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가 이미지를 낳고, 가상이 실재를 구축해 버리는 디지털의 세계에서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널리 통용되는 그 아름다움의 매혹은 우리에게 허상뿐이지 않을까?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더 큰 매혹, 혹은 유혹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붓다가 말하는 이 세계 존재의 허탄함이듯,
본질없는 사진 이미지의 세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일단 이미지에 현혹되면 더 강하고, 더 충격적이고, 더 자극적인 이미지의 세계로 빠질 수 밖에 없다.
세상의 돈, 권력, 명예, 지위, 아름다움, 섹스에 빠지면 빠질수록 그것을 탐닉할 수 밖에 없듯이 사진 이미지의 아름다움, 돈, 명예 등에 빠지면 빠질수록 마찬가지의 결과만 나올뿐이다.
예술이란 '무엇'의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의 문제이기 때문에 예술로 가는 이미지는 그 '무엇'을 무시하고, 핍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만 그 '어떻게'는 허탄한 이미지의 세계를 전제로 하는 사진에는 합당하지 않다.
사진은 도구지향적이어야 한다.
사진으로 커뮤니케이션을(포토저널리즘) 하거나,
메세지를 전하거나(다큐멘터리)
생각을 나누거나(사진 에세이)
힐링을 하거나(사진 치유)
하는 것이 존중받을 사진의 삶이어야 한다.
복제가능한, 그래서 이제는 원본과 모사의 구별이 사라져 버린 한낱 허탄한 이미지로 예술의 세계를 좇는 것보다는
현실의 삶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것이다.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것이 사진에서 취하는 해탈일 것이다.>- <붓다와카메라> 본문 43 ~ 45쪽
사진은 도구지향적이어야 한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특히나 "사진 에세이"는 조금이라도 설익은 문장과 함께라면 "빛의 감동"은 유치해지기 마련이지요.
유레카님의 <소리없는 빛의 노래>란 작품은
사진이 예술만을 지향하지 않고,
저자 자신의 현실을 투영한 '삶의 이야기'로 완성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음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