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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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은 KAIST에서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이다.

이 책은 그가 기업과 일반인을 상대로 한 뇌과학 강연 중, 12편을 발췌해서 만든 책이다. 강연을 하는 투로 서술되어 있다. 흥미롭고 위대한 영역과 주제이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과학자가 엮었다고 하는 책이긴 하여도, 과학적인 식견이 없는 나 같은 천생 문과생에게는 몇몇 챕터가 좀 벅차기도 했다.

래도 나의 주의를 끌기에 충만한 여러 내용들 중 의사 결정에 관한 영역이나, 결핍에 대한 영역은 나 역시 관심 있어 하던 분야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게 인상 깊었던 두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정재승'작가가 말하는 혁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어쩜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주축으로 한 공산혁명보다도 '히피 운동'에 의한 혁명을 더 강조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번성한 '히피 정신'이 디지털 혁명, 즉 제3차 산업 혁명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히피 운동'은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기성의 사회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 회복, 자연으로의 회귀 등을 주장한 운동으로 사람들 사이의 위계질서나 수직적 계층 구조를 부정하고 동등하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돈과 권력의 집중화에 반기를 들고, 국가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적인 전쟁에 반대하며, 모든 인간이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자발적으로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인간성을 회복하며 사는 사회를 꿈꾸었다 한다.

청바지를 찢어 입고, 마약을 하고, 문란한 페스티벌을 벌이는 등 불온한 세력으로만 보였던 그들은 히피의 이상적인 정신이 테크놀로지의 구현이라며,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국경이나 언어가 더 이상 서로에게 장벽이 되지 않아야 하고, 자발적 참여와 느슨한 규제만으로 공동체 안에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데에 테크놀로지가 기여할 수 있다고 믿음으로써 그들의 테크놀로지로의 무장은 자본주의 산업사회를 뒤엎으려는 혁명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세대가 만들어낸 테크놀로지의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는 세대가 바로 우리들이라고..

그리하여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예로 드는데,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거대한 공동체, 코뮌이라는 것이다.

한 '히피 정신'에 가장 잘 부합하는 서비스의 예로 '위키 디피아'를 든다. 2003년도에 처음 등장한 이것은 누구나 작성 및 편집이 가능한 위키 사이트를 개설하면, 사람들이 비어있는 웹사이트에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적어놓고, 틀린 부분을 발견하면 아무나 고칠 수 있고, 그러면서 점점 정확한 정보가 되어 가는 것이다. 게다가 무료이므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보다 더 많이 이용되고, 더 신뢰하게 된다고, 그러므로 지식과 정보를 모두가 자유롭게 공유하고, 정보 불평등은 줄어든다는 주장이다.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 하나가 더 있다. 아직은 탄탄하지 못한 이론이지만 리더십에 관한 이론 중 가장 신생 이론이 아닐까 한다. 바로 뉴로 리더십(neuro-leadership)

,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들을 뇌과학적으로 환원해 생각해보려는 시도로, 자신의 뇌가 가진 장점과 한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리더는 더 나은 판단, 더 적절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보고, 리더가 자신의 뇌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조언해 준다는 의미에서 각별하다고 한다.

년 워크숍 때 받은 책을 미루다 미루다 이제 읽는 이유는 16일에 경기도 문화의 전당에서 열리는 북 토크 콘서트 때문이다. '랑데북'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토크 콘서트에는 '이동진', '채 사장', '정재승', '우주 히피'가 나온다고 하는데 두 사람(이동진-질문하는 책들,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채 사장- 시민의 교양)은 각자의 책을 통해 알고 있지만, '정재승'님도 책을 통해 먼저 알고 싶어서였다.

또 하나는 올해의 워크숍이 다가옴으로 2019 이슈가 되는 신간을 받을 공산이 크므로 새로운 책을 받을 때 더 떳떳하고 싶어서이다.^^

 

 

- 놀이는 인간의 내재적 본능이며 심지어 뇌의 여러 영역을 발달시켜주는 창조적인 행위인데, 왜 우리 사회는 놀고 있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걸까요? 왜 어른이 되면 덜 놀아야 한다고 기대하는 건가요? 오히려 어른들이 제대로 놀 수 있도록 놀이문화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119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행복과 건강의 핵심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였다고 합니다. 배우자, 가족,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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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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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하다!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에 빚진 게 없는 작가다! 어느 순간, 소설의 영역을 훌쩍 넘어 또 다른 공간으로 들어간다.! 붉은 책의 표지 뒷면에 씌어있는 내용이다. 블로그 이웃이 이책을 읽고 블로그를 시작했다고,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특별함을 인정하고, 빚진 게 없다 함은 자유로운 개성과 또한 기존의 것들을 답습하지 않은 특별함을 한 번 더 강조했을 것이고, 소설의 영역을 넘어선 또 다른 공간이라 함은 남미 소설의 마술적 리얼리즘 정도 되려나, 너무 판타지는 아니길 바라며 이 특별한 소설을 만났다.

야기를 이끄는 힘은 참 특별하다. 그리고 위트가 넘친다. 작가는 능청스레 개입하고 군데군데 독자들의 혼란을 염려하고 정리해주려 나선다. 이게 과하면 얕잡아 볼 수도 있는데, 어찌나 능청스럽고도 능수능란하게 넘어가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는..

게다가 ○○법칙이라는, 어떤 현상을 나열하다가 한마디로 압축하는 맺음이 어리둥절하면서도 웃음을 짓게 만들고, 처음 접하는 이 작가에 대해 강한 인상을 갖게 만든다. 한 번 더 이 책을 읽게 되면은, 몇 개의 법칙이 등장하는지 세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명관' 작가는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그의 소설, '고령화 가족'은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고, 또 '김언수' 작가의 '뜨거운 피'를 영화로 만들어 감독으로 데뷔하려는 중이라는 기사가 있다. 이 작품 '고래'는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해준,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국밥집 노인', 그녀의 딸 '애꾸눈'의 인생의 한과 복수를 이어받는 '금복'과 그녀의 딸 '춘희'..

이 네 여자의 삶이 모두 만만치 않으며 특히 '금복'이란 여인의 삶과 '춘희'의 서사가 '부두'와 '평대'라는 공간에서 얽히고설킨다.

무도 못생기고 추하여 시집갔다가 소박맞은 국밥집 여인이, 부엌데기로 들어간 집의 반편이 아들을 챙기다가 눈이 맞고, 매 맞고 쫓겨났지만 복수를 하고자 반편이를 유인해 죽게 만들고, 딸을 출산하지만, 정을 붙이지 못하던 차에 사고로 아이의 눈을 애꾸로 만든다.

마음 붙이고 살던 곰보가 자신의 딸을 겁탈하는 현장에서 곰보를 살해하고는, 애꾸눈을 중늙은이 양봉업자에게 벌 몇 통에 팔아넘기고, 세상에 복수하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억척스레 국밥을 팔아서 많은 돈을 모은다. 그리고 노인이 죽어가던 어느 날, 자신의 어머니가 많은 재산을 모았다는 소문을 듣고 애꾸눈 딸이, 벌들과 함께 찾아오지만, 꽁꽁 숨긴 모친의 재산은 찾을 수가 없다.

편 '금복'은 산골마을에 홀아비가 된 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그녀의 아비는 욕정에 시달릴 때마다 성숙해져가는 딸아이를 어떻게 하게 될까 봐 두려워 술에 찌들어 산다. 아름답진 않지만 누구보다 강렬한 페로몬을 풍기는 심상치 않은 '금복'은 삼륜차를 몰고 다니는 '생선 장수'를 따라 큰 바닷가 부두 마을에 짐을 풀게 된다.

그리고 난생처음 와본 바다에서 자신이 살던 집채보다 서너배는 큰 '고래'를 보게 된다. '고래'가 뿜던 물기둥에 넋을 잃고 만 '금복'은 그 강렬함에 이끌려 평생을 살게 된다. 훗날, 그녀를 매료시킨 남자 '걱정', 덩치가 크고, 힘도 좋지만 미련한 남자 '걱정', 그리고 그가 죽은 후 3-4년이 지난 후 태어났지만, 누가 봐도 '걱정'의 자식임이 분명한 또 덩치 큰 벙어리 딸 '춘희', '평대'에 그녀가 지은 고래 모양의 극장, 그 '금복'의 철학은 '작고 누추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이다. '금복'은 덩치 작은 여자이지만, 스케일 큰 여장부 사업가가 된다.

한 가지, 동생을 출산하다가 함께 저세상으로 가버린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들의 죽음을 통해 평생 죽음에 시달리는 불행한 여장부가 된다.

야쿠자 출신의 조폭'칼자국'의 '게이샤'를 향한 무모한 사랑 이야기와, 그녀와 닮은 '금복'을 향한 사랑, 시내에서 '칼자국' 덕분에 처음 가본 극장과 서부영화, '존 웨인'..'걱정'과 '칼자국'의 터무니없는 죽음을 뒤로 비렁뱅이가 되었던 '금복' 이 서커스단의 늙은 코끼리가 지내던 마구간에서 '춘희'를 출산하고, 그 마구간의 주인, 쌍둥이들과의 만남.

어느 인생, 어느 이야기 하나가 흐트러짐 없이 굵직하고 흥미진진하다. 남녀간의 애욕과 외설스러움은 또하나의 중요한 축이된다.

도 못 하고 사람들의 삶에 잘 끼어들지 못하는 '춘희'의 삶은, 훗날 의붓아버지 '문'으로부터 전수받은 벽돌 만드는 일에 자신의 불행과, 그리움과 사랑과 기다림을 녹이고, 잊히고 묻혔던 '평대'와 '춘희'의 삶은 어느 건축가의 고집과 장인 정신으로 되살아 나지만, 많은 진실이 또한 묻히거나 왜곡되어 있다. 그리고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독자들에게만 남긴다는 설정은, 두 개의 에필로그에 까지 꽉 찬다.

대한 고래, 거대한 코끼리, 거대한 남자 '걱정', 거대한 여인 '춘희', 그리고 광활한 여자 '금복', 광활한 복수를 펼치는 국밥집 추녀, 거대한 돈, 거대한 벽돌, 그 '평대 기와'의 거대한 벽돌로 지어진 왜소한 장군의 나라 대극장, 그래서 거대한 서사..

다 읽은 자리서 바로 한 번 더 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오랜만의 책, 좀 더 진중하게 봤어야지 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흡인력이 대단한 책이다 보니, 책에 끌려서 오히려 진중할 수 없었는지도 모를...책장을 몇 번 더 넘기며, 포인트를 다시 집게 만든 책이다. 그리고 춘희가 그린 개망초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한 인간의, 한 공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개망초 군락..

누군가는 고립된 생활 속에서 단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였을 거라고도 하고, 또는 인간 본연의 유희적 욕구 때문일 거라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과거의 평화로웠던 공장생활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그래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희원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그 어떤 해석도 충분한 설명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노동이 단지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너무 필사적이었으며 단지 유희라고 하기엔 너무나 고된 일이었으며, 또 단지 그리움 때문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반복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40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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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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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주는 서정성 때문에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 역시 단편소설인 줄 알았다면 손에 대지 않았을 책, 그러나 소설집을 읽는 동안 내내 나의 편협한 취향이란 것에, 편협한 사고라는 것에 대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지~ 한다.

작가 오현종이란 사람도 남자인 줄, 게다가 장편인 줄 알고 간만에 우리 소설 좀 보자 했다.

'부산에서', 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연금생활자와 그의 아들', 난장이의 죽음에, 나는 잘못이 없다', 모든 것이 붕괴되기 이전에', '약의 역사', '호적을 읽다' 총 8편의 소설집이다.

쉬운 우리글, 것두 여류작가, 것두 최신.. 고전소설을 읽느라 쓰는 에너지의 반의반만 써도 되는 것, 그래서 어쩌면 여운도 반의반만 될 수도 있음을 무릅쓰고라도 나는 의무적으로 우리 소설을 읽으려 든다. 때로는 아쉬움도 격려로 내 스스로 위로할 줄도 알면서...

여덟 편의 소설은 모두 사소한 사연, 그러나 있을 법한, 아니면 꿈에서라도..

모두 외롭고 침잠해 있다. 그리고 작가의 소설을 향한 향수를 닮은, 아니 작가의 페르소나 같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그래서 수필 같기도 하고, 자전적 소설 같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를 미루어 짐작해본다. 내가 처음 접하는 작가를..

등장인물들은 성장을 멈춰버린 사람들 같기도 하고 성장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현시대의 잉여인간들처럼 시스템이 그러해서 그리 사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삶을 선택해서 그리 살지도 모른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른을 훌쩍 넘겨도 결혼을 하지 않고 연애만 한다. 부모는 짝을 잃어도 오래 살지도 모른다. 부모의 늙음을, 아픔을 지켜봐야 하는 시간이 매우 길어질지도 모른다. 많이는 배웠지만, 평생의 직업이란 어렵다. 그런 세대들의 이야기이다.

화려하지 않고, 차분한 문체이지만 힘이 있고, 여운이 있다. 좋아하게 될 것 같은 작가이다.

[부산에서] 대학도 나오고 실력도 있지만 서른이 넘어도 아직 아무것이 되지 않았으면서도, 무엇이 될 여지도 물 건너간듯하면서, 그래도 소망하는 소설가가 될지도 모르는.. 한 번쯤 낯선 지역에서 1년을 살고, 게다가 바닷가고, 이런 신분이라 이런 도전이 가능한 그런 정서가 그립다. 못해봐서 그립다. 익숙해서 쉬이여기고 산, 사람들, 삶들이 낯섦으로 더 애틋해지고 굳이 멀다 않고 찾게 될 수도 있는 그런 .. 그래서 나와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면..

[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 스물 언저리를 지나온, 남친을 군대 보내본 사람이라면 공감이 되는,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자가 어느 나이가 되고 군대를 간다는 것, 보낸다는 것, 가족으로 나서든, 친구로 나서든, 애인으로 나서든, 그런 생경함 속에 불안과 불면이 애틋하고 가슴 시리다. 안그래도 그 나이는 충분히 시린나이이다.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이 서정이 듬뿍 묻어나는 제목은 노래의 가사이다.

결혼을 앞둔 대기업 남자와 중학교 여선생이 연애 끝 설렘보다 불안 앞에 놓인다.

악몽.. 어쩜 이성 간 설렘의 끝은 불안인 건가, 헤어짐이 아닌 연애의 끝은 불안인 건가, 결혼이라는 미지의 세계는 개척할 가치가 있는 건가, 그렇게 자주 연애를 하고,

그렇게 오래 노골적으로 연애를 하기도 하면서, 그 목표가 결혼이며 그런 과정이라는걸, 벗어나고픈 걸까, 도망치고 싶은 걸까.. 결혼 않고 연애만 해도 된다면 것도 허무하다. 인생이 허무한지도 몰라, 무모한 건지도 몰라서 해보는 걸지도.

[연금생활자와 그의 아들] 연금을 타는 혼자된 아버지의 집에 아직도 얹혀살면서 경제적 독립도, 정서적 독립도 하지 못한, 아니 하지 않는 연극배우 아들의 삶, 어머니라는 존재의, 아내라는 존재의 부재로 인한 시간과 공간들 속에서 화해해 가는 .. 먹먹함이 동떨어지지 못해서 더 먹먹하게 다가온다.

[난장이의 죽음에, 나는 잘못이 없다] 이 할머니를 어쩌나, 나도 늙으면 이 할머니 같은 위인이 될지도 몰라, 모든 걸 내 방식대로 이해하고, 내 방식대로 위로하면서 꼬장꼬장해지고, 각자의 어른 노릇에 여념 없이 바쁜 자식들의 부재와 무관심에 이렇게 될지도 몰라. 너무도 미운 이 노인네가 또 너무 공감 돼서 안쓰럽다는

[모든 것이 붕괴되기 전에] 결국은 닮아, 유전의 힘, '부산에서'의 임시 강사 딸과 아버지, '연금생활자와 그의 아들'에서의 아버지와 배우 아들, 그리고 피규어를 모으는 아버지와 그를 원망하는 아들.. 그래서 무섭다. 나를 이세상에 나오게 한것도, 나에게 이런 영향을 미친것도, 모두 아버지 당신이잖아, 그래서 멈춰보려고..나를.

 

 

- 그날 밤도 나는 불을 끄고 서재에 누워 오만 가지 기억을 더듬어나갔다. 아파트 앞 동에서 유리창을 넘어온 불빛이 낡은 책등을 어스름히 비췄다. 어둑한 서재에 누워 있어도, 이른 아침 발코니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청사포를 응시하고 있어도, 생각의 좌표는 어김없이 서울에 고정돼 있었다. 내가 만약, 이란 후회가 오가고 나면 누군가 미워죽겠는데 그 대상이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아 괴로웠다. 내 손바닥의 손금처럼 아꼈던 사람들, 나를 알았던 사람들. 누구지? 누구지? 미운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막상 얼굴을 헤아려보면 다 빠져나가고 없어서 나만 술래로 남겨졌다. 나를 미워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도로 다른 얼굴을 뒤적여보아도, 그들의 이목구비가 달아나버려 달걀처럼 텅 빈 얼굴만 남았다. 기다리다 지친 잠이 다가들어 그때까지 한 생각을 죄다 훔쳐가 버리곤 했다. 13-14



-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없고, 때로는 그 미래를 알면서도 그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으니까. 우리는 늘 그렇게 어리석고, 그래서 운명을 피해 가지 못하는 법이란 걸 적어도 나는 알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그런 사람들 편에 오래오래 서있고 싶었다.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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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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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은 광주 두물머리 마재의 명문가 집안 사형제이다. 서로 벗처럼 책을 읽고, 토론하며 영향을 미친다. 특히나 맏형 '정약현'에 대한 작가의 묘사가 인상적이고 약현의 사위 '황사영'의 세 숙부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그 인상적이라 함은 내가 좋아하는 참선비, 참 학자의 모습이요, 그래서 맑고 고요한 무언가가 얼굴에 드러나는.. 아직 학자가 되지 않은 어린 '황사영'의 얼굴에 깃든 맑음에 대한 묘사도 좋다.

'정약전'이 천주교를 제일 먼저 받아들이고 약종과 약현에게도 전하였으나 약종은 순교를 하고 약전과 약용은 배교를 하여 귀양을 간다.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

'정약현'은 '황사영'을 사위로 맞고, 데리고 살다가 서울로 보낸다. 그리고 그 일가의 노비였던 '김개동'과 '육손이'를 면천하여 준다. 그들은 신부 '주문모'와 '황사영'을 비호하고 점조직처럼 흩어진 교인들의 조직을 관리한다.

'정조'가 죽고 대비 '정순왕후'는 혈안이 되어서 천주교인들을 발본색원하고자 갖은 고문 끝에 죽여 버린다. '주문모'를 찾아, '황사영'을 찾아...

그러나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에게 천주교란, 글을 몰라 교리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도, 뭔가 당연한 이치가 신비롭고 설레고 희망이 가득할 뿐이다. 현실의 고된 삶끝에 있다는 그 먼 곳을 소망하는 것, 희망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박차돌'과 오누이 '박한녀', 새우젓 장수 '강사녀'와 버려진 딸, 백도라지로 피어난 젖 유모 어미를 두고도 동냥 미음으로 커야 했던 '아리', 궁인 출신 '길갈녀', 전라도 소작농의 처 '오동희', 말을 닮은 마부 '마노리'... 그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도 여인이라서, 가난한 천민이라서 겪는 이중의 노고.. 사람들의 삶이 너무 스산하고 비루하고 고되다. 그리고 부패한 관리들은 그들의 고름을 짜낸다. 각종 세금의 형식으로..

익숙한 지명 교하, 행주나루 수유리, 마포

리고 흑산도에 유배되어 글을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인 약전이 '黑山'이란 이름 대신 '玆山', 어둡지만 빛이 들어있다는 '자산'이란 이름으로 쓰면서 섬의 물고기들을 관찰하면서 지었다는 '자산어보'...

'정약용'일가의 불행과 천주교도들의 박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가? 뭔가 겉돌다 만 느낌이 드는 책이다.

작가는 후기에서 나는, 겨우 조금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말이나 글로써 설명할 수 없는 그 멀고도 확실한 세계를 향해 피 흘리며 나아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또 괴로워한다며 맺는다.

가가 일산에 살면서 자주 절두산 아래를 통과하면서 그의 일상을 압박하는 무언가를 이렇게 토로했던, 그런 책쯤으로... 아무래도 내가 처음읽는 김훈은 다른 책들을 좀더 읽어 본 후에 말해야 할듯..

한때 역사에 묻힌 그들이 목숨 바쳐 지키고 간직해온 것들을 의무적인 미사 참여로만, 성지순례로만 이어나가고 있는, 깊어지지 않은 신앙심을 돌이키며 올 한 해는 절두산 성지, 베론 성지, 해미성지를 순례해 보리라.. 또 눈물만 주룩주룩 흘릴 테지만..

남녀의 행위를 교접이라고 작가는 표현한다. 먼 길을 떠나고 불안한 길을 떠나고 알 수 없는 죽음의 때를 두려워하며 나누는 행위들...

그리고 정약전이 흑산 섬에서 조껍데기 술맛에 젖어들면서 술이 늘어가는데, 조껍데기 술... 예전에 사패산 산행 후 마셔보았던, 맛났던 기억이 있다. 반가운 이름ㅎㅎ 발음을 참 잘해야 하는 조 껍데기 주..

 

 

 

- 귀 기울이지 않아도 물소리는 정약전의 몸속을 가득 채웠고 정약전은 그 소리를 해독할 수 없었다. 그 물소리 너머의 바다에서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고 문자가 자리 잡을 수 없을 것이었다. 언어가 지배하는 세상과 언어가 생겨나지 않은 세상 중에 어느 쪽이 더 무서운 것인가. 물소리 저 너머에서 인간이 의미를 부여해서 만든 말이 아니라 목숨과 사물 속에서 스스로 빚어지는 말들이 새로 돋아날 수 있을 것인가,. 그 말들을 찾아서 인간의 삶 속으로 주워 담을 수 있을 것인지, 어둠 속에서 정약전의 생각은 자리 잡지 못했다. 183-184



- 하늘의 선한 뜻은 권력의 작용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을 통해서 일상의 땅 위에 실현할 수 있으며 그 실천의 방법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네 이웃을 사랑하고 죄를 뉘우치고 뉘우침의 진정위에 새날을 맞이하라. 크고 두려운 날들이 다가온다. 200



- 흑산 사람들은 그 일을 입에 담지는 않았고 정약전의 유배지 신접살림은 흑산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죽음은 바다 위에 널려 있어서 삶이 무상한 만큼 죽음은 유상했고, 그 반대로 말해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자들끼리 살아 잇는 동안 붙어서 살고 번식하는 일은, 그것이 다시 무상하고 또 가혹한 죽음을 불러들이는 결과가 될지라도, 늘 그러한 일이어서 피할 수 없었다.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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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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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도 사투리로 이루어진 책을 유난히 벅차했더랬는데 예전에 그런 이유로 이 책도 집어던졌더랬는데, 뜻을 알지 못해도 앞뒤 문맥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힘이 생겼나 보다. 난 경기도 오리지널. 근데 전라도 방언이나, 강원도 방언은 뚫어낼 수 있어도 이상하게 경상도 사투리는 영화 대사도, 문학도 유난히 못 알아듣게 되더라..

양의 나폴리라 하는 통영... 개인적으로 두 번쯤 갔더랬나? 그곳 사람들의 정서, 기후가 많이도 낯설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한말에서 일제 시대 서민들 이야기인데, 일본의 지배를 받는 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통영에서 나서 자란. 그들 삶의 이야기뿐인데도 그 삶은 가난하고 각박할 뿐이다.

이 지방 호족의 자제 '김봉제'는 관 약국의 의원이다. 중인 집안이지만 조상 덕에 부유하게 산다. 조용한 성품의 그에 비해 나이차가 많이 나는 아우 '봉룡'은 오만불손하고 불같은 성품이다. 그 사이에 누이 '봉희'가 있다.

'봉룡'의 첫 아내는 결혼한 지 얼마지않아 맞아서 골병으로 죽었다는 소문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아내 '숙정'은 인물이 곱고 첫아들도 낳았으나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유모 손에서 자랐고 그녀를 연모하던 총각과 혼사가 이루어질뻔하였으나 '숙정'의 사주가 세다 하여 혼인이 무산되는 바람에 재취로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를 연모하던 남자의 출현에 분노한 '봉룡'은 '숙정'을 매질하고 칼을 빼들고 그 총각을 찾아 뛰쳐나간다. 그사이 '숙정'은 비상을 삼킨다. 끔찍하게 죽은 '숙정'과 '숙정의 오빠들'로부터 도망 쳐버린 '봉룡'을 대신해 그들의 아들 '성수'는 하인 '지석원'과 함께 '김봉제'의 집에서 성장하게 된다. '봉제'에게는 결핵을 앓는 연약한 무남독녀 '연순'이 있다. '성수'는 이 누이를 의지하며 부모의 끔찍한 사연이 있는 옛집을 서성이며 소일한다.

명횡사한 '봉룡'의 집은 기괴한 기운이 돌고 '봉제'나 봉제의 처 '송 씨'는 그곳에 가있는 '성수'를 기겁하며 만류한다. '연순'이 처녀로 죽는 것을 두려워한 부모는 행실이 좋지 않으나 양반의 자제라는 이유로 '강택진'에게 시집을 보낸다. 돈에 눈이 먼 '강택진'은 어리석은 장모 '송 씨'를 꼬드겨서 자신의 부를 축적해 나간다. 뜻하지 않게 '봉제 영감'이 뱀에 물려 파상풍으로 죽게 되자 '송 씨'의 도움으로 '강택진'은 '성수'를 제치고 약국이 되려고 한다. '성수'의 고모 '봉희'가 송 씨를 나무라고는 하인 '석원'과 함께 사또에게 진정하여 '성수'가 약국이 된다. '성수'가 또한 의지하던 '봉희'의 아들 '중구'는 윤 씨 가문의 처녀와 결혼을 한다.

공허하고 고독한 '성수'는 이곳을 떠나고자 하지만, '연순'이 말리고 막상 떠나려는 '성수'를 미워하던 '송 씨'도 나서서 말린다. '봉제'의 삼년상 이후 '한실 댁'과 결혼한 '성수'는 '송 씨'를 모시고 살고 누이 '연순'은 죽는다. 사위 '강택진'은 재가를 하고, '성수'와 '한실 댁'의 아들을 키우며 소일하던 '송 씨'는 지난날을 후회하지만 그 손자마저 돌림병으로 잃는다. 그리고 두 달 후 '송 씨'마저 죽는다. "비상 묵은 자손은 키우지 않는다" 하면서 ..

연이어 딸을 둘 낳은 '한실 댁'에게 '지석원'이 나타나 자신의 아들이라며 갓난애를 맡긴다. 어머니가 무당이었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 '석원'의 죽음 소식 또한 듣고는 갓난쟁이 '한돌'은 이 집안의 머슴으로 자란다.

'한실 댁'의 아주버니 '중구' 내외는 참 사이가 좋다. 큰 아들 '정윤'은 의대를 다니고, 작은 아들 '태윤'도 있다.

딸만 다섯을 나은 '한실 댁'은 대면 대면하고 자신의 방에만 틀어박혀서 고독을 즐기는 남편 '성수'가 어렵고 서먹한데 사이좋은 '윤 씨'와 '중구'를 부러워하고 있다.

'중구'와 '성수'는 고고한 선비의 기질로 대쪽 같은 성품이기도 하다. 돈을 많이 가진 '성수'가 '중구'를 도와 아들 '정윤'의 의대 학비도 댈 수 있었다. 이렇게 서로 의지하며 지내면서 자녀들이 성장한다.

'성수'의 딸들 중 첫째 '용숙'은 인물도 좋고 하여 부잣집에 시집을 갔으나 아들 하나를 두고 과부가 된다. 생각 없이 말하는 투를 '성수'는 못마땅하게 여긴다. 둘째 딸 '용빈'은 서울서 학교를 다니는 인텔리로 이들 부모가 아들처럼 의지하는 존재이다. 그녀에게는 서울서 함께 공부하는 그 지역의 떠오르는 부호 '정국주'의 아들 '홍섭'이 애인으로 있다. 셋째 '용란'은 가장 미모가 두드러지나 철딱서니 없고 집안의 살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천방지축이다. 그리고 넷째 '용옥'은 인물이 가장 떨어지나 어머니를 도와 집안 살림을 야무지게 한다. 막내 '용혜'는 아직 어리다. '성수'는 자신의 어장을 전적으로 관리하는 '서기두'를 셋째 딸 '용란'과 엮어주고자 한다.

이 집 딸들의 비극이 시작된다. 하나같이 불행하고, 파멸을 길을 걷는.. 부유한 '성수'가 '정국주'의 돈을 빌려 어선을 사고 제주도 근처에서 모구리 어업을 벌이려 하다가 배가 침몰하여 선원들이 죽고, 가산을 탕진해 가는 즈음.. 그에게 기생 '소청'이 첩이 되고,

딸 '용숙'이 어린 아들의 잔병치레로 드나들던 유부남 의사와 불륜을 저질러 아기가 생기자 낳아서 연못에 버렸다는 영아 살해 사건을 계기로 온 동네가 발칵 뒤집힌다. 그 남자와 함께 감옥을 살고 나온 '용숙'은 더욱더 돈에 집착하여 일수를 놓고 살며 자신의 가족을 원망한다.

'용빈'은 집안의 지지 속 결혼 상대로 여겼던, '홍섭'의 배신에 아파하고, '홍섭'은 부잣집 서울 아가씨 '마리아'에게 실수를 했다면서 책임을 져야 해서 떠난다 한다.

셋째 '용란'은 머슴 '한돌'과 친구처럼 자라다가 잘못된 성에 눈뜨고 매일 밤 들판에서 정사를 나누는데 작정하고 따라나선 아버지에게 들켜서 마약쟁이 '연학'에게 시집을 가지만, 성 불구의 몸에, 마약을 위해 세간을 내다 팔다가 뜻대로 안되면 세간을 부수고 '용란'을 의심하고 때려 대는 통에 불행한 삶을 살지만 삶에 대한 의욕 없이 친정집을 드나들다가 마침내 떠돌다 돌아온 '한돌'과 살림을 차린다.

감옥에서 돌아온 '연학'이 휘둘러대는 흉기에 '용란'은 피해 달아났지만 '한돌'과 어머니 '한실 댁'이 죽는다. 가장 불행한 딸 '용란'은 미쳐버린다.

'서기두'는 자신을 하찮게 보는 '용란'에게 연정을 품지만 '한돌'에게 뺏긴 기분에 질투를 느끼고, 흠 있어 마약쟁이이게 시집보내지는 '용란'을 어쩌지 못하다가 넷째'용옥'에게 장가를 들지만, 자신의 동생과 아버지를 돌보고 딸도 낳아준 '용옥'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이내 밖으로만 돈다.

'용옥'은 자신에게 남편의 정이 없음 알고 아파하지만, 불행에 쌓인 친정을 돌보고, 시댁 식구 챙기느라 몸을 혹사시킨다. 어느 날 밤 시아버지의 겁간을 피해 어린아이와 함께 남편이 있는 부산으로 배를 타고 가지만 통영으로 향했다는 남편 소식을 듣고 그날 밤배로 돌아오던 중, 배의 침몰과 함께 죽는다.

'용빈'이 공부시키려고 데려갔던 막내 '용혜'는 학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와 식솔들을 돌본다. 미친 언니 '용란'과 아픈 아버지 '성수'..서울서 교사 생활을 하던 '용빈'이 돌아오지만, 사촌 '정윤'으로부터 아버지의 위암 선고와 함께 얼마 안 남은 시한을 듣는다.

상 먹은 엄마와 그 엄마를 죽인 아버지를 둔 '성수'는 평생 고독하고 공허하게 산다. 아내 '한실 댁'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손댄 사업도 망하고 가산의 탕진과 함께 딸들의 불행을 겪으며 죽어간다. 다섯 딸들의 삶보다 나는 '성수'와 '봉룡', '숙정'의 삶이, '연순'의 삶과 '봉제', '송 씨'의 삶이 더 아프다. 작가는 운명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는가 보다. 비상 먹은 자손을 키우지 않는다는 모티브를 염두에 두고, 작가 자신이 신혼에 잃은 남편과 아들, 불행했던 삶을 반추하며 그시대 여인들에 있어 결혼과 남편, 그리고 아들의 부재가 여인들의 삶을 어떻게 파멸로 끌고 가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나 보다. 머슴과 사랑을 나누든, 청상과부가 되든, 약혼자와 파혼을 하든, 정 없는 남편과 살든, 그 삶을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여자들, 그 시대, 그 풍속이 만든 그런 삶... 어떤 이는 '성수'의 삶에의 무관심과 이기주의가 만든 몰락으로 보지만, 그러했던 성수의 정갈한 공허함과 고독에 더 짠했던..

- "역사가 없음 어떠냐? 역사는 곰팡내 나는 기록이지. 사람은 어떤 입지적 조건이나 생활양식 속에서도 그 당대를 살게 마련이니까." 207



- "사회의 질서라는 건 실상 나약하기 짝이 없는 거야. 그리고 또 완강하기 짝이 없는 거지. 그것은 모두 자연의 흐름이다. 기를 쓰고 덤빌 필요는 없다. 인간의 작의로 된 건 아니니까. 인간은 개인으로 살았고, 개인으로 죽었다. 어떤 변혁이 와도 인간은 의연히 개인으로 대처한다. 개인이 질 때도 있다. 그 사회의 변혁이란 역사를 위해서 혹은 어느 집단을 위해서 있었다고 생각지 않아. 개인을 위해. 개인의 생활을 위해 있었다. " 207-208



- 체념이나 균형을 잃은 자세란 언제나 약속이 된 생명의 가능 속에 있음을 김 약국은 깨닫는다. 애정도 없는 여자 집에 발길이 돌아가는 것은 자신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지, 그 여자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은 아니다. 여자 집으로 가는 것은 허둥대는 어느 상태의 연속에 지나지 못한다.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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