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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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 필요 없는 원문을 읽고 그 문장을 곱씹는 일, 메타포의 늪에 빠지지 않고 오로지 작가의 감성을 음미하는 일, 그리고 90년대의 감수성을 읽는 일이란 때로는 충만한 기쁨이 된다. 지금의 이십대는 이런 류를 지루하다 할 수 있을까? 요즘의 소설 속 입체적인 플롯과 캐릭터들에 지칠 때, 나는 90년대의 여류작가들을 찾게 된다.

어느 한시절의 기억을 잃어버린 '김하진'이란 여자의 이야기이다.

사이좋던 아내와 사별한 이후 가평에 있는 집을 부수고 새집을 짓겠다는 아버지, 그는 두 딸들에게 새집을 남겨주고 싶은듯하다.

마는 아버지와 정구를 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하진'은 중국 여행에서 돌아온 날, 언니의 전화를 받는다. 언니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 '미란'이 손목 동맥을 칼로 그어버렸다고..

그리고 또 낯선 여자의 전화를 받는다.

서른다섯의 '하진'은 중국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한동안 트렁크를 정리하지 못한다.

슬픈 일을 미리 느낄 수 있는 그녀의 남다른 예감은 한때 사라졌었는데

중국 여행에서 '미란'에게 닥친 불길한 일이 미리 떠올랐었다.

'미란'은 남자친구의 사과도, 친구의 사과도 받지 않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그들의 존재 자체를 잃어버린듯하다. 잊고자 애쓰거나..

'미란'이 잊고자 하는 지금의 아픈 시간을 보며

'하진'은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 인생의 한 토막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퇴원한 '미란'이 자신의 집에 머물겠다고 한다.

'미란'의 나이 스물

딱 그 시절의 '하진'을 그녀는 잃어버렸다.

'하진'은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청혼을 받았는데, 겁부터 났다. 그리고 떠난 여행길이었고, 그에게 쓴 편지도 부치지 못했다.

방송국에 당분간 일을 쉬겠다 해놓고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서 '미란'과 함께 나서는데,

'하진'에게는 '윤'이란 친구가 있다.

카페를 운영하는 '윤'은, '하진'과 라디오 일을 하는 '현 피디'와 이혼을 했고,

언제든 힘들 때 찾아가면 따뜻한 음식과 휴식을 마련해 준다.

'윤'은 남편 '현 피디'와 결혼 중에도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현 피디'는 그런 그녀를 놓아주었다.

'어디에서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깎아내리지 않을 사람, 내 편인 사람을, 그런 사람을 두 사람만 가지고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랬는데..'

든 시간을 보내면서, '윤'에게는 '하진'과 '현 피디'가, '하진'에게는 '윤'과 그가 그런 '내 편인 사람'이었음을 알고 있다.

'하진'이 통째로 잃어버렸던,

그녀 '하진'이 '오선주'란 이름으로 살던 시절,

'은기'라는 남자가 있었고

그들이 찾던 노을 다방..

그곳에서 '은기' 혹은 '선주'가 뮤직박스 안 디제이에게 신청하던 노래, [기차는 7시에 떠나네~]

그리고 그녀는 '김용선'이라는 이름을 찾아 제주도로 떠난다.

'윤'이 이혼을 하고 한동안 머물렀던 곳으로..

'미란'과 함께..

리고 알 수 없는 기억 속의 그를 만난다.

그를 따라 노동 운동의 야학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치던 '하진',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그녀가 늘 기다렸던, '은기'

[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그리스 민요였고

그들이 금요일에 이 노래를 ['기차는 7시에 떠나네']로 신청한 주의 일요일은

그들이 모여서 구호문을 만들고 플래카드를 제작하던 암호였음을..

그들의 청춘이 그렇게 스러지고

그 고통의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하진'과

'하진'을 기다리던 '은기'는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이 노래의 선율처럼,

가사처럼 쓸쓸하고 스산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진'은 문득 스치곤 하던 연결되지 않는 한 토막, 한 토막의 언어들과, 기억들을 되찾고

비로소 검은 트렁크를 풀고

비로소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아버지는 다정한 사향노루와 새집을 짓고 살고 있지만, '하진'은 아버지와의 이별을 예감하고

전화를 걸어오던 여자에게 '하진'은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은기'는 그곳에서 그녀와 '정수'와 함께 살아가고

그는 '하진'과 결혼을 할 것이고

'미란'은 드디어 자신이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윤'과 '현'은, '현'의 주머니 속, 아무 때고 꺼내마시던 스카치처럼, 더 이상은 고독하지 않을 것이고..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은 무엇인지. 저마다 살아가는 이유라고 여기는 이 따뜻한 것으로부터 남겨지는 것은? 언젠가는, 당신이 내게 존재했었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게 될 그 언젠가에도 무의식의 심연에 찍혀 있을 사랑의 자취는?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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