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의 제목이 인상적이지만, 와닿는 단어가 아니었다. '구병모'라는 작가의 이름도 왜 그리 고딕체처럼 느껴지던지... '파과'는 주인공이 냉장고에서 잃어버렸던 맛 좋은 복숭아를 잊고 지내다가 썩어버린, 뒤처리를 하게 되는, 못 먹게 된 과일이란 뜻이고 '구병모' 작가는 실제 여성작가로 그녀의 필명이 '구병모'인 것이다.

이미 다른 책들을 통해 나름 팬들도 확보한 대중성있는 작가인듯하다.

65세의 가녀린 여인, 지금은 '대모'라 불리는, 한때 '손톱'으로 불렸던 방역 업자 '조각'의 이야기이다.

방역 업자는 쥐나 벌레를 살충해서 제거하는, 여기서의 방역 업자는 어떤존재에게,그런 쥐나 벌레 같은 존재인 사람을 제거하는 청부 살인자쯤 되겠다.

구의 명령인지도, 왜 그 사람이 죽어야 하는지도 묻지않고 조직에서 원하면 어느 한 인간을 아주 간단하게 제거해 버리는 일이 그녀의 일이다.

40여 년간 그 일을 해온 그녀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고, 아픈 존재가 있고, 아픈 사랑이 있다.

자신에게 그 일을 안내하고 전수했던 '류'의 존재, 그의 불행, 그의 죽음이 평생 그녀의 삶을 지배한다. 그를 바라보고, 그를 따라가고, 그의 기술을 연마하면서, 그리워하는..

리고 그녀에게 제거당한 아버지의 최후를 보았던 소년이 자라 그녀 조직의 한 멤버가 된다. 그녀와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늙어 가는 그녀를, 아직도 현역에서 일하는 그녀를 향해 시비 걸고 찜찜한 관심을 끌어내는 '투우'라는 청년이다.

방역의 현장에서 실랑이 끝 만신창이가 된 그녀를 수습한, 의사 '강'이 있다. 입 밖에 내서는 안될 그녀의 부상, 그녀의 무기들.. 함구키로 했고, 그 약속을 지켜준다.

'류'를 바라보기만 했던 그녀 '조각'은, 아주 오랜만에 의사 '강'을 바라본다.

'강'의 약속을 확인차 들른 그의 어머니의 과일가게에서 그의 불행한 가족사와 어린 딸과 노부모를, '조각'에게 어색한 양지에 사는 사람의 모습에 온기를 느끼고 복숭아 네 개, 덤까지 다섯 개 중, 행려자에게 한 개를 주고 집으로 가져온다.

에는 예전의 그녀였으면 상상조차 못했겠지만 여튼 우연한 기회에 가족이 된, 과거를 모르는 늙은 애견 '무용'이 있다. 온기없는 주인의 무심함에 적응한, '무용',

나이가 들어가는 그녀는 예전 같지 않은 삐걱거리는 몸놀림과 조직에서의 우려, 무시 등을 통과하는 중이다.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되면서 '류'는 '지킬 일을 만들지 말자'는 메마르고 허무한 모토를 너무도 드라이해서 날아가버릴듯한 뉘앙스로 그녀에게 강조했었다. 그러나 정작 '류'는 그녀를 지키다가 봉변을 당하게되고, 그녀에게 '무용'은, 그리고 '강'과 그 가족은 지켜야 할 무엇이 되어 가고 있다.

'투우'는 그런 그녀를 노린다.

처음부터 불편하고 거슬렸던 '투우'의 도전을, 이유는 알지 못한 채 감으로 느낀다.

한편의 영화 같은 그들의 대결이 지나가고 '조각'은 남는다. 대결에서의 패배가 부르는 죽음이어도 어차피 '류'에게 가는 길이라, 아쉬울 것 없었던 그녀는 사라질 것에 대해, 사라짐으로 해서 빛날 수 있는 운명에 그녀의 손톱을 맡긴다. 그리고 주어진 상실을 살아야 할 때임을 읊조린다.

가독성 좋고 소재, 인물 또한 흥미롭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희망목록에 담는다.영화로 만들게 되면 65세의 여성 킬러역을 누가 맡을 수있으려나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다.

 

 

 

- 손톱을 단정하게 자르고 에나멜을 바르지 않는 것은 한 사람이 자신의 부피와 질량을 감추는 수백 가지 소극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다. 짧으면서도 깔쭉깔쭉하지 않은 손톱은 고무찰흙에조차 상처를 낼 수 없을 것처럼 보여 손톱 주인에게 내재한 공격성을 가리는 역할도 한다. 50



- 아이의 팽팽한 뺨에 우주의 입자가 퍼져있다. 한 존재 안에 수렴된 시간들, 응축된 언어들이 아이의 몸에서 리듬을 입고 튕겨 나온다. 누가 꼭 그래야 한다고 정한 게 아닌데도, 손주를 가져본 적 없는 노부인이라도 어린 소녀를 보면 자연히 이런 감정이 심장에 고이는 걸까. 바다를 동경하는 사람이 바닷가에 살지 않는 사람뿐인 것처럼, 손 닿지 않는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과 채워지지 않는 감각을 향한 대상화. 96



-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입안에 도는 감미, 아리도록 달콤하며 질척거리는 넥타의 냄새야말로 심장에 가둔 비밀의 본질이다. 우듬지 끝자락에 잘 띄지 않으나 어느새 새로 돋아난 속잎 같은 마음의.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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