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아르, 여성의 탄생'(케이트 커크패트릭 저/이세진 역)으로부터 아래 옮긴다.



Two Girl Friends, 1946 - Yiannis Moralis - WikiArt.org


보부아르가 친구 자자 이야기를 쓴 자전적 소설이 백수린 작가의 번역으로 5월에 출간되었다. 제목은 '둘도 없는 사이'.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점점 심해졌지만 학교에서는 여전히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달콤한 고독에 견줄 만한 우정이 있었다. 자자는 시몬에게 기쁨과 신뢰를 주었다. 둘은 서로 경쟁하면서 열심히 공부했고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에게 "단짝"으로 통했다.

두 소녀는 관념적인 것을 좋아했다. 시몬은 자자에게 자신의 관심사를 털어놓거나 이런저런 질문을 입 밖으로 낼 수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는 시몬이 늘 일등이었지만 자자는 체육과 음악에서 시몬을 앞섰다. 자자는 성장하면서 점점 예뻐지고 맵시가 났다. 시몬은 얼굴색이 고르지 못했고 몸가짐이 어색했다. 시몬도 열일곱 살 무렵부터는 인물이 살아났다. 하지만 시몬은 그때 이미 자자가 자신과 딴판으로 외모가 뛰어나고 집안도 부유하고 화목하다는 사실을 뚜렷이 의식하고 있었다. - 2장 결혼을 거부한 철학 교사 1916~1928년

보부아르는 아홉 살에 4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가족은 아니지만 높이 살 만한 외부인을 한 명 더 만났다. 그 친구는 장차 삶과 죽음으로 보부아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터였다. 엘리자베트 라쿠앵(Elisabeth Lacoin), 보부아르가 ‘자자’라고 불렀던 이 친구는 쿠르 데지르에 다니는 밝고 활기찬 여학생이었다. 시몬과 자자는 학교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자자는 시몬을 우정이라는 새롭고 감미로운 삶의 한 부분으로 인도했다.

시몬이 보기에 자자는 경이롭기 그지없는 친구였다. 자자는 피아노를 잘 쳤고, 글씨체도 예뻤고, 여성스러우면서도 "소년 같은 대담성"을 잃지 않았으며, 장 라신을 좋아할 뿐 아니라(당연한 선호) 피에르 코르네유를 싫어하는(당연하지 않은 불호) 배짱도 있었다.* 자자는 사고방식이 전복적이었고, 피아노 연주회 도중에 어머니에게 혀를 낼름 내밀기도 했다. 딸이 그렇게 ‘개성’을 대놓고 드러내도 자자의 어머니는 늘 사랑과 애정이 넘쳤다.

* 장 라신과 피에르 코르네유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작가다.

그래서 보부아르는 달콤한 우정을 누렸지만 비교라는 씁쓸한 뒷맛도 알게 되었다. 보부아르는 나중에 자기 삶, 자기 어머니를 자자의 경우와 비교한 것이 공정치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 자신에 대해서는 안에서부터 느끼지만 자자는 내가 밖에서 바라본 대상이기 때문이다."보부아르가 열여덟 살에 착안한 "내 안에 있는 내 존재와 밖에서 보이는 내 존재 사이에서 자주 관찰되는 이원성"의 구분은 이후 저작들에서도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 1장 부르주아 집안의 맏딸 1908~1915년"나의 어린 시절은 끝없는 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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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20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수린 작가가 번역도 하는군요. 돌아간 평론가 김윤식 교수가 꽤 총애했나본데 아직 읽은게 없네요.

서곡 2024-06-20 10:15   좋아요 1 | URL
네 불문학 박사더군요 논문 주제가 보부아르...백수린 작가 검색하다가 고 김윤식 평론가가 호평했다는 기사 저도 본 적 있습니다
 

재작년의 독서 - 하루키의 단편 '예스터데이'('여자 없는 남자들' 수록)로부터


By pelican - CC BY-SA 2.0, 위키미디어커먼즈


백수린 작가는 바움쿠헨 이야기와 함께 다와다 요코의 책 '여행하는 말들'을 소개한다. [모국어 바깥으로 떠났을 때 누리는 흥미진진한 모험]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1810192050025


독문학자 최윤영의 저서 '엑소포니, 다와다 요코의 글쓰기'도 함께 담는다.




"하지만 젊을 때 그런 외롭고 혹독한 시기를 경험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으로." "넌 그렇게 생각해? "나무가 늠름하게 자라나려면 혹독한 겨울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항상 따뜻하고 온화한 기후에선 나이테도 안 생기겠지." 나는 내 안에 있는 나이테를 상상했다. 그것은 먹다 남긴 지 사흘은 지난 바움쿠헨처럼 보였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웃었다. - 예스터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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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깊이 보고 적어내는 작가" (2022년 8월) https://www.daej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9779 성해나 작가의 첫 소설집 제목 '빛을 걷으면 빛'은 차도하의 시 '조찬'의 첫 줄로부터 왔다. https://www.sfac.or.kr/literature/epi/A0000/epiView.do?epiSeq=598 (웹진 비유) '조찬'이 여기 있다. 그리고 고 차도하 시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미래의 손'에 수록.


아래 글은 '빛을 걷으면 빛' 뉴페이스북이 출처.



'빛을 걷으면 빛'에 실린, 어머니에 대한 작품 '김일성이 죽던 해'는 이 노래로부터 제목을 땄고. [2010년대 인디음악의 화룡점정, 천용성 '김일성이 죽던 해'] 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908271804529150&ext=da






586세대는 독재라는 거악 앞에서 끈끈한 유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런 만큼 MZ세대에게도 유대를 바라고 요구하는 측면이 있는 듯해요. 그런데 신세대는 그런 유대감을 갖기 어려운, 저성장 시대에서 살아왔잖아요.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도 버거운 세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일성이 죽던 해인 1994년은 제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고, 여러 참사나 사건이 벌어진 해이기도 하죠. 이 작품을 탈고하던 해가 스물일곱 살이었는데요, 저희 어머니가 저를 낳았을 때와 같은 나이였어요. 그래서 문학이라는 궤를 같이하는 모녀의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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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숨은꽃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67877&cid=40942&categoryId=33385


'다시 시작하는 아침--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양귀자의 문학상 수상작' 수록작인 1992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숨은 꽃'으로부터


사진: Unsplash의 Marten Bjork






지금 내 앞에 주어진 미로는 너무 교활하다. 지식과 열정을 지탱해주던 하나의 대안이 무너지는 것을 신호로 나의 출구도 봉쇄되었다. 나는 길찾기를 멈추었다.

나는 이제 나를 포기했다. 나는 과거의 사람이라는 것을 수긍한다. 그래도 미래가 이토록 중요한 것은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자식은 희망의 담보물이다. 희망이 경매 처분되는 것을 한사코 막아야 하는 것은 자식을 맡겨놓은 인간의 업보다. 내가 『희망』이란 제목의 장편을 펴냈을 때 사람들은 제목의 미미함을 지적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희망이, 자식이, 그런 것이 미미하다면 대체 무엇이 강렬한 것인가.

기차는 자꾸 달린다. 아직도 부옇기는 하지만, 서울에 닿으면 그래도 나는 기계 앞에 앉기는 할 것이다. 나는 아마도 한 거인을 그리려고 덤빌 지도 모르겠다. 와해된 세계의 폐허 어딘가에 숨어 사는 거인, 결코 세상에 출몰하지 않는 거인의 초상. 그리고 숨어 있는 꽃들의 꽃말찾기.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이 세상살이가 돌아가는 이치의 끝자락이나마 만져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영원히 설명되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그것은 거인의 초상을 그린 후, 그때 생각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 숨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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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4-06-18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왜 이렇게 예뻐요??
양귀자의 저 문장 속에 제가 두번이나 등장해요ㅋㅋㅋㅋㅋ 제 실제이름도 교과서 문장에서 반복된
적이 있어 반친구들에게 웃음을 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서곡님 맑은 날씨만큼 기분 좋은 한 주 보내세용^^*

서곡 2024-06-18 12:01   좋아요 1 | URL
양귀자 님이라 양귀비 꽃입니다 ㅋㅋㅋ (반농반진) 개양귀비꽃일 겁니다 인상파 그림에도 종종 등장하는 / 그러네요 ㅋㅋㅋㅋ 미미 미미 아 큰웃음 주십니다 ㅎ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하지 전 짧은 며칠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민주화운동 이을호 전 민청련 부위원장 별세] https://www.yna.co.kr/view/AKR20220126174700004?input=1195m (2022년 1월)


양귀자 작가의 이상문학상 수상작 '숨은 꽃'에 고 이을호를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나와서, 그가 참여한 민주화운동단체 민청련 의장을 지낸 고 김근태에 관해 찾아본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근태 [金槿泰]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381454&cid=40942&categoryId=33385


'당신이 옳았습니다 - 김근태 이야기'(최용탁 지음)로부터 옮긴다. 이근안은 김근태를 고문했던 고문기술자.




김근태기념도서관 https://www.unilib.dobong.kr/contents.do?idx=310






이근안이 감옥에서 나오고 꼭 한 번 서울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길을 가다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퍼뜩 눈에 들어왔다. 뒤를 돌아보니, 뒷모습만으로도 분명 그였다. 뛰어가 등 뒤에서 ‘이근안?’ 하고 불렀다. 돌아본 이근안이 ‘의원님,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김근태를 알아보고 피해 가려던 것이 분명했다. 한참 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어쩔 줄 모르고 불안해 하는 모습이었다.

"됐습니다. 가 보십시오."

김근태의 말이 떨어지자, 보이지 않는 사슬에서 풀려나기라도 한 듯 재빨리 멀어져 갔다.

2012년 6월 26일, 인재근은 고문과 국가 폭력 생존자들의 모임인 ‘진실의 힘’에서 수여하는 제2회 인권상을 김근태 고문 대신 수상했다. 케네디 인권상을 받을 때는 감옥에 있는 김근태를 대신하여 수상했는데, 이번에는 하늘에 있는 김근태를 대신하여 받았다. 이날 상을 받으며 인재근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남편이 떠나기 전에 은폐된 고문의 진실을 밝히고 고문의 국가적 사회적 치유에 좀 더 일찍 헌신했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쉬쉬했던 점이 가장 후회스럽습니다. 병을 감추니 병의 원흉인 고문 후유증도 같이 감춰지게 되고, 결국 고문을 국가나 사회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말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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