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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평점 :
죽은 영혼이, 묘지가 없어서 구천을 떠도는 이야기이다. 여기까지만 생각해 보면,, 왠지 어두울 것 같아서, 혹은 전설의 고향일까 봐 기피하고 있던 차, 어느 이웃님의 격려로 용기 내어 읽었는데, 역시나 잘 읽은 책, 고마운 이웃님이었다.
'위화' 특유의 꾹꾹 눌러 담은 무언가는 참 웃기면서 슬프고, 참 말도 안 되면서 거룩하기까지 하다.
어처구니없는 중국의 이야기, 중국의 현실이 고대로 반영되어 있어 지금의 중국을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나, '양페이'는 죽은 사람이다. 자신이 왜 죽었는지도,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떠돌고 있다.
그는 자신의 화장 예약시간에 맞춰 빈의관(화장터)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씻지도 않았고 수의도 없이 평상복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가난한 셋집으로 돌아가 씻고는, 수의 대신 짧은 결혼 생활 동안 아내였던 '리칭'이 그녀의 이름을 수로 새겨 놓았던 하얀색 잠옷을 입고 빈의관으로 향한다.
빈의관에서도 가난한 자와 부자인 자는 차별을 받는다.
소파에 따로 앉아 있는 '귀빈 대기 구역'의 사람들은 수입 가마를 타고 묘지로 간다.
'일반 대기 구역' 사람들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가 국산 가마를 타고 묘지로 간다.
'귀빈 구역'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유골함과 수의가 얼마나 높은 가격인가를 자랑하고
'일반구역'의 사람들은 누구 것이 싸고 좋은지를 비교하고 앉아있다.
그 대기가 자꾸 미뤄지는 이유는 시장의 고별식 때문이다. 항간에는 시정 운영으로 인한 과로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호텔에서 모델과의 애정행각 중, 복상사였다 한다.
묘지는 서양식 별장의 축소판으로, 바다가 보이는 곳을 최고로 쳐준다. 유기농 묘지도 있다한다.
하지만 '양페이'에게는 유골함도 묘지도 없다.
그래서 저쪽 세계의 마지막, 아직 숨결과 체온이 있던 삶의 마지막 광경을 찾고자 길을 나선다.
시청 앞 광장에서는 강제 철거 시위가 한창이었다.
'양페이'는 그 시기,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살고 있었다. 아내는 진즉에 떠났고, 1년 전, 자신을 키워준 양아버지는 불치병을 얻어, 그 병구완 차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집도 팔았는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누가 될까 사라져 버렸고, '양페이'는 가게까지 팔아서,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양페이'는 식당에서 국수를 먹고 있었다.
그때 신문에 '리칭'의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여성 부호의 자살'이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리칭'은 그에게 아름답고 가슴 아픈 기억 자체였다. 그 기사에 몰두하고 있을 때, 주방에서 불이 났고,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이것이 그가 기억하는 저세상 기억의 끝이자 마지막 순간이었다.
'양페이'의 사랑, '리칭'의 이야기도 가슴 아프지만
그의 양아버지, '양진바오'의 이야기는 가슴이 시리다.
가난한 '슈메이' 커플 이야기와
아버지와 양페이가 살던 동네의 이웃 '하오샤'부부와의 우정 이야기가
그때 중국에서 일어나는, 아니 중국이어서 일어날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맞물린다.
가난한 소시민들이 사는 고통스러운 삶은, 차라리 죽어서나마 평온을 찾는 것이 나을 듯도 싶은데, 죽어서도 차별이 있다는 설정은 좀 불만이지만,
그래서 재미나기도 하다.
어쨌든 '양페이'는 자신의 출생비밀을 만나고 양아버지의 헌신과 사랑, 그리고 아내이자 유일한 여자였던 '리칭'과의 재회를 통해,
그리고 희생된, 인재의 주인공들을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과하지 않게 서술되지만,
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게감이 있다.
외톨이였던 '양페이'가 죽어서 떠도는 7일 동안, 그의 말도 안 되는 출생부터, 어린 시절, 그의 지나온 삶의 종적에 빠져 읽게 된다.
무덤이 없는 사람들은 따로 모여서 지내는데
가난해서, 혹은 마련해 줄 사람이 없어서, 묘지의 안락함으로 향하지 못하는 무리들 속에는 좋은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남아있는 영혼들도 있다.
무덤으로 가지 않은 오래된 영혼은 해골뼈로만 남아있다.
맨날 바둑을 두면서 싸워대는 두 해골은, 경찰과 매춘 여성을 가장한 남자였다.
그들의 이야기도 웃픈데,, 맨날 말다툼을 하면서 다시는 바둑을 두지 않겠다 선언하다가도 다시 어울리며 또 싸운다.
서로의 관계는 끔찍한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는데, 눈물겨운 우정이 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이 생의 너머..
완전한 소멸인, 그 영역과의 경계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곳을 책에서는 가난도, 부유함도 없고, 슬픔도 고통도, 원수와 원망도 없는 평등한 곳이라고 하지만..
그냥 뭔가를 정리할 수 있다는 설정, 그렇게 딱 삼일 만이라도 시간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아니 부질없을 거야. 이 강을 건너면 그냥 끝, 클리어 인걸로~~
하여 오늘을, 지금을 잘 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