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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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 필요 없는 원문을 읽고 그 문장을 곱씹는 일, 메타포의 늪에 빠지지 않고 오로지 작가의 감성을 음미하는 일, 그리고 90년대의 감수성을 읽는 일이란 때로는 충만한 기쁨이 된다. 지금의 이십대는 이런 류를 지루하다 할 수 있을까? 요즘의 소설 속 입체적인 플롯과 캐릭터들에 지칠 때, 나는 90년대의 여류작가들을 찾게 된다.

어느 한시절의 기억을 잃어버린 '김하진'이란 여자의 이야기이다.

사이좋던 아내와 사별한 이후 가평에 있는 집을 부수고 새집을 짓겠다는 아버지, 그는 두 딸들에게 새집을 남겨주고 싶은듯하다.

마는 아버지와 정구를 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하진'은 중국 여행에서 돌아온 날, 언니의 전화를 받는다. 언니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 '미란'이 손목 동맥을 칼로 그어버렸다고..

그리고 또 낯선 여자의 전화를 받는다.

서른다섯의 '하진'은 중국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한동안 트렁크를 정리하지 못한다.

슬픈 일을 미리 느낄 수 있는 그녀의 남다른 예감은 한때 사라졌었는데

중국 여행에서 '미란'에게 닥친 불길한 일이 미리 떠올랐었다.

'미란'은 남자친구의 사과도, 친구의 사과도 받지 않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그들의 존재 자체를 잃어버린듯하다. 잊고자 애쓰거나..

'미란'이 잊고자 하는 지금의 아픈 시간을 보며

'하진'은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 인생의 한 토막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퇴원한 '미란'이 자신의 집에 머물겠다고 한다.

'미란'의 나이 스물

딱 그 시절의 '하진'을 그녀는 잃어버렸다.

'하진'은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청혼을 받았는데, 겁부터 났다. 그리고 떠난 여행길이었고, 그에게 쓴 편지도 부치지 못했다.

방송국에 당분간 일을 쉬겠다 해놓고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서 '미란'과 함께 나서는데,

'하진'에게는 '윤'이란 친구가 있다.

카페를 운영하는 '윤'은, '하진'과 라디오 일을 하는 '현 피디'와 이혼을 했고,

언제든 힘들 때 찾아가면 따뜻한 음식과 휴식을 마련해 준다.

'윤'은 남편 '현 피디'와 결혼 중에도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현 피디'는 그런 그녀를 놓아주었다.

'어디에서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깎아내리지 않을 사람, 내 편인 사람을, 그런 사람을 두 사람만 가지고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랬는데..'

든 시간을 보내면서, '윤'에게는 '하진'과 '현 피디'가, '하진'에게는 '윤'과 그가 그런 '내 편인 사람'이었음을 알고 있다.

'하진'이 통째로 잃어버렸던,

그녀 '하진'이 '오선주'란 이름으로 살던 시절,

'은기'라는 남자가 있었고

그들이 찾던 노을 다방..

그곳에서 '은기' 혹은 '선주'가 뮤직박스 안 디제이에게 신청하던 노래, [기차는 7시에 떠나네~]

그리고 그녀는 '김용선'이라는 이름을 찾아 제주도로 떠난다.

'윤'이 이혼을 하고 한동안 머물렀던 곳으로..

'미란'과 함께..

리고 알 수 없는 기억 속의 그를 만난다.

그를 따라 노동 운동의 야학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치던 '하진',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그녀가 늘 기다렸던, '은기'

[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그리스 민요였고

그들이 금요일에 이 노래를 ['기차는 7시에 떠나네']로 신청한 주의 일요일은

그들이 모여서 구호문을 만들고 플래카드를 제작하던 암호였음을..

그들의 청춘이 그렇게 스러지고

그 고통의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하진'과

'하진'을 기다리던 '은기'는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이 노래의 선율처럼,

가사처럼 쓸쓸하고 스산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진'은 문득 스치곤 하던 연결되지 않는 한 토막, 한 토막의 언어들과, 기억들을 되찾고

비로소 검은 트렁크를 풀고

비로소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아버지는 다정한 사향노루와 새집을 짓고 살고 있지만, '하진'은 아버지와의 이별을 예감하고

전화를 걸어오던 여자에게 '하진'은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은기'는 그곳에서 그녀와 '정수'와 함께 살아가고

그는 '하진'과 결혼을 할 것이고

'미란'은 드디어 자신이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윤'과 '현'은, '현'의 주머니 속, 아무 때고 꺼내마시던 스카치처럼, 더 이상은 고독하지 않을 것이고..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은 무엇인지. 저마다 살아가는 이유라고 여기는 이 따뜻한 것으로부터 남겨지는 것은? 언젠가는, 당신이 내게 존재했었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게 될 그 언젠가에도 무의식의 심연에 찍혀 있을 사랑의 자취는?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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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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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옥'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이고,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작가라고 한다.

이 책 [무진기행]은 단편소설집으로 총 15편이 실려있다.

작품 전반에는 전쟁을 치르고 난 후, 그 시대만의 독특한 비극이 드러나있다. 가난과 혼돈, 미래에 대한 불안과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몸부림이 안개에 휩싸여 있는 듯, 그래서 어둡고 질척거린다.

몇 소설은 이게 마무리를 한 작품인가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미완의 소설들을 남겼다고 하는데,

유신 체제 발동에서 박정희 서거까지의 1970년대의 십 년이, 작가의 삼십 대 십 년과 일치하는 기간으로 그에게는 박정희 대 김지하의 전쟁 기간으로 정리되어 그 처절한 갈등의 시대이자, 위대한 시대이기도 해서, 그 경험들로 소설의 무대가 되리라 예상했다 하는데

1980년의 광주사태 참극으로 인한 충격과 분노에 펜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손이 떨려 소설 쓰기를 중단해 버렸다고 작가의 말에 밝혀둔다.

그에 있어 소설 쓰기는 직업 이상의 것이었고 신성한 것이었다고도 밝히나, 1981년에 종교적인 체험으로 인하여, 그에게 일시적으로 위안이 되었던 소설보다 더 위대한 어루만짐에 끌려 성경과 주석서를 읽고, 기도생활에 몰두하며 세계관과 인생관을 교정하는 일만 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가 출간을 중단해 버렸다는 [강변 부인]과 미완의 소설 [동두천]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작품이다.

무진은 바다 가까이 있지만 수심이 얕아서 항구로 발전하지 못하고, 이렇다 할 평야도 없는 곳인데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다.

무진의 명산물은 안개로

-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 女鬼)가 뿜어내놓는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무진기행]160

나, '윤희중'은 이곳에 오기만 하면, 엉뚱한 공상들과 뒤죽박죽인 것들 그래서 항상 자신을 상실하지 않을 수없었던 과거의 경험이 있다.

나에게 무진행은 서울에서 실패로부터 도망쳐야 할 때,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한 때 오게 되는 곳이었다. 어둡던 청년 시절이 연상되는 관념 속에서의 아득한 장소일 뿐인 이곳에 아내의 권유로, 휴식차 내려오게 된다.

이 휴식이 끝나고 귀경을 하면 그는 장인어른의 제약회사 전무로 승진하게 되어있다.

나는 한때 '희'라는 여인과 동거를 했었고

아내의 전 남편은 사망을 했다.

그런 결혼과 승진이 해방 후 무진 출신의 인물 중 가장 출세한 두 사람 중 하나로 나를 꼽아주는 이유이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고등고시를 패스하고 세무서장으로 고향에 근무하는 '조'형이다.

모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박'과, 음악교사인 '하인숙'과 넷이 어울리게 되는데

- 햇빛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진기행]161

-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 잘 아는 체한다는 것이 그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비난할 수 있고 적어도 평가하려고 드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에 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무진기행] 184

- 흐린 날엔 사람들은 헤어지지 말기로 하자.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가까이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끌어당겨주기로 하자.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버렸다.[무진기행]191

 

진은 가상의 공간이다. 광주에서 기차를 내려 버스를 타고 간다 하고, 책에 나오는 무진 중학교는 광주에 있다. 작가의 고향인 순천쯤으로 추측한다고도 한다. 순천의 안개라도 보겠다고, 무진의 안개를 상상해보겠노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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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브루스 리 2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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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룡'이란 존재가 한 인간을 지배해 버렸다.

'이 소룡'을 흠모했던 평범한 사내, 60년대 말, 남자가 되는 과정의 필수과목이었던 그를, 선망 그 이상으로 흠모했던 한 짝퉁 인생에 대한 이야기..

1973년 여름, 33세의 '이소룡'이 죽는다.

6학년 '상구'는 자신의 친구 '종태'와 함께 삼촌을 따라 뒷산에서 '이소룡'의 추모제를 지낸다.

권 씨 집안의 '상구'에게는 공부를 매우 잘하는 15세의 형 '동구'가 있고,

삼촌 '도운'은 18세의 고등학생이다.

들이 자라는 곳은 권 씨 집안의 집성촌이다. 심하게 말을 더듬던 삼촌은 10년 전, 그러니까 그가 8세이던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친부였다고 찾아온 서자로, 공부엔 영 관심이 없고, '이소룡' 영화를 보고 그의 무술을 따라 하며 소일한다. '상구'와 친구 '종태'는 삼촌의 무술 제자가 되고 '이소룡'의 팬이 되는데 '상구'보다는 '종태'가 더 소질을 보인다.

삼촌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버지의 농사일도 돕고, 건축현장 노가다도 착실하게 해서 오토바이를 선물 받는다.

그는 무도가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혼자 무술을 연마하지만, 야망, 과시욕, 쇼맨십과는 거리가 먼 그에게 학원의 주먹들이 도전을 하게 된다.

오빠와 호떡 장사를 하는 못생기고 당찬 여고생 '오순'이 그에게 반해, 오토바이를 태워달라 하고, 사랑도 나누게 되는데 어느 날 영화 촬영 현장을 지나다가 그녀의 제안으로 액션 대역을 하게 된 그의 발차기는 영화감독도 반하게 된다.

리고 그곳에서 삼류 영화배우 '최원정'과 눈이 마주친 삼촌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가슴이 유독 큰 그녀는 충무로 유명한 제작자인 유 사장의 몇 번째 여자쯤 되었다.

'오순'은 독극물의 여왕으로 불린다. 그녀의 독극물에 관한 기술은 이 소설의 중요한 도구이다. 그리고 '도치'라는 양아치의 호떡 사건과 그가 따르는 '토끼'의 이야기들이 요절복통하는 사건으로 전개된다.

아이를 임신했다는 '오순'의 결혼 요구에 겁먹은 삼촌이 주저하자 독극물을 나눠먹은 그들은 어떻게 살아나지만, 삼촌은 미성년자 약취 및 강간, 살인 미수 혐의로 서울로 도망쳐버리고, 병원에서 양아치 '토끼'와 '오순'의 사랑이 시작된다.

무작정 서울로 간, 삼촌은 충무로의 '북경반점'이라는 화교 출신의 '마 사장'이란 여인이 운영하는 규모가 큰 중국집의 배달부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칼판장'이라는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사람으로부터 영춘권도 배우지만, 그와 연인이었던 '마 사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사기를 당한다. 결국 삼촌의 돈도 훔쳐 가고, 그가 배운 영춘권도 가짜였다는..

심 끝에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가한 삼촌은 [사망 유희]의 '이소룡' 대역 오디션에 참가하고자 홍콩을 가기 위한 무모한 무술 시범으로 문중 어르신들의 노여움을 사고, '마 사장'의 도움으로 홍콩행 배에 오르지만, 풍랑으로 다시 돌아오고, 군대를 간다.

70년대는 뭔가에 매혹된 시대였다고 한다.

온 국민은 독재자와 슬레이트 지붕에, 독재자는 수출과 젊은 여자에, '상구'를 비롯한 청춘들은 팝송과 '이소룡'에..

'상구'는 영국의 '올리비아 뉴튼존'을 닮은 영어선생님에게 반해서, 그녀를 '올리비아'로 지칭하는데, 그녀의 집에서 나오는 '종태에'게 질투를 느낀 나머지, 유치한 복수심으로 '종태' 인생의 끔찍한 비극을 부른다.

명문대에 진학한 형 '동구'는 남들 따라 데모에 참여했다가 경찰서에 연행되고, 열흘 만에 단순 가담자로 풀려나자, 법전을 파고들며 공부에 매진한다.

재자가 죽고, 제대한 삼촌은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짓다가, 비료 사러 나선 길에 순화 교육 대상자로 분류되어 삼청교육대에 끌려간다.

으~ 말로만 듣던 그곳의 인권유린 이야기가 펼쳐진다. 박정희를 넘어, 전두환까지 1970년대 근대사가 있다.

 

-중간생략-

 

 

가는 이 책을 끝으로 더 이상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 않겠다고 한다.

'이 소룡'의 영화를 처음 보고, 단숨에 매혹되었던 그에게 영화는 그렇게 다가왔노라고~

그래서 그는 영화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소설에 쓰고

그렇게 다가온 영화는 그를 감독으로 데뷔시킬 참인데

[뜨거운 피] 개봉이 2020년,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지금 개봉해도 걱정, 자꾸 미뤄져도 걱정인 그의 데뷔작.. 기다리고 또 기다려 본다.

가의 말을 통해서 그는 소설이 기본적으로 실패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것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며 부서진 꿈과 좌절된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잡았다 놓친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이며, 다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이야기라고.. 그것은 파탄 난 관계, 고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운명에 굴복하는 이야기,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고,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이야기, 어떤 의미에서 모든 소설은 결국 실패담이라고 할 수 있다고, 따라서 실패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들, 아직도 부자가 될 희망에 들떠 있는 이들은 소설을 읽지 않노라고~~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돈 많은 마 사장이 한낱 배달원 삼촌에게 홍콩행 배를 탈 수 있도록 지원해 준 것..

그 꿈 자체를 지지해 주고 싶었다고..

오순과 아이를 낳고 호떡 장사를 하면서, 형님을 도와 농사를 지으며 고향에 머물렀다면..

이소룡을 향한 허황되고 무모한 꿈, 돈의 노예가 된, 삼류 여배우에 대한 사랑..

그것을 향한 그 격정이 그를 살 수 있게 하는 힘이었을 것이다는 상구의 회한에 섞인..

꿈,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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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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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녀의 나이 서른아홉에 열일곱 살 연하의 한국인 유학생 kk와 사랑을 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애인은 머리가 부풀어 올라, 혼수상태로 죽음을 맞이했다. 시간이 흘러 오십 대 후반이 되어 그녀는 일과 관련해서 서울에 오게 되자, 그 어린 연인이 송장헤엄을 치며 놀았다는 도시 '밤메'를 찾아 나선다. 600년 전 건설되었다는, 무엇도 영원한 것이 없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로 가득하다는 좌충우돌의 도시 서울.. 그녀가 kk를 그리워하며 상상했던 그의 푸르던 시절 그 도시는 삭막한 산업단지가 되어있을 뿐..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별들 무게의 합은 전체 우주 질량에 10%도 못 미친다고, 그럼 나머지 90% 이상은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그 90%가 관측이 불가하고, 존재도 증명할 수 없는 것들, 즉 암흑물질이라 한다고,

렇다면 이 우주의 90%가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kk와 그를 사랑했던 그녀의 세포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웠던 얼굴은 어디로 간 것이 아니라, 단지 볼 수 없을 뿐이라는..

[기억할 만한 지나침]

통에 끌리는 18세 소녀의 예민과 성장통

아들만 아버지를 깨뜨려야 남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딸도 엄마를 깨부숴야 여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엄마는 자신의 과정들을 과연 망각만 한 것일까? 否認은 아닐까?

[ 세계의 끝 여자친구]

타세쿼이아, 화석으로 발견된 백악기 시대의 나무, 빙하기 때 절멸했다가 1941년 일본의 박사가 화석으로 발견한 것을 1946년 중국의 임업 공무원이 양쯔강 상류 지방에서 발견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 나무..

성장 속도가 빠르고 아름다운 형태를 지녀 대량 번식에 성공시켜 가로수로 심어지게 된..

암으로 죽어간 시인과 그의 유부녀 여자친구

그들이 갈수 있었던 세계의 끝이란, 고작 호수 건너편 메타세쿼이아가 서있던 곳..

나무에 묻은(?) 한 연인에게 각별하고, 행복하고도 무척 슬픈 사랑에 대한 기억..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는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던가? 그때도 여전히 어리석고 미숙하고, 하지만 바빴고, 삶의 중심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고 최영미 시집을 나에게 선물했었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과 죽음 사이에는 고통이 있다고..

흑두루미와 함께한 날의 노을 시리즈 사진에서, 엄마가 죽던 날 보았던 노을이 떠올라, 그의 평전을 쓰기로 한 그녀, 평소 가족과 친구들 사진만 찍어왔던 그는, 기억해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것을 망각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노라고..

[달로 간 코미디언]

청혼을 했는데 난데없이 9.11테러와 지구 온난화 때문에 그녀와 이별하게 되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달로 가버린 코미디언이었고, '웃을 일이 아니에요'라는 그의 유일한 유행어를 외치던 슬랩스틱 코미디는 실제로 웃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그녀..

연수의 단편소설을 두 번째 만난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단편은 전혀 녹록지 않다. 읽을수록 어렵고 음미할수록 버겁다.

이 아홉 개의 단편 모두가 장편의 소재로도 충분한 스토리인데

그 생략과 함축이 한편을 끝내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는 텀을 아주 길어지게 만드는 여운으로 가득 차게 한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가 등장하는데

이 소설들 만큼이나, 인상적여서 옮겨본다.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 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 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대로 세계를 볼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쟎아, 꽥꽥 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메리 올리버, 기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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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 이광수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9
이광수 지음, 김철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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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원 이광수'는 1892년 평안북도 출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잠시 교편을 잡기도 했다. '톨스토이'의 작품에 심취했던 그는 1914년 러시아에 갔다가 1차 대전 발발로 귀국하고 다시 1915년 일본 와세다대학에 편입을 한다.

1919년 조선 청년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의 독립신문 주간으로 활동하다가 귀국하여 체포된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 창씨개명 등 친일행위를 했고, 8.15이후 반민족 행위 처벌법으로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난 후 한국 전쟁 중 인민군에게 납북돼 1950년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한다.

 

소설은 1917년, 그의 첫 장편 소설로 매일신보에 6개월간 연재되었다. 「무정」은 근대문학 사상 최초의 장편소설로 간주된다.

 

유치하고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드러나지만 섬세한 개인의 심리묘사와 전통적인 가치관과 근대적인 의식 사이에서의 인간의 갈등이 잘 드러나 있다. 여전히 어려운 고어들과 문어체의 문장들이 불편할 수 있지만, 구어체 접근으로의 진일보적인 측면이 많이 보인다.

1926년도까지 우리나라 전인구의 99%, 1930년도에70-80%가 문맹이었다고 하는데 글을 읽을 줄 아는 인구가 고작 5만-8만이던 시절에 이 책이 1만 부 팔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초특급 베스트셀러였다는 셈이다.

 

립신문의 발행인에서 변절자가 된, 결국엔 친일한 '이광수'가 아직 푸르른 절개가 있던 시절, 야망의 청년 시절에 내놓은 첫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인 것이다.

 

그는 본 아내와 이혼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산부인과 여의사인 '허영숙'과 재혼을 했으며, '나혜석'과 삼각관계를 이루기도 했다고,..

 

'이 광수'(1892-1950)를 동시대를 살았던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1867-1916)나, 중국의 '루쉰'(1881-1936) 등과 견주기도 하는데

 

세 인물 모두 서구의 신문물, 신문명을 먼저 접한 선각자로서 신문명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 더불어 인간 개조 등의 견해가 비슷했다고 생각 된다. 다만 일본, 중국의 근대소설가와는 다르게 '이광수'는 친일행위로 인해, 아쉬움이 좀 남는다는 점인데, 글 쓰는 분들의 그 감수성이, 독한 인간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고 보므로, 그들도 그와 같은 나라 태생들이라면 어땠을까 한다. 그래도 어렵게 독립운동하다가 생을 마친 분들도 많은데 그는, 결국 변절자가 되었고, 그 당시에 같이 교류하던 문화계 인사들로 부터 면전에서 많은 욕과 배척을 받았다는 것으로 알고는 있다.

감은 있겠지만 일단, 이곳에는 작가 '이광수'와 작품 「무정」이야기만 하련다.

1916년, 24세의 경성 학교 영어교사 '이형식'은 재산가로 소문난 '김장로(김광현)'의 딸 '선형'의 영어 과외 교사로 초빙된다. '선형'의 어미는 '부용'이라 하는 한때 평양의 명기였으나, '김장로'의 본부인이 별세하자, 정실로 들어앉은 사람이다. 외교관 출신의 '김장로'는 서양문명의 우수성에 일찌감치 눈뜬 자로서 서양을 본받으려는 태도로 양복을 입고, 침상을 사용하는데 허영심이 아닌, 진보한 문명인사이다.

☞그런 자가 기생 출신의 첩을 본부인으로 들어 앉히게 되는 것도, 선각자로서 신문물, 기독교적인 가치관의 변화이다.

 

집에서, 여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선형'과 그녀의 동료 '순애'를 가르치게 된 '형식''은, ABCD부터 가르치기로 하는데, 아직 이성도 사랑도 모르는 그에게 이 얌전한고 아름다운 규수의 모습은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날 자신이 머무는 객줏집에 여인이 방문을 한다. '박영채'..

열여섯 '형식'이 소싯적 조실부모하고 자기 아버지의 동년배였던 평양의 박진사(박응진) 집에서 신세 지며 공부하기를 4,5년가량 하였는데, 그 집의 막내딸 '박영채' 나이 열 살이었다.

열아홉이 된 '영채'는 울면서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를 '형식'에게 털어놓는다.

 

역사회 자선 교육 사업가였던 '박진사'와 두 아들이 어이없는 일로 감옥행을 하게 되어 홀로 남자, '영채'는 '형식'과도 헤어져 친척 집에 보내지면서, 형식을 자신의 배필감이라 여겼고, 친척의 구박을 피해, 도망을 쳤다가, 아버지를 구해내기 위해 돈을 벌 양으로 꾀임에 빠져 기생이 되었으나, 장차의 배필을 위해 정절만은 지켜왔노라고, 하지만 자신이 기생이 된 이야기만은 차마 하지 못하고 돌아간다.

 

그녀의 아버지는 감옥에서 딸이 기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곡기를 끊어 자살하고 두 오빠도 모두 죽는다.

 

'형식'은 함께 울면서, 자신의 은인에 대한 예의로 영채를 아내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다가, 그녀의 처녀성 여부에 초조해지기도 하다가 어릴 적 「열녀전」, 「내칙」, 「소학」등을 공부한 그녀이지만, 혹시 그 이후 공부가 미진하여 자신과 대화의 수준이 안될까 고민도 하고, 또 '선형'과의 비교도 하는 등, 심사가 복잡하다.

 

외롭게 자라나고, 부모 형제자매의 사랑도 모르고, 동무도 없었던 '형식'은 자신의 가난과 외로움이 소년시대를 건너뛰게 했다는 아쉬움으로 학생들을 사랑하고, 교육과 인재만이 새로운 조선에 대한 희망이라 여기는데 교사 '배명식'의 행태에 불만을 품었던 학생들의 동맹 퇴학 결심을 미리 전해 듣고, '배명식'을 설득하려 했지만 허사였다.

'배명식'은 경성 학교의 학감으로 지리역사 담임인데, 동경 고등 사범 출신이지만, 본처와 이혼하고 학생과 결혼을 하고도 화류계를 드나드는 질 나쁜 사람이다.

'영채'는 그 다음날, 청량리 연회에 불려나갔다가 작정을 하고 온, '배명식'과 '김현수'라는 자에게 강제로 성폭행을 당한다.

'영채'는 '계월향'이라는 예명을 가진 유명한 기생으로 '배명식'을 비롯한 여러 남자들의 구애를 받지만, 미래의 남편을 위해 정절을 고집해 오다가 이런 일을 겪게 되자, 평양으로 돌아가 대동강 물에 투신함으로써 오욕을 씻고자 한다며 '형식'에게 편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형식'은 죽음을 막겠다고, 아니면 시체라도 찾겠다고 신문기자 '신우선'과 평양으로 가지만 성과 없이 돌아온다.

'신우선'은 잠시 기생 '영채'를 짝사랑했었지만, '형식'의 배필감인 줄 알고는 복잡한 마음을 접는다.

- 중간생략-

 

당시에는 꽤나 파격적이었을, 많은 진보가 있는 책이지만 여전히 구세대의 사고, 감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보인다.

그 정점이 형식의 여성관과 연애관이다.

1910년도의 경부선이, 이 소설의 중요한 장치이다.

신문물, 신 문명, 새로운 조선을 상징하는 이 기차안에서

'영채'는 죽으러 가다가 '병욱'이라는 신여성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열고

'형식'은 죽겠다는' 영채'를 말리러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오는 길

그리고 '선형'과 미국 유학길에 '병욱', '영채'를 만나 어쩌지 못해 괴로운 중 자아에 눈뜨고 각성하는 장소이다.

그리고 '우선'까지 네 명이 선로 고장으로 선행을 나누면서 신조선을 만드는 일에 한몫하겠다는 결심을 확고히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당시 도대체 미국은 어떻게 가는데 일본으로 가는 일행과 같은 기차에서 만난다는 건가? 호기심이 일었음..

미국은 경부선을 타고 부산에서 내려서 배를 타고 시모노 세키로 가서, 다시 차를 타고 요코하마로 가고 그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샌프란 시스코를 가는 것이다. 사오일을 걸려서~~

리고 읽기 전 「무정」이라는 제목을 헤아려 보았다.

「무정」이란 단어는 몇 번 나온다.

그리고 '영채'가 처음 찾아왔을 때 자신의 은인의 딸에 대한 생각이 나, 어여쁜 '영채'의 모습에 대한 심정이라든가를 전혀 내색하지도 않고, 심지어 돌아가는 '영채'를 불러볼 생각도 않았던 '형식'의 마음인가,(실제로 형식은 그렇게 자신의 처사를 후회하는 언급을 하기도 함) 하다가

그들의 생이, 사랑이 그렇게 흘러 가게 만든 사회에 대한 원망이기도한가했는데

-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이 아니요 무정하던 세상이 평생 무정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게 하고 굳세게 할 것이로다. 기쁜 웃음과 만세의 부르짖음으로 지나간 세상을 조상하는 무정을 마치자. 473

역시 나의 예감이 맞는다.

그 당시 치고는 엄청 세련된 결말이다 한다.

설픈 연애관과 사랑에 대한 묘사이지만 세 남녀의 심리묘사는 제법 가치가 있다고 보여지며 1916년 조선의 모습, 그 시대 사람들, 그시대 어투, 봉건적인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 사이에서의 혼돈,.. 그런 과도기를 볼 수 있는 작품으로서 가치가 크다 하겠다.

 

 

여자란 매우 아름답게 생긴 동물이라 하였다. 어깨의 동그스름한 것과 뺨의 불그레한 것과 머리 터럭의 길고 까만 것과 또 앉은 태도와 옷고름 맨 모양과 그중에도 널찍한 적삼 고름이 차차 좁아오다가 가운데서 서로 꼭 옭혀 매여 위로 간 코는 비스듬히 왼편 가슴을 향하고 아래로 간 고름의 한끝이 훌쩍 날아 오른팔굽이를 지나간 양이 더욱 풍정이 있다. 이렇게 두 처녀를 보고 앉았으면 말할 수 없는 향기로운 쾌미가 전신에 미만하여 피 돌아가는 것도 극히 순하고 창쾌한 듯하다. 인생은 즐거우려면 즐거울 수가 있는 것이라, 아무 목적과 꾀도 없이 가만히 마주 보고 앉았기만 하면 인생은 서로서로 사랑스럽고 즐거울 것이라. 여자의 몸이나 남자의 몸이나 내지 천지의 모든 만물이 다 가만히 보기만 하면 그 새에 친밀한 교통이 생기고 따뜻한 사랑이 생기고 달큼한 쾌미가 생기는 것이라. 쓸데없이 지혜를 놀리고 입을 놀리고 손을 놀리므로 모처럼 일러놓은 아름다운 쾌락을 말 못되게 깨트리는 것이라 하였다. 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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