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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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옥'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이고,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작가라고 한다.

이 책 [무진기행]은 단편소설집으로 총 15편이 실려있다.

작품 전반에는 전쟁을 치르고 난 후, 그 시대만의 독특한 비극이 드러나있다. 가난과 혼돈, 미래에 대한 불안과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몸부림이 안개에 휩싸여 있는 듯, 그래서 어둡고 질척거린다.

몇 소설은 이게 마무리를 한 작품인가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미완의 소설들을 남겼다고 하는데,

유신 체제 발동에서 박정희 서거까지의 1970년대의 십 년이, 작가의 삼십 대 십 년과 일치하는 기간으로 그에게는 박정희 대 김지하의 전쟁 기간으로 정리되어 그 처절한 갈등의 시대이자, 위대한 시대이기도 해서, 그 경험들로 소설의 무대가 되리라 예상했다 하는데

1980년의 광주사태 참극으로 인한 충격과 분노에 펜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손이 떨려 소설 쓰기를 중단해 버렸다고 작가의 말에 밝혀둔다.

그에 있어 소설 쓰기는 직업 이상의 것이었고 신성한 것이었다고도 밝히나, 1981년에 종교적인 체험으로 인하여, 그에게 일시적으로 위안이 되었던 소설보다 더 위대한 어루만짐에 끌려 성경과 주석서를 읽고, 기도생활에 몰두하며 세계관과 인생관을 교정하는 일만 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가 출간을 중단해 버렸다는 [강변 부인]과 미완의 소설 [동두천]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작품이다.

무진은 바다 가까이 있지만 수심이 얕아서 항구로 발전하지 못하고, 이렇다 할 평야도 없는 곳인데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다.

무진의 명산물은 안개로

-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 女鬼)가 뿜어내놓는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무진기행]160

나, '윤희중'은 이곳에 오기만 하면, 엉뚱한 공상들과 뒤죽박죽인 것들 그래서 항상 자신을 상실하지 않을 수없었던 과거의 경험이 있다.

나에게 무진행은 서울에서 실패로부터 도망쳐야 할 때,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한 때 오게 되는 곳이었다. 어둡던 청년 시절이 연상되는 관념 속에서의 아득한 장소일 뿐인 이곳에 아내의 권유로, 휴식차 내려오게 된다.

이 휴식이 끝나고 귀경을 하면 그는 장인어른의 제약회사 전무로 승진하게 되어있다.

나는 한때 '희'라는 여인과 동거를 했었고

아내의 전 남편은 사망을 했다.

그런 결혼과 승진이 해방 후 무진 출신의 인물 중 가장 출세한 두 사람 중 하나로 나를 꼽아주는 이유이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고등고시를 패스하고 세무서장으로 고향에 근무하는 '조'형이다.

모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박'과, 음악교사인 '하인숙'과 넷이 어울리게 되는데

- 햇빛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진기행]161

-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 잘 아는 체한다는 것이 그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비난할 수 있고 적어도 평가하려고 드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에 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무진기행] 184

- 흐린 날엔 사람들은 헤어지지 말기로 하자.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가까이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끌어당겨주기로 하자.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버렸다.[무진기행]191

 

진은 가상의 공간이다. 광주에서 기차를 내려 버스를 타고 간다 하고, 책에 나오는 무진 중학교는 광주에 있다. 작가의 고향인 순천쯤으로 추측한다고도 한다. 순천의 안개라도 보겠다고, 무진의 안개를 상상해보겠노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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