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완서 작가가 쓴 '이별의 김포공항'(1974)을 이슬아 작가가 읽고 쓴 글로부터. 악스트 2020.1.2. 수록.


김포공항(2019) By Brit in Seoul - Own work, CC BY-SA 4.0, 위키미디어커먼즈


[네이버 지식백과] 이별의 김포공항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4870&cid=41708&categoryId=41737


아래 옮긴 글 속 쪽수는 쏜살문고본.







지금까지 나에게 글쓰기는 웃기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옮겨 적는 과정이었다. 그 안에는 눈물도 고단함도 있지만, 내일 다시 시작할 몸과 심신의 체력을 꼭 남겨둔 채로 엔딩을 맞이하는 게 내 글의 특징 중 하나였다. 이제는 그런 방식으로 비출 수 없는 진실의 디테일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특히 박완서의 소설집을 보며 실감한다.

그는 단편소설 「이별의 김포공항」에서 한 ‘노파’를 이렇게 묘사하며 등장시킨다.

[머리숱 하며 몸집 하며 이목구비가 자리 잡은 간살 하며 어디 한 군데 넉넉한 데라곤 없이 옹색하고 박하게만 생긴 노파가 남을 얕잡을 때만은 갑자기 의기양양하고 되바라지며 밝고 귀여운 얼굴이 된다. 꼭 불이 켜진 꼬마전구같이. 요새 이 꼬마전구는 꺼져 있는 동안보다 켜져 있는 동안이 훨씬 많다.

노파는 곧 미국을 가게 모든 수속이 끝나 있다. 딸의 덕에. 노파에겐 이 딸의 덕이라는 게 암만해도 진수성찬 끝에 구정물 마신 것모양 꺼림칙했지만 아들 넷 중 맏이만 빼놓고 세 아들이 다 미국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 다시 고개가 빳빳해지며 당당해진다.(8쪽)]

「이별의 김포공항」에는 아까의 ‘노파’를 바라보는 ‘소녀’도 등장한다. 손녀딸의 눈으로 바라보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소녀는 할머니가 입고 있는 촌스럽게 번들대는 합섬 양단 치마저고리와 은비녀가 삐딱하게 꽂힌 조그맣고 허술한 쪽과, 목에 걸어 거북하게 앞가슴에 늘어져 있는 BONANZA라는 흰 글씨가 새겨진 빨간 숄더백과, 그런 겉치장의 부조화가 딴 여행객들과 이루는 또 하나의 우스꽝스러운 부조화와, 끝내 길남이에 대한 강한 애착을 못 끊는 짓무른 노안을 지켜보면서 거의 육체적이랄 수도 있는 아픔을 가슴 깊은 곳에 느낀다.(26쪽)]

박완서의 소설로 나는 전 연령의 여자들 모습을 선명하게 읽는다. 가슴이 울렁이는 독서다. 회복되지 않는 엔딩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내가 애증하는 인물들에 대해 더 정확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슬아 박완서 「이별의 김포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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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4-06-28 0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곡님이 엮어주는 글타래가 좋아요 참 좋아요

서곡 2024-06-28 08:32   좋아요 1 | URL
히히히 감사합니다 남은 6월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