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트 메시지 - 그 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말로 모간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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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탄트'란, 어떤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서 원래의 모습을 상실한 상태, 즉 '돌연변이'란 뜻이다. 호주의 원주민들이 '그녀', '문맹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자연치료법을 전공한 50세의 그녀가 62명의 원주민, '참사랑 부족'과 함께 호주 대륙( 호주 대사막)을 횡단한 넉 달간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호주 원주민들을 위한 몇 가지 사회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예컨대 호주 원주민들의 생활개선 프로그램 중 하나로, 자포자기한 상태로 도시에 살고 있는 원주민 혼혈아들이, 함께 일하면서 삶의 목적을 일깨워주고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그녀는 한 원주민 부족의 모임에 초대를 받았고, 그것이 그렇게 고되고, 내추럴하고 긴 여행이 될 줄은 몰랐다.

사막의 평균 기온은 40-55˚ c였고, 야영보다는 욕조에서 목욕을 즐기는 체질의 그녀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자신을 데리러 호텔로 온, jeep에 올라타, 얼결에 따라나선 여행이었다.

호주의 도시들이 해안을 따라 발달되어 있듯이, 호주의 내륙은 90%가 메마른 황무지요, 버려진 황무지로 평평하고 건조한 곳이다.

백인들은 갈색 피부의 원주민을 재커루(캥거루 비슷한)라고 부르며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도 보았지만, 그들 눈에는 문화가 결핍된, 목표의식을 상실한 사람으로만 보일 뿐이었으므로 미국 인디언들에게 한 짓과 마찬가지로, 호주 원주민들을 개종시켜 진정한 인종 통합을 이루고자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이들 '참사랑 부족'은 백인 정부의 지배하에 있으면서도 백인들과 타협하지 않은 마지막 원주민 집단이었다. 그들은 그녀가 진정으로 원주민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 여겨 그녀를 초대했는데 그동안 백인과 접촉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어떤 관계를 맺을 생각조차 안 했던 그들이었기에 이 초대는, 굉장히 특별한 일이었다.

얼결에 그들과 호주 대륙 횡단에 동행하게 된 그녀는 원주민들이 자연과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를 알게 되고, 어느새 땅속의 식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손바닥으로 감지할 수 있는 능력까지 발견하게 된다.


-중간생략-


문장 하나하나, 그녀의 깨달음의 단락하나하나가 와닿았지만, 가장 뇌리에 박힌 문구는 이것이었다. '바꿀수 없는것은 평화롭게 받아들이는 마음과, 바꿀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바꿀수있는 용기, 그리고 바꿀수없는것과 바꿀수 있는것을 구별할줄 아는 지혜..' 이런 기도를 마음에 품고 사는 일, 오늘 하루의 과제쯤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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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리커버 에디션)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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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발간된 이 책 또한 감동의 메시지와 입소문이 자자했었다. '사람의 향기'님께서 적극 권유하셔서 만나게 된 책이다. 이 책의 작가 '델리아 오언스'는 70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이 소설을 발표하였다.

그녀는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과학자였기에 늦은 나이에 발표했다는 이력만큼 과학자의 소설이라는 특이함이 더 시선을 끌 수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감동적이고 재미있으면서, 구성 또한 과학자답게 치밀하여 지루할 틈 없이 몰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책이다.

친자연적인 이 소설을 어쩌면 생태 소설이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만 언급하기엔 사랑이, 인간의 외로움이, 순연함이, 시(詩)가, 그리고 미스터리가 만들어낸 엄숙한 감동이 가볍지 않아서 주절주절 읊어야한다.

이야기는 1952년, '카야'가 여섯 살 나이에 엄마로부터 버림받는 때부터 '체이시'가 변사체로 발견되는 1969년을 오가다가 후반부에서는 1970년 '카야'의 재판 이야기를 오간다. 이시절 아직 그곳은 여성 차별과 흑인 차별이 있고(지금은 없나?), 그 한계를 인정해야 이야기 감상을 제대로 할 수있기도 하다.

소제목은 아름답고 우아하게 붙어있지만, 그 밑에 다시 연도가 1952년, 1953년, 1956년, 1960년, 1965년, 1966년, 1967년, 1968년 ..

1969년 늪에 '체이스 앤드루스'의 시체가 누워있다.

살해의 흔적은 없지만,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실은 보안관들은 단서들을 모은다.

1952년 여섯 살의 '카야',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바로 위의 오빠 '조디'와 7살 터울이다.

그 가족들이 살고 있는 습지의 판잣집..

아버지의 술 주정과 구타를 못 이기고 어머니가 가출한 그날 이후 오빠와 언니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모두 떠나버린다.


-중간 생략-


습지는 늪이 아니라고 한다.

습지와 늪을 비교하면서 1부이야기와 2부 이야기를 나눠보게된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고, 늪은 끈적끈적한 숲으로 위장하고 낮게 포복한 수렁으로 기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빛을 다 삼켜 버려 물이 시커멓고 잔잔하다고, 습지보다 늪이 더 고요하다고..그곳에서 '체이스 루이스'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늪이 습지의 유사어라고 생각했던 내머리는 첫페이지를 자꾸 넘겨가며, 습지와 늪을 분류해 보아야했다. 내가 알아낸건, 습지가 늪을 포함한다는것, 늪이 습지의 일부일수있다는것. 그다음은 더 생각해볼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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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파라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3
후안 룰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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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산문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을 읽으면서 관심이 갔던 작가이고, 작품이다.

그는 '이 책이 누구도 '후안 룰포'처럼 계속 서술할 수 없는 책이며 영원히 완성을 기다리지만 영원히 완성을 기다릴 수 없는 책이며 그러면서도 아무런 제약 없이 활짝 열려있는 책'이라 했는데, 모호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작품이라 망설이기도..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의 기념비적인 소설이라 하고, 라틴아메라카 문학의 영원한 고전으로 남을 작품이라 한다.

'후안 룰포'는 아주 독창적이고 예외적인 작가로 '제임스 조이스', '윌리엄 포크너', '마르셸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를 집약시킨 거인이라는 평가도 있다.

문체 자체가 매우 시적이고 화자가 아들 '빼드로 빠라모'였다가 그가 찾는 아버지 '빼드로 빠라모'였다가, 또 다른 사람들로 바뀌기도 한다.

그에게 말하는 이가, 혹은 이미 말했던 이가 벌써 죽은 자였다고 하고, 결국 처음의 화자인 아들도 죽은 사람이 되는데, 놓치지 않고 읽는다 해도 언제 왜 죽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처음 몇 번 당황하다가 마술적 리얼리즘이라잖나~ 하면서 그 모호함과 애매함과 난해함을 즐기려 드니, 비로소 스토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역시 멕시코의 역사와 혁명을 검색해 봐야 했다.

멕시코는 에스파냐(스페인)의 300년간 식민지였다.

1821년 독립하여 1823년 공화국을 수립하고 50년 동안 대통령이 서른 번 이상 바뀌고

1848년엔 미국과 전쟁을 치러 거대한 땅을 잃는다.

1876년 쿠데타를 일으킨 '디아스'에 의해 30년간의 독재 체제였고, 생활고를 시달리던 농민들은 가난하고 또 가난했다.

1910년 멕시코 혁명은 여러 영웅들이 탄생했지만, 한낱 도적떼 출신도 있었고 군인도 있었고, 아직까지도 평가가 어긋나는 그들은

배신하고 배신당하고 살해하고 살해당하고 그래왔다.

그 시기를 보낸 '후안 룰포'는 부모를 잃었고 친척 집을 전전하며 우울하고 고독한 유년기를 보낸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이 그 시기이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란 '빼드로'에게 죽음을 앞둔 어머니 '둘레로스'가 아버지를 찾아 '꼬말라'에 가라고 한다.

'꼬말라'는 그녀에겐 푸른 벌판과 익은 옥수숫대가 어우러진, 밤이면 희뿌연 빛에 휩싸이는 아름다운 정경으로 남아있는 그녀의 추억과 향수가 깃든 고향이었다.

그녀는 아들더러 네 아버지는 내게 당연히 갚아야 할 빚이 있고, 우리를 버렸던 죗값으로 받을 것이 있으니 당당히 요구하라고 한다.

어머니의 유언대로 '꼬말라'에 가는 중, 마침 방향이 같다는 마부 '아분디오'가 길잡이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가 도착한 '꼬말라'는 소리가 없고, 텅 빈 집들과 잡초들만 무성한 곳이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이었고

자신을 안내했던 마부 역시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한다.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인지 유령인지 모를 인물들을 따라나서고,

그들에게 어머니의 과거와 아버지의 과거를 듣는데, 이미 아들 '빠라모'도 죽은 사람이 되어있다.

그의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는 그 지방의 토호쯤 되는 사람으로, 대농장 '메디아 루나'의 주인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여러 여자들을 거느렸다.

'빼드로'의 어머니 '둘레로스'는 목초지의 명의자로 그 땅을 빼앗으려는 '빼드로 빠라모'의 청혼으로 그와 결혼을 하지만

그날 밤 초야를 치르면 안 된다는 충고에 사로잡혀 자기 대신 친구, '에두비헤스'를 들여보냈다.

처음에는 안된다며 거절했지만 '에두비헤스' 역시 '뻬드로 빠라모'를 연모했던 지라 신방에 들어갔지만, 만취한 신랑 때문에 아무 일 없이 날이 밝고, '둘레로스'는 이듬해 아들 뻬드로'를 낳는다.

그녀는 남편을 증오했고 그의 닦달을 견디지 못해 아들을 데리고 언니가 사는 다른 마을로 가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아버지를 찾아가라고 한 것.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에게는 망나니 아들 '미겔 빠라모'도 있었다. 그리고 마부 '아분디오'를 비롯해 많은 자식들이 있었지만, 자식들이 태어날 때 코빼기도 안 비친 사람이라 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평생 못 잊는 여인이 있었는데

어릴 때의 소꿉친구이자 첫사랑 '수사나'였다.

미망인이 된 그녀를 찾아와 결혼해서 '수사나'가 마지막 부인이 되는데

광기와 환상에 사로잡힌 그녀는 마음의 병을 얻은 미친 여자였다. '뻬드로 빠라모'가 가장 사랑한 여자 '수사나'..

하지만 그녀는 '빼드로 빠라모'가 풀지 못한 숙제이기도 했다.

그녀를 괴롭히는 기억들과 절규, 불면을 보면서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고

그녀가 죽은 후 '뻬드로 빠라모'는 곳간에 쌓인 곡식들을 모조리 태우고 그녀가 떠난 저승길을 바라보며 의자에 길게 드러누워 시간을 보내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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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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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아일랜드 이야기이다.

종교와 정치적 갈등이 첨예한 이곳은 영국과의 대립이 극심했던 시기의 북아일랜드이다.

80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1921년 독립하였다. 그리고 1949년 아일랜드 공화국이 되었다.

19세기부터 영국과의 분리 시도를 해왔지만 영국과의 끈을 버리려 하지 않는 북아일랜드의 신교도들로 인해 비극적인 내전이 끊임없었고, 1921년엔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신교도(성공회)가 주를 이루는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의 일부로 남아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이 지배 적였던 아일랜드는 급변하는 사회 변화 속에서 몇 유명한 사건에서 보듯이 세속화 추세가 가속화되며 권위가 약화되기도 했지만 전 국민 인구의 90% 이상이 여전히 가톨릭 신자라 한다. 그래서 이 지역은 종교적인 갈등은 곧 정치적인 갈등이 되어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폭력과 유혈사태가 난무하는 나라의 이미지, 그리고 이 책의 배경은 영국의 속국(?)으로 남아 있는 북아일랜드의 이야기이다.

인류사에서 이들만큼 고난을 격은 민족은 없으며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나라였다고도 하는데,

한국인이 아시아의 아일랜드인이라는 묘사가 있듯이

남과 북의 분단, 피 식민지의 경험과 강렬한 민족정신, 음주 가무를 즐기는 민족성, 노인공경과 대가족의 전통, 자녀 교육열 등이 유사하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강대국 곁에서 겪은 수난의 역사로 한 (恨)의 정서가 공통으로 흐른다 하는데

유럽 국가들 중 민족적 자부심이 가장 강한 나라 아일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며, 낮은 실업률과 높은 경제 성장, 정치적 자유 등이 전통적 가치와 성공적으로 결합된 나라로 꼽힌다. 유럽의 최빈국에서 10년 만에 고도로 성장하여 선진국으로 도약해 1인당 GDP가 세계 3위이다.

북아일랜드의 종교적인 갈등은 영국계 이주민(신교파)들이 대다수인 사회에서의 소수 구교파들에 대한 차별이 주를 이루어 대립한다.

이분법적인 종교 상황은, 이분법적 정치 상황을 대변하고, 물 건너(영국), 길 건너(국가수호자-영국의 일부이기를 원하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하지 않는) 국가와 이곳(국가 반대자-아일랜드로 독립)을 양분한다.


정상적인 죽음이 드문 곳, 폭력적인 죽음이 난무한 이곳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극단적이다.

비극적인 사건들은 끈질기고 견고한 정치적 문제를 근간으로 끊임없이 일어난다.

가족 중, 끔찍한 죽음을 겪은 이가 없는 이웃이 신기할 정도이다.

그래서 피해 망상의 시대이고, 칼날 위에 선 시대이고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는 시대, 혼란의 시대에 '나'는 서있다.

이곳은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상한 취급을 받고, 말들은 왜곡되고 날조되고 과장된다.

'나'와 '밀크맨'의 불륜설처럼..

'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굳이 변명하려 들지 않는다.

어차피 엄마도, 가족도 믿어주지 않으므로..

이 극단적이고 끔찍한 시대, 전장이나 다름없는 그 거리에서는 어떤 관점을 갖지 않는다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19세기의 안전하고 문학적인 생각에 빠져 지내는 것이다.

'나'는 걸으면서 책 읽는 일을 즐긴다. 그리고 달리기를 즐긴다.

그런데 일촉즉발의 이 사회에서는 그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안전하지 않아서, 자연스럽지 않아서, 튀기 때문에 위험하단다.

이 사회는 온갖 정치적인 문제들로 인해 상식적인 것이 상식이 아니고 상식이 아닌 것이 상식인 사회, 상식이라는 범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상한 취급을 받는 곳이다.

'나'보다 스물세살이 많은 유부남 '밀크맨'이 국가 암살단이 쏜 총에 맞아 죽은 날은, '나'를 오랫동안 스토킹 해오던 '아무개 아들 아무개'가 내게 총으로 찌르려 들며, 고양이 같은 년이라고 욕을 한 날이다.

열여덟의 '나'는 10명의 자녀들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죽었고

'나'의 큰언니는 자신을 배신한 전 애인을 잊지 못하고 큰 형부와 사고 친 후 결혼을 했는데

이 자는 '나'와 언니들에게 끈질기게 접근하고 치근덕댄다.

'나'와 '밀크맨'의 루머를 만들어낸 이도 바로 이 큰 형부이다.

'밀크맨'은 책 읽으면서 걷고 있던 '나'에게 접근했다.

위험하다고 자신의 차를 타라고..'나'는 그 차에 타지 않으려고 끝끝내 버틴다.

그 후로도 그는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에 나타나고 사라져버린다.

 

-이하생략-

https://blog.naver.com/su430/222529543862

 

 

내가 19세기 문학에 치중하는 까닭 중 하나가 전화 같은 현대적이고 골치 아프고 불편한 물건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만났다가 헤어지기 직전에 다음 약속을 정했고 일단 한 약속은 꼭 지켜졌다. 우리가 대체로 전화를 불신하는 까닭은 전화가 기술적인 물건이고 비정상적인 의사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해서이기도 했지만 ‘더러운 수작‘이나 비공식적 도청이나 국가의 감시 도구로 쓰인다고 본 탓이 컸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사적인 용도로는 전화를 쓰지 않았다. 사적인 용도란 연애 같은 민감한 용도 말이다. 347-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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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의 연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5
D.H. 로렌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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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은 중학생이 읽으면 안 된단 말이지.. 근데 책에는 왜 19금이 없냐고' 맨날 여기다 써대는데,, 하긴 중학생 정도면 이런 책의 농도를 어차피 읽어도 모른다는 뜻일지도..??

사랑의 행위에 대한 묘사나 그 심리 묘사가 너무도 정교하여 eroticism 문학의 정수라 일컫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한 때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시비에 놓여, 판매금지가 되었었고, 작가는 이탈리아에서 사비를 들여 출간했었고, 미국과 영국과 일본에서는 출판을 놓고 재판이 열리기도 했다는 것, 그러하다 보니 사람들은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못 구해서 안달이 나, 해적판들이 난무할 때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도 했다는데(1천만 원을 호가하였다고도.), 예술적인 측면에 방점을 찍어준, 미국과 영국에서는 각각 1959년과 1960년에 무삭제판 출간이 허용되었다 한다. 일본에서는 패소하였다고.. 작가는 이미 30년 전에 사망했었다.

예술적인 측면에서 탐미성을 말하는데,, 일본 소설에서 추구하는 탐미성과는 차이가 있지만, 작가 '로렌스'는 전쟁의 광기와 참상, 산업 발달의 폐해와 물질 만능주의, 계급사회의 모순을 꼬집는 흐름을 놓치지 않고 두 남녀의 不倫과 性愛의 눈뜸에 대한 심리묘사를 기저로 하여 전개하는데 이 책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논리가, 700여 페이지 분량 중에 情事에 관한 묘사는 고작 30여 페이지에 불과한다고 하는 부분이 너무 어이없어 헛웃음을 짓게 하였다.

정황의 묘사는 일본 소설 보듯 하면 되는데, 저속어가 곳곳에 등장하여, 번역의 한계인가, 내가 너무 오래된 책을 읽었나 갸우뚱~~ 좀 더 세련된 표현은 없었을까 아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나라 언어를 전공한 번역자가 우리나라 말로 표현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었다고 판단했겠지 한다. 하지만 불편했다. 실제로 원고를 정서하여 타이핑할 때 타이피스트들이 모두 거부하여 후배 작가의 아내가 했다 하는데,,

이웃 블로그를 보면서 사놓고는 이래저래 미루다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 10대의 소년이, 엄마와 이웃 아줌마 사이의 포옹을 묘사할 때, 그것은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 나오는 포옹이었다는 부분이 훅치고 들어와, 바로 읽게 된 책.

이 책은 80년대 한국 에로영화 시리즈들의 클리셰였다 하고, 60년대 서구 사회의 자유분방한 성문화의 도래를 알렸다 한다.

어떤 문제적인 캐릭터가 탄생할 때는 뭔가 다른 배경이 있다.

이 책의 작가 역시 그러했고, '채털리 부인', '코니' 역시 그러했다.

그리고 그 시대가 그러했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이하 로렌스)'는 죽기 2년 전에 이 책을 내놓았다. 그는 교양 없는 술주정뱅이, 광부였던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의 계급 간 차이는 가정불화의 주된 원인으로 보이며, 가난과 불화는 그의 어린 시절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막내인 그에게 향한 어머니의 집착은 사춘기 여성 관계를 복잡하게 만드는데 기여했다 한다.

그는 취업 부탁 차 찾아간, 대학 은사의 아내와 처음부터 서로 사랑에 빠져 함께 도주한다. 그녀는 독일 출신으로 이미 세 아이의 엄마였고 여섯 살 연상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적국 출신의 여자라 체포된 사건 이래로, 여러 나라로 밀월여행을 하며 작품 활동을 하다가 그녀의 남편이 이혼을 해주자 정식 결혼을 하였다.

유독, 남녀관계의 윤리 문제에 천착했던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출판 및 발매 금지당하기 일쑤였다. 이 책은 그의 만년에 그의 성철학(性哲學)을 펼친 작품으로 평가된다.

[안나 카레니나]의 서두만큼이나 이 책의 서두도 인상적이다.

 

 

- 우리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를 비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큰 격변이 일어났고 우리는 폐허 가운데 서 있다. 우리는 자그마한 보금자리를 새로 짓고 자그마한 희망을 새로 품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좀 어려운 일이다. 미래로 나아가는 순탄한 길이 이제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장애물을 돌아가든지 기어 넘어가든지 한다. 아무리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콘스턴스 채털리가 놓인 대략적인 처지였다. 전쟁으로 인해 그녀는 머리 위로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사람이란 살면서 겪고 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p 7

그 시대의 본질적 비극, 바로 1차 세계대전이다.

'콘스 턴스 채털리 (코니)'의 남편 '클리 퍼드'가 참전했다가 처참하게 바스러진 채 후송되어 2년간 투병 끝에 하반신 불구가 되었던 것..

신혼생활 1년 만에 전쟁에 나갔던 남편이 그렇게 되어 돌아오자 부부는 남편의 고향인 라그비 저택으로 들어간다. 전쟁에 나갔던 형도 전사했고, 그 몰골을 본 아버지도 세상을 뜨자, '클리 퍼드'는 준남작, '클리퍼드 경'이 된다.

일찍이 '코니'는 언니 '힐더'와 함께 예술가 부모를 둔 탓에, 다른 나라를 유학하며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교육을 받아, 예술의 숨결을 아는 처녀였다. 그리고 결혼 전에 이미 연애의 경험도 있었다. 부유한 지식인 계급이었던 '코니'는 자기를 잘 가누는 주체적인 처녀였고,' 클리퍼드'는 그녀보다 상류 계급의 귀족이었지만 소심하고 두려워하는 성격이었다. 불구가 된 '클리퍼드'는 더 소심하고 자의식이 강해져 옷차림 등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코니'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씩 유명해지고 그들의 저택에는 초대손님들이 넘치기도 한다.

창작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도 하는 이들 부부는 역경 속에서 정신적으로 깊이 하나가 되지만 육체적으로는 서로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이이다.

이 집에 다니러 간 '코니'의 아버지는 딸의 결혼생활을 안타까워하면서 애인을 하나 두는 게 어떻겠느냐고, 세상의 여러 재미를 맛보도록 하게 하라면서 사위에게도 충고한다.

남편에게 헌신하지만, 뭔가 공허하고 존재가 없는 삶을 산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던 '코니'는 점점 야위어가고, 초조하고, 자신이 부서져 엉망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즈음 자신의 집에 드나들던 아일랜드 출신의 희곡작가 '마이클리스'와 연인이 된다.

그와의 애정 행각에 만족감을 맛본 '코니'는 명랑해지고, 그 기운은 남편 '클리퍼드'를 자극하여 그의 최고작들이 이 시기에 쓰여지고, 그는 더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게 된다.

그들의 저택에 남편과 같은 캠브리지 출신 지인들이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는데, 그들 당대의 젊은 지식인들은 정신적인 삶이라는 것을 믿는 자들로 그런 류의 대화들을 나누고, '코니'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를 듣기도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코니'는 정신적인 삶이 뭔가 더 고차원적이고 올바른 삶인 것에 동의한다.

그 저택을 둘러싼 숲 역시 그 부부의 소유인데, '클리퍼드'는 이 숲을 몹시 사랑한다. 그는 여기가 바로 영국의 심장이라 여기며,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이곳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아들이 하나 있었으면 한다고 '코니'에게 말하면서, 다른 남자에게서 자식을 낳는 것을 고려해보라 한다.

그즈음 '코니'는 애인 '마이클리스'의 경솔함에 실망하고 있었고

숲속을 산책하다가 '클리퍼드'가 고용한 사냥터 지기 '멜러스'와 조우한다.

아이를 갖게 해줄 남자를 떠올려보다가 남편 심부름으로 '멜러스'의 오두막에 갔다가 그의 목욕하는 모습을 본다.

피를 뜨겁게 하고 존재 자체를 새롭게 만드는 건강한 인간의 官能.

그리고 '클리 퍼드'의 숙모가 '코니'의 희생을 보면서 '너의 젊은 시절을 이렇게 허비하지 말라'는 충고를 받아들여 간호사 '볼턴 부인'을 고용하자, 까탈을 부리던' 클리 퍼드'도 점차 '볼턴 부인'에게 적응하고 엄청 가까워진다. 한결 한가해진 '코니'는 자주 숲으로 달아난다.

그 숲에서 알을 품은 어미 닭들을 보면서, 아이를 품어보지 못할 자신의 운명을 슬퍼하던 때 '멜러스'가 나타난다. 그들은 가까워진다.

'코니'에게 '멜러스'는 사투리를 쓰는 하층민, 노동자 계급에 지나지 않지만, 전쟁에서 장교직을 수행했고, 뭔가 많이 지쳐있지만, 다른 노동자와는 다른 면모가 보였다. 이런 계급의 차이를 '클린 퍼드'는 경멸할 터였다. 비슷한 계급 신사와의 불륜으로 아이가 생겨나, 자신과의 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은 상속자가 되겠지만..

산업 사회의 발달로 인한 단절을 본다. 지주와 저택들의 영국은 지나갔고 끝장난 것, 다만 그 지워 없애기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따름이라고,

노동 계급과 지배 계급에 대한 생각이 트이고, 전혀 다른 자본의 물결을, 역동적인 변혁의 물결을 직감하면서,

그리고 점점 노동자의 삶, 육체적인 삶을 직시하면서, 지배계급인 '클리 퍼드' 무리들이 지향하던 정신적인 삶과 비교한다.

광부들을 보면서 산업 노동자와 대중에 대해 두려움도 갖는다.

참을 성 많고 성실한 인간들, 하지만 그들은 삶에 대한 아름다움이나 직관이라곤 전혀 없이, 항상 어두운 갱 속에서만 삶을 보내지만 여전히 가난하고, 그래서 그들이 존재를 상실한 인간들로 비춰진다.

그즈음, '볼턴 부인' 덕에 컨디션이 많이 좋아진, '클리퍼드'는 자신의 영지 내, 제철과 광산 산업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사업에 집중하게 된다.

'멜러스'의 아이를 갖게 된 '코니'는

그와의 삶을 꿈꾸며 언니와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나서고, 남편에게는 거기서 한 남자를 만나 연애의 결실을 맺게 된 것으로 꾸미려 드는데

일은 수월하지 않게 돌아간다.

'멜러스'에게는 이혼하지 못한 야성적이고 상스러운 아내가 있었고(진짜 가관이다.)

'클리퍼드'는 자신이 고용한 사냥터 지기 따위와 놀아난 '코니'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래도 마지막은 삶을 바꾸려 시도하는 '멜러스'의 편지가 '코니'에게 전해지는데..

 

아무리 감상적 차원에서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이 성관계 문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지저분한 관계이자 예속 중 하나였다. 이것을 찬미한 시인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여자들은 항상 뭔가 더 나은 것, 뭔가 더 고귀한 것이 잇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더 명확하게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한 여자의 아름답고 순수한 자유는 그 어떤 성관계의 사랑보다도 한없이 더 훌륭한 것이었다. 다만 불행한 것은 이 문제에 있어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해 너무나 멀리 뒤처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남자들은 마치 개처럼 성관계에만 집착했다. 그리고 여자는 이에 따라야만 했다. 남자란 욕구로 가득 찬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여자는 그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아이처럼 심술 사나워져 골을 내고 날뛰면서 이제껏 아주 유쾌했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 십상이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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