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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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짧지만 인간 내면의 심리 작용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그의 서술 방식에 빨려 들어 읽게 된다. 근데 오스트리아인들은 체스 게임을 좋아했나,

체스는 가장 오래된 보드게임으로 인도에서 시작되었고 11세기경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는데 군대와 전쟁을 본뜬 이 게임으로 자신의 전략을 미리 시험해 볼 수 있어 특별히 즐겼고, 귀족들의 게임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한다. 코로나 초창기에 우리 집은 쿠팡에서 구입한 자석으로 된 오목과 체스로 평화를 찾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 책은 '츠바이크'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1년 전에 쓰인 책이다.

체스 이야기 자체보다는 'B 박사'의 이야기가 더 큰 맥락을 차지한다.

유대인이었던 '츠바이크'가 자신의 책들이 나치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고 압박이 심해지자 영국으로 떠났고 이어 브라질로 망명한 상태에서

1941년 회고록과 함께 이 소설을 완성했고 [체스 이야기]는 그의 마지막 소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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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숲에올빼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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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는 1920-1930년대 전 세계에 명성을 떨쳤던 오스트리아의 전기작가이다. 그는 부유한 유대인 면직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나, 철학을 전공했고, 1차 대전 당시에는 국방부에서 근무했다는데, 종전 이후 언론인 겸 작가로 활동했으나 1933년 히틀러의 독일 집권 이후, 나치즘이라는 폭풍에 휘말려, 1934년 런던으로 망명했고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고, 곧 남미의 브라질로 옮겨갔다. 전쟁이 독일에 유리하게 전개되자, '츠바이크'의 절망감은 점점 깊어졌고, 1942년 2월,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라는 유서를 남기고 아내와 함께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프로이트'의 영향으로 인간 내면을 깊이 탐색하고 인간관계에 작용하는 심리적 측면을 예리하게 묘사하기로 유명을 떨친 그는 자신의 정신적 고향 유럽의 자멸을 보면서 우울했고, 특히나 이 책의 배경이 1차 대전 직후인 1926년인데,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그의 분노, 그의 죽음에 대한 자세, 그의 정부나 정치에 대한 생각들을 여실히 드러내주어서, 유의미한 독서가 되었다.

전쟁소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던 사랑과 이별을 소재로 한 책들을 읽게 되면서, 전쟁의 상흔과 함께 살아갔던 상처 입은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좋아해 일부러 찾아보곤 해왔다.

[바다 사이 등대]라던가, [개선문] 같은 책들이 그래서 내게는 의미 깊은 책이기도 했다.

이 책은, 1차 대전을 소재로 삼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거리인 시골의 우체국, 경직되고 인색한 관료주의 분위기와 고리타분한 관청 냄새로 가득한 곳, 우체국 소인을 찍고 전화를 바꿔주고 전보를 회신하는 지루한 일에 지쳐있는 스물여덟 살의 '크리스티네'..


그녀 나이 열여섯이던 때, 전쟁은 그녀의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고, 오빠는 전사했다. 물가는 살인적으로 치솟고 그들은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괴로움은 부모를 늙게 만들었고, 아버지가 죽자, 가족들은 전부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삼촌의 중개로 우체국 임시직을 거쳐 정규직원이 되었지만, 병든 어머니와의 생활비는 늘 빠듯했다. 뭐든지 너무 비쌌다.

어느덧 그녀의 나이가 이십 대 후반이 되었지만, 고된 노동으로 젊음을 소진해 버렸다.

전쟁은 젊음을 앗아갔고, 모든 감각을 망쳐놓았다. 이미 오래전에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춰버렸던 그녀에게는 연애도 쉽지 않았다.

그녀보다 젊은 처녀들은 성에 대해 개방적인 전후세대였지만, 그 대열에 끼지도 못한 그녀이다.

행복이 뭔지도 모르고, 행복했던 적이 언제였는지도 모르던 그녀에게 스위스에서 전보 한 통이 날아온다.


-중간생략-


슈테판 츠바이크'는 '페르디난트'를 통해 유럽에 대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크리스티네의' 변신이, 또 다른 신데렐라의 탄생쯤으로 알고, 낭만적으로 접근했다가, 바로 내가 찾던 소설이야 하면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작가가 끝까지 내보이지 않았던 미완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 완성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망설였지만, 여기까지의 결말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여겨진다.

그가 사망 후, 유고 더미에서 발견되었던 이 책은, 40년 동안 잠자고 있다가 1982년 독일에서 출판되었다.

1930년경에 쓰였으며, 작가는 제목을 [우체국 아가씨 이야기]라 했고, 출판 당시에는 [변신의 도취]라는 제목을 썼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한다.

'츠바이크'의 책은 계속 읽게 될 것 같다. 항상 기대 이상이라 읽을 때마다 놀란다. [초조한 마음]이 그랬고 [베르사유의 장미]가 그랬고, 그 책들과는 결이 다르지만, 그만의 심리 묘사는 압권이다.. 내가 좋아하는 '에밀 졸라'의 묘사와는 또 다른, 그런 그만의 색깔이 있다.

철학과 심리학에 심취한 그답게..

철학과 심리학에 심취할뻔했던 나답게 그의 작품들을 읽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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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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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 개의 각 제목을 가지고 몇 년의 간격으로 발표되었다.

각각은 연작소설이라 보기보다는 속편쯤 되는 것 같고 실은 별개로 봐줘야 이해도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나 할까..

1부 [비밀노트]는 1986년, 2부 [타인의 증거]는 1988년, [50년간의 고독]은 1991년도에 출판되었다.

[비밀노트]

전쟁이 일어나 왕래가 전혀 없던 소도시의 맨 끝에 있는 외할머니 댁으로 보내진 쌍둥이들의 이야기이다.

'우리'라는 인칭으로 묘사되는 이 이야기는

하나인 듯 둘인 쌍둥이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공동 이야기이다.

우리는 ~~였다.는 식의 서술이다.

우리의 엄마는 십 년 동안 그녀의 엄마, 즉 우리의 외할머니와 소식 없이 지냈고 그녀의 결혼 사실도 몰랐다 하며 냉랭하게 대하는 그녀의 엄마에게

그녀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우리를 돌봐달라고 부탁을 하며 다시 대도시로 떠나버린다.

우리의 할머니는 이웃들에게 '마녀'라고 불리고 그녀는 우리더러는 '개자식'이라고 부른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독살 했다는 이유로 온 동네에 '마녀'로 취급되고 있었다.

국경지대에 살고 있는 할머니 집에는 외국인 장교가 세 들어 살고 있고

정원과 가축들이 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일을 해야 먹을 것을 준다고 했고

우리는 씻을 수도 없는 곳에서 할머니의 일을 도와드리고 숲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우리는 다락방에서 아버지의 사전으로 철자법을 공부하고 작문 노트를 만들어 공유한다.

우리의 아버지는 종군기자로 전쟁터에 가있다. 아버지는 우리가 너무 우리들만의 세계에 빠져있다고 걱정했었으며 나이에 비해 너무 조숙하고 아는 게 많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2년 반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읽고 쓰고 셈하기는 기초를 닦았지만, 학교에서 비로소 분리되었던 우리는 고통스럽고 현기증을 느껴서 쓰러진 이후로 계속 우리였다.

우리는 할머니집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각종 연습들을 한다. 고통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연습을 통해서 고통, 더위, 추위, 배고픔 이런 모든 참기 어려운 것들을 이겨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더 강인해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마을 아이들의 텃새에도 면도 칼과 돌 주머니를 휘둘러 위용을 떨친다.

우리는 학교에도 가지 않는다.

의무교육 기간이라 통지서도 여러 번 왔지만 할머니는 글을 읽을 줄 모르고 우리는 읽고도 모른척했고

장학사가 왔을 때는 귀머거리와 장님인 척 연기를 해서 면제된다.

우리 이웃의 아주머니는 귀머거리에 장님이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한다. 그 아주머니의 딸은 언청이에 사팔뜨기로 부스럼투성이이다.

그녀는 때로 훔치고 구걸을 하고 몸도 내준다.

할머니 집에 세 들어 사는 외국인 장교의 당번병과도 우정을 나누던 우리는 장교를 만난 이후 그와도 친분을 쌓아서 그에게 외국어도 배우고 하모니카 연주도 하게 된다.

우리는 술집들을 돌면서 공연을 하고 돈을 벌기도 한다.

더러운 것에 익숙해졌던 우리를 씻겨주던 신부의 하녀와도 친해졌는데

폭발물이 터져서 그녀가 화상을 심하게 입는 일도 일어나는데 사람들은 우리를 의심한다. 우리에겐 숲에서 주어와 감춰둔 폭탄도 있었다.

어느 날은 노신사가 찾아와서 사촌누나라 부르라면서 우리보다 다섯 살 많은 소녀를 할머니에게 맡겼다.

그녀는 우리를 완전히 돌아버린 '꼬마 깡패'라고 한다.

전쟁이 끝나기 며칠 전에 대도시에 살고 있는 엄마가 나타난다.

우리를 데려가겠다고

그런데 엄마의 품에 여자아이가 안겨있다.

우리는 할머니와 여기서 살겠다고 우기고

지프에서 아이를 안고 내려 우리에게 다가오던 엄마는 폭탄을 맞고 죽는다. 아기도 함께..

우리는 엄마와 아기의 해골을 무덤에서 파와 창가에 걸어두었다.

전쟁이 끝나고 해방군이 왔지만

달라지리라는 기대는 기대였을 뿐

달라진 건 없었다.

우리는 할머니 곁에 있었다.

할머니도 죽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타난다.

국경을 넘겠다 하여 우리가 도와주려고 나섰는데

지뢰가 폭발해서 아버지는 죽었다.

우리 중 하나는 아버지를 따라가다가 국경을 넘어갔고

하나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온다.

 

- 이하 생략-

https://blog.naver.com/su430/222542938786

 

감정을 나타내는 말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을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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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혼란 -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서정일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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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학계의 거장 '슈테판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전기작가이다. 그의 전기와 평전을 차례로 읽어가겠다 하면서 먼저 만난 [초조한 마음]에 흠뻑 매료되어, [낯선 여인의 편지]와 [체스 이야기]도 구입해두었는데, '바하의 그녀 님' 덕분에 이 책을 먼저 만나게 되었다.

일찍이 남과 다른 시적 감수성을 간직하고, 심리학과 '프로이트 학설'에 대한 관심으로 섬세한 성격묘사가 주 특기인 그는,

보통 사람들 보다 섬세한 결을 지닌 사람이었겠으므로 남다른, 다분히 예술가적인 죽음을 선택했고 그래서 그가 선택한 죽음이 항상 화두가 되기도 하는데, 이 책의 말미에 유서의 전문이 실려있기도 하다. '자유로운 의지와 명료한 정신의 삶으로부터 이별하기 전, 적절한 때 당당한 자세로 삶을 마감하고 싶었다'고..

짧은 이야기이지만, 처음부터 몰입하게 되는 책이다.

고백서의 형식으로, 주인공 '롤란트'가 60번째 생일과 30년간의 교수 생활을 기념으로 문집을 발간하는데, 자기 인생의 진정한 전기문으로 세심하게 기록하였지만, 진정한 한 사람, 자기 운명을 결정하고, 지금의 자기이게끔 했던 '그분'은 기록하지 못하였다 하면서 40년 전 '그분'의 이야기를 꺼낸다.

- 세심하게 기록된 목차에는 200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단 한 분, 나의 모든 창조적 충동의 원천인 그 사람의 이름은 없습니다. 내 운명을 결정하고, 두 배의 힘으로 젊은 시절의 나를 다시 소환한 그의 이름은 여기에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지만 내게 진정한 언어를 부여한 사람, 그의 숨결을 통해 비로소 내가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든 바로 그 사람에 관한 내용만은 적혀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평생 나는 여러 사람의 모습을 묘사해 왔고, 지난 수백 년의 인물들을 현대적인 감각에 어울리는 가장 모던한 초상화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분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18

'롤란트'는 베를린 대학에서 영어 전공을 하게 된다. 원래 선원이 되고자 하였지만, 대학의 학장인 아버지와 타협 끝에 자신의 꿈에 그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 선택한 진로였던 것.

그가 머물게 된 도시 베를린은 자신의 성장에 스스로 놀라움에 사로잡힌 곳으로, 그 기세등등한 탐욕이 충동적 젊은이인 자기 자신과 닮아 있었고, 자신의 남성적 흥분을 더 고양시키는 곳이었다 한다.

그의 방탕과 탐닉의 위험한 수준, 다시 말해 정신적인 몰락을 진정시켜준 어떤 우연이 일어나기까지 그는 그렇게 살았다.

어느 날 자기 집에서 여자아이와 시시덕 거릴 때, 아버지가 불시에 방문을 했다.

아버지의 설교와 훈계를 질색하여 마찰을 예상했지만, 아버지는 끝내 인내했고, 그 모습에 뭔가 긍정적인 동요가 일어난 '롤란트'는 아버지의 권유로 작은 지역의 대학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러해서 3개월간 그의 허황된 사상누각을 허물고 정신적인 것에 온 힘을 쏟으려는 갈망으로 학업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기로 맹세를 하고

새로운 대학의 강의실을 둘러보다가 영문학 강의실에서 운명의 그분을 우연처럼 만나게 된 것.

'셰익스피어'에 관한 강의였는데, 자석 같은 마력에 끌려 강의실로 들어서면서 압도적인 힘에 사로잡히고, 전기에 감전된듯한 감동을 받는데, 그 교수의 용모는 정신적 기풍이 베여있는 독일 고딕체 문자의 구성 같았다. 그리고 수강신청을 위해 그 교수와 미팅을 하고, 다음 강의에 들어갔는데

그 수업은 몹시 실망스러웠다. 그의 용모 또한 평범한 나이 든 남자의 지치고 피곤한 모습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후 세미나 수업에서 그 열정을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그 교수의 열정과 역량은 학생들과 벌이는 토론식 수업에서 발휘되는 것이었다.

[중간 생략]

 

'롤란트'는 40년이 지나도록 그때의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결정지어 버렸노라고..

강의에 몰입하고 있을 때면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술을 빌린 그분이 말하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면서 그의 음성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한다.

교수의 자기 억제 회초리가 너무 가혹하다.

선천적으로 그에게 내재된 어둡고 위험한 곳으로 이끄는 힘에 맞서고자 경련과도 같은 긴장의 연속에서 삶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의지,

그의 도피..

위험하고도 아슬아슬한 이 이야기는 그런 비밀을 간직한 선생을 향한,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롤란트'라는 영문 학도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바탕으로 한 심리의 묘사를 미학적으로 승화시켰다.

그를 한눈에 사로잡은 그 교수의 용모가, 정신적인 기풍이, 독일 고딕체 문자의 구성 같았다는 표현이 절묘하여 상상해 본다.

제목이, 처음부터 인상적였지만, 다 읽고 난 후에도 적절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떤 우연한 순간, 어떤 대상에게 이끌리고, 사랑이 시작되는 감정은 온통 그렇게 혼란으로 찾아오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혼란은 묵직하게 남을 수도 있겠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이고 소년이었기에 가능하다는 것.

 

- 순수한 존경의 마음을 담은 남자의 열정이 한 여인에게 향하게 되면, 그 열정은 무의식중에 육체적인 결합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이끌리게 됩니다. 자연은 서로의 육체를 소유함으로써 최고의 결합을 이루도록 정열을 아로새겨 놓았으니까요. 그렇지만 남자가 남자에게 바치는 정신의 열정, 충족되지 않은 그 열정은 어찌해야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정열은 존경하는 인물 주위를 쉼 없이 맴돌면서 항상 새로운 황홀함을 향해 타오르지만, 자신을 바치는 최후의 순간에도 결코 가라앉지 않습니다. 정신이 항상 그러하듯 열정은 계속해서 흐르지만 영원히 충족되지 못하고 완전히 흘러가지도 못하고 맙니다. 10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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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여인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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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와 아들이라는 존재의 비밀 속으로 이끌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대로, 태생적으로,, 결코 아버지도 아들도 될 수 없는 나는, 관찰자의 관점으로밖에는 그 존재들을 바라볼 수 없었지만, 또 그 당사자가 아니어서 다른 이해도로 접근하며 때로는 즐기면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파헤치게? 되었다.

남자 작가라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이야기해보고 싶은 로망들이 있는지, 그 낯섦을 여러 작품을 통해 이미 경험해본 탓에 자연스럽게 어느 꼭지에서는 웃음과 분노의 감정도 이입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아들이란 존재의 발칙한 반란과, 아버지란 존재의 아시아적인 고리타분한 권위..

이제는, '아들은 아버지를 깨부수고 나와야 비로소 남자가 된다'는 명제도, '모든 아들들은 아버지를 파괴하고 성장한다'는 구절도 좀 시시해질정도인데, 또 누군가는 그런 말도 했었다.

남자는 아들을 낳아 키워봐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르다~~나, 딸만 키워서는 절대 모를 그런 게 있다면서, 암튼 그렇다고 했는데 다른 종인 나도,, 살면서 끄덕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소설 속 모녀의 관계에서는, 딸이 '엄마처럼은 살기 싫어' 정도의 수동적인 모티브가 고작이라면

아들들은 아버지를 파괴해야, 깨부숴야 한단다...

다시 한번 아버지도 아들도 되어 불 수 없음이,, 다행인 건가 하면서 ㅎㅎ

가가 되고 싶었지만 지질학 엔지니어 겸 건축업자가 된 '나', '젬'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

약국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정치적인 동지들과 어울리면서 한때 정치 관련 부서로 연행되어 전기고문도 받았던 역사가 있는데 이번 가출은 그때와는 다른 뭔가가 있다.

잘생기고 멋쟁이고, 몸매도 좋은 아버지는 좌익 주의자로 바람둥이였다. '젬'은 그런 아버지의 외모를 쏙 빼닮았다.

이스탄불에 살고 있던 '젬'은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이 끊기자 대학 입학 학원비를 모으려고 서점에서 일하며 책을 읽고, 작가가 되리라 했다. 아버지가 사라진 후 어머니와는 좋은 친구로 지낼수 있었다.

이모부 집에 세 들어 살면서 밭을 지키는 일로 용돈을 받던 '젬'이, 유명한 장인 '마흐무트 우스타'의 우물파기 작업을 구경한다. '젬'에게 깊은 우물은 파내려 갈수록 아래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별들의 곁으로 신과 천사들의 나라로 올라가는 듯한 신비한 체험이었다.

물 파는 일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제의에 어머니 반대를 무릅쓰고 장인의 조수 일로 따라나섰고, 그들은 이스탄불의 옆 동네 왼괴렌의 천막에서 기거하며 새로운 우물파기 작업에 착수한다.

그땐 천공기가 없던 시절이라, 몇천 년 동안 이어진 대로 직감에 의해 수맥을 찾아 우물을 파는데, '젬'은 '마흐무트 우스타'를 보면서 막연하게 아버지를 느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마흐무트 우스타'는 '젬'과 함께 아침부터 우물을 파고, 저녁이면 함께 담배를 사고 철물점, 목공소에 들르러 마을로 내려간다. 그는 코란에서 인용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젬'을 훈육하였다. 그는 '젬'의 스승이자, 아버지였다. 우물파기의 장인과 조수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처럼 되어야 하고, 자신도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우물파기의 기술을 배웠고 '젬'또한 그의 훌륭한 조수가 되려면, 자신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젬'은 '마흐무트 우스타'를 자신의 아버지와 비교하고 그를 통해 그리워하면서 지낸다. '젬'에게 '마흐무트 우스타'는 자신의 아버지를 대체할 새로운 아버지였다.

늘 이야기를 들어오던 '젬'에게 너도 이야기해달라고 했을 때, 왠지 '젬'은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들려준다.

느 날 마을의 기차역 광장에서 일행들과 함께 있는 '빨강 머리 여인'을 처음 본 '젬'은 그녀의 큰 키와 특이하고 매력적인 아름다움에 사로잡힌다.

그녀 역시 그를 계속 주시했다.

매일 밤, 그녀를 또 보고 싶어서 그녀의 방인듯한 창문을 바라보다가 천막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던 중, 그녀 일행을 발견했다. 그들은 유랑극단의 단원들이었다.

우물파기는 이십여 일이 지나도록, 물의 행방을 예측할 수 없었다. 큰 바위가 연이어 나타나고 흙의 상태는 수맥을 예상할 수 있는 빛깔도 습도도 아니었다.

그들은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희망 없음에 지치고, 사업시행자의 아들이자 또다른 조수였던 '알리'도 떠나지만, '마흐무스 우스타'는 그래도 확신한다며 계속 진행한다.

마을에 내려가 극장을 찾은 '젬'은 '빨강 머리 여인'의 연기를 본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나이는 더 들어 보이고, 자기의 생각보다 아름답지도 않았지만, 그녀의 장난기 가득하고 달콤한 표정이 삼주 넘게 계속되는 우물 파는 고된 노동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그녀가 속한 유랑 극단은 허름한 정치 성향의 민간 극단이었다. 그들은 혁명적인 민중 연극을 공연하며 명맥을 유지했는데 정치적인 탄압을 피해 아주 오래된 사랑 이야기나 전설, 이슬람과 신비주의에서 유래하는 이야기들을 촌극으로 다루었다.

 

(중간 생략)

 

2006년 노벨 문학 수상자 '오르한 파묵'은,

우리나라에서 제법 많은 팬들을 독자로 갖고 있는 작가이다.

1년에 한 번씩은 꼭 만나야 하는 사람.. 이 책은 그의 최신작인데,, 아직도 작가로서 앞날이 창창하고, 그의 서술의 힘과 독창성,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빼어난 스킬은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터키라는 나라의 존재감과 함께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을 우물 같은 이야기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고 여겨져 고무적이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은 추리적인 요소도 가미되고 씨실과 날실을 넘나드는 숙련된 언어의 직공같단 생각도 든다. 현대남자 작가의 플롯에 대한 기교면에선 단연으뜸이라고도ᆢ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다룰지 또 기대하며, 그가 세운 '순수 박물관'은 언제나 보러 갈 수 있을까 헤아려본다.

'젬'이 밤하늘의 별을 보는 장면의 묘사가 종종 나오는데, 군청색 밤하늘에 가득 찬 별들을,, 아직도 이스탄불에서는 만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이 이미지에 사로잡혔다. 내게 있어 이 책의 컬러감은 '궐지한'의 '빨강 머리'가 아니라 별이 빛나는 '군청색의 밤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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