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쥐의 윤회 - 도올소설집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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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님의 소설집이다.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인가? 혹은 '움베르트 에코'인가?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시대의 지식인으로 작금 융합의 시대, 퓨전의 시대에 걸맞는 학자인 건 분명하다. 그와 한시대를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하던데, 이분은 1948년생.

철학자인 동시에 행위 예술가이며 연출가이며, 영화와 연극의 대본을 쓰는 작가이며 재즈 아티스트이며, 문인 화가이며 무술인이며, 한의원도 운영했던 한의사이다. 그리고 소설가이기도 하다는 것..

어느 날부터인가 텔레비전에도 많이 등장하고, 최근에는 '이승철'과 진행하는 프로도 있었는데

독특하고도 화려한 화법 이면에 동양철학이 던지는 깊이 있는 질문과 사유에 마냥 웃고만 있을 수는 없던 그의 강의..

[슬픈 쥐의 윤회]라는 괜스레 슬픈 제목에 이끌리어 중고책 기다릴 여유도 없이 사두었다.

총 13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쉽게 이끌리다가 어려워지기도 하고, 이게 끝인가 싶기도 하고 이런 결말이라서 좋기도 한 소설들이다.

그리고 교훈적이다.

그 자신의 이야기, 그의 행적이 궁금해지고, 따라가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중간 생략-

 

끊임없이 인간과 우주에 대하여 물음을 던지는 철학자의 철학적인 소설인데 가독성도 좋고, 지루하지도 않고, 하여 기인의 이미지 까지 지닌 그, '도올'님을 좀 더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책..

https://blog.naver.com/su430/222549995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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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1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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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소설에서 이런 작가, 이런 책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 일찌감치 [식물들의 사생활]을 읽으면서 범상치 않음을 알아봤고,

우리나라에서는 마니악 한 작가라고 하지만, 외국에서의 평가가 더 좋아 많이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하고, 노벨 문학상 후보로 내세운다는 평가도 있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철학적인 농도가 짙고, 신학적인 세계관이 맞물린 그의 작품은 결코 가볍거나 쉽게는 읽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은 가독성이 좋다. 전작들에 비해 힘을 많이 뺐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드는 차, 그분의 나이를 확인하며 더 많은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해주기를 바래본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포르투갈의 높은 산], [좀머 씨 이야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떠오르는 대목들이 있다. 그리고 흡입력이 좋다.

뻔한 스토리 일수 있지만, 그의 신학적인 사유와 질문은 소름 끼치도록 가볍게 무겁다.

이 작가의 작품들을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에리직톤의 초상]부터 구하려 했는데, 품절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구하고자 한다.

나는 한 작가에게 꽂히면 그의 책을 꾸준히는 읽지만 연달아 읽는 것은 피하고 본다.

더구나 우리나라 작가의 경우엔 더 멀리멀리 간격을 두고 읽는 편인데

비로소 '이승우 작가'의 책에는 확실한 지지와, 확실한 신념이 생겼다.

깡그리 모아 볼 작정을 세워도 본다.

귀한 작가이다.

♣'천산 수도원'..

서해가 내려다보이는 해발 890m의 가파르고 험한 천산 정상에 세워진 수도원은, 폐허 되어 버려진 건물로 우연한 기회에 세상에 알려진다.

'강영호'라는 여행작가는 우리나라의 오지와 사라져 가는 유적지를 소개하고 세상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특별한 여행지들에 관한 출판 준비를 하던 차 폐암 선고를 받고 7개월 만에 죽는다.

그의 동생 '강상호'는 남미 주재원으로 외국회사에 10년째 근무하다가 귀국해 형의 유품을 정리한다. 그리고 형이 출판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여행지의 마지막 부분, '천산 수도원'에 관한 소개 글이 미완성이었음을 확인한 후 그 원고가 마치 자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형의 투병에 관해 무심했던 죄책감을 덜어보고자 마무리를 위해 휴가를 내어 '천산 수도원'을 방문한다.

'헤브론 성( 이스라엘의 도피 성,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몸을 피하는 곳'), '하늘 집'이라고 불리는 그곳은 전기를 비롯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지 않은 곳으로, 1970년대 초까지 건재했다 한다. 독특한 믿음을 가진 한무리 종교인들의 공동체였던 이곳의 벽에 씌어진 글자들이 있다. 벽서,, 흙벽에 성경을 옮겨 적은 이 글자들은 구약과 신약 모두의 방대한 분량이었다.

'강상호'의 답사 이후 여행기의 마지막 장을 채워 출판되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별로라 잘 팔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부천의 한 신학대학교에서 교회사 강의를 하는 강사가 이 천산의 벽서를 트리니티 대학 도서관에 있는 [켈스의 책]과 견줄만하다는 내용의 글을 발표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 일컫는 [켈스의 책]은 9세기에 만들어진 성경 책으로 송아지 피지에 라틴어로 기록한, 화려한 필체와 그림이 있는 복음서이다.

천산의 벽서 역시 다양한 컬러와 그림으로, 하지만 복음서만 기록한 [켈스의 책]과는 달리 성경 전체를 기록한 것.

교회사 강사 '차동연'은 의문을 품었고 기독교 단체와 소속 학교의 지원으로 연구를 하게 되는데,

 

 

요양원에서 죽어가는 '장'이란 사람에게서 연락이 온다. 죽음을 앞둔 그는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자신이 한일, 본일을 '차동연'에게 들려준다.

1950년대 초에는 전쟁 후 궁핍, 질병, 공허, 혼란이 전국을 뒤덮었던 시기로, 허기지고 상처받고 뒤틀린 영혼들로 가득해 삶의 다른 차원을 갈구하는 열광적인 종교운동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던 때였다.

그리고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그것도 첫사랑에 관한 말랑말랑할 것 같은 이야기로 전환된다.

사촌 누이 '연희'를 사랑한 '후', 바닷가 마을에서 마지막 복무 중인 '박 중위'가 읍내 미용실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스무 살의 그녀에게 반해, 막무가내로 들이대는데, '연희'는 시골처녀 특유의 수줍음과 유별나게 강한 자존심으로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십대의 남자 '박 중위'는 고교시절의 첫사랑이었던 여섯 살 연상의 주일학교 여선생의 긴 생머리와, 버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연희'의 긴 생머리를 오버랩하여 집착하고 집요해진다. 그는 결핍과 좌절의 경험이 별로 없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마약중독자와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 활동이 유사하다 한다.

 

고아인 '연희'에게 있어 아버지 같은 존재였던 가족의 배신으로 '박 중위'는 그녀를 유린했고, 버렸다.

그녀는 집을 나갔고,

'후'는 '박 중위'에게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고, 살인을 저질렀다 생각했고,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천산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피투성이의 꿈에 시달리면서 불안과 혼란 속에서 형제들의 도움으로 차차 안정을 찾아가는데,,

독특한 믿음을 가진 한무리 종교인들의 공동체인 이곳 '하늘 집'의 근본정신은

각자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이지만, 서로는 서로에 대해 동등한 형제였고 각자가 혼자이면서 전체가 하나인 곳이다.

그들의 특이한 삶의 태도에 처음엔 약간의 경이로움과 호의적인 긴장감을 가지다가 점차 섞여 들어 평안함을 유지하며 '후'는 삼 년 동안 성경을 꼼꼼히 읽고 세 시간 기도하고 하루 한 끼를 먹으며 성경을 필사한다.

그가 마지못해 입으로만 읽고 쓰던 성경에 사로잡힌 데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야기가 있다. '압살롬'이 자신이 누이 '다논'을 범한 아버지의 장남이자, 이복형제인 '암논'을 죽여버리고 아버지의 권력에 도전하는 장면. 훗날, '압살롬'은 자신의 딸이름을 '다말'이라 지었는데 '후'는 그부분을 이상하게 받아들인다. '압살롬'의 다말을 향한 사랑이, 형제애 이상의 것이었는지도 모를일이라 여기며 '후'는 자신을 '압살롬'과 동일시한다. 그에게 성경은 큰 거울이 된다. 성경이 비추지 못하는 것, 비출 수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공식적인 자리에서 선글라스를 벗어본 일이 없는 남자 '한정효'..

그는 군사 쿠데타의 중심인물이었다.

'박정희 장군'을 따라 한강을 건넜고,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아내와는 아이가 없었고 그의 아내는 새벽 기도를 열심히 다녔고

그는 며칠에 한 번씩 집에 들어가면서 바쁘게 권력에 최중심에 있는 장군의 그림자 역할에 충실했다.

임파선에 악성 종양이 생겨 죽어가는 아내에게 그녀가 믿는 전지전능자에 대해 반발하고 질문해 보지만

 

[이하생략]

 

 

 

 

"혹시 저 무수하게 많은 굉장한 말씀들이 젊은이의 현실에 아무 작용도 하지 않아서 마음 상해 있다면, 주제넘다 말고 내 말을 잘 들어 봐요.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저 굉장한 말씀들은 애초에 이 세상을 이길 힘이 없어요. 세상은 크고 무섭고 힘이 세요. 언제나 그랬어요.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그에 비하면 말씀은 무력하기 짝이 없어요. 그건 말씀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씀이 가진 힘이 다른 힘이기 때문이에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씀은 세상에 능욕당하고 옷 벗기고 채찍질당하고 창에 찔리고 못이 박혀 죽을 수밖에 없어요. 다른 힘이기 때문이에요. 하찮은 것이 자주 위대한 것을 이겨요. 예수님이 어떤 분이었는지 생각해 봐요. 그분은 땅의 법칙에 철저히 무력했어요. 그분이 무능한 것은 그분의 능력이 땅의 법칙 저 너머에 있기 때문이었어요. 말씀들의 위대함도 땅의 법칙 너머에 있는 위대함이에요. 말씀들이 이 무자비하고 막무가내의 현실을 무너뜨리고 이기고 지배하리라고 기대하지 마요. 말씀이 굉장한 것은 현실을 이기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을 넘어서기 때문이에요. 현실에서의 철저한 무능이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말씀의 능력을 역설적으로 증거하는 거예요. 엉뚱한 데에다 말씀을 들이대지 말아요. 세상은 언제나 악하고 어느 시대나 힘이 세고 어디서나 무자비해요. 그러니까 젊은이, 외람되게 충고하는데, 그 때문에 절망하거나 마음 상해하거나 넘어지지 마요."29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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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서른에는 노자를 만나라 - 시인 장석주가 전하는 1만 년을 써도 좋은 지혜
장석주 지음 / 예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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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님 블로그 기웃거리다 바로 입수해두었던 책, 저자 '장석주'는 시인이라 한다. 그가 외국 생활을 하는 서른 즈음의 아들에게 편지로 쓴 글이다.

- 네게 잔소리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저 나날의 일들과 감회,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과 보람, 자연의 변화, 생겼다가 사라지는 마음의 무늬 그리고 사람 사는 도리에 대해 속내 드러낸 얘기를 나누고 싶구나. 애비는 그 방편으로 오래 곁에 두고 읽은 [노자]를 꺼내 들었다. 12

사십 대 중반부터 안성에 있는 금광호수 주변에 전원주택을 짓고 기거한다는 그는, 삶의 위기가 왔을 때 그곳을 선택했고, 많은 책들을 읽고 사유하고 글을 쓰는데, 특히나 동양의 고전들 중 [노자]와 [장자]를, 읽고 또 읽으며 지낸다 한다.

날마다 책을 읽는다는 그는 책을 읽지 않을 때의 정신적 허기에 허둥거림을 토로한다. 책 읽기의 최종 목적은 자식의 습득이 아니라, 사유하는 것이라고..

서점은 인생의 항해에서 등대같이 지침을 주는 책들로 가득하고, 깃발에 찢겨 귀환했을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항구 같은 곳이라고 덧붙이며

자식에게 전하는 이 친근한 편지글에는 교훈적인 면도 있지만 에세이 같기도 한, 일상들을 술회하고 있다. 부모 세대의 연륜과 경륜만큼의 지혜를 구할 수 있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어 자꾸만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하고, 미래의 내 생활을 그려보게 한다.

부모가 얘기하면 잔소리요, 그야말로 앉혀놓고 대화로 하자 차면 설교요~ 한 것들을, 이렇게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 썼다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인 듯..

그래서 그 자녀가 아닌 우리들에게까지 나눠주는 유익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

- 아무것도 없는 빈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시간쯤 눈을 감고 있는다. 그때 머릿속으로 스쳐가는 잡념들이 무엇인지 본다. 그 잡념들은 '나'의 실체가 아니라 헛것이요, 먼지와 같이 떠도는 관념이다. 우리는 얼마나 우리 존재를 붙들고 있는 그 유령들에 휘둘리며 사는가. 그 잡념들만 떨쳐내도 인생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18

- 오늘 죽을 것만큼 힘들어도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 그러니 오늘의 역경에 겁먹지 마라, 움츠리지 마라. 가슴을 활짝 펴고 새날을 맞아라. 쇠붙이가 불에 달궈지며 연마되듯 사람도 역경에 단련되는 것이다. 역경을 견딘 자는 내면이 꿋꿋하고, 자태는 침착하고 늠름하다. 25

서른에서 한참 지난 나이에 이 글을 읽으면서 그의 화두들이 서른에 받아들이기엔 아직 이를 텐데 하면서, 한편으론 지루하고 딱딱하기만 할 것 같은 [노자]를 현재의 삶, 현실의 삶의 한 현상들을 제시하면서 [노자]의 가르침을 하나씩 풀어주는 편지글, 그런 편지를 받는 그 자제분이 부럽기까지 하더라는..

- 새해 들어 이 애비의 첫 결심은 '이름 없는 소박함'을 구하며 사는 것이다. 이름이란 고작해야 분별의 필요로 지어진 것이다. 가볍기로 치자면 깃털같이 가벼운 것이 이름이다. 그러나 한번 이름으로 세워진 것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그 '이름'으로 불림으로써 본디 이름이 없었고 모호함 속에 있던 '나'라는 존재자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 이름으로 호명되는 자는 어둠 속에서 홀연히 밝음으로 나서는 것과 같다. 한편으로 이름은 속박이기도 하다. 네 이름은 평생 따라다닐 네 얼굴이요, 인격의 기호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름 없음에 처하는 것은 이름이 짓는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노니는 것이겠지. 26

내가 미침 이 문장을 읽을 때가 경주에서 아침밥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경상도 여행에서 먹거리는 대개 만족스럽지 못한데, 불만 없이, 적게, 소박하게 먹는 걸로~~그렇게 사는 걸로~

편리하다는 핑계로 지향하는 것들이, 어느덧 넘쳐나있더라, 착한 소비에 대한 생각에까지 이르고, 이름 지어진, 존재들의 속박과 부대낌이 짠해지기도 했다.

- 직선이 인위라면, 곡선은 무위 자연이다.

애비가 노자를 마음공부의 근간으로 삼을 무렵 "크게 곧은 것은 구부러진 것 같다"라는 구절을 처음 접하고 크게 놀랐단다. 마치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했지. 진짜 곧은 것은 그 곧음을 뽐내지 않는다. 오히려 구부러진 듯 처세를 하지. 진짜로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은 그 힘을 드러내 자랑하지 않는다. 진짜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굳이 맞서 싸우려 들지 않는다. 진짜 아는 사람은 그 앎을 내세우지 않는다. 42

- 노자는 구부러진 것을 향한 예찬을 그치지 않는데, 그의 생각에는 구부러진 것이야말로 곧고, 완전한 것이다. 구부러진 것은 지극한 부드러움으로 이미 제 안에 곧음을 품는다. 도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의 작용이다. 직선의 일은 억지로 함이고, 곡선의 일은 스스로 그렇게 하도록 놓아두는 것이다. 43

-그리하여 크게 밝으면 어두운 듯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뒤로 물러서는 듯하고, 크게 높은 것은 내려앉은 골짜기 같고, 온통 흰 것은 때를 탄 것 같고, 넓은 것은 좁은 듯하고, 큰 소리는 정작 귀에 들리지 않는다. 그게 바로 조화란다. 도와 덕의 근본 작용은 조화에 이르는 것이다. 43-44

[이하생략]

 

유한한 생명을 가진 사람은 영원을 겪어낼 수 없으며 그것을 객관적으로 실감할 수도 없지. 우주의 한 작은 존재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영원에 대해 관조하는 것뿐. 57



- 아들아, 진짜 강함은 약함과 부드러움을 지킬 줄 아는 것이란다. 그러니 억지로 강건해지려고 하지 마라. 애써 이기려고 들지도 마라. 강건한 것은 꺾이고, 이기려 드는 자는 지는 법이다. 재화를 움켜쥐려 들면 흩어지고, 쇠를 두드려 날카롭게 하면 오래 보존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약함과 부드러움에 처하는 물과 같이 살아라.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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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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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은 문화심리학자이자, 인문학 교수이다. 언젠가 문득 tv 채널을 돌리다 독특하고 동글동글한 외모와 차림새의, 너무 재미있고도 공감 가는 강연에 혹했더랬는데, 그 후 일본화를 배우러, 일본에 건너가 어느 시골마을에서 지내는 모습도 tv를 통해 봤었다. 그때는 그 일본의 시골 마을 정경이 너무도 그림처럼 예뻐서 얼빠져 봤었다. 이름은 너무도 평범하지만, 각인시켰고, 그 후 이 책을 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읽겠다 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할 당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전공을 '비판 심리학'에서, '문화심리학'으로 바꾸었다는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것을 청중들에게 어필하는 힘이 남다르다. 강연이 그토록 인상적였듯이, 그의 글 또한 관심과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한 듯..

여행지에서 이 책을 펼쳤는데..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물론 여수로 갔었다면 금상첨화였겠으나(이 작업실의 공간적 배경이 여수인지라..),

경주와 울산을 둘러보며 가급적 숙소에 조용히 머물며 유유자적한 쉼을 누려보자는 컨셉이었으므로..

책의 부제가 '슈필라움의 심리학'이다.

독일어로 공간을 뜻하는 라움(raum)은 영어의 space나, room, place로는 전달되지 않는 독특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물리적 공간 너머, 사회학적, 경제학적, 심리학적 공간과 연관되기도 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영역을 뜻하는 '행위의 공간'이란 개념까지 포함하므로..

놀이라는 뜻의 슈필(spiel)을 더해 슈필라움은 '놀이 공간'? 우리말로는 '여유 공간' 정도로 번역된다는데, 한계는 있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을 강조한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이 공간의 당위성을 충분히 역설한다.

오래전 읽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내게 남긴 가장 확실한 메시지는, 남자에게는 시시때때로 숨어들, 동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의 순기능이 역기능보다 훨씬 긍정적인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터라, 쉽고 그리고 충분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 한국 남자들의 이 몹쓸 분노와 적개심은 아파트라는 매우 한국적 주거 공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통 가옥에는 사랑방이라는 가부장적 공간이 아주 폼 나게 있었다. 그러나 아파트가 들어오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남자의 공간은 사라지고 아주 못된 가부장적 습관만 남았다. 205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언급하며 물론 여자에게도 '슈필라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특히나 남성들에게 더 필요함을 역설하는데, 오늘날 아파트 문화에서는 꿈꿀 수조차 없는 현실.

그 당위성을 설명하고자 드는 예시들이 억지스럽고 기가 막히기도 하지만 웃으면서 절로 끄덕일 수밖에 없다. 나는 여자인데도 말이지..

여자들에게는 화장대라는 공간이라도 있지 않냐며..

남자들이 운전대만 잡으면 양보하기 싫어지는 심리도 '슈필라움'의 부재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의 외로움과 궁핍함을 담보로 얻어낸 그들의 공간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도 '슈필라움'의 부재요,

한 번씩 꿈꾸는, 은퇴 이후 텃밭이나 가꾸며 살겠다는 포부 역시 '슈필라움'의 부재라는 것이다.

-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잘못되었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쉽게 정당화되지 않는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내가 한 행동, 그 단 한 가지 변인만 생각하면 되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그 일을 했다면 일어날 수 있는 변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심리적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비된다. 죽을 때까지 후회한다는 이야기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이 그토록 오래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60-61

그래서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2016년 귀국하여 여수에 정착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삶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 경험들의 앙상블이라고 정의 내리고, 공간이 문화이고 기억이며 그런 그에게 있어 공간이란, 자신의 아이덴티티라는 이야기를 하는 그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슈필라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되었으면 한다고 한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표현도 꼬집는다.

작금의 이 엄청난 의식 혁명을 어찌 '산업 혁명'이라는 낡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냐는 말이다.

[이하 생략]

- 불안한 사회일수록 다양한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이 탈출구다. 스마트폰의 허접한 음모론이나 들여다보고, 근거 희박한 설명으로 흥분만 하는 각종 평론가의 시사 프로그램 채널이나 만지작거리는 방식으로 존재의 불안은 절대 해소되지 않는다. 144


- 사무직에서 일했던 사람일수록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을 배우는 것이 좋다. 두 번째 인생에는 노동의 결과를 눈으로 직접 판단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을 해야 심리적으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교수 기자 선생과 같이 말과 글로 먹고산 사람일수록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말년의 성품이 무난해지며 꼰대를 면할 수 있다. 아니면 컴컴한 방에서 혼자 인터넷에 악플이나 달며 삼십여 년을 더 살아야 한다. 달리할 일이 있는가?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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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들의 세계사 - 2014년 제4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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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한 오해는 오히려 너무 낭만적였다. 집안의 둘째가 겪는 서러움일 줄 알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또 공감해 줄 부분이, 이야기할 부분이 많지~ 하면서.. 아들러 심리학도 들먹거리며 책을 펼쳤다.

아~나의 편견과 오해와 그것을 건넌 오만은, 그래 너무나 낭만적였다고 실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의 차남은 권력의 중앙에서 밀려난 자들, 누아르를 살았던, 아니 만들었던 '전두환'과 그 핵심에서 비껴난 사람들

어쩌면 차별, 어쩌면 오해, 어쩌면 편견 같은 절망,,

그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 남아야 했던 사람들이 일을 만들고 키운 것이다. 아주 치열하고 맹렬했다. 나름은ᆢ

후반부에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안기부의 차남 '정남운'이, 우리의 주인공 '나복만'이 쓴 것처럼, 보좌 신부님께 보내는 편지에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가 그래서 너무 재미난 것이다.

능청스럽게 이야기의 서문을 여는 작가의 패러독스와 유머에 제대로 걸려들어, 쭉~ 내달리면서 ㅋㅋㅋ를 연발 내뱉을 수밖에..

안짱걸이가 걸린 씨름선수처럼 제대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뒤에 엄청난 누아르를 만들었던 '전두환 장군'이 있었다.

웃으면서 아프고 웃기면서 기가 막혀 혈을 뚫어야 싶게 만든다.

'성석제' 작가를 떠올리고, '천명관' 작가의○○ 법칙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책 읽어 주는 남자]도 떠올리게 된다. 거기서의 '한나'의 문맹은 슬프지만 거룩했고, 여기서 '나복만'의 문맹은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지만 또 다른 거룩함이 있다.

나는 왜 이 작가를 이제 알게 되었는지, 그나마, 이웃 후*님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흘려보냈을 존재였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별 뜻 없지만(?), 감흥을 돋게 하고, 작가나 독자가 모두 호흡을 조절해야 하는 기능을 하는 고려속요의 후렴구 같은 작가의 장치(추임새)에 먼저 익숙해져야 한다.

[청산별곡]의,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같은, [어부사시사]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정읍사]의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같은,

이것을 들어보아라~~

이 이야기는 '전두환' 통치 시절의 이야기이다. 1980년 8월 27일 체육관을 좋아했던 '전두환 장군'의 체육관 선거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때 '전두환'은 '박정희' 피격사건의 수사관이었는데, 그는 독재자 살인사건을 수사하다가 스스로 독재자가 되어버린 주인공이다.

그리고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하고 그들이 숨어든 곳이 강원도 원주의 성당이었고, 그동네서 택시를 몰던 '나복만'이 새로운 통치자의 누아르에 휘말려 바라던 삶이 붕괴되어 버리는 웃픈 비련의 주인공이 된다.

30년 남짓 한 시간이 흘렀고, 그때 그 주인공 '나복만'은 아직도 수배 중인 상태로 행방불명이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운명이, 주인공의 기구한 삶만큼이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누아르 자체였던 그 시대의 서민들 삶이 다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었던가 한다.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들이 누아르 주인공의 수사기법과 통치철학을 바탕으로 펼쳐지고 매듭지어진다.

'노태우' 취임 이야기, '전두환'의 처삼촌 처제인 '장영자' 이야기, 경남 의령군 순경의 총기난사사건들이 조미료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갑자기 우즈베키스탄으로 날아간다. ㅋㅋ

조폭의 종속이론이자 자본 운동의 원리 또한 기가 막혀서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처음 만난 '이기호' 작가, 그의 기발한 상상력은 능청과 익살 가득한 해학적인 소설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아주 쉽게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올여름의 무더위와 정면 대결하라고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책이다.

 

 

 

때때로 평온하게만 보이던 우리의 일상이 부욱, 소리를 내며 찢어진 후, 그 틈에서 낯선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어쩌면 그 순간이야말로 의식 중이든 무의식중이든 우리가 감추고자 애를 쓰던 유일한 진실이 눈앞에 나타나는, 아프지만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외면하기에 급급해한다. 그만큼 우리의 진실이 더럽고, 하찮고, 추악하고, 섬뜩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외면하는 방식이다. 그 손이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인 양,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다시 틈 안으로 억지로 욱여넣고 겹겹이 시멘트를 발라 버린다. 그리고 시멘트를 바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안의 또 다른 괴물을 눈앞에 호명해 낸다. (사실, 그 낯선 손은 이 괴물의 손이기도 하다.) 그렇게 불러낸 괴물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날뛰고, 제멋대로 우리를 이끌어 가도, 우리는 스스로 괴물을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어쨌든 괴물 덕분에 우리는 다시 진실을 외면할 수 있었으니까. 고마운 괴물이니까..... 그것이 우리가 우리를 잃어버리는 기본 공식이다. 23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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