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 - 채만식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42
채만식 지음, 우찬제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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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로만, 만나고 흘렸던 '채만식'과 [탁류]이다.

제목이 선뜻 와닿지 않아서 책장에 꽂힌 채로 있다가 어느 이웃님 추천으로 만나게 된 보물이다.

첫 페이지의 첫 문장부터 두세 페이지에서, 완전히 사로잡혔다.

- 금강(錦江)......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가지고는--------한강이나 영산강도 그렇기는 하지만-----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 직할 것이다. p7

-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그러나 항구라서 하룻밤 맺은 정을 떼치고 간다는 마도로스의 정담이나, 정든 사람을 태우고 멀리 떠나는 배 꽁무니에 물결만 남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갈매기로 더불어 운다는 여인네의 그런 슬퍼도 달코롬한 이야기는 못된다. p9

이 문장을 포함하여 다른 문장을 내식으로 풀어쓰자면,,

'금강'이, '전라도'의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갈재( 순창)'와 '지리산' 골짜기 물과 만나 '장수'와 '진안', '무주'로 역류하기도 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이고, 다시 '영동'근처에서 '추풍령'과 '속리산'의 물까지 합류하면서 '충청도' 접경을 흘러가고,

북쪽 줄기는 '경기도'로, 충청의 접경 '진천'으로 '청주'를 바라보고 흘러내려오다 '조치원'을 지나면서 남쪽 줄기와 만나는데 이 두 물줄기가 만난 곳에서부터 서남으로 '공주'를 끼고 '계룡산'을 바라보면서 '부여'를 한 바퀴 돌아, 급히 남으로 꺾여 논산, 강경까지 흘러가는데 여기를 '백마강'이라 하고,

이 '백마강'이 공주 '곰 나루'에서부터 시작해 '백제' 흥망의 꿈 자취를 더듬어 흐를 제는 물이 맑지만, '강경'에 다다르면서 장꾼들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물이 탁해진다. 여기서부터가 옳게 '금강'이라 한다. 이로부터 조수까지 섞여서 물은 더욱 흐려지지만 그득하고 벅차서, 강의 넓이가 훨씬 넓어진다. 이 물들이 흘러가 서해바다에서 탁류째 흘러 강이 다하는 시가지,, 예가 바로 '군산'이라는 항구라는 것이다.

- 그랬지, 아무리 돈을 잃어 바가지를 차게 되었어도 겨우 선창께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가서 강물에다가 눈물이 나 몇 방울 떨어뜨리는 게 고작이다. 금강은 백제가 망하는 날부터 숙명적으로 눈물을 받아먹으란 팔자던 모양이다. 102-103

'백제의 꿈이 깨어진 곳'이란다.~~

'금강'도, '백마강'도,' 군산'이란 항구도 그리고 맑은 물이 흘러가다가 탁류가 되는 '강경'도, 대한민국 지도상의 '금강'물줄기를 훑다 보니 진짜 도입 부분에서 전율이 일어났다. 장차 이어질 기막힌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물론 전라도 사투리는 둘째 치고 역시 사라진 고어들을 가늠하며 읽어내는 일, 그리고 주석을 뒷장에 별도로 실은 문학과 지성사의 출판 방식에 대해 조금은 익숙해진 터여야 흥미 위주로 내달리는 독서가 가능할 것이라는 참고를 이웃들에게 남기고는 싶다.

그리고 근대적인 통속 소설 속 주인공, 특히 여자의 정조와 가부장으로 무장한 폭력적인 남성들이 등장하지만,

내공을 쌓아서, 꼭꼭 읽어야 할 대한민국 근대소설 중 으뜸이 아닐런지~~ 나도 아직 한참은 더 만나봐야 할 작품들이 산재했지만, 성급하고 싶다.

내용이사, 진부할 수 있다지만, 그리하여 평면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투박한 조선식의 표현과 더불어 매우 세련되고 힘찬 전개가 좋았다.

총 19장의 소제목들 또한 너무 기가 차서, 제목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 장을 읽어나가게 된다.

기억에 남는 장의 제목은 '인간 기념물', '생애는 방안지라', '만만한 자의 성명은', '식욕의 방법론', '내 보살 외야 차'이다.

이 제목만으로도 '채만식'이라는 작가의 섬세함과 지식과 풍자가 괴물처럼 여겨졌더랬다.

가장 와닿지 않는 부제, '내 보살 외야 차'는 네이버 뒤져서 해석해둔다.

내 보살 외야 차(內菩薩 外夜叉): 겉은 보살처럼 아름다우나 마음속은 '야차(괴물)'처럼 무섭다는 얘기로 여자에게만 쓰는 말로 불교적인 용어이다.

여자는 그 모습이 부드러워 보살과 같으나 사람으로 하여금 애욕을 불러일으켜 여러 가지 죄업을 행하기 때문에 야차와 닮았다는 것.

바로 평지풍파를 겪은 이 소설 속 여주인공 '초봉'의 최후 모습인 것이다.


[줄거리]

충청도 서천 출신의 신학문을 배웠다는 '정주사'는 고향의 집을 팔고, 군산으로 식솔들을 거느려 이사를 온다. 한일 합방 바로 뒤부터 군청의 군서기로 12년간 일했지만, 주변머리 없어 도태되었고 딸 둘과 아들 둘을 두고, 바느질 일하는 아내가 유난히 자녀들 공부 욕심을 부리니, 가세가 기울어 굶는 일도 예사가 되자, 미두쟁이(미두: 미곡을 거래하는 일)를 하다가 급기야 하바꾼( 쌀의 시세를 알아맞히는 도박을 하는 사람, 미두꾼에서 전락한 사람)이 된다. 부두의 막노동도 해봤지만, 힘에 부쳐 열흘간 앓아눕는 일로 그나마 번 돈도 다 까먹는 신세였다. 그래서 이이가 입만 가졌지 손발이 없는 사람, 다시 말해 인간 기념물(人間 記念物)인 것이다.

그의 딸, '초봉'이는 여학교를 마치고 제중당이라고 하는 양약국에서 일을 하는데, 사장 '박제호'가 아버지와 친구인 관계로 편의를 제공받기도 하지만 그의 별난 아내, '윤희'의 감시와 시샘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청순가련형의 묘한 매력이 넘치는 '초봉'을 그렇게 대접하는 '윤희'도 억지가 아닌 것이, 남편 '박제호'는 말대가리처럼 기다랗고 못생겼지만, 오입쟁이였다.

가난한 '초봉'의 집에 세 들어 사는 '남승재'는 병원의 조수로 서울 태생의 고아이다. 둘은 서로에게 마음이 있지만, 그런 채로 지낸다.

'승재'는 가난한 주민들을 찾아가 무상으로 병을 치료해 주며 소일을 하는데, 자신이 치료해 주었던 13세의 '명님'이를 가난 때문에 기생집으로 보내려는 부모를 보면서 답답해한다.

은행원 '고태수'는 말쑥한 옷차림에 꽃미남 매력을 지닌 청년으로 서울서 내려와 은행을 다니면서 싸전 가게를 하는 '한참봉'네에서 하숙하고 있다.

'한참봉'은 자신의 젊은 부인 '김 씨'에게 아기가 없자, 첩을 여럿 거느려보지만, 후사의 기미가 없다.

'김 씨 부인'은 어느 날 '고태수'를 유혹하여 아기를 만들자고 덤비고 이들은 점점 쾌락에 탐닉하며 내연 관계를 유지한다.

 

 -중간 생략-  


군산은 근대사의 대표 도시이자, 일제 식민 수탈의 요충지이다. '채만식기념비'를 보러, 그도시, '월명 공원'을 가보자 하는것이 올 봄의 계획이다. '채만식'은 이 소설을 통해 좌절과 어두운 현실을 풍자와 냉소로 제시하는 풍자소설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이 소설은 주말연속극의 시대극으로 제격인듯하다. 가끔 시대극이 그립다. 그당시의 군산을 재현해 놓고 '초봉'과 기생 '행화', 그리고 가장 바람직한 삶을 지향하는 계봉과 승재,, 무능한 아버지 '정주사'와 '고태수', 징그럽고 추한 '형보'까지,, 살아 있는 캐릭터들을 만나보고 싶다.

군산 근대화거리와, 월명공원,강경 장 여행계획부터 세운다.

* 엉뚱한 관심과 비교; 유럽 고전소설속 여인의 갱년기는 '신경증,이라고 표현되는데, 여기서는 '단산증'이라고 표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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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찾아서 - 성석제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0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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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나의 블로그는 '세상 부지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 블로그의 유입 검색어 No1은 '성석제'의 [첫사랑]이었다. [첫사랑],,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성석제'의 유머와 해학, 풍자와 페이소스에 감탄하고 감복하고 무릎을 꿇게 했다.

연이어 읽은 그의 엽편 소설,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또한 그러했다.

그리고 간만에 그의 장편을 읽었다.

1996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바로 그 [첫사랑] 속, 조폭들 이야기, 어처구니없고, 단순하고 무식한,, 하지만 어마어마했던 조폭 이야기의 확장판이다.

그 이야기들 중 1995년에 발표한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마사오'와' 청바지'와 '청카바'이야기,,

사나이라면 천 길 낭떠러지에서 소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렸을 때 그 손을 놔버리는 거야." p214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책의 중반부 이상쯤 되어서 였지만 ..

나,, '장원두'에게 '마사오'는 지상에서 가장 강한 사내였고 마음속에 간직한 시생대였다. 가장 오랜 영토를 지배하는 영원한 ,, 가난, 불의, 불평등에 시달리던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 아이들에겐 우상이요, 어른들에겐 왕이었던 인물이었다.

그 '마사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온 한동네서 한날한시에 태어난 오랜 동무 '박재천', 그의 전화를 받고 '장원두'는 시외버스를 타고 지역으로 내려간다.

- 가긴 가야지. 가긴 가야지. 내가 무심코 한 말이 자꾸 내 뒤통수를 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 보내긴 보내야지. 마음속에서 오래전에 죽었든, 지금 죽었든 갈 사람은 가고 보낼 사람은 보내야지.

일단 간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는 박자는 4분의 4 박자 행진곡풍이었다가 4분의 3박자 춤곡으로 변했다가 박자고 뭐고 사람을 데리고 노는 듯이 제멋대로 변했다. 그러므로 가지 않고서는 내 가슴 때문에 내가 죽을 것만 같았다. 12

이 소설은 죽은 '마사오'의 장례에 참가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장원두'의 어린 날 신화를 남긴 존재와 자신의 지난날에 대해 회상하고, 그때의 사람들을 만나고 온갖 풍문과 숨겨진 이야기들을 넘나드는,, 일종의 로드 소설쯤 된다.

일제 시대 일본 순사의 끄나풀쯤 되었던' 마사오'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당당하게 지었지만, 해방이 되자, 마을 사람들에게 흠씬 얻어맞고, 외지로 떠돌며 가족들을 돌보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사오'의 가족은 이웃들과 왕래 없이 가난하게 살았고, '마사오'는 전쟁 후 고아 같이 거리에서 자라난다. 그는 타고난 체격과 체력과 정신으로 희대의 건달, 쌈꾼, 깡패의 기질을 보였다.

그에게는 '미쓰꼬',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광자'라고 불리던 아주 못생기고 몸집 좋은 누나가 있었다. 그녀가 열일곱에 이웃 홀아비의 아이를 갖게 되자 '마사오'가 낫을 휘둘러 그 홀아비의 한쪽 눈을 실명시켰다. 소년 교도소로 갔던 그는 5-6년 후 무성한 일화와 신화와 함께 지역으로 돌아온다.

군에 입대한 '마사오'는 국군체육부대에 배속되어, 미들급 동양 챔피언의 스파링 파트너로 열 일 하지만, 맨날 KO 패 당하다, 비겁하게 이겨보고는 탈영을 한다. 총 여섯 번

'마사오'가 제대하기 전부터 그에 관해 떠돌던 신화를 듣고 자란 나, '장원두'는 그의 광신도가 되고 광신자가 된다. 그리고 광자 누나와 친하게 지낸다.

- 마사오의 그런 모습은 그 후 갖가지 신화를 낳기에 충분했다. 사실은 효모가 들어간 밀가루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적당히 첨삭이 되고 장식이 된 다음 잘 구워진 빵과 같은 신화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신화가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지워질 수 없이 되풀이되고 공고하게 되었을 때에 마사오는 완전히 돌아왔다. 지역 전체의 신화와 기억이 그를 위해 미리 마련해둔 왕좌에 올라가 앉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34-35

- 인물은 저 혼자 인물로 나서 인물로 살다가 인물로 죽는가? 아니다. 처음부터 인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인물은 우리 각자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그 인물을 존경하면 그 인물은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 된다. 내가 그를 사랑하면 그는 사랑받을만한 매력을 지닌 인물이 된다. 내가 그를 그리워하면 그는 정말로 그리운 인물이 돼준다. 동시에, 내가 그를 싫어하면 그는 금방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누구에게나 싫은 인물이 되고 내가 그를 증오하면 그는 누구에게나 증오를 받는 인물이 된다. 37-38

그의 과자 심부름을 했던 어린아이가 자라나 외지에 나가 살다가

자신을 기억하는지도 모르는 그의 사망 소식에 나고 자란 지역을 찾아 나서지만

막상 그 장례식은 적적하기 그지없다. 정승집 개의 죽음과 정승의 죽음 이야기처럼..

- 낮술에 취한 사람의 얼굴처럼 붉은 해가 기울어가고 있다. 선산에 걸린 해는 중천에 떠 있을 때 보다 훨씬 커 보이고 위엄이 있다. 해의 크기가 아침에 다르고 한낮에 다르고 저녁에 다른 것은 아니다. 해가 아침이나 저녁때 가깝고 한낮에 멀어지는 것도 아니다. 뜰 때, 또 질 때의 해는 우리가 아는 산과 나무와 구름에 비교되어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것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자는 하찮고 일상적인 것이 가까이 있을수록 더욱 위대해 보인다. 살아 있는 동안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우러러보게 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 마사오였다. 그는 지역 전체를 통틀어 비교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은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가 위대한 만큼, 그의 몰락도 장엄해야 했다. 죽음은 특별해야 했다. 그게 그렇지 않다면 세상 이치는 엉터리고 내가 믿는 신념과 가치와 신화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100

그리고 퇴색한 늙은 건달들과

'재천'과 나와 어울려 가출을 했던 또 싹수가 노랗던, 소싯적 건달 싹들을 만나고

첫사랑,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절세미인 '나 세희'와

부자가 되어 지역에 호텔을 지으러 찾아온다던 가출 멤버 중의 '조 대경'.

'마사오'의 죽음 이후 왕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박재천'과

그와 경쟁 구도에 있던 다른 동지들과의 암투, 경쟁, 함정, 죽음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이미 '마사오'를 배신했었고

인정사정없는 '조창용'의 조직 밑에서 이인자 노릇을 하던 '박재천'은

'조창용'이 죽자, 왕이 되어보려고 하는데,, 조직을 등에 업었다는 '조 대경'의 귀환에 지레 겁을 먹고 건달들을 쓸어모으며 '장원두'더러 증인을 서라 한다.

신화 속 '마사오'는 구체적인 조직도 없었다. 그는 정식으로 조직을 만들지 않은 혼자 힘으로 떠오른 해였다. 그의 영향력은 경찰, 의원, 지역 유지들에게도 미친, 인간적인 보스였다.

하지만, '조창용'은 조직의 시대, 칼의 시대, 관리의 시대를 연, 깡패였다.

그는 '마사오'가 되고자, 신화 속 인물이 되고자 하여, 지역에 폭력조직을 도입해 뿌리를 내렸다지만, 신화가 없는,, 즉, 위엄과 자비가 없는 존재였다.

'광자' 누나는 '장원두'를 남자로 만들어준 여인이었지만

'장원두'의 첫사랑은 '나 세희'였다. 어린 날, 버스 운전사가 되겠다던 '장원두'에게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던 그녀 '세희'.

'마사오'의 처제였던 어물전 집 딸, '세희'는 '조 창용'의 여자가 되고, '원두' 곁에 잠시 머물려 들 때,, '재천'에게 낚여버린다.

장례식장에 서있을 때도 '재천'과 나란히 서있을 때도 여전히 그녀는 아름답고 눈이 부시다.

- 그녀는 십 년 전과는 달리 반말을 하지 않았다. 반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서로가 적절한 위치에 서서 객관적으로 서로를 관찰할 수 있는 거리를 의미했는데, 스무 살을 조금 넘은 젊은 남녀에게 그 거리만큼 관능적인 거리는 또 없을 것이다. 또 그 거리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일만큼 아슬아슬하고 흥분되는 일은 없는데 그녀는 현명하게도 미리 거리를 확보해둔 것이었다. 다만 반말을 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기술로. 나는 그녀의 기술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녀의 기술을 돋보이게 하려고 끝까지 반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252

- 아름다운 그녀와 함께 네 사내가 둘러앉아 있다. 그녀는 어느 누구와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에게는 선천적인 거리 감각이 있는 듯하다. 사내를 애달케 하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 붙잡으려 하면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그 거리..... 원할 때는 언제든지 자신의 아름다움과 매력으로 정복할 수 있는 일방적인 거리...... 이 거리를 아는 자가 역사를 변화시켜온 여신족이다. 269-270

이야기는 대격전을 암시하며 흐르다가

평화롭지 않게 평화로운 듯이 마무리되지만

'성석제식' 유머와 해학은 역시나,, 몇 구절에서 입꼬리를 올리며 흐느끼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든다.

침이라도 흐를 지경으로..

남자들은 이런 신화를 간직하고 살고 싶나 보다.

그래서 수렵시대에는 벌거벗은 채로 떼 지어 몰려다니며 수렵을 떠나고

땅따먹기 종족 간 전쟁은,, 세계대전으로 흘러갔고

뭔가를 위해 투쟁을 해야 했고

정복하고 싶어 했고

투쟁 거리가 없으면,, 스포츠를 죽기 살기로 하거나 보거나 이고

정치판을 싸움판같이 변질시키기도 하고

그래서 레슬링을, 스모를, UFC를,

이소룡을,

깡패 영화를 만들었나 보다.

'성석제' 님의 깡패 이야기 속 깡패들은

이쯤 되니,, 어처구니없게 귀엽고 측은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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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글누림 한국소설전집 10
이효석 지음 / 글누림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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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평창 출신의 작가'이효석', 그의 소설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국에 대한 동경이 드러나있다.

단편 소설을 시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되는 그는 한국 현대 단편소설의 대표작인 [메밀꽃 필 무렵]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가난과 무지와 핍박의 삶을 살았던 그 시대

특히나 1920-30년대의 소설은 막연한 에로티시즘이 있다.

독립운동이나 저항과 무관해야 했던 예술가들은 그 시대를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한다.

릴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막연함을, 여전히 막연해서 긴가민가 하는 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뜻밖의 그시대 우리 단편소설을 재발견하게 되어, [김동인][채만식] 등의 책들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고어를 사용하는 어휘들로 인해 아름답고 소중하기도 하지만, 외국 문학의 번역만큼 극복되지 않는 모호함이 여전히 있다. 하지만, 현대의 작가들이 많은 노력 끝에 갈고 다듬어, 주석을 달고, 삽화를 넣어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탄생시킨 이 단편집을 지난여름 '이효석 생가'에서 구입해두었다.

기독교적인 요소들과 하이네의 시와 오대산 월정사와 물레방앗간의 등장이 진부하면서도 흥미로웠고,, 탐미주의적인 요소도 만나게 된다.

[메밀꽃 필 무렵]1936

 

보에 왼손잡이인 '허생원'은 '조선달'과 함께 옷감을 팔러 다니는 장돌뱅이다.

봉평장에서 대화장을 가려면 6,70리의 밤길을 걸어야 한다.

그런 그가 봉평장의 '충줏댁'을 보면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려와 그림의 떡으로만 여기는 차,

어린 '동이'란 놈이 그 집에서 그 계집과 농탕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꼭지가 돌아 따귀를 올려붙인다.

'동이'가 쫓겨 나가고 거나하게 술이 돌자 슬슬 걱정이 되는데, '동이'가 '허생원'의 당나귀가 야단이 났다면서 술집으로 들어온다.

아이들 장난질에 흥분한 줄 알면서도 '동이'의 그런 처사가 고맙다.

20년 동안 '허생원'은 봉평장을 거르지 않는다.

젊은 날, 돈도 모아봤지만, 투전으로 사흘 동안 모두 날리고, 다시 장돌뱅이로 나섰다.

'허생원'은 계집과 연분이 없다. 못생기고 숫기도 없다.

그는 평생 계집 하나 후려보지 못했다. 계집이란 쌀쌀하고 매정한 것, 평생 인연이 없는 것이라 여기고 살았지만

꼭 한 번의 첫날을 잊지 못하고 산다.

봉평장에 다니기 시작한 젊은 시절, 단 한 번의 괴이한 인연이었다.

'조선달'은 그 얘기가 귀에 박혀있다.

'허생원'은 또 그날을 꺼낸다.

장이 선, 꼭 이런 날 밤,

객줏집 토방에서 무더위로 잠 못 들자, 밤중에 개울가로 목욕을 하러 가다가 옷을 벗으러 들어간 물레방앗간에서,

봉평 제일 가는 일색 성 서방네 처녀를 만난 일

그녀의 일가는 가난에 쫓겨 제천으로 떠났다 하고

찾아 나섰지만 만날 수가 없었고 평생 봉평을 잊을 수없노라고

들의 대화에서 빗겨서 있던 '동이',,

그는 날 때부터 아비가 없었노라 한다. 어미는 제천의 촌에서 아이를 낳고 쫓겨나 의부를 만나 술장수를 했지만, 의부의 폭력으로 맞아오다가, 18세에 뛰쳐나와 장돌뱅이가 되었노라고..

'허생원'은 묻는다.

어미의 친정이 제천이냐고?

봉평이라 말하는 '동이',

아비의 성은 무어냐는 질문에 '동이'는 모르노라고..

그리고 '동이'의 채찍이 왼손에 쥐여있는 것을 본, '허생원'..

대화장을 들러 제천장으로 가려는 '허생원'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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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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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역사]는 인간과 사회의 과거에 대해 문자 텍스트로 서술하는 내용과 방법이 변화해 온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 서술의 역사를 간단하게 [역사의 역사]라 하겠다고 작가는 밝혀둔다. 인류의 역사상 역사를 서술했던 작가들과 역사서의 내용, 이야기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및 역사서를 높이샀던 시대와 사람들이 있었지만, 역사의 서술은 예술의 범위이며 그래서 역사를 창작한 역사가들의 이야기를 더 지지한다.

지은이는 독자들이 이 책을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 같은 역사 르포르 타주로 받아들여주길 희망한다고 한다. 그는 독자의 지적 자극과 정서적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를 꾸미는 서사의 힘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구 역사의 창시자,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에서부터 '사마천', '이븐 할둔'과 '랑케', '마르크스', 그리고 우리나라 민족주의 역사학자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 과 '에드워드 H.카', '슈펭글러', '토인비', '헌팅턴',, 최근 몇 년 전,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끈 [총. 균. 쇠]와 [사피엔스]의 저자 '제래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까지..

 

 

1장 .. 서구 역사의 창시자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서구는 서유럽뿐이니라 유럽 전체와 북아메리카, 호주를 포함해 기독교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고 밝히면서 서구 역사의 창시자 '헤로도토스'와 '투카디데스' 이야기로 시작한다. 터키 공화국 출신의 '헤로도토스'는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서, 그가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사를 다룬 책 [역사]는 구어체로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테네 출신의 '투키디데스'는 사실의 기록에 충실하게 그리스 내전인, [펠레 폰네 소스 전쟁사]를 집필했다. 그리고 후세의 많은 역사가 혹은 역사 학자들이 역사서를 필하면서 서사를 중요시했는지, 단지 사실의 기록을 중요시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열된다.

 

2장.. '사마천'의 [사기]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하나의 전쟁을 다룬다면 사마천의 [사기]는 헤아릴 수없이 많은 전쟁, 크고 작은 국가의 흥망, 다양한 사회제도의 특성과 변화, 개인들의 생애, 전설, 신화로 수천 년 중국 사회의 역사 전체를 입체적으로 구성하였다. [사기]는 [역사]나, [펠로폰네 소스 전쟁사]보다 300년이 늦었지만, 인간과 권력의 관계를 밑그림 삼아 시대와 문명을 그려낸 거대한 풍경화였다고 한다. 엄청 많은 역사의 사실을 매우 정확하게 기록한 이 책은 '사마천'이 국가의 역사 기록을 관리하는 공무원 신분이어서 가능했고, 역사를 역사답게 쓴 중국 문명 최초의 역사가 '사마천'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역사서를 썼노라고 평가한다.

 

3장..이븐 할둔

 

북아프리카 출신의 '할둔'은 문명을 환경의 산물로 간주하고 세계를 일곱 기후대로 나누어 환경과 문명의 관계를 살피면서 인류사를 썼다. 그의 [역사 서설]은 인류사의 원형이며, 이슬람 문명의 발생사 연구에 길잡이가 될 정도로 이슬람 문명의 종합 보고서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한다.

 

4장.. 랑케

 

독일의 전문 역사 학자인 '랑케'는 역사를 있던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역사서를 쓴 '투키디데스'의 지지자로, 어려운 글쓰기를 했다고..

 

5장.. 마르크스

 

 

6장..'박은식', '신채호', '백남운'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이들 조선의 역사가들의 역사서 집필 동력은 조선 사람의 각성이다. 단결을 촉진하고 항일 투쟁을 북돋으려는 의지와 목적의식이 민족을 중심으로 과거를 재구성하고 현실을 기록한 민족주의 역사학이었다. 인간은 역사에 도덕적 감정을 투사한다고 한다. 일본 제국 주의자들은 조선 사람들에게 민족의 역사에 대한 열등감을 주입하려 들었고, 조선민족의 역사학자들은 용기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역사를 재구성했다는 이야기이다.

'박은식'의 [한국통사]는 조선 망국 과정의 이야기이다. 우리 민족이 당한 아픈 역사의 재현되어 갈피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하다는데 나라는 멸할 수 있으나, 역사는 멸할 수 없고, 나라는 형체이지만 역사는 정신이므로 한국의 형체는 무너졌지만 정신만을 보존하자는 것이 통사를 짓는 까닭이라고 서문에 밝혀두었다. 정신이 보존되어 멸하지 않으면 형체는 반드시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신채호'는 고대사를 파고들었다. 조선인의 정신을 살려내고자 조선의 고대사를 새로 쓴 그는 조선 역사가들을 비판하였다. '안정복'의 [동사강목], [삼국유사]와 [삼국사기]까지, 그는 고대 민족의 생활 터전이 압록강, 대동강 이남이 아니라 만리장성 너머 요동지역까지 였다고.. 미완성인 그의 [조선상고사]는 단군 건국에서 백제의 패망까지인데 옥중 순국을 하는 바람에 그 이후의 이야기는 쓰이지 못했다. 그는 민족의 정체성을 인식하고자 하면 역사를 알아야 하고,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하여 특히 외부 침략을 물리친 전쟁 영웅에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졌다.'을지문덕', '최영', '연개소문', '묘청'등.. 하지만 [삼국사기]의 '김부식'을 사대주의 역사관의 원흉으로 지목하는데, 그가 명장으로 그린 '김유신'과 '김춘추'가 당나라와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한 신라의 행위에 정통성을 부여했다고 비판한다. '김유신'과 '김춘추'는 민족의 정신에 사대주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었노라고..

 

 

사가 쓰는 사람의 철학과 연구 방법에 따라 얼마나 크게 달라질 수 있는지, 절대적으로 옳은 역사, 과거를 있었던 그래도 보여주는 역사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수원농고 출신의 경제사 학자 '백남운'은 한때 중도좌파 정당에 몸담았고 월북하여 북한에서 고위 공직자로 지냈던 인물로 민주화 이전까지 금서로 묶여있었다고 한다.

[조선사회 경제사]는 선사시대에서 통일신라까지의 민족의 고대사를 서술하였고,[조선 봉건사회 경제사]는 통일신라에서 조선시대까지를 서술하려 했지만, 고려 시대까지만 서술한 상권만 출간한 채 미완성 작품으로 끝났다.

7장 '에드워드 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2차 대전후 유럽의 지식인 사회가 도달한 최고 수준의 지성을 보여준 책이라고 한다.

8장, '슈펭글러', '토인비', '헌팅턴'

[서구의 몰락]의 '슈펭글러'는 서구의 문명이 몰락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책은 어마어마한 독서이력을 가진 천재만이 쓸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횡설수설로 쓰다만 초고처럼 보여서 웬만한 사람이 읽기엔 너무 난해하지만

'토인비'는 그 스승의 뜻을 충분히 이어받아, [역사의 연구]를 40년간 집필하였는데, 문명의 탄생과 성장, 쇠락과 해체의 과정과 원리를 밝힌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류 문명이 역사를 서술한, 문명의 백과사전이라고 한다.

'토인비'는 역사는 창작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사실의 선택, 배열, 표현, 그 자체가 창작의 영역에 속하는 기술이므로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고서는 위대한 역사가라고 할 수 없다는 견해는 옳다고 본다고.. 그는 사실을 토대로 문명의 흥망성쇠를 지배하는 일반 법칙을 찾아 흥미로운 드라마를 만드는 방식으로 문명의 역사를 서술했다.

특히 그가 언급한 '창조적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 부분이 또한 흥미로웠다.

[문명의 충돌], '헌팅턴'은 문명의 공간적 접촉에 대한 '토인비'의 이론을 정치의 무대로 소환해 냉전 해체 이후 국제 질서와 정세의 변화를 이해하는 실마리로 제공하였다. 이 책은 역사 책이 아니고 국제 정치학 책이다.

9장 '제래드 다이아몬드', '유발 하라리'

인류사는 과학 혁명의 산물이었으며 역사와 과학을 통합한 두 저자의 책에 대한 이야기이다. [총. 균. 쇠]와 [사피엔스]는 요 몇 년 지적 호기심 가득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총 균 쇠]는 유럽 중심의 역사관을 배제한, 과학자가 쓴 역사서이다. 7만 년 전 인지 혁명을 역사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는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인간이 인간으로 사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총 균 쇠]는 역사학의 연구 성과를 최대한 받아들인 과학자의 책이고 [사피엔스]는 과학자의 연구 성과를 최대한 받아들인 역사학자의 역사 책이다. 닮았으면서도 다른 구석이 많은 이 두 책은 짝을 이루어 서로 부르고 화답한다고 한다.

'헤로도토스' 부터 '유발 하라리' 까지 역사를 쓴 사람들의 이야기, 역사가와 역사서에 대한 르포르 타주,

'사마천'의 [사기]와, '신채호'의 '연개소문', '김춘추', '김유신'의 역사적, 민족적 재해석과 평가 부분,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흥미로웠고, '칼세이건'의 지구라는 존재의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분이 엄청 와닿았다. 새삼, 욕심낼것도, 미워할것도 없지 않은가, 우리가 그러한 부유하다 흘러가는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는데,,,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겸손한 마음에 대해, 유익한 독서를 갈무리하려는데, 오늘 오후는 햇살이 너무 좋다. 하늘도 맑고, 역시나 책을 통해 만나는 작가 '유시민'은 또 늘~ 옳다. 다음엔 어떤 책으로 만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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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간서치의 네이버 독서블로그

 

 

 

 

 

- 사회의 진보는 언제나 ‘개인‘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개인은 모든 개인이 아니라 ‘소수의 창조적 천재‘들이다. 어느 사회나 소수의 창조적 천재가 있으며 그들은 비창조적 다수가 자신의 비전을 받아들이고 따를 때에만 사회적 창조 행위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비창조적 다수자가 창조적 소수자를 모방하고 따르는 현상을 ‘미메시스‘라고 한다. 그리스어 미메시스는 ‘모방‘ 또는 ‘ 재현‘이라는 뜻이다. 창조적 소수자가 미메시스를 창출하면 사회는 응전에 성공하고 문명은 성장한다. 반면 창조적 소수자가 창조력을 상실하면 비창조적 다수자가 미메시스를 철회하는데, 이런 과정을 ‘네메시스‘라고 한다. 네메시스는 화를 내며 비난한다는 뜻이다. 창조적 소수자가 창조력을 잃고 지배적 소수자로 타락하면, 다수자는 미메시스를 철회하고 면종복배하는 내적 프롤레타리아트와 폭력으로 맞서는 ‘외적 프롤레타리아트‘로 분화하며 사회는 응전 능력을 잃고 혼란에 빠지며 문명은 쇠퇴한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후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추진했던 박정희 정부의 권력자들은 토인비의 역사 이론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자기네가 바로 ‘창조적 소수자‘이므로 ‘비창조적 다수자‘인 국민이 믿고 따라 주기만 하면 ‘민족중흥‘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전과 응전의 역사 이론을 국정 교과서에 싣고 각종 시험의 문제로 출제하게 하는 바람에 1972년대에 학교를 다닌 우리 세대는 토인비의 역사 이론을 달달 외워야 했다. 그런데 창조적 소수자는 왜 창조성을 잃고 지배적 소수자로 전락할까?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 내는 우상화 현상 때문이다. 259-260



- 멀리서 보면 지구는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할 곳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르다. 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는, 들어 본 모든 사람이 그 위에 있거나 있었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수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 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아이들,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 도덕이 교사, 부패한 정치가, ‘슈퍼스타‘와 ‘초인적인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 역사의 모든 것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 같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장군과 황제들이 이 작은 점의 한 귀퉁이를 아주 잠깐 지배하려고 흐르게 했던 유혈의 강을 생각해 보라, 또 이 작은 점의 어느 한구석의 주민들이 거의 구별할 수 없는 다른 한구석 주민들에게 저지른 잔인한 행위를. 그들은 얼마나 자주 서로 오해했고, 서로 죽이려고 얼마나 날뛰었고, 얼마나 지독하게 서로를 미워했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의 거만함,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신, 우리가 우주에서 어떤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망상은 이 엷은 빛나는 점의 모습에서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우리 행성은 우주의 어둠에 크게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칼세이건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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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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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를 빛내던 작가 '은희경'의 오랜만에 나온 소설이었다.

'김유경'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는 아니지만, 가장 오래된 친구, 40년 전에 여자대학 기숙사에서 만났고 한때 광고 회사의 출판부 상사이기도 했던 '김희진'이 있다.

자기 욕망에 적극적이고 사회생활의 수단이 좋았던 '김희진'이 소설가가 되었는데

인터뷰에서 그녀는 '고독과 가난과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받은 모욕이 자신을 작가로 만들었고 옛 친구들은 자신의 소설을 읽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소설 제목이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이다.

'김유경'은 실패한 결혼으로 인해 아르바이트를 근근이 하다가 '김희진'을 만났고, 그녀와의 인연이 우연히 이어지지만 절친이라거나 좋아하는 친구라고는 말할 수 없는 사이이다.

이야기는 지방 출신의 그녀들이 서울에 있는 여자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기숙사에 모여들어 지내게 된 1977년도와

'김유경'이 '김희진'의 소설을 읽게 되는 2017년의 이야기이다. 그 소설은 여대 기숙사를 배경으로 한, 연애 소설이자, 성장소설쯤 된다고 한다.

감기 몸살을 심하게 앓으면서 읽게 된 그 책 속의 '유경' 자신과 지방 출신의 여대생들에 대한 기억과

'희진'이 써 내려간 공주들은 너무 달랐음을 깨달으며 '유경'은 그녀들의 1977년을 소환해 낸다.

시대는 여자들이 대학생이 되는 것도

대학을 나온 여자들이 취업을 하는 것도 많은 제약이 따르던 사회였겠으므로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다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런 시대에서 멀지 않은 40년이란 시간을 가늠해보면서 읽게 된다.

숙명여대에 다니는 그녀들이 주로 만나는 남학생들은 연세대와 서울대의 학생들인데 그들은 긴급조치 등 시국과 연애에 관심이,

그녀들은 오로지 연애와 좋은 결혼에만 관심이 있는 듯이 그려지지만,

가족과 사회가 여자 대학생들에 거는 기대가 현모양처일 뿐인 것이 시대적인 한계이다.

'김유경'은 말더듬이였다. 웅변학원 등 각고의 노력 끝에 교정을 하지만, 여전히 당황하면 말문을 못 열고

각 지방에서 올라온 여자 대학생들은 저마다의 개성들이 섞여 서울스럽고, 대학생스러운 것들을 익혀 나간다.

20년 전부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희진'의 언저리를 맴도는 '유경'은 그 시절 룸메이트를 비롯한 기숙사생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내며 자신의 어설프고 아픈 첫사랑까지도 왜곡되고 희화하한 '희진'의 소설과 '희진'의 편집된 기억에 대해 유감이 있다.

'김희진'은 독신녀로 살면서 소설을 쓰지만

유부남과 교제를 하고 있고, 전에 광고 회사에서도 인사권을 쥔 유부남 간부와 부적절한 관계가 폭로되어 회사를 그만둔 배경도 있다.

그녀는 소설 속 공주라 칭한 그녀들을 맘대로 과장하고 희화했다.

설 속 그녀들이 한결같이 허세와 모순이 넘쳐나는 캐릭터들이라면 그녀들을 관찰하는 주인공 '희진'만은 그 모든 상황들을 통찰하는 식견을 지닌 성숙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유경'의 기억 속, '희진'은 분명 다르다. 기숙사에 들어왔던 시위 전력 있는 남학생의 탈출을 도와줬던 사건과 연루되었던 여학생들 몇몇을 사감에게 일러바친 것도 '희진'이었던 것이다.

미팅에서 다른 여학생의 파트너였던 '브론스키'와 우연한 조우 끝 만남을 이어가던 '유경'에게 유학파 부모를 둔, 서울 태생 '오지은'이, 자신이 가지긴 싫고 놓쳐아주자니 아까운 '한승우'를 소개해 , 그와 교제를 이어갔으나, 또 그를 질투하던 '오지은'의 장난으로 아프게 아프게 관계가 끝나면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다시 '브론스키'와 만남을 이어가는데,

'브론스키'는 '유경'이 자신에게 '의외성과 특별함과 격정을 원했느냐'고 편지로 묻는다. 자신에게는 그것이 없다면서 이별을 고하고 두 번의 실연으로 '유경'은 성장한다.

'유경'이 '희진'의 소설을 읽으면서 소환한 과거는 빛나던 시간이었다. 빛의 이면은 그림자이다. 왜곡하고 편집해도 빛과 그림자는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고, 아프고 어둡고 시리다고 덮으려 애쓰는 자도 자신에게 맞게 편집하여 각색하는 자도 있게 마련이겠지..

 나에게 그날은 그런 것들로 기억된다. 기울고 스러져갈 청춘이 한순간 머물렀던 날카로운 환한 빛으로. 나는 그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 가까이에서 닿을락 말락 흔들리고 있지만 끝내는 만져보지 못한 빛이었다. 339

 

'진'의 소설 속 마지막 부분이다. 그녀가 소환한 5월의 어느 날 k 공주의 결혼식을 마치고 그녀가 둘러보는 정경.. 이미 기울고 스러져 버린 청춘과 과거, 그 환하고 날카로운 빛은 그 한가운데 있던 그 시절에도 끝내 만져보지 못한 빛이라고..

'희진'은 인간들이란 자기를 주인공으로 편집해서 기억한다고 한다.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는 외로워서라며, 그래서 나를 주인공으로 편집한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우겨서 내 편을 많이 만들려고 쓴다고 한다.

진실이 어디 있어. 각자의 기억은 그 사람의 사적인 문학이란 말 못 들어 봤냐고..

우리가 아는 자신의 삶은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줄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영국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비관은 가장 손쉬운 선택이다. 나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적게 소모되므로 심신이 약한 사람일수록 쉽게 빠져든다. 신체의 운동이 중력을 거스르는 일인 것처럼, 낙관적이고 능동적인 생각에도 힘이 필요하다. 힘내라고 할 때 그 말은 낙관적이 되라는 뜻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낙관과 비관의 차이는 쉽게 힘을 낼 수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역설적인 점은 비관이 더 많은 희망의 증거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어둡고 무기력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관을 일삼는 사람이야말로 그것이 깨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자신 같은 비관론자도 설득될 만큼 강력한 긍정과 인내심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유일하게 그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319-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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