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성석제 지음 / 강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처구니'란 사전적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 '상상 밖에 엄청나게 큰 물건이나 사람'을 뜻한다.

내가 아는 '어처구니'란 '유아인'의 영화 대사 '어이가 없네..'. 이때 '어이'는 '어처구니'의 준말로', '맷돌의 손잡이'.. 맷돌을 돌리려는데 맷돌의 손잡이가 없는, 참으로 '황당한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작가 '성석제'는 처음에 시(詩)를 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더운 날, 자신의 시를 참을 수없게 되자, 문(文)을 쓰려고 했고, 그리하여 산문과 시의 중간쯤 되는 이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글들을 쓸 때만 해도 자신이 소설 쓰는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고, 서문에 밝혀둔다.

'엽편소설', 처음 맞이하는 단어였다. 이런 양식의 소설을 '엽편소설'이라 하는데, '엽편'은 나뭇잎 넓이 정도로, 단편소설보다도 짧은 글을 말한다고 한다. 주로 '콩트'(이건 좀 주워들은 기억이 있음)라고 불린다고.. 작은 지면에 인생의 번쩍하는 한순간을 포착해 재기와 상상력으로 독자의 허를 찌르는 문학 양식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 책의 글들은 이 설명에 딱 부합하는, 예리하게 포착해낸 한순간을 재치와 재기로, 읽는 이의 허를 쿡쿡 찔러대는 그야말로 엽기 발랄한 글들의 모음이다.

350페이지 분량에 63편의 제목을 단 글들이 있다. '웃음소리'와 '비명'편을 접하면서, 뭐라는 거지? 하며 긴장하다가, '다이빙'편부터 포복절도를 하면서 그냥 나를, 책에 대한 어떤 무게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냥 망망대해 배에 실린 몸처럼 리듬을 타면서 읽어내려갔달까..

우 독특하고 인상적인 intro를 거쳐 황당무계한 유머의 코드에 한 번씩 빵 터지며 이 작가를 어째야 할지에 대해 고민도 생겼다.

사방에 책장으로 가득 찬, 주인이 떠나간 그 방, 구석구석 책갈피 하나하나를 떠올리게, 이 세상의 모든 책이 있을 것 같은 그 방, 오래 묵은 책 냄새가 나는 그 방, 낡은 소파, 이상한 형광등, 그렇지만 오래전 주인이 떠나버려 빈, 그곳에 누군가 살고 있을 거라고, 최소한의 무엇인가..

그 방에 떠나간 첫사랑이 살고 있기를,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이 와있기를, 책을 좋아하는 망자라도, 아니면 어처구니라도 그곳에서 만나고 싶다고..

가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자신은 언제나 '어처구니'를 만나고 싶다고, 또 어딘가에 분명히 '어처구니'가 살고 있을 것이며 인연이 닿는 분은 스스로의 '어처구니'를 만나기 바란다고 밝혀두었듯이

작가의 '어처구니'를 향한 로망은, 책에 등장하는 기이한 사람들, 사물들로 가득 채운듯하다.

한 유명한 대중가요의 가사에 대한 오해부터, 파리 잡는 끈끈이의 해프닝, 놀이하는 인간의 최후, 수박 이야기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기상천외하고 기발한 뻥~~에 조용히 읽다가 단발적으로 새어 나온 웃음소리에 나 스스로 놀라기를 몇 번이었는지.

주변의 기이한, 예사롭지 않은 인물들, 절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가 작가가 찾는 '어처구니'들은 아니었는지.

발한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기가 막힌 사람들의 기막힌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투명 인간'에서 강렬했던 다소 과장된 페이소스의 원천이 이 작품에 있었나 한다.

결국엔 허튼소리들인데, 우라지게도 기발하고, 우라지게도 섬세한(시인과 언쟁 중..)

해학과 풍자의 이면에 섬뜩한 경고도 있고, 과장과 익살은 한편 한 편 읽었을 때마다 블로그 댓글 달듯이 막, 끼어들고 싶은 충동도 일었다.

내게 있어 '어처구니'는 '성석제' 작가를 통해 새로 알게 된 단어이고, 그가 묘사한 말도 안되는 '어처구니'들이 나의 '어처구니'이며, 이 작가 또한 나의 '어처구니'이며,

짜 '어처구니'가 없는 이 책과 이 작가의 매력에 흠뻑 빠진 기가 막힌? 아니, 막힌 기를 뚫어 준 독서였다 하겠다. 작가 '성석제'란 사람 자체는 '어처구니'임에 틀림없는듯.. 이런 분과 술을 마시거나, 인문, 역사 기행을 떠나면 어마어마 하겠다.

 

 

여자가 있는 집이면 다 비슷하지, 뭐가 다양한가 물을 사람을 위해 미리 답해두거니와 여자란 또 얼마나 종류가 많은가. 젊거나 늙었거나 예쁘거나 그렇지 않거나 고분고분하거나 앙탈을 부리거나 애교스럽거나 무뚝뚝하거나, 이런저런 성격이 뒤섞여 있거나 아니거나, 아, 어느 날은 이랬다가 어떤 날은 저렇고 헤어지면 그립고 만나면 시들하거나, 이 다양한 종류, 갖가지 부류와 맞먹는 종류와 부류를 자랑하는 것은 역시 술집에 드나드는 사내들이 아니겠는가. 39-40

파리가 왜 발을 비비는가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얻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파리는 입이 아니라 발에 맛을 느끼는 세포가 있다는 것, 그래서 사람이 혀를 입안에 넣어두고 깨끗이 하려고 양치질을 하듯이 파리는 발을 비빈다는 것을 알아내고 말았다. 그리고 세상에는 파리가 발을 비비는 것처럼 신체기관의 일부를 습관적으로 비벼대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주제에서 벗어난 일이지만, 부산물도 있었다는 뜻이다. 82

책이란 사서 읽는 사람에 따라서 하룻밤 소일거리가 되기도 하고 발도 없이 평생을 따라다닐 수도 있는 법이다.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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