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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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이면, '이승우' 작가를 만나는 세 번째이다. 식물들의 사생활이라는 거대한 책을 읽으면서 그 무게와, 신비함과, 독특함, 그리고 언어의 유희에 지배당했던.. 내가 아는, 지금 활동하는 한국의 남성 작가 중에 가장 무게감 있고, 만만치 않는 작품을 쓰는 작가가 이 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해외 번역판이 많다는 얘기는 해외에서 많이 읽힌다는 얘기인데, 국내에서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마니악 한 작가라고 한다.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작품을 썼던 그의 고향 선배 '이청준'이라는 작가의 뒤를 잇는다는 언급도 있고, 한국의 최초 노벨문학상 후보로 이 분에 대한 언급도 있다.

「식물들의 사생활」과, 「사랑의 생애」를 읽으면서, 이 작가의 작품을 대할 땐, 심호흡부터 해야 한다는, 그리고 독서 이력이 없다면 절대 그 진가를 알 수 없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의 이면」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소재로 한, 역시나 그답게 독특한 플롯으로 전개해나가는 소설이다.

소설가 '박부길'이라는 사람이 살아온 삶의 이력을, 그의 작품(소설, 산문 등) 들과 관련지어 추적해보라는, 출판사 측의 기획으로 시작된 일종의 작가 탐구 형식이다.

'박부길', 그는 고향을 꺼려 하는 사람이다. 순진성과 고집성을 갖춘 전형적인 촌놈인 그는, 태평양 한쪽 남해의 외지고 작고 가난한 바닷가 마을 출신으로 14세에 고향을 뜬 이후로 그 고향에 대한 향수가 아예 없는 사람으로, 그가 고여 있다고 말하는 그 마을은 버스도 다니지 않았고, 전깃불도 없었던 벽촌이었다.

 

슬프고 참혹한 기억들로 점철된 그의 고향에서 필사적인 탈주를 감행했던, 그는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동심이란 것이 없었던 유년시절, 아버지의 책들을 소나 양이, 닥치는 대로 풀을 뜯어 삼키듯이, 혹은 되새김질을 하듯이 읽어대던 소년이었다.

애당초 자신의 삶에 대한 진술에 비협조적인 '박부길', 화자는 작가의 미발표 원고, 산문집, 소설 등을 짜 맞춰 가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작가의 삶과, 화자의 삶과, 작가의 작품 속 주인공의 삶이 다르지만, 또 같고, 사실인 듯, 유추인 듯 하지만 결국 '박부길'이란 사내는 작가 '이승우'이다.

년기부터 시작된, 그의 독서에의 몰두는, 현실에 눈 감고, 현실로부터 자신을 유폐시키고자 하는 수단이었으며, 그에게 책과, 글 만들기는 마취제가 된다. 그리고 그의 유년은 자물쇠로 봉쇄된다.

그 자물쇠 너머의 있는 것..

큰아버지로부터 내려진 금령(禁令)..

가족 모두에게 접근 금지된, 곳, 뒤란..

구체적으론 감나무였지만, 그 뒤란 한켠의 방엔, 차꼬를 찬, 미친 남자가 있었다

찍이 어머니와 헤어져 큰아버지의 집에서 성장하게 된 '박부길'은..

그 금령의 구역에 기웃거리고, 우연히 열린 문, 방안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털투성이의 남자와 마주치고는 슬프고도 애잔한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절에서 고시공부를 한다는 그의 아버지는, 막연한 궁금함과 그리움의 대상이고,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의 전도사와 함께 어린 그가 외출한 날, 어머니는 사라지고,

뒤란을 기웃대던 '부길'에게 손톱깎이를 부탁했던 그 남자는 생을 마감했고..

'부길'은 막연하게 알아간다.

무수한 소문 속 어머니는 도망친 게 아니라, 쫓겨난 것이고,

뒤란의 그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였음을..

의 아버지 '박태성'은 고시공부를 하던 사람으로, 기울어가는 집안의 장래를 짊어진 수재였지만

결혼을 한 후 그의 아내만 보면 종잡을 수없이 난폭해지고, 도를 넘은 의처증을 동반한 심각한 정신장애로

발작을 일으켰으며,

그 난폭성이 결국엔 차꼬를 채운 감금으로, 금령의 구역을 만들었고,

어머니에겐 발병의 책임과 함께 그녀 인생에 대한 배려로 내쳐진다.

그리고 집안의 가장, 권위의 상징 큰아버지는, 이 모든 사안의 주모자였으면서 끝까지 어린 '부길'에게 사실을 말해 주지 않고,

제 아비 뒤를 이어, 훗날 고시공부를 통해 집안을 일으킬 재목으로서의 기대를 내세우고 있었다.

바닥만 한 동네에서

어미 아비 없이, 더구나 미친 아비, 도망친 어미라는 찬란한 역사를 지닌 어린 '부길'은, 친구들의 놀림과, 친척들의 지나친 애정의 관심과 눈길을

피해 책에 침잠하다가

마침내 아버지의 무덤에 불을 지르고, 치욕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고향을 버린다. 1965년 그의 나이 14세.

조숙하고 폐쇄적인 이 소년은 가출 이후 아버지가 공부했다던 사찰을 찾고

그곳의 한 식당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고시공부를 했다던 아버지의 친구가, 아버지를 많이 닮은 '부길'을 알아보는 덕에 수재였던, 유망주였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이후 만화방과 중국집을 전전하면서 지내던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악몽을 자주 꾼다.

자신이 배달 일을 하던 중국집에서 우연히 만난, 그 옛날의 전도사로부터 자신의 어머니가 경찰 공무원의 아내가 되었다는 소식도 듣고

어머니 덕에, 서울 친척 집에 보내져, 중학교 2학년으로 편입도 하지만, 사투리와 따라가기 벅찬 공부와, 또래들 보다 두 살을 더 먹은 탓에 더 폐쇄적이고 비 사교적인 아이로 지내게 된다.

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이후 고교에 진학하면서

친척 집을 나와, 자취를 하게 되는데,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무작정 책을 읽는 '부길'에게 독서는 취미가 아닌, 버릇이 되고, 친구가 없던 그는 볕이 안 들고, 좁은 자취방에서 특별하지만, 문학적이고, 비현실적인 외톨이가 되어간다.

- 중간 생략-

 

역시나 그의 문장들은 곱씹으며 읽는 맛이 있다. 어떤 문장은 무심코 읽어내렸다가 열번 쯤 다시 읽어야 했다. 소설가 '박부길'을 낱낱이 해부하는 듯한 상세한 묘사와 유려한 문체는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그 만의 색깔이 있다. 그리고 그가 인용한 '앙드레 지드'의 산문,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너의' 집 안, '너의' 방, '너의' 과거보다 더 너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

 

나는 내 취사선택되고 검열된 기억 속의 과거로 들어가는 것의 무의미함을 안다. 과거란 희미한 밑그림, 그 위에 어떤 색칠을 하고 어떤 형태를 그려 내는 것은 현재의 나이다. 과거란 결국 인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상은 실체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실체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납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용납되기도 한다. 114

이름은 어떤 사물에 대한 가장 제한적인 정의이다.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편의적으로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쓰는 것이 인식의 방법이긴 하지만, 그것은 최악의 방법이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구별하기 위해서이지 인식하기 위해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구별을 통하지 않고는 인식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이름을 사용한다. 그러면 구별할 필요가 없을 때는 어떤가, 구별함 없이도 이미 총체적인 인식에 이르러 있을 경우에 이름을 알고 부른다고 하는 것은 무슨 유익이 있을까, 오히려 그 새로운 이름이 참된 인식을 방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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