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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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월을 하면서, 봄이 되면 남한산성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작가 '김훈'은, 병자년의 겨울에 흔들려, 약소한 조국의 무참한 운명이 슬픔으로 옥죄여, 이 이야기를 썼노라고, 그리고 조국의 성에 이 글을 바친다고 서문을 연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원군을 지원했던 '명'나라는 한 왕조의 몰락이 그러하듯이,. 국력이 쇠약해지고, 궁핍해지는 망국의 징조를 보였고, '누르하치'는 '여진족'을 통일하고 1616년 '후금'을 건국한다.

'명'을 숭배하던, 조선의 사직( '사직'이라는 표현을 쓴다. '사직'은 나라 또는 조정을 일컫는 말로, 작가가 쓰는 이 단어가, 이책을 리뷰함에 있어서 가장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되기에..)은 '명'과 '청'사이에서 노선을 헷갈려 하였다.

떠오르는 샛별, '청'의 세력도 무시할 수 없고, 오랫동안 '명'을 숭배해왔던 명분과 의리도 져버릴 수 없었기에, 그 갈팡질팡의 사이에서 '광해군'의 중립 의도는 배척되었고, 대신들은 '인조'를 앞세워 1623년 '친명배금'의 반정 정권을 세운다.

1627년 '후금'의 침략으로 '정묘호란'이 일어나고 강화도로 피난했던 사직은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는다. 세력을 키운 '후금'은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조선에게 형제 관계를 수정해서 군신 관계로서의 예를 갖추기를 요구하나, 받아들이지 않자 1636년 추운 겨울에 '병자호란'을 일으킨다. 호란, 북쪽의 오랑캐, 조선에게 여진족은 한낱 오랑캐일 뿐이었던 것이다.

무 급히 남하 하는 청군들을 피해 9년 전의 호란처럼(정묘호란), 강화도 천도를 도모했으나 이미 길이 끊겨서 빈궁과 원손, 왕자들만 먼저 보내고, 왕과, 세자는 '남한산성'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45일간의 버팀이다. 그건 전쟁도 항전도 아닌 그냥 버팀, 차라리 견딤 이었다.

이야기는 청군이 둘러싸고 있는 남한산성 안에서, 척화론의 대표 선수 '김상헌'과, 주화론의 대표 선수 '최명길'이 통탄하는 유약한 임금 '인조'를 에워싸고, 삼전도에 와있는 청태조 '누르하치'에게 항복하러 가기까지의 말(言)들과 말들 또 말들이다. 그 말(言)들에 대의와 명분이, 가난하고 어진 백성을 향한다는 마음이, 사직을 위한다는 희생이 들어있다.

당시 '척화(화친하자는 논의를 배격하고, 숭명배청하자는 주장)'가, '주화(전쟁을 피하고 청과 화친하여 평화롭게 지내자는 주장)'가, 또 '최명길'이, '김상헌'이,..누구의 처신이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그 후로도 학문하는 자들의 많은 논제가 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최명길'은 그 후 영의정까지 오른다. 그리고 절개를 지키고자 했던 '김상헌'은 세도가 안동 김씨의 출발이 된다.

'남한산성'은 백제의 옛 땅으로 시조 '온조왕'의 사당이 있다. 위기 속에서 근본을 찾아야 한다는 '김상헌'의 간청대로 임금의 분부하에 영의정 '김류'와 이조판서 '최명길', 그리고 예조판서 '김상헌'이 제사를 지낸다. 위난 속에서 오히려 강성했던 '온조'의 나라를 떠올리며, '온조'의 혼령에 술을 바치는 장면..

꽁 언 땅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적들에게 송구영신의 예를 갖추자고 소를 잡아 세찬을 전하며, 물론 거부당하지만, 북경을 향해 명의 천자에게 올리는 예법이라는 '망궐례'에 임금과 세자가 나가서 춤을 추도록 되어 있다는데, 상중인 세자는 놔두고 임금이 홀로 추는 춤사위, 그리고 그 춤을 봉우리서 지켜보던 '누르하치'의 답답함.

그래서 '누르하치'는 이 무력하나마 고집 세고 아둔한 사직을 긍휼히 여겨서 부숴버리지는 않은 건지..

'칸'(누르하치)에게 보낼 항복의 국서 작성이, 훗날 후세 만대로 이어질 치욕이 될까 두려워하여 자결을 해야 했던 사람들을 대신해서 결국엔 '최명길'의 일이 된다.

내용을 둘러싼 대신들의 말(言)과 말들, 이미 힘 빠진 임금은 대안 없는 그 말들의 고문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최명길'은 자신의 문서는 글이 아니라, 길이라고, 임금이 밟고 걸어가셔야 할 길, 사직이 살고, 백성이 살수 있는 길이라고 읊조린다.

'김상헌'은 삼전도로 가는 임금의 발아래 시체로 놓여서 전송하겠다고 자결을 시도하다가 도승지의 발견으로 미수에 그치고, 그 소식이 임금에 전해지고.. 임금은 비로소 '김상헌'이 자신을 보내주려고 했다고 여긴다.

보기로 척화 세력의 당사자를 연행해 오라는 '누르하치'의 명령대로, 임금이 누군가를 직접 데려갔어야 했는데, 당하관 두 사람이 척화신으로 묶여서 청진에 나가겠음을 자청하는 글을 올린다. 그 둘의 뜻을 가상히 여긴 임금이 젊은 그 둘을 만나 술을 내리며 연유를 묻다가 오열하는 장면에 울컥했다.

강화도로 피난했던, 빈궁을 비롯한 왕족들을 찾아 나선 청군들은 '김상헌'의 형 '김상용'의 자폭에도 아랑곳 않고 그들을 삼전도로 데려온다.

성에 남은 사대부와 궁녀들의 통곡 속에서 새벽에 성을 나선 임금은, 구층 단위에 올라 앉은 '칸'을 향해 삼배하고, 가까이 올라, 그가 내린 술 석 잔을 받으며 한 잔마다 삼배를 또 해야 했다. 이마를 땅에 찧으면서..

금은 도성으로 다시 돌아오고, 그의 세자와 왕자들은 청나라로 끌려가고, 산성안의 민초들은 사직이 나가고 나서, 예측했던 청군의 무자비한 침략을 걱정했지만, 청군은 고요히 돌아갔고, 비로소 봄을 맞는다.

 

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강들은 먼 하류까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언 강이 터지면서 골짜기가 울렸다. 그해 눈은 메말라서 버스럭거렸다. 겨우내 가루눈이 내렸고, 눈이 걷힌 날 하늘은 찢어질 듯 팽팽했다.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습기가 빠져서 가벼운 바람은 결마다 날이 서있었고 토막 없이 길게 이어졌다. 칼바람이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눈 덮인 봉우리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길게 울었다. 주린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오다가 눈 구덩이에 빠져서 얼어 죽었다. 새들은 돌멩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졌고, 물고기들은 강바닥의 뻘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람 피와 말 피가 눈에 스며 얼었고, 그 위에 또 눈이 내렸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31-32

...온조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최명길의 이마가 차가운 돗자리에 닿았다. 왕조가 쓰러지고 세상이 무너져도 삶은 영원하고, 삶의 영원성만이 치욕을 덮어서 위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최명길은 차가운 땅에 이마를 대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치욕이 기다리는 넓은 세상을 향해 성문을 열고 나가야 할 것이었다. 236

군신이 함께 삼전도로 가더라도 전하의 길이 있고, 저 두 사람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전하, 먼 후일에 그 두 길이 합쳐질 것이옵니다.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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