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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랑은 왜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도시적 감수성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는 작가 '김영하'를 만나는 두 번째 소설 [아랑은 왜], 이는 '밀양' 지방에 떠도는 민담인 '아랑 전설'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해나가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독자와 공유한다. 그렇게 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작가의 설득에 기꺼이 동의하게 된다.
마치 작가의 입문서 같은 느낌도 들고, 그래서 작가가 되려는 사람 외에는 읽을 가치가 없지 않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던데, 전혀 그렇지는 않다.
일단 작가의 스토리에 대한 여러 측면에서의 재해석이 너무 흥미진진하고,
'아랑'이 나비가 되었다는 설정과 거짓과 오해, 그리고 한 캐릭터가 완성되어가고 한 이야기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작가의 시도와 고민과 구성과 배치, 무엇보다도 상상력을 읽어내는 기쁨이 있다. 독자가 함께 하도록 대놓고 유도하기도 한다.
'영주'와 '박'의 이야기, 작가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한, '박'과
그 '박'이 또 '아랑'과 연결된다는 설정이 좀 낭만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도 느꼈듯이
'영주'와 '박'의 사랑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나는 여전히 좀 불편하다.
작가가 그려 나가는 1990년대 도시의 감수성에 내가 못 미치는지도 모를 일..
[82년생 김지영]만큼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가, 소설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아랑 전설'의 권선징악적이고도 매우 심플한 16세기 스토리가
작가의 의도대로 '억균'의 관점에서 낱낱이 파헤쳐 지고 훨씬 더 근사한 스토리가 되기까지,
작가와 이 새로운 해석의 소설 탄생 과정을 함께 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아랑'은 결국 우리의 은밀한 욕망과 죄의식을 상징하는 것이고,
'영주'를 향한 '박'의 시선 역시..
그런데 이런 것을 소설로 썼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스토리를 전개해가는 '김영하 작가'의 구성에 대한 감각과 시도는 감탄의 대상이 된다.
'밀양'에는 '아랑'을 모셔둔 사당이 있다고 한다.
근처 지날 일 있다면 들러보아야겠다는 생각과
'아랑'이라는 이름이 주는 리듬감과 정서, 게다가 '아랑이 나비가 되었다'는 이 문장이 작품의 내용과 상관없이 너무 좋다.
그리고 '영주'와 '박'의 여행지 '선운사', '최영미'의 시를 읽은 '영주'가 가자 했다는 곳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하여 조만간 '선운사'를 가봐야 할 이유가 생겼다
- 오랫동안 외롭게 살아본 사람들은 의외로 그렇게 살아내는 방식들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소식(小食)을 하다 보면 양이 줄어들 듯이 인간이라는 것도 만나지 않다 보면 필요량이 감소한다. 물론 자기 연민은 금물이다. 자기 연민은 가끔이야 달콤할지 몰라도 오래 하다 보면 괴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자기 연민은 에일리언처럼 숙주를 완전히 먹어 치운다. 나는 바보다. 매력도 없다. 사람들은 나를 벌레 보듯 여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나를 피하지. 내가 잘하는 게 뭐 있겠어? 물론 이런 자학에는 쾌감이 있다. 문제는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잘 괴롭혀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다시 더 가혹한 자학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자학과 가학의 화려한 탱고! 그러므로 자기 연민은 금물이다. 그저, 침묵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 그리고 음악이나 일에 몰두할 것,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185-186
- 그때 오가는 말들은 시답지 않으면 않을수록 좋았다. 그러면 그의 무절제하고 구질구질하던 일상이 한순간에 온갖 꽃들이 만발한 화원으로 변해버렸다.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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