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비스럽고 마법 같은 소설, [파과]와 같은 작가였나 싶은 [구병모]의 데뷔작, [위저드 베이커리]..

24시간 영업을 하는 빵집, 허름한 건물에 많은 양의 빵을 만드는 이곳에 매일 식사 대용의 빵을 구입하러 들르는 나는 4년 전부터 심하게 말을 더듬는다. 조리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 한 열여섯의 고등학교 1학년이다.

그 빵집에는 나와 같은 또래의 여자 점원이 있고, 빵의 원료가 뭐냐고 묻는데

'갓난아이의 간을 말린 것', '티티새의 똥을 비스킷 사이에 얇게 펴 바른 것', '까마귀의 눈알을 우려낸 시럽', '고양이 혓바닥 삼 종 세트인 젤리', 그리고 '라푼젤의 비듬을 모아서 만든 모닝롤' ...이라고 대답하여 내가 또라이라고 찍은 수상한 점장 겸 제빵사가 있다.

 

는 여섯 살 때 친엄마에게 청량리역에 버려졌었다. 일상적인 대화가 안 될 정도로 말을 더듬느라 질문에 답변이 안되자 선생님께 혼이 나고 아버지라는 사람은 면담 시, 내가 어릴 때 버려졌던 일로 말더듬이가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하고 있다.

그 아버지는 내가 열 살 때, 두 살배기 딸을 데려온 '배 선생'이라 불리는 초등학교 교사와 재혼을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이지만 신경을 곤두세운 기막힌 동거는 차츰 나를 구석으로 몰아낸다.

동화에서의 계모는 현실에서도 계모일 뿐.. 동화와는 다른 것이 내가 겪는 일이므로 훨씬 더 치졸하고 잔인하다.

안에서 최소한의 공간으로 내몰리면서, 내 식사, 내 빨래 등은 나만의 것이 되고, 캐릭터 완구회사 영업부 장인 아버지는 늘 부재중이고..

'배 선생'은 최초 결혼생활에 대한 실패를 새 남편에게 보상받고 싶어 하고, 나는 가정이라는 명목만은 지켜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여덟 살이 된 여동생 '무희'의 성폭행 흔적이 발각되자 '배 선생'은, 길길이 날뛰며 범인을 잡으려 하고, 아버지는 여자아이 앞날에 좋지 않다고 만류하고 결국 그 아이가 다니던 학원의 원어민 강사( 전과가 있던)를 지목했지만, 엄마의 폭력 끝에 '무희'는 나를 지목해 버린다. '배 선생'의 분노의 구타가 이어지고 경찰 신고를 하지만 아버지란 사람은 알 수 없는 표정만 지을 뿐 말리지도 않는다.

기 살기로 도망쳐 나온 곳, 그 빵집, 그 오븐 속

오븐 속에 숨어들어가면서, 오븐에 열이 가해질까 봐 두려워했지만 그곳은 방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곳엔 낮엔 사람으로 변하는 파랑새가 있다.

그곳 '위저드 베이커리'는 마법사가 운영하는 곳으로 인터넷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다.

나는 그곳에 숨어서 홈페이지 관리를 하고, 주문받은 품목을 제빵사에게 넘기는데

성분이 좀 다른 정체불명의 빵들은 사악하거나 악취미적인 재료가 들어간 빵 들이다.

'부두 인형'이란 비스킷은, '장희빈'의 저주 인형 같은 것이다

'배 선생'은 어느 날 이것을 주문하고, 점장은 나를 많이 닮은 인형을 제작해주고, 나는 그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리는 머랭 쿠키, 단가가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내는 이것을 점장으로부터 선물 받는다.

조용히 들어간 집에서는 '무희'의 성폭행 장면이 연출되고 있고

범인은 나와 눈이 마주치고,

'배 선생'도 들이닥치고..

떨어져서 가루가 돼버린 머랭 쿠키를 바라보며

이 시간을 어디까지로 되돌려야 하나 하는 그 순간

야기는 되돌려 버린 경우와

되돌리지 못한 경우를 Y와 N의 경우로 서술한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단지 선택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릴 것이냐 아니냐의 기로에서 에필로그는 '잘 견뎌왔기에 앞으로도 잘 견딜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들었으며 어떤 거지 같은 삶이더라도 잘 견디리라'라는, 그리고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떠올리게도 했던 그런 소설이다.

계속 기대되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스포를 피하려는 장치를 해야 했음..

 

 

 

-부탁이야, 아버지를 증오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배터리가 모자라, 제발, 나는 언젠가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무언가를 두 손에 쥐게 되면, 그대로 떠나버릴 사람이야. 그때까지만 나를 참아주면 안 될까, 당신 그냥, 좀 무거운 공기가 옆에 있다고 생각해주면 안 될까. 당신이 필사적으로 그리고 싶었던 가족사진, 그것이 영원한 화석이 될 때까지, 거기서 나 좀 빼주면 안 될까. 29-30



- 그때 통제할 수없이 눈물이 한 줄기 흘렀다. 이 눈물의 이유는 뭘까? 어쩌면 나는 오래전에 내 옆에 있었던 무언가를 잊어버린 채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무얼 잊어버리거나 놓고 온 걸까. 그 애는 내가 선택하지 않는 어느 평행우주 속에 살고 있어서 나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아이일까. 그 애뿐 아니라, 지금껏 내가 선택해오지 않았거나 거부해온 모든 요소와 사람들이. 205



- 지금껏 잘 견뎌왔다. 앞으로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타임 리와인더를 쓰지 못하게 한 불의의 사고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안다. 누군가 씹다 뱉은 껌 같은 삶이라도 나는 그걸 견디어 그 속에 얼마 남지 않은 단물까지 집요하게 뽑을 것이다. 212



- 머릿속에서 이성의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건넨다. 추억은 그대로 상자 속에 박제된 채 남겨두는 편이 좋아. 그 상자는 곰팡이나 먼지와 함께, 습기를 가득 머금고서 뚜껑도 열지 않은 채 언젠가는 버려져야만 하지. 환상은 환상으로 끝났을 때 가치 있는 법이야. 한때의 상처를 의탁했던 장소를 굳이 되짚어가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아. 아직도 어린 시절의 마법 따위를 믿는 녀석은 어른이 될 수 없다고.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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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랑은 왜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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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시적 감수성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는 작가 '김영하'를 만나는 두 번째 소설 [아랑은 왜],

이는 '밀양' 지방에 떠도는 민담인 '아랑 전설'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해나가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독자와 공유한다. 그렇게 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작가의 설득에 기꺼이 동의하게 된다.

치 작가의 입문서 같은 느낌도 들고, 그래서 작가가 되려는 사람 외에는 읽을 가치가 없지 않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던데, 전혀 그렇지는 않다.

일단 작가의 스토리에 대한 여러 측면에서의 재해석이 너무 흥미진진하고,

'아랑'이 나비가 되었다는 설정과 거짓과 오해, 그리고 한 캐릭터가 완성되어가고 한 이야기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작가의 시도와 고민과 구성과 배치, 무엇보다도 상상력을 읽어내는 기쁨이 있다. 독자가 함께 하도록 대놓고 유도하기도 한다.

'영주'와 '박'의 이야기, 작가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한, '박'과

그 '박'이 또 '아랑'과 연결된다는 설정이 좀 낭만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도 느꼈듯이

'영주'와 '박'의 사랑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나는 여전히 좀 불편하다.

작가가 그려 나가는 1990년대 도시의 감수성에 내가 못 미치는지도 모를 일..

[82년생 김지영]만큼이나..

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가, 소설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아랑 전설'의 권선징악적이고도 매우 심플한 16세기 스토리가

작가의 의도대로 '억균'의 관점에서 낱낱이 파헤쳐 지고 훨씬 더 근사한 스토리가 되기까지,

작가와 이 새로운 해석의 소설 탄생 과정을 함께 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아랑'은 결국 우리의 은밀한 욕망과 죄의식을 상징하는 것이고,

'영주'를 향한 '박'의 시선 역시..

런데 이런 것을 소설로 썼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스토리를 전개해가는 '김영하 작가'의 구성에 대한 감각과 시도는 감탄의 대상이 된다.

'밀양'에는 '아랑'을 모셔둔 사당이 있다고 한다.

근처 지날 일 있다면 들러보아야겠다는 생각과

'아랑'이라는 이름이 주는 리듬감과 정서, 게다가 '아랑이 나비가 되었다'는 이 문장이 작품의 내용과 상관없이 너무 좋다.

그리고 '영주'와 '박'의 여행지 '선운사', '최영미'의 시를 읽은 '영주'가 가자 했다는 곳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하여 조만간 '선운사'를 가봐야 할 이유가 생겼다

- 오랫동안 외롭게 살아본 사람들은 의외로 그렇게 살아내는 방식들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소식(小食)을 하다 보면 양이 줄어들 듯이 인간이라는 것도 만나지 않다 보면 필요량이 감소한다. 물론 자기 연민은 금물이다. 자기 연민은 가끔이야 달콤할지 몰라도 오래 하다 보면 괴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자기 연민은 에일리언처럼 숙주를 완전히 먹어 치운다. 나는 바보다. 매력도 없다. 사람들은 나를 벌레 보듯 여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나를 피하지. 내가 잘하는 게 뭐 있겠어? 물론 이런 자학에는 쾌감이 있다. 문제는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잘 괴롭혀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다시 더 가혹한 자학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자학과 가학의 화려한 탱고! 그러므로 자기 연민은 금물이다. 그저, 침묵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 그리고 음악이나 일에 몰두할 것,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185-186



- 그때 오가는 말들은 시답지 않으면 않을수록 좋았다. 그러면 그의 무절제하고 구질구질하던 일상이 한순간에 온갖 꽃들이 만발한 화원으로 변해버렸다.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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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성석제 지음 / 강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처구니'란 사전적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 '상상 밖에 엄청나게 큰 물건이나 사람'을 뜻한다.

내가 아는 '어처구니'란 '유아인'의 영화 대사 '어이가 없네..'. 이때 '어이'는 '어처구니'의 준말로', '맷돌의 손잡이'.. 맷돌을 돌리려는데 맷돌의 손잡이가 없는, 참으로 '황당한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작가 '성석제'는 처음에 시(詩)를 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더운 날, 자신의 시를 참을 수없게 되자, 문(文)을 쓰려고 했고, 그리하여 산문과 시의 중간쯤 되는 이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글들을 쓸 때만 해도 자신이 소설 쓰는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고, 서문에 밝혀둔다.

'엽편소설', 처음 맞이하는 단어였다. 이런 양식의 소설을 '엽편소설'이라 하는데, '엽편'은 나뭇잎 넓이 정도로, 단편소설보다도 짧은 글을 말한다고 한다. 주로 '콩트'(이건 좀 주워들은 기억이 있음)라고 불린다고.. 작은 지면에 인생의 번쩍하는 한순간을 포착해 재기와 상상력으로 독자의 허를 찌르는 문학 양식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 책의 글들은 이 설명에 딱 부합하는, 예리하게 포착해낸 한순간을 재치와 재기로, 읽는 이의 허를 쿡쿡 찔러대는 그야말로 엽기 발랄한 글들의 모음이다.

350페이지 분량에 63편의 제목을 단 글들이 있다. '웃음소리'와 '비명'편을 접하면서, 뭐라는 거지? 하며 긴장하다가, '다이빙'편부터 포복절도를 하면서 그냥 나를, 책에 대한 어떤 무게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냥 망망대해 배에 실린 몸처럼 리듬을 타면서 읽어내려갔달까..

우 독특하고 인상적인 intro를 거쳐 황당무계한 유머의 코드에 한 번씩 빵 터지며 이 작가를 어째야 할지에 대해 고민도 생겼다.

사방에 책장으로 가득 찬, 주인이 떠나간 그 방, 구석구석 책갈피 하나하나를 떠올리게, 이 세상의 모든 책이 있을 것 같은 그 방, 오래 묵은 책 냄새가 나는 그 방, 낡은 소파, 이상한 형광등, 그렇지만 오래전 주인이 떠나버려 빈, 그곳에 누군가 살고 있을 거라고, 최소한의 무엇인가..

그 방에 떠나간 첫사랑이 살고 있기를,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이 와있기를, 책을 좋아하는 망자라도, 아니면 어처구니라도 그곳에서 만나고 싶다고..

가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자신은 언제나 '어처구니'를 만나고 싶다고, 또 어딘가에 분명히 '어처구니'가 살고 있을 것이며 인연이 닿는 분은 스스로의 '어처구니'를 만나기 바란다고 밝혀두었듯이

작가의 '어처구니'를 향한 로망은, 책에 등장하는 기이한 사람들, 사물들로 가득 채운듯하다.

한 유명한 대중가요의 가사에 대한 오해부터, 파리 잡는 끈끈이의 해프닝, 놀이하는 인간의 최후, 수박 이야기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기상천외하고 기발한 뻥~~에 조용히 읽다가 단발적으로 새어 나온 웃음소리에 나 스스로 놀라기를 몇 번이었는지.

주변의 기이한, 예사롭지 않은 인물들, 절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가 작가가 찾는 '어처구니'들은 아니었는지.

발한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기가 막힌 사람들의 기막힌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투명 인간'에서 강렬했던 다소 과장된 페이소스의 원천이 이 작품에 있었나 한다.

결국엔 허튼소리들인데, 우라지게도 기발하고, 우라지게도 섬세한(시인과 언쟁 중..)

해학과 풍자의 이면에 섬뜩한 경고도 있고, 과장과 익살은 한편 한 편 읽었을 때마다 블로그 댓글 달듯이 막, 끼어들고 싶은 충동도 일었다.

내게 있어 '어처구니'는 '성석제' 작가를 통해 새로 알게 된 단어이고, 그가 묘사한 말도 안되는 '어처구니'들이 나의 '어처구니'이며, 이 작가 또한 나의 '어처구니'이며,

짜 '어처구니'가 없는 이 책과 이 작가의 매력에 흠뻑 빠진 기가 막힌? 아니, 막힌 기를 뚫어 준 독서였다 하겠다. 작가 '성석제'란 사람 자체는 '어처구니'임에 틀림없는듯.. 이런 분과 술을 마시거나, 인문, 역사 기행을 떠나면 어마어마 하겠다.

 

 

여자가 있는 집이면 다 비슷하지, 뭐가 다양한가 물을 사람을 위해 미리 답해두거니와 여자란 또 얼마나 종류가 많은가. 젊거나 늙었거나 예쁘거나 그렇지 않거나 고분고분하거나 앙탈을 부리거나 애교스럽거나 무뚝뚝하거나, 이런저런 성격이 뒤섞여 있거나 아니거나, 아, 어느 날은 이랬다가 어떤 날은 저렇고 헤어지면 그립고 만나면 시들하거나, 이 다양한 종류, 갖가지 부류와 맞먹는 종류와 부류를 자랑하는 것은 역시 술집에 드나드는 사내들이 아니겠는가. 39-40

파리가 왜 발을 비비는가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얻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파리는 입이 아니라 발에 맛을 느끼는 세포가 있다는 것, 그래서 사람이 혀를 입안에 넣어두고 깨끗이 하려고 양치질을 하듯이 파리는 발을 비빈다는 것을 알아내고 말았다. 그리고 세상에는 파리가 발을 비비는 것처럼 신체기관의 일부를 습관적으로 비벼대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주제에서 벗어난 일이지만, 부산물도 있었다는 뜻이다. 82

책이란 사서 읽는 사람에 따라서 하룻밤 소일거리가 되기도 하고 발도 없이 평생을 따라다닐 수도 있는 법이다.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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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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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정리하다 이 책을 발견해내고는 반가운 제목이길래 단번에 집어 들었다.

'황석영' 작가의 성장소설이라는데 그분의 책을 읽은 바가 없다.

다만 '바리데기'라는 들어봄직한 책의 저자라 한다.

- 외국에는 여러 작가들의 수많은 성장소설이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 문학사에는 단편소설 몇 편이 있을 정도다. 아마도 이는 개인의 내면적 성장이나 변화 등을 다루기에는 근대화 기간 동안 현실이 그만큼 급박했다는 데도 원인이 있겠지만, 사회 속에서의 개인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보다 주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286 [작가의 말]

그러고 보니 나도 우리나라 작가의 성장소설이 '은희경' '새의 선물'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근데 그 이유를 고찰한 작가의 저 말이 슬프다. 급박한 현실 속, 사회 속에서의 개인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았던 우리나라 근대화..

'유준이'라는 이름의 군인이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삼 일간의 특박을 얻어서 서울행 특급열차를 타고 두고 왔던 '나를 만나러 가는 길'..

사춘기의 방황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만나고, 자신의 풋사랑 '방울이'(미아)의 행방을 찾지만 이내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의 사춘기가 회고된다.

'준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웃기는 아이로 통한다. 우스갯소리를 잘하고 선생님을 골탕 먹이기에도 통달한 그는 껄렁 대는 친구들과 등산반 활동을 한다.

그는 혼자일 때의 나와 사람들 앞에 섰을 때의 나가 전혀 다른, 자신도 자신을 잘 모르겠다고 한다.

- 누군가 내면에 지닌 것과 외면에 나타나는 게 다르다는 것은 그가 세계를 올바르게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42

지만 그는 책을 읽고, 외부 문예작품에 공모해서 상을 받기도 하는 문학소년이다.

시위대에 총을 맞아 죽은 친구 '중길'이의 유고 시집도 정리했던 그는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이고, 시체를 많이 보아왔고, 전쟁 이후 재건을 위해 모여든 서울의 빈민가에 흘러든, 홀어머니와 누이와 동생을 둔, 장남으로 자산가의 흔적을 지닌, 개화된 지식인인 부모 밑에서 도련님으로 지냈지만, 아버지의 병사로 인해 궁핍한 생활을 이어간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명문중학교에 입학한 그에게 어머니는 의사가 돼줄 것을 기대하지만 고등학교 입학 후에도 학교생활에 재미를 못 느끼던 그는 교실 안의 공상가가 되어 지루함을 견디는 취미로서의 독서를 즐기다가 등산반에 들어가서 암벽 등반을 즐기기도 한다. 어느 날 친구 '인호'와 설악산 등반에 오르고, 무단결석을 하면서 그 산에 푹~ 잠겼다가 돌아온 후 학교를 자퇴해 버린다.

- 그건 그때 가서 몸으로 때우든지, 우리가 저지른 실수의 흔적들을 치우든지 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나는 각오를 하구 있어. 저 봐, 길거리에서 애들이 막 총에 맞아 죽고 그러는데, 어쨌든 우린 살아갈 거잖아, 하여튼 앞날은 잘 모르지만 제 뜻대루 할 수있잖냐구.74

- 나는 자퇴하고 나서 단편을 한 편 썼다. 내가 노트에 썼던 단편은 잉크 색깔이 변할 때까지 어느 구석엔가 처박혀 있었는데 제대해서 옛날 것들을 없애버릴 적에 마당에서 무더기로 쌓아놓고 불태워버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라진 내 젊은 날의 인생에 대한 예감이었을 것이다. 101

- 세월이 무슨 재물 같은 거냐? 뒷전에 쌓아두고 허비하는 게 아니라고.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지평선에 꽃밭을 가꾸는 거다. 163

퇴 이후 친구 '인호'와 무전여행을 떠나는데

조치원에서 공주를 거쳐 제주도 한라산을 등반하고 부산을 거쳐 강릉까지 간다.

중간에 방학이라 지방에 내려와 있던 친구들과 잠시 합류를 하기도 한다.

한 달 만에 귀가를 한 '준이'는 더 이상 소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느끼고 어머니의 바람대로 변두리 공고의 야간부를 다니면서 글을 쓴다.

작가 입문을 한 그에게 어설픈 풋사랑이 찾아오는데 '미아'라는 그녀는 명문대에 합격했음에도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쳐 구청의 임시직으로 있다.

- 하지만 그 무렵의 나는 애초부터 여자애들에게서 연애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무엇에 잡혀 있었던 것일까. 어머니에게 사로잡혀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자신의 또 다른 존재에 몰두해 있었다. 그것은 언제나 내 몸 근처의 한 걸음 곁에 따로 떨어져서 나를 의식하고 관찰하고 경멸하거나 부추겼다. 나는 그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안과 바깥이라는 불완전한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누구인가. 198

그들은 자신이 겪은 사람살이에 대한 이야기와 책 이야기로 꽤 잘 통하는 친구가 된다. 훗날 '미아'도 '준이'도 대학에 들어간다.

- 나는 미아와 헤어져 집에 돌아온 이튿날부터 그녀가 보고 싶었다. 무미건조하던 내 어느 은밀한 곳에 금이 가거나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배에서 명치끝까지 이상하게 불안한 안달이 퍼져 있었다. 그것은 물을 채운 컵을 들고 조심스레 걸을 때에 느끼던 그런 가벼운 불안이었다. 238

- 준이는 여태까지의 대화가 못 참겠다는 듯이 툭 잘라버렸다.

넌 왜 쑥스럽게 만나기만 하면 책 읽은 얘기만 하는 거냐?

뭐가 쑥스러운데?

네가 지금 행동하고 살고 그런 거 중심으로 얘기하면 안 되니?

지금 생활이 싫으니까. 243

 

녀와 어설픈 사랑을 나누지만, 한일 회담 반대 데모에 나섰던 그가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진 후 그곳에서 만난 삼십 대의 노동자 장 씨를 따라서 오징어잡이배를 타겠다고 나선다. 그런 그를 그녀는 잡지 못한다.

'준이'는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으로 '미아'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 어디에서나 기억은 거기 있는 사람과 함께 남는다. 175

장 씨와 함께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헤어지며 출가를 결심했지만, 어머니의 등장으로 무산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자살기도를 하기도 했다.

닷새 만에 깨어난 이후 그는 입대를 하고, 특박 동안 그의 유년기와 소년기를 돌아보면서 어른의 세계로 간다.

- 저기....... 개밥바라기 보이지?

비어 있는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

나는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270

 

탄진에서 장 씨가 '개밥바라기'를 가리킨다. 저녁 무렵 해가 지자마자 서쪽 하늘에 초승달과 더불어 나타나던 별, 금성이 새벽에 동쪽에서 나타날 때는 ' 샛별'이라고 부르지만 저녁에 나타날 때에는 '개밥바라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고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 하늘에 나타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작가의 해설이 있다.

작가는 '개밥바라기' 별의 이미지가 이 소설을 읽은 여러분의 가슴 위에 물기 어린 채로 달려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덧붙인다.

모든 사회제도와 정치 문화는 어른들이 단단히 철통같이 정해버렸고 자기네가 규정할 가치는 존재할 수도 없으며 먹히지도 않는다. 변변한 일자리는 다 끝났다. 독립적 성인이 되는 기간은 한정 없이 늘어나 버렸다. 자본의 벽은 봉건시대 영주들의 성벽보다도 높고 거대하다. 284( 작가의 말)

성인이 되는 길은, 독립운동처럼 험난하고 외롭다. 대부분 그 무렵의 연애는 첫사랑이라고 불리면서 애처롭게 좌절하게 되어 있다. 284(작가의 말)

* 무엇보다도 세대 차이가 많이 나는 작가가 이 시대 젊은이들과 소통하려고 자신의 성장소설을 썼고 그들을 위로하려 했다는 ᆢ 그리고 전쟁을 기억하는 60년대 고교생의 조숙함에 놀란다. 그 시대는 십 대 소년들을 아이 취급하지 않던 시절이라고 한다. 지방으로, 고교생들과 대학생들이 무전여행 붐이 일었다는 낭만적인 사실도 알게 된다. 가는 곳마다 시골 인심도 후하고, 또 그들을 어른 취급해주는 정서가 흐뭇하다.

* 작가는 그 시대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한다. 작가가 겪은 전쟁과 군사정권 등에 대한 이야기가 전면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 시대 사춘기를 겪은 세대 이야기들의 후면으로는 굵직한 대한민국 현대사가 있다.

그나저나 별보기도 힘든데, 개밥바라기 보려면 어디로 가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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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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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삼십 대의 이야기이다. 80년대 초반에 태어나서 지금을 살고 있는 그 세대와 그의 부모 세대, 그리고 조부모 세대까지의 이야기.

바로 지금에 걸쳐 있는 청년과 중년과 노년의 이야기.. 한국 사회의 공간 속, 한국의 시간을 사는 이야기. 그래서 이 작가가 궁금해졌다.

린 시절의 상처들, 상실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정서가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인내하고 성실하면 다 이룰 것 같기도 했던 학창시절을 남들처럼 보내고 난후, 서른이 되었지만 그때까지도 아직 무엇인가 되어보지 못한 청춘들..

그들은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아무것도 아니기에 어른스럽지 못하기도 한데, 실은 속이 꽉 차있기도 하다. 그들의 방식대로..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잘 표현하지 못하고, 각자의 상실과 슬픔에 대해서 애써 표현하지 않는 것만이 어른스러운 것인 줄로 알았던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슬퍼도 울 줄을 모르고, 아픈데도 아프다고 말할 줄을 모르는 그녀의 엄마들..

그리고 치열한 경쟁의 시대를 살아내는 삼십의 청춘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지만 서로에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 그래도 위안이기는 했다.

런 그녀들의 부대낌의 이야기이다. 그런 청춘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미래에는 있을까? 직업이, 결혼이, 그리하여 우리가 말하는 정착이라는 것, 안정이라는 것 말이다. 그런 그들이 모여서 궁여지책으로 노량진 공시생 무리를 이룬다. ㅜㅜ

작가의 심플하고 담백한 문장들과 관찰의 힘이 풋풋하게 다가온다. 리뷰보다, 문장의 발췌에 온갖 힘을 쏟았나 보다.

 

창작이 나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고, 나로부터 나를 해방시킬 것이고, 내가 머무는 세계의 한계를 부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늘 돈에 쫓겼고, 학원 일과 과외 자리를 잡기 위해서 애를 썼으며 돈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해졌다. 32-33

헤어지고 나서도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끝이 어떠했든 추억만으로도 웃음 지을 수 있는 사이가 있는 한편, 어떤 헤어짐은 긴 시간이 지나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심으로 남는다고. 90





이십 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 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115-116

여자는 옆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노인을 바라봤다. 이 노인은 얼마나 여러 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렸을까. 여자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23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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