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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신비스럽고 마법 같은 소설, [파과]와 같은 작가였나 싶은 [구병모]의 데뷔작, [위저드 베이커리]..
24시간 영업을 하는 빵집, 허름한 건물에 많은 양의 빵을 만드는 이곳에 매일 식사 대용의 빵을 구입하러 들르는 나는 4년 전부터 심하게 말을 더듬는다. 조리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 한 열여섯의 고등학교 1학년이다.
그 빵집에는 나와 같은 또래의 여자 점원이 있고, 빵의 원료가 뭐냐고 묻는데
'갓난아이의 간을 말린 것', '티티새의 똥을 비스킷 사이에 얇게 펴 바른 것', '까마귀의 눈알을 우려낸 시럽', '고양이 혓바닥 삼 종 세트인 젤리', 그리고 '라푼젤의 비듬을 모아서 만든 모닝롤' ...이라고 대답하여 내가 또라이라고 찍은 수상한 점장 겸 제빵사가 있다.
나는 여섯 살 때 친엄마에게 청량리역에 버려졌었다. 일상적인 대화가 안 될 정도로 말을 더듬느라 질문에 답변이 안되자 선생님께 혼이 나고 아버지라는 사람은 면담 시, 내가 어릴 때 버려졌던 일로 말더듬이가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하고 있다.
그 아버지는 내가 열 살 때, 두 살배기 딸을 데려온 '배 선생'이라 불리는 초등학교 교사와 재혼을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이지만 신경을 곤두세운 기막힌 동거는 차츰 나를 구석으로 몰아낸다.
동화에서의 계모는 현실에서도 계모일 뿐.. 동화와는 다른 것이 내가 겪는 일이므로 훨씬 더 치졸하고 잔인하다.
집안에서 최소한의 공간으로 내몰리면서, 내 식사, 내 빨래 등은 나만의 것이 되고, 캐릭터 완구회사 영업부 장인 아버지는 늘 부재중이고..
'배 선생'은 최초 결혼생활에 대한 실패를 새 남편에게 보상받고 싶어 하고, 나는 가정이라는 명목만은 지켜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여덟 살이 된 여동생 '무희'의 성폭행 흔적이 발각되자 '배 선생'은, 길길이 날뛰며 범인을 잡으려 하고, 아버지는 여자아이 앞날에 좋지 않다고 만류하고 결국 그 아이가 다니던 학원의 원어민 강사( 전과가 있던)를 지목했지만, 엄마의 폭력 끝에 '무희'는 나를 지목해 버린다. '배 선생'의 분노의 구타가 이어지고 경찰 신고를 하지만 아버지란 사람은 알 수 없는 표정만 지을 뿐 말리지도 않는다.
죽기 살기로 도망쳐 나온 곳, 그 빵집, 그 오븐 속
오븐 속에 숨어들어가면서, 오븐에 열이 가해질까 봐 두려워했지만 그곳은 방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곳엔 낮엔 사람으로 변하는 파랑새가 있다.
그곳 '위저드 베이커리'는 마법사가 운영하는 곳으로 인터넷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다.
나는 그곳에 숨어서 홈페이지 관리를 하고, 주문받은 품목을 제빵사에게 넘기는데
성분이 좀 다른 정체불명의 빵들은 사악하거나 악취미적인 재료가 들어간 빵 들이다.
'부두 인형'이란 비스킷은, '장희빈'의 저주 인형 같은 것이다
'배 선생'은 어느 날 이것을 주문하고, 점장은 나를 많이 닮은 인형을 제작해주고, 나는 그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리는 머랭 쿠키, 단가가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내는 이것을 점장으로부터 선물 받는다.
조용히 들어간 집에서는 '무희'의 성폭행 장면이 연출되고 있고
범인은 나와 눈이 마주치고,
'배 선생'도 들이닥치고..
떨어져서 가루가 돼버린 머랭 쿠키를 바라보며
이 시간을 어디까지로 되돌려야 하나 하는 그 순간
이야기는 되돌려 버린 경우와
되돌리지 못한 경우를 Y와 N의 경우로 서술한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단지 선택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릴 것이냐 아니냐의 기로에서 에필로그는 '잘 견뎌왔기에 앞으로도 잘 견딜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들었으며 어떤 거지 같은 삶이더라도 잘 견디리라'라는, 그리고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떠올리게도 했던 그런 소설이다.
계속 기대되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스포를 피하려는 장치를 해야 했음..
-부탁이야, 아버지를 증오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배터리가 모자라, 제발, 나는 언젠가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무언가를 두 손에 쥐게 되면, 그대로 떠나버릴 사람이야. 그때까지만 나를 참아주면 안 될까, 당신 그냥, 좀 무거운 공기가 옆에 있다고 생각해주면 안 될까. 당신이 필사적으로 그리고 싶었던 가족사진, 그것이 영원한 화석이 될 때까지, 거기서 나 좀 빼주면 안 될까. 29-30
- 그때 통제할 수없이 눈물이 한 줄기 흘렀다. 이 눈물의 이유는 뭘까? 어쩌면 나는 오래전에 내 옆에 있었던 무언가를 잊어버린 채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무얼 잊어버리거나 놓고 온 걸까. 그 애는 내가 선택하지 않는 어느 평행우주 속에 살고 있어서 나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아이일까. 그 애뿐 아니라, 지금껏 내가 선택해오지 않았거나 거부해온 모든 요소와 사람들이. 205
- 지금껏 잘 견뎌왔다. 앞으로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타임 리와인더를 쓰지 못하게 한 불의의 사고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안다. 누군가 씹다 뱉은 껌 같은 삶이라도 나는 그걸 견디어 그 속에 얼마 남지 않은 단물까지 집요하게 뽑을 것이다. 212
- 머릿속에서 이성의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건넨다. 추억은 그대로 상자 속에 박제된 채 남겨두는 편이 좋아. 그 상자는 곰팡이나 먼지와 함께, 습기를 가득 머금고서 뚜껑도 열지 않은 채 언젠가는 버려져야만 하지. 환상은 환상으로 끝났을 때 가치 있는 법이야. 한때의 상처를 의탁했던 장소를 굳이 되짚어가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아. 아직도 어린 시절의 마법 따위를 믿는 녀석은 어른이 될 수 없다고.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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