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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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월을 하면서, 봄이 되면 남한산성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작가 '김훈'은, 병자년의 겨울에 흔들려, 약소한 조국의 무참한 운명이 슬픔으로 옥죄여, 이 이야기를 썼노라고, 그리고 조국의 성에 이 글을 바친다고 서문을 연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원군을 지원했던 '명'나라는 한 왕조의 몰락이 그러하듯이,. 국력이 쇠약해지고, 궁핍해지는 망국의 징조를 보였고, '누르하치'는 '여진족'을 통일하고 1616년 '후금'을 건국한다.

'명'을 숭배하던, 조선의 사직( '사직'이라는 표현을 쓴다. '사직'은 나라 또는 조정을 일컫는 말로, 작가가 쓰는 이 단어가, 이책을 리뷰함에 있어서 가장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되기에..)은 '명'과 '청'사이에서 노선을 헷갈려 하였다.

떠오르는 샛별, '청'의 세력도 무시할 수 없고, 오랫동안 '명'을 숭배해왔던 명분과 의리도 져버릴 수 없었기에, 그 갈팡질팡의 사이에서 '광해군'의 중립 의도는 배척되었고, 대신들은 '인조'를 앞세워 1623년 '친명배금'의 반정 정권을 세운다.

1627년 '후금'의 침략으로 '정묘호란'이 일어나고 강화도로 피난했던 사직은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는다. 세력을 키운 '후금'은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조선에게 형제 관계를 수정해서 군신 관계로서의 예를 갖추기를 요구하나, 받아들이지 않자 1636년 추운 겨울에 '병자호란'을 일으킨다. 호란, 북쪽의 오랑캐, 조선에게 여진족은 한낱 오랑캐일 뿐이었던 것이다.

무 급히 남하 하는 청군들을 피해 9년 전의 호란처럼(정묘호란), 강화도 천도를 도모했으나 이미 길이 끊겨서 빈궁과 원손, 왕자들만 먼저 보내고, 왕과, 세자는 '남한산성'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45일간의 버팀이다. 그건 전쟁도 항전도 아닌 그냥 버팀, 차라리 견딤 이었다.

이야기는 청군이 둘러싸고 있는 남한산성 안에서, 척화론의 대표 선수 '김상헌'과, 주화론의 대표 선수 '최명길'이 통탄하는 유약한 임금 '인조'를 에워싸고, 삼전도에 와있는 청태조 '누르하치'에게 항복하러 가기까지의 말(言)들과 말들 또 말들이다. 그 말(言)들에 대의와 명분이, 가난하고 어진 백성을 향한다는 마음이, 사직을 위한다는 희생이 들어있다.

당시 '척화(화친하자는 논의를 배격하고, 숭명배청하자는 주장)'가, '주화(전쟁을 피하고 청과 화친하여 평화롭게 지내자는 주장)'가, 또 '최명길'이, '김상헌'이,..누구의 처신이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그 후로도 학문하는 자들의 많은 논제가 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최명길'은 그 후 영의정까지 오른다. 그리고 절개를 지키고자 했던 '김상헌'은 세도가 안동 김씨의 출발이 된다.

'남한산성'은 백제의 옛 땅으로 시조 '온조왕'의 사당이 있다. 위기 속에서 근본을 찾아야 한다는 '김상헌'의 간청대로 임금의 분부하에 영의정 '김류'와 이조판서 '최명길', 그리고 예조판서 '김상헌'이 제사를 지낸다. 위난 속에서 오히려 강성했던 '온조'의 나라를 떠올리며, '온조'의 혼령에 술을 바치는 장면..

꽁 언 땅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적들에게 송구영신의 예를 갖추자고 소를 잡아 세찬을 전하며, 물론 거부당하지만, 북경을 향해 명의 천자에게 올리는 예법이라는 '망궐례'에 임금과 세자가 나가서 춤을 추도록 되어 있다는데, 상중인 세자는 놔두고 임금이 홀로 추는 춤사위, 그리고 그 춤을 봉우리서 지켜보던 '누르하치'의 답답함.

그래서 '누르하치'는 이 무력하나마 고집 세고 아둔한 사직을 긍휼히 여겨서 부숴버리지는 않은 건지..

'칸'(누르하치)에게 보낼 항복의 국서 작성이, 훗날 후세 만대로 이어질 치욕이 될까 두려워하여 자결을 해야 했던 사람들을 대신해서 결국엔 '최명길'의 일이 된다.

내용을 둘러싼 대신들의 말(言)과 말들, 이미 힘 빠진 임금은 대안 없는 그 말들의 고문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최명길'은 자신의 문서는 글이 아니라, 길이라고, 임금이 밟고 걸어가셔야 할 길, 사직이 살고, 백성이 살수 있는 길이라고 읊조린다.

'김상헌'은 삼전도로 가는 임금의 발아래 시체로 놓여서 전송하겠다고 자결을 시도하다가 도승지의 발견으로 미수에 그치고, 그 소식이 임금에 전해지고.. 임금은 비로소 '김상헌'이 자신을 보내주려고 했다고 여긴다.

보기로 척화 세력의 당사자를 연행해 오라는 '누르하치'의 명령대로, 임금이 누군가를 직접 데려갔어야 했는데, 당하관 두 사람이 척화신으로 묶여서 청진에 나가겠음을 자청하는 글을 올린다. 그 둘의 뜻을 가상히 여긴 임금이 젊은 그 둘을 만나 술을 내리며 연유를 묻다가 오열하는 장면에 울컥했다.

강화도로 피난했던, 빈궁을 비롯한 왕족들을 찾아 나선 청군들은 '김상헌'의 형 '김상용'의 자폭에도 아랑곳 않고 그들을 삼전도로 데려온다.

성에 남은 사대부와 궁녀들의 통곡 속에서 새벽에 성을 나선 임금은, 구층 단위에 올라 앉은 '칸'을 향해 삼배하고, 가까이 올라, 그가 내린 술 석 잔을 받으며 한 잔마다 삼배를 또 해야 했다. 이마를 땅에 찧으면서..

금은 도성으로 다시 돌아오고, 그의 세자와 왕자들은 청나라로 끌려가고, 산성안의 민초들은 사직이 나가고 나서, 예측했던 청군의 무자비한 침략을 걱정했지만, 청군은 고요히 돌아갔고, 비로소 봄을 맞는다.

 

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강들은 먼 하류까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언 강이 터지면서 골짜기가 울렸다. 그해 눈은 메말라서 버스럭거렸다. 겨우내 가루눈이 내렸고, 눈이 걷힌 날 하늘은 찢어질 듯 팽팽했다.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습기가 빠져서 가벼운 바람은 결마다 날이 서있었고 토막 없이 길게 이어졌다. 칼바람이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눈 덮인 봉우리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길게 울었다. 주린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오다가 눈 구덩이에 빠져서 얼어 죽었다. 새들은 돌멩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졌고, 물고기들은 강바닥의 뻘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람 피와 말 피가 눈에 스며 얼었고, 그 위에 또 눈이 내렸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31-32

...온조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최명길의 이마가 차가운 돗자리에 닿았다. 왕조가 쓰러지고 세상이 무너져도 삶은 영원하고, 삶의 영원성만이 치욕을 덮어서 위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최명길은 차가운 땅에 이마를 대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치욕이 기다리는 넓은 세상을 향해 성문을 열고 나가야 할 것이었다. 236

군신이 함께 삼전도로 가더라도 전하의 길이 있고, 저 두 사람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전하, 먼 후일에 그 두 길이 합쳐질 것이옵니다.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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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와 마녀
박경리 지음 / 인디북(인디아이)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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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님 리뷰를 보다가 건진 책, 소설의 반이 제목에 드러나 있는, 삼류소설 같은 소재, 삼류 드라마 같은 내용의 책을 읽게 되었다.

1960년에 발표한 책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치른 10년 후의 소설이란 점을 감안해야 하고, 그 시대가 요구하던 여인상, 그시대가 원했던 가정이란 제도에 대한 도전을 하는듯한 '박경리'의 이 작품은 '토지'보다도, '김약국의 딸들'보다도 훨씬 이전, 그녀의 초기작쯤 되겠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하고, 그간의 아침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 막장 소재들의 모티브가 되었었음을 짐작할 수도 있다.

'박경리'는 "나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문학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가 되느니보다는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실제 그녀는 19세에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고, 수도여자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교사 재직 중에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는다. 그리고 세 살 난 아들도 잃는다. 그녀의 삶은 불행한 가족사와 더불어 인간에 대한 이해, 여인으로서의 삶 등에 대한 깊은 고찰의 결과로서의 문학사라는 생각이 든다.

'안 원석'이라는 저명한 외과의사는 6.25로 부인을 잃고 그 아내의 먼 친척뻘이던 가정부 신여사와 22세의 생일을 맞는 딸 '수미'와 그 위로 아들 '수영'을 두고 있다.

그에게는 집에는 들이지 않는 어떤 여인과의 삶이 있고, 가정부는 집안일을 교양 있게 잘 처리하고 아들은 음대의 강사이자, 작곡가이며 딸은 그림을 그리는 '허 세준' 이라는 약혼자를 두고 있다.

'수미'의 22세 생일을 맞이하여 '수영'과 '수미'의 친구들이 오원장의 집으로 초대된다. 그 초대에 참석한 남녀들 간, 사랑의 변주와 인생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들 '수영'은 자신의 음대에 다니는 학생, '형숙'이라는 여인에게 빠져있다. '형숙' 은 '수미'의 친구이기도 하다. 초대받아 온 자신의 집 정원에 서 있는 아들과 '형숙'의 긴장된 밀당을 본 안 원장은 작위적으로 개입하여 그들의 긴장을 방해한다.

안 원장은 '형숙'이 못마땅하다. 자신의 과거 여인 기생, '국주'를 쏙 빼닮은 그녀의 모습에 나쁜 피가 흐른다고, 요녀라면서 '형숙'과의 교제를 반대하는 의사를 '수영'에게 밝히며 반발하는 아들에게 '형숙'이 고모로 알던 '국주'가 사실은 그녀의 엄마였으며 그녀가 부모로 알던 부부는 외삼촌과 외숙모였음을..

리고 명문가이자 지주 가문의 자제였던 자신이 한때 '국주'란 여인에게 빠져 애욕으로 인해 정신을 못 차렸으며 가산도 탕진하는 등 가정의 위기도 있었으나, 아내와 처가의 도움으로 유학을 다녀오고, 이 남자 저 남자를 떠돌던 '국주'는 아편쟁이가 되어 자살했고 많은 돈과 함께 자신의 아이를 동생 부부에게 맡겼다는 이야기도 들려 준다. 그녀 '국주'는 애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만나는 사내마다 망쳐 놓는 악녀, 요녀 였다고 일축해버린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무 밑에서 엿듣던 '형숙'은 충격으로 쓰러진다.

그날 초대된 '문하란'은 여고의 영어 교사로 안원장의 친구 딸이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그녀를 후원해주면서 자신의 며느리가 되어 주기를 바라고 '하란' 역시 '수영'을 흠모하지만, 오로지 '형숙'만 바라보는 '수영'으로 인해 낙심을 한다.

그런 '하란'에게 '수영'의 동료인 '박현태'가 접근 하지만, '하란'의 마음은 '수영'에게만 향한다. 그리고 늦게 나타난 '수미'의 약혼자 '허세준'은 '하란'을 보고 심상치 않은 정서를 갖게 된다.

절했던 '형숙'이 매몰차게 '수영'을 거부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서는 만나 주지 않자 '수영'은 애가 타서 주위를 맴돈다. 그녀는 성악가 지망생으로 매혹적인 외모와 음악적인 웃음소리로 이미 '수영'을 온통 지배해 버렸다. 그러나 자신의 나쁜 피에 대한 원망과, 안 원장에 대한 복수심에 달뜬 '형숙'은 '수영'을 농락 해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있다.

그래서 그를 자극하고자 '수영'의 동료 '박현태' 에게 접근한다.

생일파티에서의 소동에 잠을 못 자고 출근했던 '하란'이 쓰러지고 입원을 해 있는 동안, 결혼 문제로 아버지와 대립하던 '수영'은, 변심한 '형숙'의 태도에 지치고, '현태'와의 관계를 목격 하고는 술에 취해 병실을 찾는다. 그리고 그녀를 능욕한다. 일종의 자학을 하듯이 .. 그리고 결혼을 해버린다.

한편 '박 현태'와 결혼을 하기로 했던 '형숙'은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하고는 유학을 가버린다.

'하란'은 딸 '희'를 출산하고, 유명한 가수가 되어서 돌아온 '형숙'과 우연히 재회한 '수영'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형숙'은 자신의 독창회에 '수영'을 초대도 하고 노골적으로 유혹을 하기도 한다.

'허세준'은 '하란'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자라나 '수미'와의 약혼을 파한다. 쿨한 '수미는 곧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지만, 자궁 외 임신이 되어서 죽게 된다.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은 안 원장은 서재에 틀어박히고, 병원도 넘어간다.

집안의 침울한 분위기 속 방황하던 '수영'은 '형숙'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공공연하게 외박도 일삼는다. '형숙'과의 만남을 짐작하고 있는 '하란'은 불행해 한다.

'형숙'은 다른 남자와의 데이트도 즐긴다. '수영'은 그런 그녀가 못마땅해서 죽여버리고 싶은 분노를 느끼기도 하지만, 막상 그녀가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면 녹아내린다. '형숙'은 자신의 삶은 생활의 기교를 부리는 것일 뿐 이라며, 자유롭고 싶다고 한다. 자신은 수영의 아내도, 노예도 아닌, 애인이고만 싶다며...

남자는 여자에게 지나간 이야기는 하지 말자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미래의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한다.

과거도 미래도 없는 지금 이 순간만 살기를 원한다고..

편에게 무시당하고 학대받으며 고통에 빠진 '하란'은 '허세준'의 고백을 되새긴다. 그녀가 불행해지기를 원한다고, '수영'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며..

그가 잠시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어쩌지 못하고 맴돌던 '하란'은 그 선을 넘지 못하고, 차라리 그녀를 떠나서 이방인이 되어 살고 싶다던 '세준'을 파리로 떠나보낸다.

여전히 다른 남자들과도 자유로운 관계를 즐기며 살던 '형숙'에게 만만치 않은 남자가 나타나고 정보기관에 근무한다던 그 사내의 치정에 의한 복수극은, '수영'을 쏘려고 겨눈 권총을 막아선 '형숙'의 가슴에 꽂히며 끝이 난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해보지만, '형숙'은 죽고 오랜만에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았고, 결국 가정이라는 질서 속에서 대면한다는 작가의 작위적인 설명으로 막을 내린다.

마녀 '형숙'은 팜므파탈의 전형이고, 성녀 '하란'은 현모양처의 전형이다. 결국 자신이 사랑한 '수영'을 갖지 못한 '형숙'은 어떤 남자도 가지지 않고 머물게 둔다. 그 가운데 수영을 놓아둔 채. 그녀 또한 누구의 것도 되지 않는다. 자유라는 갈망 아래...

정부 신여사가 '수영'의 방황을 '하란'에게 위로하면서, '수영'이 치우쳐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한다. 유럽의 소설 속 멋진 남자들이 로망하는 '균형 잡힌 인간의 지향'과 비교해서 이 문구가 와닿는다. '수영'도 '안 원장'도 결국엔 치우쳐 있는 사람이다. 무엇 하나에 빠지면 헤어 나지 못하는 캐릭터, 나에게도 다소 그런 경향이 있지 아마도.ㅎㅎ그러므로 내게 있어 문학은 균형잡힌 인간의 지향쯤 되겠다

 

 

밤은 마술사처럼 살벌했던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놓았다. 모든 것이 낭만이고 꿈이다. 하물며 서로 사랑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온 천지는 사랑의 영가를 불러주고 있는 것이다. 말이 없어도 그들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으며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들은 서로의 행복을 그대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다만 황홀할 뿐이다. 22

"잃지 않으리라는 집착보다 더 무서운 힘이 필요한 거예요. 나는 그 힘이 무너지지 않게 외형상 내 행동의 자유를 취하는 거예요. 역설이죠. 궤변이죠. 그러나 마음은 언어를 초월한답니다."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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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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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 인간'을 읽을 당시 그 특유의 페이소스를 자아내는 유머 코드와 귀한 남성 작가의 서정성에 놀라고 감동하며 각인시켰던 작가 '성석제'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그를 소개하는 바로는 '해학과 풍자 혹은 과장과 익살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국면을 그려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고 하고, 단편 소설로는 꽤 많은 작품을 발표해 왔다.

장편 소설을 선호한다는 핑계로 등한시했던 그를 다시 찾으며, 다시 한번 그에게 놀라고, 이 작가를 감히 애정 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첫사랑'이란 제목으로 총 8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역시 그 특유의 쓸쓸함과 또 해학, 페이소스는 블랙코미디 작품 중 으뜸이 아닐런지, '투명 인간'의 강렬함이 다시 밀려와, 그의 다른 작품들도 기웃거려 본다.

이 작가는 어찌 이리도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인칭과, 다양한 화법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가? 가독성은 또 ..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1995년 발표

'천 길 낭떠러지에 선 소나무 가지에 한 손으로 대롱대롱 매달렸을 때 사내대장부라면 마땅히 그 손을 놓아야 한다'.고 평생 떠들고 다녔던 그는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그 지역의 능력자 깡패 '마사오'를 영웅시하고 동경한다. 그리고 걸출한 싸움꾼이 되어간다.

그는 지금 분노와 과속으로 커브길의 속도제한을 무시하고 난간과 충돌한 이후 추락 직전에 있는 값비싼 차 안에 '청바지'라는 여인과 놓여있는 상황이다. 그때 자신의 결혼식에서조차 역설했던 바로 그 슬로건을 떠올리고, 추락하기까지의 4.5초 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마사오'를 능가하는 독자적인 깡패가 되겠다고 결심을 한 이후,. 주먹세계에 발을 들인 그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가장 큰 조직의 행동 대원이 된다. 세를 확장해 나가던 그가 큰 술집을 차리게 되었는데, 자신의 술집에 와서 공짜 술을 얻어먹던 '청카바'에게 자신이 넘어야 할 산 '마사오'를 유인해오라는 부탁을 한다. '청카바'는 그와 함께 새벽기차를 타고 고향에서 떠나간 후 다른 조직에 몸담은 역시 깡패이다. '청바지'는 '청카바'와 또 그렇고 그런 사이이고,

자신의 술집에 와서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던'마사오'의 오른팔을 등산용 손도끼로 잔인하게 부숴버린 후, 경찰의 비호 아래 도박장도 운영하게 되었고, 인력 관리에 자금 관리 등 바쁜 와중에 자신이 '마사오'를 비겁하게 떼로 덤벼서 해치웠다는 불명예스러운 소문이 번졌다. 그 소문의 진원이 '청카바'인것을 직감한 그는 '청바지'를 데리고 '청카바'를 찾으러 나선 길, '청카바'로 착각하고 부른 사내가 한 팔이 없는 '마사오'였음에 기겁을 해서 ...

과속으로 미끄러지고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사나이의 죽음에 대한 자세를 논하던 그가 마지막 순간 물에 빠져 죽기 전 내뱉은 말은 "엄마, 무서워"..

[조동관 약전] - 1997 년 발표

하의 무법자, 그 지역 역사상 길이 남을 깡패 '똥깐'이라고 불리는 '조동관'의 일대기이다. 그의 난동과 행패는 경찰조차도 알아서 피해 주는 정도이다. '똥깐'에게는 '은관'이란 쌍둥이 형이 있기도 하다. 그 역시 양아치쯤 된다. 그런 그에게도 숙명적인 여인, 결코 만만치 않은 임자가 나타난다. 자신의 어머니와 언쟁을 벌인 후 가출해 버린 그녀를 찾아 전국을 떠돌지만, 결국엔 찾지 못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 행패를 일삼으며 지내는 중, 형과 술을 마신 어느 날, 새로 부임하는 마을의 경찰서장 행렬을 보게 된다. 평소 파출소에서는 익히 '똥깐'이를 아는지라, 서장의 초행길을 망칠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데, 재미 삼아 개기고 있다가 서장과 대면하게 되고, 충돌은 결국 서장의 봉변으로 끝난다.

형 '은관'이 체포되자, 대치 끝 경찰 몇 명을 떼려 눕히고 동굴로 피신한 '똥깐'은 회유와 협박에도 아랑곳 않고 웅장하고도 다양한 욕설을 내뱉으며 대치하다가 얼어 죽게 되는데,

그가 은신하던 그 동굴은 훌륭한 깡패가 되려는 소년들의 필수 순례지가 되었고, 그 마을 '은척'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모범 경찰의 치안을 갖춘 곳이 된다.

[경두]-

의 소설 전부가 다 이색적이지만, 특히나 이색적인 소설이다. '경두'라는 소년의 이름이 계속 후렴구처럼 붙는다. ~~~. '경두'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는 열다섯 살 소년 '경두'

술 취한 아줌마의 무보험 차에 받쳐 병원으로 실려온 '경두'

병실의 다른 환자들을 돌보아주는 오래 입원한 환자가 된 '경두.'

사고의 현장을 목격하고 신고한 택시 기사도, 병원의 사무장도 부모 없는 '경두'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가고 그 아줌마의 진술도 바뀌어가서 보상금은커녕 치료비나 겨우 받을까 말까 한 '경두'

밤마다 환자복을 갈아입고, 외출해서 전자오락과 비디오방의 액션 영화를 즐기는 '경두'

면허를 딸 수 있는 나이가 도래해서 쇼바를 만땅 올리고, 불바퀴를 달고, 안테나를 단 진짜 오토바이를 타고 싶은 '경두'

아르바이트를 해서 오토바이를 사고 싶었던 '경두'

행여 보상금을 받으면 오토바이를 살수 있었다 싶은 '경두'

단지 멋있으니까, 바람에 머리를 휘날리니까 기분이 좋아서 쭉쭉 빵빵한 계집애들의 태워달라는 애원을 꿈꿨던 '경두'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자유롭다는 '경두'

친구의 꼬임에 오토바이를 얻어타고 그 꼬임에 다른 아이의 돈을 빼앗었다가 부자인 그 친구는 돈으로 풀려나고, 그 친구를 꾀어서 불량한 짓을 하게 한 천하의 몹쓸 놈으로 낙인찍혀 학교까지 쫓겨났던 '경두'

경두'를 앵벌이 취급하는 삼촌이란 존재의 등장과 사고를 낸 당사자가 돼버린 '경두'더러 부모님을 모셔와야 한다고, 안 그러면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그 아줌마

두려움 속에서 잔뜩 웅크리던 너, '경두'

너는 돌아오지 않았다. '경두', 너는 오토바이가 됐다. 우주를 넘어 날아가 버렸다. '경두','경두'....

안쓰러운 경두~~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1997년 발표

들과 아버지..

아들은 아버지를 깨부수고 나와야 결국 남자가 되는 건가?

서로를 가장 잘 알고, 그러므로 이해할 수도 있고, 전혀 이해할 수도 없는, 그래서 가장 먼 사이..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해서 가장 노릇을 했던 상사 출신의 아빠는

엄마와 아들들의 성장과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엇박자만 낸다.

아들은 성장해서 좋은 차를 몰고 아버지가 일하는 공사판에 도시락을 나르고,

삐쳐 있던 아버지는 그가 내민 도시락(그전에 엄마가 정성껏 싸던 도시락이 아닌, 일식집에 특별 주문한)을 던져 놓는다.

아들의 값비싼 차에 관심을 보이던 공사판의 친구들에게 보란 듯이 뻐기며 아들과의 대화를 유도하는 어쩔 수 없는 아빠를 깨닫는 중년의 아들..

[이인실]

대 아저씨의 암수술을 받기전 도뇨관으로 인한 실갱이 끝, 재미난 에피소드..

결국 아들도, 본인도 몰랐던 암.. 사람의 목숨을 쥐고 있는 병원의 권력과 시스템에대응해 보려는 나를 비롯한, 그 꼰대의 두려움과 무지가 주는 생애의 한 지점..

[유랑]

'취생옹 첩실 하세가와 도미코의 봉별서'란 부제가 붙어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조선에서 퇴거를 하던 일본인의 부모로부터 버림받게 된 여인 '도미코'가 대 종손가의 첩실이 되어 남은 인생을 살지만, 창녀로 전락할뻔했던 그녀를 구해주고 그녀의 남자가 되어준, 대종손에게 반하고 평생을 사랑하며 받들던 매력적인 일본 여인의 기구한 삶..기구한 떠돎.. 조선말을 겨우 하는 그녀가 작가를 통해 평생 그녀의 남자였던 병중에 있는 대종손에게 보내는 공손한 편지글.

[새가 되었네]-1996년 발표

'투명 인간'이 생각나는 부도를 맞은 어느 사업가의 이야기,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기둥으로서의 삶이,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한 일이 없고, 정직했던 그가 겪어야 할 부조리함에 대한..

하여 그는 마지막 '새가 되었다'.

[첫사랑]

학생 미소년들의 첫사랑 이야기.

동성에 대한 동경..

한때의 미망에 들뜬 사랑에 대한 취향이란 것이, 만들어져 가는 혼돈의 시대 사춘기, 그들은 그렇게 남자가 되었을까?

 


- 이 세계를 끌고 나가는 힘의 반은 소문이다. 소문이 무슨 상관인가. 증거와 사실이 중요하지 않는 냐고 묻는 사람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그건 다른 세상, 좋은 세상 사람들 이야기다. 청카바는 소문의 진원지다.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도 그의 입에서는 그럴듯한 전설과 신화로 탈바꿈한다. 전설과 신화로 무장하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 32



- 그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그때 아빠가 과거의 위엄과 당대의 소중함을 믿고 지키려는 문지기들인 아버지들의 대표격인 수구파 대왕이었다면 나를 비롯한 우리 여남은 명의 일당은 막 뿔이 돋아난 도깨비들이었다. 우리의 최대의 적이 바로 내 아빠라는 사실 때문에 나는 일당들에게 늘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만큼 더 용감히 사고를 치고 다녀야 했다. 113



네 손길에는 소름이 끼치도록 부드럽고도 질기고 단호한 힘이 들어 있었다. 그건 사랑에 빠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230



-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서 도는 행성과 같았다. 너는 슬픔에 잠겨 네 마음대로 했고 나는 시름에 겨워 내 마음대로 했다.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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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3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란 작가가 요새의 대세던가? 여러 블로그의 최신작 '여행의 이유' 리뷰들이 많다. TV에서도 많이 나온다 하고 가수 '이적'과도 절친이라는 그를 이 책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처음 접하게 된다. 어느 이웃의 강력 추천으로 '아랑은 왜'와 함께 구입해 두었던 책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고도 하니, 영어도 능수능란하겠고, 각종 상들을 휩쓴 이력이 보인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등지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작품속 언어는 비교적 번역 하기가 수월하다고도 한다.

특한 소설이다. 죽음에 관한 세 편의 명화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엮어가는데, 중편소설의 분량쯤 된다고 보면 되나, 무튼 짧다.

세 편의 죽음 그림과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인 '나'는 고독한 사람의 피로를 간파하고 죽음으로 안내하는 카운슬러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면서, 중간중간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다.

화자인, 비디오 아티스트 c와 총알택시 기사인, 그의 동생 k가 있고, 그 형제와 같이 얽힌 여자, 유디트를 닮은, '세연'이 있다. 또한 c의 작품 속 흘러가는 예술행위의 불멸을 자의든 타의든 도모하는 여인 '미미'가 있다. 그들은 자기의 삶을 스스로 파괴해 간다.

출처: 네이버

랑스 자코뱅의 혁명가 '장 폴 마라'의 모습으로, 그는 25세의 여인에게 피살당한다. 그리고 혁명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마라'의 죽은 표정에 대해 불의의 기습을 당한 젊은 혁명가는 고통스럽고 증오하면서도, 이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다비드'가 이 모든 감정들을 죽은 자의 표정을 통해 구현했다는 것이다. 흉부의 칼자국과 욕조 바깥으로 떨어져 있는 피 묻은 칼, 왼손에 쥔 편지와 오른손에 쥔 펜대, 푸르스름한 모포로 이루어진 그림 전체를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주목해 본다.

출처, 네이버

c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집에서 동생 k와 정사를 벌이던 여인 '세연'을 보면서 c는 그녀가 유디트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유디트'라는 여인은 '이스라엘의 논개'쯤 되는 미망인으로 자신의 나라를 치기 위해 파견된 적의 명장 '홀로 페르네스'를 유혹한 후 목을 벤다. 이 그림에서 정염 가득한 저 표정과 오른손으로 쥐고 있는 적장의 목을 비로소 주목한다.

  출처, 네이버

쟁에서 패한 '바빌로니아'의 왕이 자신의 성이 함락되기 직전, 무사를 시켜서 왕비와 애첩들, 그리고 자신의 애마까지 죽이는 모습이다. 그리고 자신도 죽을 것이다.

희뿌연 여성의 나체와 몸부림에 주목할 뿐, 스쳤던 이 그림 속 붉은 침대 위에서, 그 죽음을 관조하는 '사르다 나팔'의 모습이 들어온다. 작가는 죽음을 주재하는 내면에 대해 괴로운 표정이 아닌, 저 모습으로 표현한 작가에 대해 진정으로 감정이입이 되었노라고 언급한다.

자는 '세연'과 '미미'의 죽음에 관여한다. 텅 비어 있는 그녀들의 고단함을 알아보고, '클림트'를 매개로 접근하여,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최후의 휴식을 제시해준다.

멀리 왔는데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느냐고. 휴식을 원하면 내 손을 잡고 따라오라고..

마지막, 자신도 피로를 느낀다고, 그리하여 화자의 암시를 통해, 압축의 미학, 죽음의 미학, 그리고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는 메시지는 소설에서의 두여인과 c, k에게 뿐아니라 인간의 지리멸렬한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의 소모에 대해 잠깐 머리가 아뜩해진다. 반면 치열하게 살다가 소멸하고 싶다는 바램과 함께..

한 권의 이 책을 통해 과연 '김영하'라는 작가는, 독특한 자기 세계가 확실한 작가이고, 심플하고 세련된 문체로 현대인의 공허를 서술할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딩크족으로 유명하다는 '김영하'는 30대 초반에 자식을 낳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고.. 영생에 대한 관념들을 동의하지 않으므로 자신의 소설을 관통하는 허무주의에 대해 변하지 않을 것 같다면서 ..

 

-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유쾌하다, 그 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책을 읽어도 되고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해도 재미있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어떤 부채 의식에도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다. 반대로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일은 불쾌하다. 그 시간은 사람을 조급하고 비굴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C는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93

☞이것과 비슷한 이유로 나는 늘 기다리는 입장에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게 할 수없다는 강박도 있다. 가끔 작가들을 통해 나의 행위가 합리화되고 위안이 되는 발견의 기쁨

- "생물이 화려한 색을 가지고 있을 때는 크게 두 가지 경우야. 누군가를 유혹해야 하거나 아니면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때." 101



- 백색 캔버스. 원시인이 처음 예술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런 주장을 폈다. 그것은 인간 내부에 잠재해 있는 백색공포 때문이라고. 텅 비어 있는 하얀 벽은 그 자체로 충분히 공포스럽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벽에다 낙서를 하고 번쩍이는 새 차의 표면에 칼로 흠집을 낸다. 가구가 없는, 그림 한 점 걸려 잇지 않은 그런 방이 두려워 사람들은 채우고 또 채운다.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는 밤늦은 시간의 전화는 불면증을 불러온다.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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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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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의 제목이 인상적이지만, 와닿는 단어가 아니었다. '구병모'라는 작가의 이름도 왜 그리 고딕체처럼 느껴지던지... '파과'는 주인공이 냉장고에서 잃어버렸던 맛 좋은 복숭아를 잊고 지내다가 썩어버린, 뒤처리를 하게 되는, 못 먹게 된 과일이란 뜻이고 '구병모' 작가는 실제 여성작가로 그녀의 필명이 '구병모'인 것이다.

이미 다른 책들을 통해 나름 팬들도 확보한 대중성있는 작가인듯하다.

65세의 가녀린 여인, 지금은 '대모'라 불리는, 한때 '손톱'으로 불렸던 방역 업자 '조각'의 이야기이다.

방역 업자는 쥐나 벌레를 살충해서 제거하는, 여기서의 방역 업자는 어떤존재에게,그런 쥐나 벌레 같은 존재인 사람을 제거하는 청부 살인자쯤 되겠다.

구의 명령인지도, 왜 그 사람이 죽어야 하는지도 묻지않고 조직에서 원하면 어느 한 인간을 아주 간단하게 제거해 버리는 일이 그녀의 일이다.

40여 년간 그 일을 해온 그녀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고, 아픈 존재가 있고, 아픈 사랑이 있다.

자신에게 그 일을 안내하고 전수했던 '류'의 존재, 그의 불행, 그의 죽음이 평생 그녀의 삶을 지배한다. 그를 바라보고, 그를 따라가고, 그의 기술을 연마하면서, 그리워하는..

리고 그녀에게 제거당한 아버지의 최후를 보았던 소년이 자라 그녀 조직의 한 멤버가 된다. 그녀와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늙어 가는 그녀를, 아직도 현역에서 일하는 그녀를 향해 시비 걸고 찜찜한 관심을 끌어내는 '투우'라는 청년이다.

방역의 현장에서 실랑이 끝 만신창이가 된 그녀를 수습한, 의사 '강'이 있다. 입 밖에 내서는 안될 그녀의 부상, 그녀의 무기들.. 함구키로 했고, 그 약속을 지켜준다.

'류'를 바라보기만 했던 그녀 '조각'은, 아주 오랜만에 의사 '강'을 바라본다.

'강'의 약속을 확인차 들른 그의 어머니의 과일가게에서 그의 불행한 가족사와 어린 딸과 노부모를, '조각'에게 어색한 양지에 사는 사람의 모습에 온기를 느끼고 복숭아 네 개, 덤까지 다섯 개 중, 행려자에게 한 개를 주고 집으로 가져온다.

에는 예전의 그녀였으면 상상조차 못했겠지만 여튼 우연한 기회에 가족이 된, 과거를 모르는 늙은 애견 '무용'이 있다. 온기없는 주인의 무심함에 적응한, '무용',

나이가 들어가는 그녀는 예전 같지 않은 삐걱거리는 몸놀림과 조직에서의 우려, 무시 등을 통과하는 중이다.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되면서 '류'는 '지킬 일을 만들지 말자'는 메마르고 허무한 모토를 너무도 드라이해서 날아가버릴듯한 뉘앙스로 그녀에게 강조했었다. 그러나 정작 '류'는 그녀를 지키다가 봉변을 당하게되고, 그녀에게 '무용'은, 그리고 '강'과 그 가족은 지켜야 할 무엇이 되어 가고 있다.

'투우'는 그런 그녀를 노린다.

처음부터 불편하고 거슬렸던 '투우'의 도전을, 이유는 알지 못한 채 감으로 느낀다.

한편의 영화 같은 그들의 대결이 지나가고 '조각'은 남는다. 대결에서의 패배가 부르는 죽음이어도 어차피 '류'에게 가는 길이라, 아쉬울 것 없었던 그녀는 사라질 것에 대해, 사라짐으로 해서 빛날 수 있는 운명에 그녀의 손톱을 맡긴다. 그리고 주어진 상실을 살아야 할 때임을 읊조린다.

가독성 좋고 소재, 인물 또한 흥미롭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희망목록에 담는다.영화로 만들게 되면 65세의 여성 킬러역을 누가 맡을 수있으려나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다.

 

 

 

- 손톱을 단정하게 자르고 에나멜을 바르지 않는 것은 한 사람이 자신의 부피와 질량을 감추는 수백 가지 소극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다. 짧으면서도 깔쭉깔쭉하지 않은 손톱은 고무찰흙에조차 상처를 낼 수 없을 것처럼 보여 손톱 주인에게 내재한 공격성을 가리는 역할도 한다. 50



- 아이의 팽팽한 뺨에 우주의 입자가 퍼져있다. 한 존재 안에 수렴된 시간들, 응축된 언어들이 아이의 몸에서 리듬을 입고 튕겨 나온다. 누가 꼭 그래야 한다고 정한 게 아닌데도, 손주를 가져본 적 없는 노부인이라도 어린 소녀를 보면 자연히 이런 감정이 심장에 고이는 걸까. 바다를 동경하는 사람이 바닷가에 살지 않는 사람뿐인 것처럼, 손 닿지 않는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과 채워지지 않는 감각을 향한 대상화. 96



-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입안에 도는 감미, 아리도록 달콤하며 질척거리는 넥타의 냄새야말로 심장에 가둔 비밀의 본질이다. 우듬지 끝자락에 잘 띄지 않으나 어느새 새로 돋아난 속잎 같은 마음의.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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