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간이 정말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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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릴 수 없는 독보적인 글쓰기의 '성석제 작가', 소설집이다.

일찌 감치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린, 그의 유머와 해학과 패러독스는 이 작품들에서도 빛을 발한다. 절로 턱이 벌어지며, 주르륵 침이 흐를 것만 같은 경이로운 체험은 꼭 이 작가, '성석제'여야만 한다는 말..

작가는 울퉁불퉁해진 세상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어려울 때마다, 기억으로 돌아갔고 거기에 유년과 첫사랑과 청춘시절의 오래된 것들을 기억하는 뇌세포 가운데, 거기서도 안쪽 깊숙한데 숨어있던 것들을 돌이키며, 견딜만하다고, 그리하여 현재와 미래와 싸울 수 있는 힘이 기억이란 것에 있어, 그 기억이 검과 방패가 되어 싸울 수 있는 힘이 있으므로 아직은 견딜만하다고 말한다.

코로나와 함께 성탄과 연말을 즐길 수 있으리란 작은 소망들을 무참히 짓밟으며 오미크론이 등장했는데,,

견뎌야지, 무엇으로 견디나, '성석제 작가'처럼 기억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것을 빼내며, 할머니 장롱에 숨겨져있던 알사탕을 까먹듯이 그렇게 방패가, 칼이 되어줄 수 있는 기억들이 뭐였나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냥 웃기는 소설, 버라이어티 한 쇼같이 다채로운 소설을 꼽으라면 언제나 '성석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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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박태원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5
박태원 지음, 천정환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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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이 광수'에게 문학 지도를 받기도 했다는 '박 태원'은 한국전쟁 발발 후 월북하여 북한 쪽 종군기자와 평양 문학대학의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1930년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작가로 평가되는 그는 영화 기생충의 감독, '봉 준호'의 외할아버지..


새로운 소설적 기법의 시도, 작품의 이데올로기 보다 문장 그 자체의 예술성을 중시하고, 인간의 내면 의식 묘사를 중시했다는 그의 실험적인 작품세계는 먼저 읽은 [천변 풍경]보다 이 책에 더 잘 드러나있다고 보인다.

하여 그 온갖 실험적인 도모와, 기법이 난해하게 다가오기도 하다가, 그는 천재였던가 하면서 읽게 되는 단편집..

'구보'는 '몽보'와 함께 작가 '박 태원'의 필명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총 13편의 작품이 수록된 이 작품집의 표제작이다.


-중간생략-

주로 자칫 한량처럼 보이는, 자타 공인 글을 쓴다는 무능한 남자들과

예술인들이 꼬여드는 다방들과

'노는 계집'들이 등장한다. '노는 계집'들이란, 술과 함께 몸을 파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기생, 색주가 따위의 여자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시대적으로 기생이라는 표현보다는, 주로 카페의 여급쯤으로 여기면 될 듯..

1930년대의 우리나라 여인들이 할 수 있는 돈벌이, 카페의 여급은 백화점 여직원, 공장의 여공, 버스 안내 양보다도 더 가깝고 쉬이 할 수 있는 일이었던 듯

아니면, 글쟁이나 예술 한답시고 부유하는 그 시대 남자들이 하릴없이 다닐 수 있는 만만한 곳들이 다방이요, 거기서 쉽게 대할 수 있는 이성들이 이들이었던 듯도..

대부분 등장인물들은 너무 무책임하거나 너무 가난하거나 너무 경박하거나 하다. 그시대 친일하지 않으면, 다들 저렇게 가난했던가, 비참했던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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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바다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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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이란 시간은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이 광야에서 헤맨 시간이라 한다.

머리에서 기억이 지워져도 몸이 그걸 기억 하고 있으므로 그 육체의 기억을 지우는데 필요한 시간이 또한 40년..

하여 40년이란 시간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적인 시간인 것..

여고생이었던 그녀가 뉴욕에 사는 첫사랑의 그를 만나러 가기까지 40년이 흘러있었다.

그는 할아버지가 되어있었고, 그녀 역시 아빠 없는 아이를 낳겠다는 딸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뉴욕에 살고 있는 그 사람은, 신학생이었고

그녀는 성당 고등부 행사차 오른 춘천행 기차에서 잘생기고 여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그에게 한눈에 반했었다.

영원을 말하던 그는 인생을 그분에게 바치고자 하는 길을 걷고 있었고

그녀 '미호'는 그를 위해 자신의 사랑을 그분에게 양보했었다.

삶은 가차없고 매정하다는 그들의 회상처럼

누구에게나 그러했다.

40년 전 그가 왜 그랬는지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던 질문을 던지고 집으로 돌아와 괴로워하던 그녀에게 어머니가 해주던 말.

- "돌아보니까, 아픈 것도 인생이야. 사람이 상처를 겪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라는 것을 겪는다고 하고 그게 맞지만, 외상 후 성장도 있어.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 우리는 가끔 성장한단다. 상처가 나쁘기만 하다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지. 피하지 마. 피하지만 않으면 돼. 우린 마치 서핑을 하는 것처럼 그 파도를 넘어 더 먼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거야. 다만 그 사이에 날이 가고 밤이 오고 침묵이 있고 수다가 있고 그런 거야. 젊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걸 깨닫지 못해. 하지만 이제 너도 오십이 훨씬 넘었고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너무 많이는 아파하지 마. 250-251

대학교수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독재에 항거하며 '김재규' 사형을 반대하는 연판장에 사인한 죄목으로 대학에서 잘리고 고문을 받고 돌아와 앓아눕는다.

집안이 몰락하자 서울 변두리로 이사 갔고 대학 2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독일 유학길에 올랐고 지금은 독문학 교수가 되어있지만, 마약에 중독된 남편과는 이혼한지 오래였다.

그녀가 끝내 그에게 묻고 싶었던 말은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해버린 그를 피해 달아난 자신의 모습, 그땐 너무 어렸고 어떠한 것이든 결정된 것을 받아들이기가 두려웠다는 그 마음이 와닿았다.

그들은 자연사 박물관 공룡 앞에서 만나기로 한다. 바로 사우르스는 1억 5,600만 년 전의 공룡이다. 그들이 헤어져 있던 40년이란 시간은 그에 비하면 먼지 같은 세월이라지만, 그래서 오래전 헤어진 첫사랑을 만나기에 좋은 장소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그녀가 문득 꺼내는 기억 속의 먼바다는 연한 에메랄드 빛의 서해, 몽유도이다. 그들이 중고 연합 여름 수련회를 갔던 장소.

물을 두려워했다는 그녀가 그를 따라나서 먼바다까지 헤엄을 쳤다고 그는 기억한다는데, 도대체 그녀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다는 거였다.

여전히 물을 두려워하는 그녀가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기억나지 않을 리가 없다고..

그녀가 묻고 싶었던 그날을 그는 기억 못 하는듯하다.

그렇게 그들은 서툴렀던 그들 사랑의, 절정의 순간은 잊은 채 살았단다.

-이하 생략-

 

- 40년 전 그해의 추웠던 여름, 농작물들이 냉해를 입었던 그해 여름처럼 그렇게 추운 여름이 있듯이 단 한 번도 뜨겁지 못했던 인생이 있는데, 하필이면 그것이 자신의 생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젊음 때문에 그녀는 단 한 번도 젊지 못했고 따라서 늙어가지도 못했다고 생각해 왔다. 방부 처리된 낱말들처럼 너무 조숙해서 성숙해지지 못한 애어른처럼.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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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탕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7
이승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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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탕'은 대서양에 닿아 있는 작은 항구도시의 이름이다. 웬만한 지도에는 나오지도 않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곳을 세상의 끝이라고 여기고 사는데, 인구가 적고 외지인도 거의 드나들지 않는 이곳에, 5월 중순이 되면 그나마 북적대는 광경이 펼쳐진다. 바로 일주일간의 축제가 열리기 때문..

그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특별한 놀이가 있다. 바로 높은 나무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는 일..

성난 바다를 달래기 위해 희생자를 바다 한가운데 빠뜨려 제물로 바치던 의식이 성행하던 시절 사람들에게는, 그 제물이 바닷속 궁전에 들어가 산다는 믿음이 있었다지만, 그 미개한 의식이 폐지된 후에는 제비를 뽑았고, 지금은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관광객도 가리지 않고 뛰어내리는 놀이가 되어 있다. 그때 그 뛰어내리던 희생자들을 '파다'라 명명했고, 아직까지도 뛰어내리는 자들을 '파다'라고 부른다.

순화된 형태의 바다를 달래는 일, 인신 공양의 풍속을 놀이로 받아들여 '파다'를 자처하는 것은 '뛰어내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라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한 중수는'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J'로부터 특단의 처방을 받는다.

'하지 않던 일을 하고, 가지 않던 곳으로 가라, 계획도 세우지 말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며, 걷고 보고 쓰라'고..

'J'로부터 건네받은 주소지는 '캉탕'이었다. '한 중수'는 되도록 멀리, 이곳의 인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떠나는 것에 동의했다.

그곳 '캉탕'은' J'의 외삼촌, '최 기남'이 살고 있는 곳.

[모비딕]에 미쳐 고래를 잡으러 바다로 떠났던 남자 '최 기남'.

그는 정박할 때까지는 바다에서 내리지 않는다는, 즉 바다를 탈 것 취급했던 사람인데 '캉탕'의 선술집 주인 딸, '나야'에게 반해서, 바다에서 내렸던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 25세..

실제로 '최 기남'이 반한 건, '나야'의 노래였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자장가처럼 들렸는데, '나야'는 '세이렌'이었을까..

이 이야기의 축은 과거와 죄책감이다.

그 축의 살이 되는 것이 [모비딕]과 '세이렌'과 '요나'이다.

'세이렌'.. , 절벽과 암초로 둘러싸인 섬에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던 뱃사람들을 유혹해 난파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치명적인 요정, '오디세우스'는 이 섬을 지날 때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은 뱃전에 밧줄로 몸을 메어두어 위기를 넘겼다.

이 '세이렌'이 사이렌의 어원이 된다.

'한 중수'에게 내려진 특단의 조치는 바로 이 사이렌 소리 때문이었다.

머리 한복판, 정중앙에서 시작되어 머리 전체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사이렌 소리, 처음엔 스트레스와 피곤한 이유 때문이라 여겼지만, 그 소리와 진동에 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들은 이명이라 판단했고, 원인은 찾지 못했다. 'J'는 경고음이라고 여겨야 한다 했다. 잠정적인 후퇴,, 현실로부터 멀리, 현실이 간섭할 수 없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처방을 내린 이유이다.

'캉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 중수'는 [모비딕]을 읽는다.

'캉탕'에서 만난 늙은남자 '최 기남', 현지 이름, '핍'..

'핍'의 집 2층에서 지내기로 한, '한 중수'에게

'핍'이 기거하는 1층의 어두운 방은, 흰 고래에 미친 선장 '에이 헤브'가 틀어박혀있던 선실같이 느껴져 음침하고 불길했다.

사실' J'로부터 '핍'을 소개받을 때 '한 중수'가 상상한 그의 모습은, 밝은 열정의 '조르바' 였지만, 현실 속 그는 [모비딕]의 집착과 어두운 광기의 뱃사람, '에이 헤브'의 모습이었다.

비사교적인 은둔자 '핍'은 하루에 한 번 외출을 하고

'한 중수'는 매일 '캉탕'을 걷는다. 어디에서나 바다가 보이고 어디서나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니체', '루소', '랭보'가 그랬던 것처럼..

- 이하 생략-

 

https://blog.naver.com/su430/222564159691

 

어렵게 말하는 사람에게 알아듣기 어렵게 말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렵게 말하는 사람은 쉽게 말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일 뿐이다. 쉽게 말하는 사람의 거침없음이 그에게는 없다. 이것은 정직성과는 다른 문제이다. 자기를 변호, 또는 보호해야 하고 타인의 반응을 예상, 또는 대비해야 하는 사람의 말은 직선일 수 없고 짧을 수 없다. 직선의, 짧은, 거침없는 문장은 권력자의 것이거나 바보의 것이다. 권력자나 바보는 고백을 모른다. 고백은 비밀을 가진 자의 문장인데 권력자와 바보에게는 비밀이 없기 때문이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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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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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령은 주인공 '지연'에게 여름으로 기억되는 도시라 한다. 그녀가 열 살 때 열흘간 머물렀던 할머니의 집이 있던 그곳의 여름 냄새로 기억되는 곳..

그 이후 할머니와 엄마는 왕래하지 않았고 그녀 '지연'은 할머니도 초대하지 않은 채 결혼도 했었다가 이혼을 하고, 희령 천문대의 연구원으로 오게 된다. 그녀의 나이 서른두 살..

6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남편의 외도로 선택했던 이혼이었지만,

밤에는 잠들지 못하고 불안으로, 분노로 낯선 장소에서 아파하던 그녀에게 같은 아파트 이웃이었던 어떤 할머니가 사과를 건넸고, 제 아픔에 겨워 주위를 깊게 보지 못했던 '지연'을, 그녀의 할머니는 이미 알아보고 있었던 듯..

 

조심스럽게 부담 안 주려고 거리를 유지하는 할머니와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그런 거리를 즐길 수만도 없는 그녀 '지연'은,

자신을 닮았다는 할머니의 엄마, 그러니까 그녀의 증조할머니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더 듣고 싶어하고 그녀들의 편지를 읽고 싶어 하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지연'이

'나'의 엄마는 '길 미선'

'나'의 할머니는 '박 영옥'

'나'의 증조할머니는 '이 정선'이다.

증조할머니, '정선'은 백정의 딸로, 어릴 때 아버지가 죽고 병든 어머니를 부양하며 역전에서 삶은 옥수수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는데

그런 그녀에게 양민 남자 열아홉의 '박 희수'는 저고리에 검은 천(백정이라는 표식)을 매달고 행상하는 열일곱의 그녀가 천진난만한 호기심으로 물어온 말에 관심을 보였고, 일본 군이 그녀를 데려갈 것이라며 자기와 함께 개성으로 가자 한다. 실제로 일본군이 집으로 와, 공장에 취직시켜준다고 강제로 데려가려 했고, 그녀는 병 져 누워있는 엄마를 두고 개성 길에 오른다.

'박 희수'는 천주교 신자 집안의 후손이었고, 목수로 재산을 일군 아버지를 둔, 3남 4녀 중 막내였다. 그의 아버지는 백정의 딸을 며느리로 들일 수 없다면서 반대했고, 떠돌고 싶은 충동을 갖고 살던 '희수'는 '정선'의 아픈 어머니를 '새비 아저씨'라는 사람에게 돌봐줄 것을 부탁하고 길을 떠난다.

'정선'의 엄마는 딸더러 자기도 데려가달라 했다가 체념하면서 다음 생에는 너의 딸로 태어나 네게 못해준 것을 해주겠다고 한다.

'정선'은 고향에서도 백정이라고 놀림당했고, 개성에 와서도 백정이었다는 것이 밝혀져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고향이 '삼천'이라 해서, 그녀를 '삼천이'라 부른다.

'삼천'은 살기 위해 냉정하게 엄마를 버리고 떠나왔지만,

자신의 엄마를 돕던 '새비 아저씨'를 은인으로 생각했고 뭔가를 꼭 갚겠다고 다짐했다.

그녀 '삼천이' ,'나', '지연'과 닮았다는 것이 할머니, '영옥'의 말이다.

'영옥'이 간직한 오래된 사진 속에 증조할머니는 '지연'이 보기에도 자신과 많이 닮아있었다.

'삼천'의 엄마가 죽고 '새비 아저씨'가 처를 데리고 개성으로 온다.

고향이 새비라서 '새비 아저씨'라 불리던 그의 아내는 '새비 아주머니'라 불린다.

'삼천이', '새비' 둘은 막역한 친구 사이가 된다. 백정이라는 처지 때문에 한 번도 친구를 둘 수 없었던 '삼천'에게 '새비'는 커다란 위안이 된다.

그런 '삼천'이 딸 '영옥'을 낳고

'영옥'이 '미선'을 낳고 '미선'이 '지연'을 낳는다.

'새비'는 '희자'를 낳고.. 그렇게 여인 4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히로시마 원자 폭탄이 투하되고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삼천'과 '새비'의 우정, 삶, 그들의 남편들 이야기가

할머니 '영옥'의 회상과 67년 전의 편지들로 씨실 날실이 되어 펼쳐진다.

 

- 이하생략- 

 

 

 

 

엄마는 일평생 내게 기대하고, 실망했다. 너 정도로 똑똑하고 너 정도로 배운 사람이라면 응당 자신은 꿈도 꿔보지 못한 삶을 사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 엄마의 주장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진 것 별로 없는 그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내게 크게 실망했지만, 내가 결혼을 하고 정상 가족을 꾸린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는 것으로 마음을 돌렸다. 엄마는 사위를 살뜰히 챙겼다. 우리가 우리의 가족을 잘 굴려나가서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모습으로 살기를 기대했다. 나는 엄마의 그 작은 기대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엄마를 철저히 실망시켰다. 엄마에게 인정받기를 기대하고 번번이 상처받기보다는 내 일에서 인정받고 친구들에게 지지를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로는 아는 일을 내 가슴은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식은 엄마가 전시할 기념품이 아니야.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엄마의 바람이 단지 사람들에게 딸을 전시하고 싶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아팠다. 13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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