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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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이면, '이승우' 작가를 만나는 세 번째이다. 식물들의 사생활이라는 거대한 책을 읽으면서 그 무게와, 신비함과, 독특함, 그리고 언어의 유희에 지배당했던.. 내가 아는, 지금 활동하는 한국의 남성 작가 중에 가장 무게감 있고, 만만치 않는 작품을 쓰는 작가가 이 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해외 번역판이 많다는 얘기는 해외에서 많이 읽힌다는 얘기인데, 국내에서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마니악 한 작가라고 한다.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작품을 썼던 그의 고향 선배 '이청준'이라는 작가의 뒤를 잇는다는 언급도 있고, 한국의 최초 노벨문학상 후보로 이 분에 대한 언급도 있다.

「식물들의 사생활」과, 「사랑의 생애」를 읽으면서, 이 작가의 작품을 대할 땐, 심호흡부터 해야 한다는, 그리고 독서 이력이 없다면 절대 그 진가를 알 수 없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의 이면」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소재로 한, 역시나 그답게 독특한 플롯으로 전개해나가는 소설이다.

소설가 '박부길'이라는 사람이 살아온 삶의 이력을, 그의 작품(소설, 산문 등) 들과 관련지어 추적해보라는, 출판사 측의 기획으로 시작된 일종의 작가 탐구 형식이다.

'박부길', 그는 고향을 꺼려 하는 사람이다. 순진성과 고집성을 갖춘 전형적인 촌놈인 그는, 태평양 한쪽 남해의 외지고 작고 가난한 바닷가 마을 출신으로 14세에 고향을 뜬 이후로 그 고향에 대한 향수가 아예 없는 사람으로, 그가 고여 있다고 말하는 그 마을은 버스도 다니지 않았고, 전깃불도 없었던 벽촌이었다.

 

슬프고 참혹한 기억들로 점철된 그의 고향에서 필사적인 탈주를 감행했던, 그는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동심이란 것이 없었던 유년시절, 아버지의 책들을 소나 양이, 닥치는 대로 풀을 뜯어 삼키듯이, 혹은 되새김질을 하듯이 읽어대던 소년이었다.

애당초 자신의 삶에 대한 진술에 비협조적인 '박부길', 화자는 작가의 미발표 원고, 산문집, 소설 등을 짜 맞춰 가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작가의 삶과, 화자의 삶과, 작가의 작품 속 주인공의 삶이 다르지만, 또 같고, 사실인 듯, 유추인 듯 하지만 결국 '박부길'이란 사내는 작가 '이승우'이다.

년기부터 시작된, 그의 독서에의 몰두는, 현실에 눈 감고, 현실로부터 자신을 유폐시키고자 하는 수단이었으며, 그에게 책과, 글 만들기는 마취제가 된다. 그리고 그의 유년은 자물쇠로 봉쇄된다.

그 자물쇠 너머의 있는 것..

큰아버지로부터 내려진 금령(禁令)..

가족 모두에게 접근 금지된, 곳, 뒤란..

구체적으론 감나무였지만, 그 뒤란 한켠의 방엔, 차꼬를 찬, 미친 남자가 있었다

찍이 어머니와 헤어져 큰아버지의 집에서 성장하게 된 '박부길'은..

그 금령의 구역에 기웃거리고, 우연히 열린 문, 방안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털투성이의 남자와 마주치고는 슬프고도 애잔한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절에서 고시공부를 한다는 그의 아버지는, 막연한 궁금함과 그리움의 대상이고,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의 전도사와 함께 어린 그가 외출한 날, 어머니는 사라지고,

뒤란을 기웃대던 '부길'에게 손톱깎이를 부탁했던 그 남자는 생을 마감했고..

'부길'은 막연하게 알아간다.

무수한 소문 속 어머니는 도망친 게 아니라, 쫓겨난 것이고,

뒤란의 그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였음을..

의 아버지 '박태성'은 고시공부를 하던 사람으로, 기울어가는 집안의 장래를 짊어진 수재였지만

결혼을 한 후 그의 아내만 보면 종잡을 수없이 난폭해지고, 도를 넘은 의처증을 동반한 심각한 정신장애로

발작을 일으켰으며,

그 난폭성이 결국엔 차꼬를 채운 감금으로, 금령의 구역을 만들었고,

어머니에겐 발병의 책임과 함께 그녀 인생에 대한 배려로 내쳐진다.

그리고 집안의 가장, 권위의 상징 큰아버지는, 이 모든 사안의 주모자였으면서 끝까지 어린 '부길'에게 사실을 말해 주지 않고,

제 아비 뒤를 이어, 훗날 고시공부를 통해 집안을 일으킬 재목으로서의 기대를 내세우고 있었다.

바닥만 한 동네에서

어미 아비 없이, 더구나 미친 아비, 도망친 어미라는 찬란한 역사를 지닌 어린 '부길'은, 친구들의 놀림과, 친척들의 지나친 애정의 관심과 눈길을

피해 책에 침잠하다가

마침내 아버지의 무덤에 불을 지르고, 치욕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고향을 버린다. 1965년 그의 나이 14세.

조숙하고 폐쇄적인 이 소년은 가출 이후 아버지가 공부했다던 사찰을 찾고

그곳의 한 식당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고시공부를 했다던 아버지의 친구가, 아버지를 많이 닮은 '부길'을 알아보는 덕에 수재였던, 유망주였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이후 만화방과 중국집을 전전하면서 지내던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악몽을 자주 꾼다.

자신이 배달 일을 하던 중국집에서 우연히 만난, 그 옛날의 전도사로부터 자신의 어머니가 경찰 공무원의 아내가 되었다는 소식도 듣고

어머니 덕에, 서울 친척 집에 보내져, 중학교 2학년으로 편입도 하지만, 사투리와 따라가기 벅찬 공부와, 또래들 보다 두 살을 더 먹은 탓에 더 폐쇄적이고 비 사교적인 아이로 지내게 된다.

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이후 고교에 진학하면서

친척 집을 나와, 자취를 하게 되는데,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무작정 책을 읽는 '부길'에게 독서는 취미가 아닌, 버릇이 되고, 친구가 없던 그는 볕이 안 들고, 좁은 자취방에서 특별하지만, 문학적이고, 비현실적인 외톨이가 되어간다.

- 중간 생략-

 

역시나 그의 문장들은 곱씹으며 읽는 맛이 있다. 어떤 문장은 무심코 읽어내렸다가 열번 쯤 다시 읽어야 했다. 소설가 '박부길'을 낱낱이 해부하는 듯한 상세한 묘사와 유려한 문체는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그 만의 색깔이 있다. 그리고 그가 인용한 '앙드레 지드'의 산문,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너의' 집 안, '너의' 방, '너의' 과거보다 더 너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

 

나는 내 취사선택되고 검열된 기억 속의 과거로 들어가는 것의 무의미함을 안다. 과거란 희미한 밑그림, 그 위에 어떤 색칠을 하고 어떤 형태를 그려 내는 것은 현재의 나이다. 과거란 결국 인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상은 실체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실체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납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용납되기도 한다. 114

이름은 어떤 사물에 대한 가장 제한적인 정의이다.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편의적으로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쓰는 것이 인식의 방법이긴 하지만, 그것은 최악의 방법이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구별하기 위해서이지 인식하기 위해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구별을 통하지 않고는 인식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이름을 사용한다. 그러면 구별할 필요가 없을 때는 어떤가, 구별함 없이도 이미 총체적인 인식에 이르러 있을 경우에 이름을 알고 부른다고 하는 것은 무슨 유익이 있을까, 오히려 그 새로운 이름이 참된 인식을 방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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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피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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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뒷면에 '이것은 누아르가 아니다. 이것은 차라리 우리 안에서 늘 끓어넘치고 있는 그 뜨거운 것들에의 송가다. ' 막연했던 누아르.. 범죄와 폭력을 다루면서, 도덕적 모호함이나 성적 동기에 초점을 맞추는 일군의 영화..

'김언수'를 만나는 세 번째이다. [설계자들], [캐비닛].. 모두 강렬했고, [설계자들]의 '래생'은 아직도 오래된 중고서점 어딘가에서 툭 튀어나올 것 같이, 책을 읽는 내내 사로잡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작가의 책은 '작가의 말'이 너무도 인상 적였던 기억이 있다. 소설을 전부 읽어낸 후에 그가 밝히는 그의 말을 읽으면, 어찌 보면 매력적인 그의 소설보다 더한 매력으로 작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한다. 두꺼운 책을 읽어가면서 결론만큼, '작가의 말'은 어떻게 썼을지를 궁금해하며 읽게 되는 책인 셈이다.

[고래]의 작가 '천명관'이, 영화감독자로 나서게 되는데, 그 첫 작품이 [뜨거운 피]라고 해서, 의아했다. 역시나 강렬했던 [고래]도 영화로 충분한 소재이겠거늘, 감독 데뷔작으로 그가 택한 시나리오가 되었다고 해서 궁금했던 책..

대는 부산의 낡은 항구도시 '구암'.. 시대는 '노태우'정권에서 '김영삼' 정권으로 들어서는 어느 봄, 여름..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이 마무리되어가던 때이다.

'구암'의 건달들은 양복을 입지 않는다고, 양복 입고 설쳐대는 건달들이, 추리닝 입고 설쳐대는 건달들 보다 더 먼저 감옥에 가고, 더 오래 감옥에 있다고' 주장하는 '손 영감'은 일제시대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만리장 호텔'의 사장이자 '구암' 암흑가의 두목이다.

그는 건달로서 그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는 게 성숙하고 아름다운 자태라고, 건달이 폼 나고 이름을 날려봤자 갈 데는 감옥뿐이라고 자신의 오른팔 '희수'에게 늘 말한다.

18세에 건달 세계에 입문해서 50년 동안 살아남은 자신은, 더러운 바다에서 매춘, 밀수, 물건을 훔치고 불법 도박장을 운영했어도, 서슬 퍼런 '박정희 정권', '전두환의 삼청 교육대' 광풍, '노태우의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비결을 강조하지만, 마흔의 '희수'는 이런' 손 영감'이 장악한 항구에서 큰돈이 되는 덩치 큰 밀수는 하지 않고, 고춧가루나 깨 등을 밀수하게 하는 처사를 겁쟁이라고 못마땅해 한다.

'만리장 호텔'은 2층짜리 건물로, 1913년 일본인들의 유흥을 위해 만들어진, 일본 야쿠자들이 실질적 주인이기도 했던 곳으로, 구암 원유 주식회사를 만들고 조선 최초의 해수욕장을 만들면서 지어진 곳으로, 일본식 목조건물이었던 것을 한국 전쟁 이후 철근 시멘트로 개보수한 곳이다. 케이블카도 있고, 다이빙대와 구름다리도 있었던 일제시대, 이때가 구암 바다의 최고 전성기였다.

곳의 바지 사장이었던 '손 영감'의 조부 '손흥식'이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이 패망하자, 슬쩍 삼켜버려 주인이 된 것이고, 그 시절엔 일본인을 주인으로 모시던 마름들이, 혼란한 시국을 틈타 일본의 사업체나 비밀스런 재산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이 흔했다고도 한다. 해방 직후 1960년대까지, 낮의 대통령은 '이승만', 밤의 대통령은 '손흥식'이 었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엔 '이기붕'에게 밉보여 경찰에 끌려가 맞고 이틀 만에 죽었고, 그의 아들, '손 영감'의 아버지는 미군들과 시비 끝에 칼을 맞고 죽는다.

'손 영감'은 큰 권력 앞에서 설치고 까불면 모난 돌이 정맞아 죽는다고, 건달은 그저 쥐 죽은 듯 조용히 사는 것이 최고라는 좌우명을 갖게 된다. 그래서 개폼도, 똥폼도 잡지 말라고 한다.

그들이 무기 창고라고 부르는 밀수품 보관소에는 손은 많이 가고 돈은 안되는 고춧가루, 마른 멸치. 콩, 들깨 등이 넘쳐난다. 그들은 이것을 소량의 국산과 버무려서 국산품으로 둔갑시켜 차액을 챙긴다.

'희수'는 '모자원'이라고 하는 전쟁미망인들이 자녀를 데리고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 선교사들이 지은 시설에서 성장했다.

그의 어머니는 춤바람이 나서, 도망을 갔고, 그곳에서 일곱 명의 동생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제 어머니와 포장마차를 하다가 결국엔 제 발로 '안월동'으로 찾아가 창녀가 된 '인숙'이, 열세 살 때부터의 첫사랑이었다.

변두리 지역 깡패의 중간 간부로, 부하들 몰래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전과 4범의, '만리장 호텔'의 지배인이기도 한, 그는 호텔 구석에 달방을 살면서, 담배와 술과, 노름에 빠져 제법 많은 빚도 가지고 있다.

'인숙'에게는 4년 만에 출감하는 아들 '아미'가 있다.

1930년대 부산의 인구는 고작 20만이었고, 부산항은 쇄국정책으로 포구 수준이었지만, 한국전쟁이 터지자 부산의 인구가 급증하여 4백만에 육박했다. 전쟁은 물자를 넘쳐나게 했고, 물자는 큰 항구를 필요로 했다. 부산은 뜨내기와 악에 받친, 자기 몸뚱이 말고는 가진 게 없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피난민들이 만든 곳이다.

'손 영감'이 이끄는 구암 해변이 대부분 토박이 들인데 반해,

'영도'는 부산 폭력조직의 본거지로 한국 전쟁 때 피난 온 건달들로 출발해서 오십 년 가까이 부산을 지배해온, 전국 규모의 조직이 항구를 지배하고 미군 군사물자, 러시아 마피아., 일본의 야쿠자들과 지속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이곳은 '남가주'회장이 지배하고 있다.

'인숙'이 열일곱의 나이에 낳은 아들 '아미'는 190센티의 120킬로그램을 육박하는 거구로 아버지가 누군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성은 주 씨이다.

'영도'의 실세 건달들과 싸움 끝에 감옥에 가게 된 그는 4년 만에 출감을 하고, 도망간 여자부터 찾는다고 강원도로 갔다.

사춘기 시절, 떡잎부터 건달이었던 '아미'는, '인숙'과 친하고, 자신의 학교 방문 등을 대신해 주던, '희수'를 좋아해서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른다.

-중간생략-

 

밌게 읽은 책이다. 분량은 많지만..

건달들의 철학과 건달들의 인생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조폭이 건달이고, 건달이 깡패이고, 깡패가 양아치라고 생각했는데

건달과 양아치는 엄격히 다른가 보다

다들 진정 건달로는 불려도

양아치라고 불리기는 싫어한다.

아예 건달은 뭔가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은 돈을 주무르지만, 결코 부자가 되기는커녕

늘 빚더미에 앉게 되는

'건달식 산수'

'창녀식 산수'가 인상적이고, 안타깝다.

밥처럼 심심한 사람 '손 영감'보다

설탕처럼 단 '양동이'를 선택했던 '희수'

뻔한 조폭 이야기이지만, 심장을 쫄깃거리게 만든다.

해 개봉한다는 이 영화의 '희수'역은 배우 '정우'이다. '손 영감' 역은 '김갑수'이고,

책을 읽는 내내 '정우'의 표정과 말투로 '희수'를 읽게 된다.

영화 [바람]에서 '정우'의 표정연기.. 결코 잘생긴 배우가 아니지만, 괴물인 배우

'정우'를 클로즈업하면서 표정을 읽게 만드는 '정우표 연기'가 기대되고,

역시나 법상치 않은 '천명관'의 프리즘으로 들여다보게 될 영화를 기대해본다.

볼 수가 없는 영화인것이, '천명관'이고, '김언수'이고, '정우'의 삼박자이므로..

영화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일까?

'희수'에게 펼쳐질듯한 화양연화, 사무실 신에서부터 일까?

'달자'아저씨의 배에서부터 일까?

'남가주'와 협상하던 '멍텅구리배'부터일까?

아니면 '빨래 공장'부터?

혹시, '이누이트'의 얼음집에서?

리고 '김언수'작가의 말은 역시나이다.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족', 그중 80%가 우울증을 앓고, 매년 천명 중 서른다섯 명이 자살을 한다고. 강인한 유전자로 태어나 동토의 땅에서 강인한 삶을 살아가면서, 얼음집 안에서 사람들의 따뜻함을 지향하던 그들은 관대하고, 인정 많고 유머감각과 잘 웃는 성향이지만, 그리하여 결코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고 불평도 불만도 말하지 않고, 남들을 간섭하지도 않고 서툰 동정이나 위로 따위도 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거칠고 뜨거운 이 사람들이,

상냥하고 온순하고 평화롭게 지내다가 어느 날 마음에 견딜 수 없는 격정과 우울이 찾아오면 조용히 얼음집 밖으로 나가 혼자서 자살을 한다고, 그리하여 이제 더 이상 뜨겁지 않은, 더 이상 물기 없는 '희수'란 사내는 구암을 잃고 '이누이트'를 닮아간다고. 그리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사내의 삶이 보기 좋으냐고? 미숙하고 촌스럽고 어른스럽지 못한, 구암의 사람들이, 그 지리 멸렬한 삶이 그립다는 작가, 그 시절엔 차라리 외롭지 않았다고..

- 사람들은 이제 뜨겁지 않다. 뜨거운 것들은 모두 미숙하고 촌스럽고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죄목으로 촌충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구암의 그 지리멸렬한 삶이 그리워진다. 구암의 시절엔 짜증 나고, 애증하고, 발끈해서 술판을 뒤집었지만 적어도 이토록 외롭지는 않았다. 595



- 이 밤에 혼자 소주 병을 따며 나는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을 건넬 방법을 떠올려본다. 상처를 받지 않고 사랑을 받을 방법을 떠올려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든다. 그런 삶은 없다. 모든 좋은 것은 나쁜 것과 버무려져 있다. 문을 닫으면 악취가 들어오지 않지만 꽃향기도 들어오지 못하는 것처럼.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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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소설의 첫 만남 2
성석제 지음, 교은 그림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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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짧은 소설이다.

대개는 단편 소설집에 한 꼭지로 수록될 분량이나

국어 교사들이 책을 읽지 않고 엎어져 자거나 스마트폰 게임에 집중하는, 그야말로 책의 맛을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마중물 독서라나~ 하면서 책의 재미를 불러올 마중물로 이 책을 선택해서 출판했다고 한다.

어느 이웃님의 추천으로 사놓았는데, 제목이 너무 좋았다.

내용은 더 좋다.

이런 소재를 소설로 써나가는 성석제는 정말이지 거룩하다.

그런데 여운도 길고,

메시지도 강렬하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두 명의 나가 이끌어간다.

0과 1

0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명 화가 백선규

1은 화가의 그림 자체를 좋아하고 자유로이 감상할 줄 아는 여인..

0의 아버지는 한때 화가 지망생이었으나 식솔들을 먹여 살려야 했기에 돈 안되는 그림 대신 가난한 농사꾼이 되었고

0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나, 그리는 것을 즐기지 못하고 크레파스나 스케치북을 제대로 갖지 못해 궁상인 가난한 소년이었고

1은 피아노에 바이올린에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는 읍내 손꼽히는 부잣집인 제재 소집의 고명딸, 그런 1이 과외를 받아서 그림을 또 잘 그릴 수 있었고.

3학년이었던 0은 4학년 이상 자격이 주어지는 군민 사생대회에 선생님의 권유로 학년을 속여 출전하여 장원이 되었는데 그림에 대한 타고난 재주는 있었지만, 즐기지 못했고.

오히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축구 대회 결승전을 못 보게 됨을 매우 애석해하면서 그림을 그렸고 장원 상품은 원래의 4학년 학생 차지가 되었고.

장원 이후 아버지와 선생님들, 학생 사이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여겨졌지만

정작 0은 빈둥거리면서 연습을 하지 않았고

4학년이 되면서 군 주체의 사생대회에 정당한 자격이 주어졌으므로 다시 도모를 하면서 상품을 차지하고, 자신의 재능을 확인하고 싶어 했는데

일은 공교롭게

0에게 평생 간직해야 할, 상처와 비밀로 남았고

오히려 그 비밀로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노력이 그를 성장하게 하였고

지금 정상의 자리에 그를 존재하게 했다는..

그의 입담,

이 작가는 정말 할 말 많은 사람이겠다 싶다. 그냥 타고나길 이야꾼인거다. 단편소설을 안 좋아하는 내가 그의 엽편과 단편에 길들고 있다. 성석제라서 그렇다.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 그리고 노력보다 진정 즐길 수있음에 대한 메시지.

물론 진짜 예술가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겠지. 바람도 붙들어서 화폭 안에 고정시키고 구름도 악보 안에 잡아 놓고. 시간도 그렇게 하는 거지, 시간, 시간도 무대와 음악과 화폭 속에 붙들어 영원하게 만들겠지. 좋은 그림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 화가는 가는 시간을 화폭에 담아서 잡아 놓고 다른 사람의 시간은 마냥 흘러가도 모른 척하는 사람일까? 그럴지도 몰라. 22

- 그 뒤부터 나는 늘 나를 의심하면서 살았어. 누군가 나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 나와 똑같은 대상을 두고 훨씬 더 뛰어난 작품을 그렸고, 앞으로도 더 뛰어난 작품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을 벗어나 본 적이 없어. 그러니까 어떤 작품이라도, 그게 포스터물감으로 그리는 반공 포스터라도 내가 가진 능력 전부를, 그 이상을 쏟아부어야 했지. 언제나, 어디서나, 그 결과가 오늘의 나일까. 의심의 결과, 좌절의 결과, 누군가 내 비밀을 알고 있다는 생각의 결과. 나는 화가가 된 후 풍경화를 그린 적은 없어. 나는 그림의 원형, 본질로 돌아갔어, 선과 원, 점, 그리고 바탕이 되는 사물의 원형, 본질을 최대한 추상화하고 이상화한 상태로 만들어갔어 내 모든 색깔의 원형은, 이상은 그날 그 하얀 시멘트 길과 그 위의 흰 햇빛이야. 7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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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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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란 배우와 '하지원'이란 배우를 참 좋아한다. 이유는 각자 가지고 있는 개성도 좋지만, 그보다 건강미가 넘쳐서..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사람들이 뿜는 에너지가 나는 좋다.

그래서 '하정우'가 연출한 '하정우', '하지원' 주연의 [허삼관]도 개봉관에서 봐주었던.

그때는 원작을 읽지 않은 터라, 뭔가 납득이 안 가는 엉성함이 있었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난후 영화를 다시 돌려보니

원작과 비교하는 맛, 책의 상황을 저렇게 묘사했구나 하는 발견의 기쁨, 뭔가 디테일한 감상이 되고 대화가 좀 더 잘 들렸다.

배우만 생각났더랬는데, '임분방' 역에 '윤은혜'가, 그리고 '방 씨' 역에 '성동일'이~

머저리 등신같이 남의 자식을 키운다는 은어, '자라 대가리'가 영화에서는 '종달새'그리고 장소의 배경이 충남 공주, '일락'이가 후송된 큰 병원이 대전, 그리고 서울 동대문 병원.. 이런 게 드러날 때마다 소소한 즐거움이 있던 다시 보기였다. 엉성함은 사라지고 꽉 찬 영화로 돌아온 '허삼관', 물론 원작을 읽었고, '하정우' 배우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지극히 후한 점수를 내 맘대로 주게 된 것이다.

리가 아는 배우 '하정우'는 그림도 그리고, 걷기를 좋아해서 하루 삼만 보를 걷는다 한다.

그리고 집 밥을 해먹는다고 몇 개의 요리를 소개도 한다.

샐러리를 넣은 된장국, 쌀뜨물을 넣어 끓인 미역국, 파 기름을 내서 끓이는 라면, 들기름으로 볶아서 뿌연 국물을 내는 북엇 국, 그리고 밀가루를 입혀서 튀기는 생선구이..

먹는 것의 소중함과

운동의 소중함

걷기의 소중함

그리고 기도하는 남자로서 겸손과 솔직함을 아는 사람..

끔 '하정우' 출연작을 보면서 피부관리가 잘 안돼서 걱정되기도 했었는데

그래도 '하정우'만의 매력은 넘치고, 대체 불가한 배우로 자리매김했음에, 더구나 이렇게 건강한 사람, 좋은 인간을 지향하는 멋진 사람이라면

자외선 뿜뿜 하는 날, 걷고 또 걷고 걷느라고 .. 그쯤 역시 '하정우' 스럽다고..

[허삼관] 영화의 실패를 받아들이며 힘들었다는 언급이 많이 나오던데

영화 도입 부분에 일종의 해설 같은 스토리를 좀 나열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나처럼 원작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피를 판다는 주된 모티브는 잘 이해가 안 가더라는..

배우들 연기, 특히 '하정우'의 어리숙하면서 능청스럽고도 엉뚱한 착함과 '하지원'의 예쁘지만 단호한 대륙 여성의 역할, 그리고 아이들 연기를 비롯, 모두 훌륭했고, 노력의 흔적 또한 잘 드러난 영화였다고..

와이를 매우 좋아하고 하와이에 가서 주로 걷는다는 '하정우식' 휴가

여러 독자들에게 하와이 동경의 계기가 될 수도..

나 또한 하와이와,.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에 급 관심이 간다.

아무튼 여전히 '하정우'는 좋다.

'하정우'는 옳다.

 

 

내 삶도 국토대장정처럼 길 끝에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 이름 붙여진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無 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하루 좋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뿐일 테다. 26

- 내 삶에 결정적인 문제가 닥친 때일수록 생각의 덩치를 키우지 말고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살다 보면 그냥 놔둬야 풀리는 문제들이 있다. 어쩌면 인생에는 내가 굳이 휘젓지 말고 가만두고 봐야 할 문제가 80퍼센트 이상인지도 모른다. 조바심이 나더라도 참아야 한다. 166



- 말에는 힘이 있고 혼이 있다. 나는 그것을 원령(言靈)이라고 부른다. 연령은 때로 우리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자신의 권력을 증명해 보이고, 우리가 무심히 내뱉은 말을 현실로 뒤바꿔 놓는다. 내 주위를 맴도는 연령이 악귀일지 천사일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189



- 독서와 걷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저는 그럴 시간 없는데요‘라는 핑계를 대기 쉬운 분야라는 점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하루에 20쪽 정도 책 읽을 시간, 삼 십 분가량 걸을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206



-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기를.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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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풍경 - 박태원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0
박태원 지음, 장수익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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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풍경은 청계천의 풍경이다. 청계천 주변에서 1930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청계천과는 매우 다르다.

이야기는 남의 집에서 드난살이(임시로 남의 집 행랑에 붙어 지내며, 그 집의 일을 도와주는)를 하는 아녀자들이 제각기 모여들어 빨래를 하면서

천변 근처에 살고 있는 여러 사람들에 대한 정보와 풍문들을 가지고 찧고 까불면서 시작된다.

빨래 방망이를 휘두르면서, 남의 집 일들에 참견하고 흉보는 것은 아주 매력 있는 스트레스 해소 거리가 되겠고, 그렇게 그녀들은 온갖 사람들을 들춰 이야기를 나누니 화제가 끊어지지 않는다.

금처럼 도시의 폐쇄적인 가옥구조나, 삶과는 다르게 청계천변 일대의 가정사들은 이웃들에게 모두가 드러나고, 해체된다.

가난하고, 노동이 고되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소설이겠거니, 하면서 시작했는데

한 문장의 호흡이 너무 길고, 비속어와 고어가 너무 많아 처음 몇 장은 긴가민가 했어야 했는데

그 말투, 그 문장에 익숙해지니 너무도 재미나서

그 시절 몇 달간(1936년 8월부터 10월까지) 잡지에 연재되는 이 소설들을 읽으며 다음편을 기다렸을 그시대 독자들이 얼마나 감질나고, 고대하고, 궁금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런 빨래터 아낙들의 수다를 위한 시선으로 작가는 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 거의 표상만 훑는 듯이 묘사하지만 너무도 차지고 재미나고 능청스럽다.

불행과 가난에 익숙한 사람들, 특히나 여인들의 이야기는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지만

쉽게(?) 살수 있는 방법보다는 글자는 못 배웠어도 명분과 도리는 배워야 했던 사람들답게

모진 시집살이와 남편의 외박과 외도를, 그리고 가난과 노동을 견뎌간다.

번 리뷰는 그 캐릭터들을 되새기며 나열해 본다. 총 50장에 걸쳐 이 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결국엔 다 연결이 되고, 처음에 가벼운 언급이 뒤로 갈수록 연결고리 속 심층 분석을 하게 하여, 아, 그때~ 하면서 읽게 되는데, 작가도 또 노골적으로 능청스레 언급해준다.

민주사- 사법 서사, 나이 50, '안성댁'이라는 25세의 젊은 첩을 두고, 마작을 즐기며 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고, '안성댁'이라는 여인은 온갖 아양과 술수로 점잖고 착한 '민주사'를 농락한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전문학교에 다니는 대학생 애인이 따로 있어, 대낮에 희롱하며 지내기도 하나 그 애인은 따로 만나는 어린 여학생도 있고, '민주사' 역시 마작 집에 '취옥'이라는 여인을 애인으로 두고 도 있으나 '안성댁'의 술수에 질질 끌려다닌다. '민주사'의 돈은 '안성댁'에로 흐르고, '안성댁'의 돈은 전문학교 애인에게로 흐르고...

만돌 어멈- '만돌'이와 '수돌'이의 엄마로 어린 나이에 결혼하였으나, 남편의 폭력과 외도로 맘 고생하다가 상경하여 한약국 집에서 드난살이를 하는데 남편이 다시 찾아와서 행랑채에 같이 산다. 하지만 여전한 폭행과 노동에 시달리면서 불행한 삶을 산다. 결국엔 남편 때문에 쫓겨나서 다른 집 드난살이로 들게 된다. 나쁜 마음도 먹어 봤지만, 철없는 아이들 때문에 다른 수가 없다.

이쁜이- 과부인 엄마가 애지중지 키워서 시집을 보낸다. 자신들의 처지에 비해 나름 번듯한 집안이라고.. 그러나 그녀의 남편 '강석주'는 전매국 직공인데 이미 결혼 전에 애인이 있고, 다른 여인들에게도 기웃거린다. 예쁘고 착했던 '이쁜이'를 짝사랑하던 한동네 '점룡이'도 있었으나, 그 마음을 눈치챈 '점룡이' 어머니도 가난으로 장가를 들 수 없음에 그냥, '이쁜이' 엄마더러 딸을 기생이나 시키지, 그러면 저도 지 엄마도 호강은 할 텐데 하면서 떠들어 댄다. '이쁜이'는 모진 시집살이에 날로 망가지고 여위어 가지만 시어머니는 친정나들이 한 번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하나코- '영이', 카페의 여급( 카페나 다방, 음식점 등에서 손님의 시중을 드는 여자)으로 몸매와 얼굴이 출중하여 손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그중 양약국을 경영하는 양반가, '최진국'의 구애에 결혼을 하게 되는데 처음부터 양반집, 번듯한 집안에 가당키나 하냐고 말리던, 그녀가 따르던 언니 '기미꼬'의 만류를 비웃지만, 이미 전처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을 두었던 '최진국'은 결혼후에 처음 마음과 다르게 다른 여자, '취옥'에게 마음을 돌리고, 고되고 부당한 시집살이에도 카페에서 술 따르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복종하려 들지만, 전처의 소생들도 마음을 열지 않으며 속을 썩이고 아랫것들 앞에서도 무안을 주는 시어머니와, 무엇보다 믿어왔던 남편사랑 하나도 여의치가 않아 매일 이불 속에서 흐느껴 우는 밤을 보내면서도 죽어도 그 집의 귀신이 되겠다 한다.

금순이 - 시골에서 자란 그녀는 15세에 정혼을 하였으나 신랑감이 결혼이 싫다고 도망가 버려, 16세 되던 해에 13세의 신랑한테 시집을 가지만, 아직 어린 신랑이 툭하면 엄마방으로 피해 달아나 2년 동안 처녀의 몸으로 산다. 마음 못 부치던 그녀에게 자상한 시아버지가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시아버지는 내로라하는 색골로 어린 아들이 죽자 노골적으로 며느리를 대하며 눈치 빠른 시어머니는 질투로 온갖 구박을 해대서, 결국엔 도망쳐 서울로 올라오게 되는데, 그녀를 데리고 서울로 왔던 건달이 구치소를 가게 되어 하숙집에 머물다가 평화 카페 여급인 '기미꼬'와 '하나코' 셋이서 그녀들의 살림을 도와주며 지낸다. 그리고 우연히 떠돌던 아버지와 동생 '금동이'를 만난다. '기미꼬'는 머리 벗겨진 홀애비 '손주사'의 짝으로 '금순'을 생각해보고 있으나, 그녀의 시아버지는 아내가 죽자 서울로 올라와 식당 사업을 시작한다.

점룡이- '이쁜이'를 짝사랑했던 가난한 그는 여름엔 아이스크림 장수, 겨울엔 군밤장수로 돈을 벌지만, 근화 식당의 '시즈꼬'에게 반해 그 집에 가서 술을 마시며 마음 좀 얻어보려 하는데, '시즈꼬'는 이미 '이쁜이' 신랑 '강석주'의 결혼 전부터 애인이었고, 또 다른 계집에 빠졌다가 돌아와 '시즈꼬'를 농락하는 '강석주'의 행패를 지켜보다가 흠씬 두들겨 패준다. 그 일로 '이쁜이'는 남편'강석주'에게 또 실컷 얻어맞고 급기야 쫓겨나 어머니 곁으로 돌아오는데, 모녀나 이웃 모두 그 모진 시집살이에서 벗어나 차라리 잘 된 일이라 한다.

재봉이- 이발소의 시다바리로 젊은 이발사와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이발 자격증을 따서 이발사가 되려고 한다. 창밖 너머로 천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에 관찰을 게을리하지 않는 소년으로 훌륭한 정보력의 소유자이다.

많은 캐릭터들에 대해 작가는 무심한 듯, 나름 객관적으로 묘사하지만, 각 장의 제목들을 보면 동정하고 있다는 정서가 느껴진다.

이야기 전개 방식이 독특한데, 캐릭터들에 대해 마구마구 나열하는 듯하지만, 서로 연결되고 재삼재사 언급될수록 이름이 드러나고 직업이 드러나고 그런 식이다. 여러 캐릭터들을 무심한 듯 펼쳐 놓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심화해서 다루게 되는 장치랄까에 끄덕이며 웃음 짓게 된다. 작가는 중간중간 구수하고도 천연덕스럽게 독자의 동의를 얻고 호기심을 부추기려는 개입도 한다.

변에는 '깍쟁이'라 불려지는 거지들도 많이 사는데, 그들은 떼를 지어 살면서, 당당하게 구걸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야박하지 않은 인심을 베푼다.

'깍쟁이'란 말의 어원이 원래는 '깍정이' 인데, 유래는 조선 건국 시기까지 올라간다지만, 청계천과 마포 등지에서 모래 굴을 만들어 기거하면서 구걸과 장례행사를 돕던 무리들이라 한다.

제시대, 조선과 대한민국의 사이를 살던 그 당시 여인들의 근대적인 직업 희망은

기생, 백화점 직원, 버스걸이었다 한다.

이 소설 속 대부분 여인들의 삶은 저마다 한(恨)의 탄생 스토리를 지니고 산다고 보여진다.

행복한 여인, 인간다운 삶을 사는 여인도 하나 등장하는데, 한약국 집 사이좋은 젊은 내외 둘째 며느리이다.

그리고 자기 주도대로 사는 여인 하나는 '안성댁'쯤 되려나~고소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화감독 [봉준호]의 외 할아버지이기도 한 [박태원]은 전쟁 중에 월북하였다는데 거기서는 주로 역사소설을 썼다고..

그분의 삼국지가 또 제일 재미나다고 하는데, 일단은 구보 씨를 먼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

일찌기 이책을 추천해준, 지우개님과 눈보라님께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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