며 실업가였던 김기진은 거듭되는 실패를 끝내 딛고 일어서지 못했지만 후에 금광왕으로 부리우는 이종만은 그때마다 자신이 벌어들인 돈을 미래의 후학을 위해 아낌없이 쾌적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이후 자진월북이라는 강수를 통해 그는 북한 애국열사릉에 묻힌 유일무이의 자본가로 지금도 그 이름을 전하고 있다.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보부상으로 시작해 마침내 민족교육자로 그리고 삼일운동 민족대표 33인중의 하나로 이름을 남긴 이승훈 선생과 평생 안먹고 안입고 아끼고 절약한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평양의 백선행이라고 불렸던 백과부나 최송설당의 삶이 그것을 다시한번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젊은이 들이 게을러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 거리에 쓰레기가 날리고 악취가 풍겨서는 나라가 발전할 수없다. 제 몸이 구린 사람이 민족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

이승훈 선생의 가르침이다.

땅투기나 증권, 마두같은 것은 물론 소수 투자자에게 이익을 남기고 개인의 부를 순간에 축적하게 하지만 그 부는 모두 일반 대중 전체가 떠안는 부담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투기는 아마도 인간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계속되어질 것이다. 그 옛날 매점매석을 일삼던 상인들부터 그것은 시작 되었을 테니까. 또한 그렇게 해서 언제나 소수의 승리자는 늘 존재했기에...

지금도 우리가 매일매일 증권 현황판을 보며 일희일비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투자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자신도 어느 순간 돈으로 인한 신분상승의 기회를 엿보고 있기에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교훈처럼 어떻게 버느냐 보다는 어떻게 쓰느냐에 관한 문제가 우선이지 않을까? 시대를 앞서간 그들의 삶을 반추해본다면 어떤 삶이 보다 가치있는 삶이었는지는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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