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독서토론모임에 <데미안>이 선정되었는데요.
전 얼마전에 읽었던 책이라 살짝 실망했습니다.
물론 <데미안>이란 책은 두고 두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기에, 한번 더 읽는 수고로움도
기꺼이 즐길 요량이었지만 말입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9년(헤세의 나이 42세) 에밀싱클레어란 가명으로 쓰여진 이 작품 이후 헤세는 완전히 새로운 작가가 되었다 합니다.
모임이 3주나 남았기에 좀 더 깊이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더랬죠.
그래서 이 작품이후로 어떻게 변해갔는지 궁금했습니다.
더군다나 헤세의 작품은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시킨 자서전격의 작품이 대다수라 작품에 투영된 그의 세계관이 어느 뿌리에서 나온 것인지 초기작부터 차근차근 읽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더군요
이에 책모임 밴드에 헤세의 전작을 읽어보겠다는,
만용을 부리고 말았습니다. 으흐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의 나이 50초반에 출간한 <황야의 이리>를 읽는 중입니다만,
작품의 수로 따지면 절반을 넘었지만, 앞으로 남은<나르치스와골드문트><유리알유희1.2>의 두꺼운 페이지수는 만만치 않은 고난을 예고했습니다.
게다가 <데미안>이후 내면으로 침잠하는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해서인지, 점점 더 난해해지는 문장들에 정신 바짝 차려야겠더군요..
하지만 헤세의 글은 곱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어렵지만 읽을수록 내 영혼이 충만해진다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을 주는 문장들이 많았어요.
예의 지적쾌감을 주는 문장과는 또다른 유희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흘러가는 지류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강물이
되듯이,
헤세의 개별작품들은 근사한 요리하나를 만들기 위해 재료가 되는 밀가루처럼, 주무르고 반죽하고 섞고 섞이어 궁극적으로는 마치 개별작품의 개성들이 신비로운 묘기를 부리는 것처럼 하나의 지향점으로 나아가더군요.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렇게 시간내서 열심히 읽고 있는데,
돌아서면 백지장이 되어 버릴까 싶어서요.
개별작품으로서의 기억은 사라지고, 그저 헤세의 작품전체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만이 남아있을꺼란
걱정에 조급해집디다.
책을 읽고난 후 감동의 미열이 사라지기전에 뭐든지 남겨보자!..이런 마음에 설익은 감상이지만
긁적여볼께요.
<수레바퀴아래서>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함께 돌리던지,
아래에 치여 깔려죽던지 그것이 문제로다.˝
결국 한스는 2가지 중에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크눌프>
과연 ˝안정적 삶˝이란 무엇인가요?
살아가는 건 영혼이 숨쉬는 활동 아닌가요.
<데미안>
작품 첫 문장에서 이미 반해버렸습니다.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클링조어의 마지막여름>
가족과의 제주도여행에서 밤바다를 즐기며 읽었던 작품입니다.
헤세가 수준급의 수채화를 그리는 과정에서 나온 작품이라 작품의 문체가 독특했는데요.
˝그건 아마도 그림을 그릴때의 붓질을 문장으로 흉내 낸 것이라고 볼수 있다˝- 작품해설중
˝자연은 수만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 단계를 스무 개 정도의 색으로 축소해서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네. 이것이 그림이야.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음에도 비평가들을 먹여 살리는데 도움을 줘야 한다네.˝-<본문 20~21쪽>
<싯다르타>
헤세가 1911년 인도여행을 다녀온 이후 11년만에 완전한 정체(?)를 드러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까진 헤세의 작품중에 가장 사랑하는 책이 되어 버렸네요.
<데미안>에서 비롯된 선과악의 조화를 싯다르타의 경험안에서 녹여냈구요. 그 깨달음의 과정은 흔히 이야기하는 고매한 정신수양에만 있지 않았고, 범인들의 비루한 욕망조차도, 그것 자체로 우리네 인생의 소중한 가치안에 포함시킨 반전이 저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황야의이리>, <나르치스와골드문트><유리알유희>
앞으로 남은 책들인데요.
민음사컬렉션 기준으로 선정한 도서라
더 많은 작품들을 소개해드리지 못해 아쉽지만,
누구나 헤세의 작품 몇권 정도만 읽기 시작하면,
숨어있는 그의 보석같은 시집, 단편들을 집요하게 찾아 읽을 것 같아요. 이미 저도 그런 시도를 꿈꾸고 있으니까요.^^
오랫만에 긴 글 적은 것 같습니다.
느낌을 글로 풀어내는 건 여전히 어렵네요.하~
하지만, 저의 포스팅이 아직 헤세를 만나보지 못한 누군가에게 첫 계기가 되어준다면
제가 느낀 그 감동 이상의 것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