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왔고 오랜만에 크리스티 여사의 책을 읽거나 오디오북으로 들을까 하다가 ott에 영드 '미스 마플'이 보여 틀어놓는다. 첫 화는 '서재의 시체'(1942)다. 드라마가 원작과 다를 수 있으므로 - 전에 본 영드 포와로 탐정이 그랬었다 - 원래 내용이 궁금하면 찾아읽기로.


아래 옮긴 글의 출처는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설혜심 지음).

Fair use, https://en.wikipedia.org/w/index.php?curid=15533829






《서재의 시체》가 발표된 1942년쯤에는 애거서가 자기도 남부럽지 않은 성공적인 작가라는 확신을 지니게 된 듯하다. 하퍼 총경과 마주친 아홉 살짜리 꼬마 피터 카모디는 수사에 끼어들고 싶어한다. 자신이 추리소설의 열렬한 독자라고 밝히며 "도러시 세이어스랑 애거서 크리스티, 딕슨 카(John Dickson Carr), 그리고 H. C. 베일리(H. C. Bailey)의 친필사인도 가지고 있는걸요"라고 자랑하면서 말이다. 셜록 홈스나 코넌 도일은 사라지고 대신 다른 작가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아마도 애거서가 당시 자신과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한 작가들의 목록일 것이다. - 1 탐정 "이혼을 위한 조사 같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서재의 시체》는 그 시작부터 아주 드라마틱하다. 고싱턴 홀에서 젊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자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 발칵 뒤집힌다. 짙은 화장, 화려한 새틴 이브닝드레스에 정성 들여 컬을 말아 넣은 금발 머리를 한 여성은 그 요란스러운 차림새 때문에 곧 마제스틱 호텔에서 댄서로 일하는 루비 킨으로 지목된다. - 8 신분 도용 "난 작가인 척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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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제, 「0%를 향하여」(『Axt』 2020년 1/2월호) https://moonji.com/monthlynovel/23491/


영화를 전공한 서이제 작가의 단편 '0%를 향하여'로부터. 



[지평선] 영화 ‘미망인’ https://v.daum.net/v/20240604180010714


박남옥 감독의 영화 '미망인' https://youtu.be/Ov4Rh6db6II?si=zfvijPLKPLnZXB0W








스물한 살 때 중앙극장에서 봤어. 전쟁으로 미망인이 된 여자가 젊은 청년하고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였어. 내가 젊을 때 영화를 진짜 좋아했거든.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길에 그 영화 뒷이야기를 항상 상상하고 그랬다고. 영화는 끝났지만, 나한테는 끝난 게 아니었어. 망상이 들끓어서 글을 배워볼까 소설을 읽고 쓰고 그랬지. 그리고 그냥 시집가서 살았어. 그래도 애 낳고 잘 살았다고. 남편이랑 같이 영화도 보러 다니고 그랬지. 그러다가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데 그 영화가 나오는 거야. 그 미망인 나오는 영화. 세상에, 박남옥이라는 여자가 찍은 영화라는 거야. 그 사람이 그 영화 찍으려고 친언니랑 지인들에게 제작비를 빌리고, 스태프와 배우도 직접 구하고, 촬영장에서 사람들 밥도 먹이고, 애를 업고 그걸 다 했다는 거야. 그 여자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라. 지금껏 나는 왜 감독이 될 생각을 못했을까. 어째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한 거야.

야, 이거. 나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죽기 전에 영화 한번 찍어봐야겠다 했지. 그래서 나 영화 찍었고, 지금 편집 중이야. 내가 우리 반에서 제일 우수생이야. - 서이제, 0%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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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경험'(김형경)에서 내면 공간의 의의를 강조한 부분을 옮기면서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 그린 '세한도'를 본다.


김정희의 세한도 By Kim Jeong-hui - http://gongu.copyright.or.kr/,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즈






개인도 사회도 무너지려는 마음을 다독여 일으켜 세울 때, 먼저 그 경험을 내면에 간직하고 인내하면서 되새길 수 있는 의식의 공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내면 공간에 머물 때에만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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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Portrait with Scorpion, 1938 - Leonor Fini - WikiArt.org


에로스・죽음 충동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72XX56800011 (서영채)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목표를 세우지만 흔히 작심삼일이라고 말하는 시기를 맞게 된다. 내면에서 에로스와 타나토스 영역의 에너지들이 대립하면서 무력감이 밀려온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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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6-24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풍경을 인상적으로 읽었어요. 심리 공부에 도움에 되는 책이었어요.

서곡 2024-06-24 14:03   좋아요 0 | URL
네 요새는 책을 안 내시는 것 같아요
 

'저녁의 해후' 수록작 '사람의 일기'(1985)는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친 엄마의 심경을 담고 있다.


Red Vision, 1984 - Leonor Fini - WikiArt.org






남에 대해 무심하고 때로는 차갑기까지 한 만큼 내 식구들에 대한 나의 애정과 관심은 내가 생각해도 좀 지긋지긋한 바가 있었다.

여직껏 써갈긴 이야기에 넌더리가 났다. 내 소설에서 주로 다루어온 나보다 못난 사람들, 짓눌리고 학대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다만 이야기를 꾸미기 위한 관심이었다는 걸 왜 느닷없이 깨닫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관심만 있고 사랑 없음이 그 삭막한 바닥을 드러내자 이제야말로 마지막이다 싶었다.

그 무렵 나는 나의 문학적 관심의 사랑 없음에도 절망하고 있었지만, 가족이라는 가까운 핏줄에만 집중적으로 국한된 나의 지긋지긋한 모성애에도 적이 절망하고 있었다. 밖으로 확산하지 않으면 독이 될 것처럼 그 사랑은 이미 너무 진하고 편협했다.

내 딸 외의 모든 여자들이 흠 하나 없이 건강하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 내 건강과 정신을 무참히 좀먹고 있었다. 흠 없고 건강한 사람한테 질투가 나서 꼴도 보기 싫었다.

헤어날 길 없는 불행감이었다. 병원에선 달 반도 후딱 갔는데 퇴원하곤 하루가 여삼추였다. 원망과 불행감에 짓눌린 시간이란 얽힌 실타래처럼 마냥 더디게 풀렸다.

내 딸의 불행이 그들의 위안거리가 된다는 걸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을 원수처럼 노려보았고 내심 불같은 증오심을 불태웠었다. 그러나 내가 내 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보고 느낀 기쁨에다 대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웃 사랑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처럼 육친에 대한 사랑이 지긋지긋하게 뭉친 사람에겐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신은 죽었다’는 참 근사한 말이었다. 나는 한술 더 떠 ‘신을 죽였다’고 뽐내고 싶지만 예전에 죽은 신을 죽여봤댔자였다. - 사람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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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6-24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곡님께서도 요즘 박완서의 작품을 읽고 계시네요.
작가가 남긴 작품의 수가 정말 많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곡 2024-06-24 10:31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읽고 있습니다 ㅋㅋ 작가님이 실제 막내딸이 교통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더라고요 당시 ‘미망‘ 연재 중이어서 딸 보살피랴 원고 쓰랴 엄청 힘들고 바쁘셨다고 합니다 참 여러 모로 대단한 분이세요

페크pek0501 2024-06-24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하게 확 내뱉는... 역시 박완서 작가입니다!!!

서곡 2024-06-24 14:04   좋아요 0 | URL
네 특유의 개성이 확실히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