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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프리모임 12월 2주차

참석 : 요물. 쿠키. 타니아
책 : 죄와벌. 이기적유전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장소 : hollys coffee(침산네거리점)




아침 일찍 운동하고 나니 기분이 좋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천성이 게으르고 몸쓰는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조금만 운동하는 데 시간을 투자해도 만족도가 큰 편이다.

오늘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9장
암수의 전쟁(246쪽~281쪽)을 읽었다.
정말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특히 수컷이 장기간에 걸쳐 성실함을 어떤 식으로든 증명해 보일때까지 교미하지 않으려는 암컷의 모습이 우리 인간에게도 친숙한 모습인 점을 다룰 때, 그 이면에 사기치고 간파하는 과정이 유전자의 생존 전략의 진화라는 설명은 짜릿했다.
(나의 어설픈 과거가 새삼 떠오른다는..)


북프리회원중 김진명 책을 모조리 씹어 드신
요물님은 드디어 <죄와벌(상)>을 완독했다.
내가 추천한 책이라 읽은 사람도 뿌듯하겠지만
나도 흐뭇하다. 언능 하권까지 다 읽고 그 묵직한 고전의 맛을 함께 공유했으면 한다. 응원한다.




타니아님은 내가 예전에 대전에 출장갈 때
ktx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한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있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의도하지 않았기에 내용은 풍경으로만 남아 있다.
파스텔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의 책이다.


* 진해에서 제인오스틴의 <이성과감성>으로
자체 북프리하시는 앤님도 남은 휴일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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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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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 305쪽




불행이 이런 것이라면 '행복'은 무엇인가.

야만인은 조건반사양육을 받아 불행이라는 것은 느껴볼 수 없는 신세계가 소름끼친다.

이에 총통의 대답은 이렇게 답한다.





"실제의 행복이란 것은 불행에 대한 과잉보상에 비하면 항상 추악하게 보이는 법일세. 또한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안정이라는 것은 불안정처럼 큰 구경거리가 될 수 없는 법일세. 따라서 만족하는 생활은 불행과의 처절한 투쟁이 지니는 매력이나, 유혹과 투쟁이 지니는 장관이나, 정열 내지 회의에 대한 치명적인 패배가 지니는 장쾌함을 갖추지 못하는 것이야. 행복은 결코 장쾌한 것이 아니야" -280쪽



결국 <멋진 신세계>는 "행복'만 느끼는 인간들로 구성되어 "안정"된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유발하라리 <사피엔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세계와 감정세계는 수백만 년의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생화학적 체제의 지배를 받는다. 다른 모든 정신적 상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복도 월급이나 사회관계, 정치적 권리 같은 외부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신경, 뉴런, 시냅스 그리고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등의 다양한 생화학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집을 사거나 승진하거나 심지어 진정한 사랑을 찾거나 하는 일로 행복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신체 내부의 쾌락적인 감각이다. 방금 복권에 당첨되거나 새로운 연인을 찾아서 기뻐 날뛰는 사람은 실제도 돈이나 연인에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혈관 속을 요동치며 흐르는 다양한 호르몬과 뇌의 여러부위에서 오가는 전기신호의 폭풍에 반응하는 것이다."- <사피엔스 544쪽>



"진화는 우리로 하여금 일시적으로 몰려오는 쾌락적 감각을 누릴 수 있게 했지만, 그런 느낌은 결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조만간 이 느낌은 가라앉고 불쾌한 느낌에게 자리를 내준다.

예를 들어, 진화는 남자로 하여금 임신 가능한 여자와 성관계를 해서 유전자를 퍼뜨리면 쾌감이라는 보상이 주어지도록 만들었다.만일 성관계에 따르는 쾌감이 그리 크지 않다면, 힘들여 그런 수고를 하려 드는 남자는 드물 것이다. 그런데 또한 우리는 그 쾌감이 재빨리 사라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만일 오르가즘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행복한 남자는 음식에 흥미를 잃은 탓에 굶어 죽고 말 것이고, 다른 임신 가능한 여자를 찾는 수고를 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사피엔스 545쪽>



언제 읽어도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는 매력적이다.

심리학과 사회학의 접근 방식과 아귀가 맞지 않는 생화학적 시스템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한다.

이때 <사피엔스>에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나온 행복의 알약 "소마"를 인용한다.



"과거 뉴에이지 세대의 유명한 구호만큼 생물학자들의 주장을 핵심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또 없다. '행복은 내부에서 시작된다.' 돈이나 사회적 지위, 성형수술, 아름다운 집, 높은 자리는 우리에게 전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지속적 행복은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에서만 온다"

미국 대공황의 절정기인 1932년 출간된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속에서, 행복은 최고의 가치이며 향정신성 약물이 경찰과 투표 대신 정치의 기반자리를 차지한다. 모든 사람은 날마다 "소마"라는 약을 복용하는데, 생산성과 효율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합성 마약이다. 지구 전체를 지배하는 세계 정부는 전쟁이나 혁명, 파업이나 시위로 인해 위협받는 일이 전혀 없다. 모든 사람이 현재의 상황에 어떻든 대단히 만족하기 때문이다. 헉슬리의 미래상은 조지 오웰의 <1984>보다 훨씬 더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대부분의 독자는 헉슬리가 그려내는 세상을 괴물 같다고 느낀다. 하지만 왜 그런지 설명하기는 힘들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다는데,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 <사피엔스 550쪽>



종교적, 철학적, 사회적, 윤리적 등 모든 분야에서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

하지만 생화학적 시스템에서 말하는 "행복'이 얼마나 강력한지 부인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을 어떻게 말하는가

그의 저서 <행복의 정복>에서 이렇게 말한다.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 진정한 기쁨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만 깃들기 때문이다" -<행복의 정복 75쪽>


갑자기 실망스럽지 않은가?

막연하고 추상적인 행복, 마치 현명한 사람은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 때문에 자신의 즐거움을 망치지 않는다. 류의 철학적인 자세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행복의 관건은 개인의 환상을 폭넓게 퍼진 집단적 환상에 맞추는 데 있을지 모른다.

내가 지향하는 가치가 사회가 추구하는, 또는 주변 사람들과 일치하는 한 나는 내 삶이 의미 있는 것이라 확신할 수 있으며, 그 확신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얼마나 불쌍한가. 행복은 이처럼 정말 자기기만에 달려 있는 것인가.








* 오늘 하루 2만보 걸었네요




인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오. 멋진 신세계여....[템페스트 제5막 1장중에서]-265쪽

그들도 짧은 작업시간을 요구하고 있지. 까짓거 우리는 보다 짧은 작업시간을 부과할 수도 있네. 기술적으로 하층계급의 작업시간을 하루 세 시간이나 네 시간으로 줄이는 것은 간단한 일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네들이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아냐. 그렇지 않을거야. 벌써 일세기 반전에 실험이 행해졌었지. 아일랜드 전역에 걸쳐 네 시간 노동제를 실시했던 거야. 결과가 어떠했는지 알겠나? 다만 불안과 소마 소비량의 결과가 따라왔었네. 단지 그것뿐이었지. 세 시간 반이나 늘어난 여가는 행복의 원천이 되기는커녕 그 여가로부터 어떻게 하면 도피할 수있을까 하는 강박관념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말았단 말일세. 발명국에는 노동절약을 위한 계획이 산적돼 있네. 수천 가지의 계획서가 작성되어 있단 말일세."-284쪽

신은 기계나 발달된 의약품이나 보편적 행복과는 양립할 수 없는 걸세.-297쪽

무엇보다 먼저 이야기해둘 것은 헉슬리의 사고방식의 근저에는, 모든 진보는 반드시 그 희생의 대가를 동반하는 것이라는 사상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교육의 보급은 19세기에서는 민주주의의 보편화를 촉진시킬 것으로 믿어졌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 교육의 보급은 정보나 지식의 전달을 용이하게 해줌과 동시에 전체주의자의 시끄러운 사상의 선전을 편리하게 했다는 면도 무시할 수 없다 - 332쪽

바로 그것이 행복과 미덕의 비결이야-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 모든 조건반사적 단련이 목표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야. 자신들의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숙명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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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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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치누아루모구 아체베(Albert Chinualumogu Achebe) : 1930~2013(84세)

나이지리아에서 출생, 목사인 아버지가 영국 빅토리아 여왕 남편의 이름을 따 아들의 세례명을 앨버트라 함.



[치누아아체베의 5부작] 의 배경

1.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1958) : 영국이 나이지리아 지역에 본격적으로 침입해 오기 시작한 19세기 말

2. 신의 화살(1964) : 영국의 지배체제가 완전히 정착되고 기독교가 전통 종교를 무너뜨리는 1920년대

3. 평안과의 이별(1960) : 독립으로 나아가는 정권 이양기 동안 도덕적 해이에 직면하는 1950년대

4. 민중의 사람(1966) : 소망하던 독립을 이루고 민족국가를 세웠지만 이후 무질서와 정치적 부패가 만연한 1960년대 말

5. 사바나의 중심가(1987) : 혼돈과 좌절 그리고 정치적 불안정과 새롭게 다가오는 외세 속의 1980년대



>>>> 발췌(작품 해설)


p.251

영국이 노예무역에 머물던 단계를 지나, 직접 아프리카 내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19세기 중반부터다. 영국에게 아프리카는 정복할 가치와 용이성이 있는 마지막 대륙이었고, 1841년부터 시작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의 선교 활동과 탐험은 결과적으로 그 선발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p.252

1960년 나이지리아가 공식적 독립을 이룰 때까지 외세의 무력은 오랜 세월 지속해 온 토착 전통 체제를 산산이 부숴 버렸다.

(...)

이 소설이 발표된 1958년의 나이지리아는 이제 독립이 약속되고 정권 이양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

그는 자신들의 공동체와 전통이 서구에 의해 폭력적으로 해체되는 과정을 되돌아보고, 풍요로웠던 전통문화를 기억하면서 이에 내재된 정신을 새로운 국가 건설의 도덕적이자 문화적인 토대로 재설정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p.253~254

역사에서 보이듯 주인공 오콩코와 그의 우무오피아가 맞은 파국에는 서구 제국주의와 문화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아체베는 이 작품을 통해 주인공 개인의 책임과 그 개인을 둘러싼 사회와 문화가 져야 할 책임 또한 거론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개인 비극의 원인은 가장 크게는 정치사회적 변화, 특히 서구 제국주의에 있지만, 작가는 자신의 사회 문화가 갖는 한계와 약점을 지적하는 것 또한 바뜨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의 상황에 대해 스스로의 책임이 상대적으로 큰 것은 아니지만, 이를 간과하지 않고 냉철한 눈길로 점검하는 것은 상당한 의의를 갖는다.



p. 257

사실 아체베 이전의 나이지리아, 나아가 아프리카는 스스로를 알리기보다는 항상 알려지는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더 많은 경우는 서양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단순한 배경에 지나지 않았다.(...)

아프리카를 가장 진지한 배경으로 사용한 영문학 작품으로는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과 케리의 <미스터 존슨> 등이 있다.

(...)

아체베가 이후에 분명히 밝힌 바와 같이 그는 콘래드가 어떻든 아프리카에 대해 우호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일반적 평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p. 259

아체베는 작품의 제목들을 서구 문학 작품에서 빌려 오는 것에 서슴지 않는다. 이 작품의 제목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W.B.Yeats)의 시 <재림>에서 따왔다.(....) 아체베는 문학적 접촉과 교류에 있어 관용의 폭을 넓힐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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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보자.


-> 그(치안판사)는 많은 생각 끝에 이미 책의 제목을 정해 놓았다. "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평정"


우무오피아란 마을에 영국의 선교사가 들어옴으로써 벌어지는 아프리카의 비극을 주인공 오콩코의 눈으로 그려내다가 

마지막에 지배자인 영국이 모든 스토리를 한줄로 못 박아 버렸다.

마치 조정래 선생이 <아리랑>에서 일제치하 농토를 빼앗겨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농민들이 직접 그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냈는 상황을, 

역사책에는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 한줄로 명명한 그 느낌처럼.


빼앗긴 자는 늘 빼앗은 자의 배경으로 남는다.

문학이나 예술이나 혹은 인간관계 모두에서 말이다.

그리고 빼앗긴 자의 분노는 그들의 체념만큼이나 적.막.하.다.

그리고 반드시 그 체념에는 부지불식간에 빼앗은 자의 폭력을 회피 또는 순응하게 됨으로써 정당화의 구실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실례로 4천년간 나라없이 떠돌던 쿠르드를 보면 알 것이고,

멀쩡한 자기네땅을 빼앗겨 핍박받는 팔레스타인을 보면 분명하다.

쿠르드는 터키와 이라크, 시리아와 이란에게는 그저 떠돌이 산악부족이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게 걸리적거리는 쓰레기일 뿐이다.

우린 그들의 이야기를 미국의 뉴스에서 듣고, 유력지 헤드라인에서 요약한다.

바로 우리가 한때 쿠르드였고 팔레스타인인 것을 모른체 말이다.


우리의 전통과 혼이 일제 치하에서 얼마나 산산이 부서졌는가를 알면, 

아프리카 문학을 대할 때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되는가도 생각해 볼일이다.

그리고, 특정 민족에 속해 있는 한 작가가 객관적인 또는 중립적인 위치에서 집필하려는 그 노력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지를 안다면 

서구 제국주의가 아프리카의 파국적 상황에 대해 갖는 책임과 동시에 나이지리아 전통문화의 한계를 동시에 이야기하고자 한

치누아 아체베가 과연 '중용'의 칼날위에 서 있는지 그 균형감에 대해서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막연히 선과 악으로만 읽어왔던 아프리카 문학, 

아름다운 자연으로만 보다가 질척한 밀림 속에 발을 내디딘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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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5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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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 중에서


p.181 

한트케가 주제나 소재 면에서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많은 작품들과 여러 인터뷰를 통해, 적어도 문학 활동과 관련해서는 자신 이외의 여타의 것에 대해 관심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

그 중에서도 특히 [소망없는 불행(1972)]과 [아이이야기(1981)]가 그런 주제 의식에 부합하는 가장 전형적인 작품이며 그의 작가로서의 발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p.182

[소망없는 불행]은 1971년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하고 자살한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씌어진 산문으로 어머니의 일생을 회상하면서 한 인간이 자아에 눈떠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

[아이 이야기]는 우리 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 한트케가 연극 배우였던 첫째 부인과 결별한 후, 딸 아미나를 맡아 기른 경험을 토대로 하여 씌어졌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러 의미에서 '폐허'로 가득 찬 자신의 어린 시절로 인해 가정생활이라든가 가족 관계 등에 매우 부정적이었던 자신이 딸을 키우며 그것들의 소중함을 인식해 가고 결국은 한 인간 속의 소우주까지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 이 작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 본문 발췌(소망없는 불행)


p.9 첫문장

케른텐에서 발행하는 신문 <폭스차이퉁> 일요일 자 부고란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토요일 밤 A면(G읍)의 51세 가정주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



p.11

경악의 순간들은 언제나 아주 잠깐이고, 그 잠깐이란 시간은 경악의 순간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비현실의 감정들이 치미는 순간이며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다시 모른체해버릴 순간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있게 되면, 마치 지금 막 그에게 불손하게 굴기나 한 것처럼 이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p.17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가능성이란 없었다.

사소한 불장난, 몇번의 킬킬대는 웃음, 잠깐의 당혹감, 그러고 나서 처음 짓게 되는 낯설고 침착한 표정. 다시금 찌들린 집안 살림이 시작되고 첫아이가 태어난다. 부엌에서 바쁘게 일한 후 잠깐 사람들 틈에 끼지만 여자들의 말은 처음부터 누구나 건성으로 들을 뿐이고, 그러다 보니 여자들 자신도 점점 남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게 되고 혼자말이나 중얼거리게 된다.

나중에 두 다리로 서는 게 불편해지고, 혈관 경련이 오고, 잠자면서 중얼대기 시작하고, 자궁암에 걸리고, 드디어 죽게 되면 예정된 섭리는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을의 여자 아이들이 많이들 하고 노는 말잇기 놀이도 <피곤하고/기진하고/병들고/죽어가고/죽고>라는 식으로 여자의 삶을 나타냈다.



p.57

그녀는 나와 함께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팔라다, 크누트함순, 도스토예프스키, 막심 고리키를 읽었고 그 다음엔 토마스 울프와 윌리엄 포크너를 읽었다.(...) 독서를 함으로써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을 감싼 껍데기로부터 벗어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p. 87 마지막 문장

나중에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해 훨씬 더 자세히 쓰게 될 것이다.



>>>>>> 본문 발췌(아이 이야기)


p.109

세월이 지나면서 그는 아내와 나누었던 가장 다정하고, 가장 친밀하고, 가장 은밀한 동작과 말없이 가만히 이름을 부르곤 하던 행위를 깊은 생각이나 망설임 없이 아이에게로 옮겨 했고 나중에는 그만큼 아내의 존재를 비하해 버렸다. 마치 아이야말로 자기에게 합당한 존재이고 이제 아내 따윈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

그럼에도 그는 아내 없이 돌볼 것 투성이인 아이와 단둘이 사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p.113

그들에게 낯선 아이는 평화를 깨뜨릴 뿐 아니라 그들의 세계관에도 어긋났다.

남자는, 지겨워하면서 싫증내거나 평온을 침해 당해 흥미없어 하는 많은 시선들이 자기 아이에게 쏟아지는 것을 이미 보았다.

어쩌면 그 자신도 그런 시선을 보낸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p.115

아이들은 모든 인간에게 영혼이다.

이것을 체험하지 못한 자는, 비록 별로 고통을 당하지 않더라도, 그 편안함은 온당치 못한 행복이다.



p.117

다시 불화, 그는 그녀가 옳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녀의 행위를 비난했다.

어떻게 한 인간이 자기의 천부적인 취미를 살리겠다고 자기 아이를 떠날 수 있었을까?

<아이>에 대한 의무는 이러쿵저러쿵 질문 따위가 있어서는 안 되는 자연스러운 것, 분명한 것이 아니었던가, 자명한 것을 부인하고 구속력 있는 현실을 부인함으로써 얻게 된 업적은 그것이 아무리 놀라운 것일지라도 처음부터 불명예스럽고 무가치한 것이 아니었던가?



p.118

아내가 집을 나간 바로 그날 정오, 아이가 잠든 동안 남자는 미친 듯이 자기 일에 매달렸다.

글 쓰는 행위야말로 세상사를 적대시하며 승리감에 싸여 계속 일하게 된 동기였다.



p.119

방해받지 않고 자기 속에 침잠해 있으면서 늘 하는 식으로 그냥 아이와 함께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p.120

당시 일거리도 없었던 그의 일상은 오직 아이가 내는 소리와 아이의 물건들로만 이루어지고, 아이의 생활 리듬에 따라 흐르는 일상을 잔인하고도 무의미한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더 강도 높게 체험했다.



p.128

아이가 구현하는 인간 존재는 남자에게 삶이 어떠해야 한다는 진리의 척도를 제시해 주었다.



p.143

그때 그는 날마다 벌어지는 일에 영감을 주었던 것이 바로 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가 없다는 그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이다.



p.159

더군다나 많은 교사들이 평생토록 아이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 죄악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 교사들은 아이와 말을 했지만, 소리가 없었고, 아이를 관찰했지만 시선이 없었다. 모든 학생들에 대한 그들의 평정과 참을성은 학생들이 느끼기에는 그저 무관심일 뿐이었다.


p.171

아이들의 두 눈은 -그 눈을 보아라!- 영원한 정신을 전해 주었다. 만일 그런 시선을 못 본다면 그대는 정말 안됐다!



p.179 마지막 문장

이미 씌어진 이야기뿐만 아니라 한 아이의 모든 이야기에 언제나 부합될 어떤 시인의 문장을 깊이 생각한다.

바로 <칸틸레네-사랑과 모든 열정적인 행복이 충만하길>라는 문장을.





>>>>>> 감상


작년인가 한트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관객모독(1966)>을 읽었다.

등장인물도 대사도 지문도 없는 그냥 산문으로 이루어진 희곡작품이었다. 

아방가르드나 전위, 실험적 기법, 모더니즘 등등 무서운(?) 용어들로 작품을 추켜 세우면 읽을 맛이 나지 않는다. 아니 읽는 것이 겁난다.

그러니 한트케 책을 몇권 소장하고 있었지만 읽을 순위안에서 멀어질 밖에.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을 못했더라면 관객모독을 읽고 받은 '모독'때문에 아마 영영 읽지 못했을 수도..

며칠전 <페널티킥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1970>을 호기롭게 집어 들어 다 읽어버렸지만..아..이 책은 스토리도 있는데...왜..왜..여전히ㅠ.ㅠ

이왕 배린 몸..이라는 오기로 연달아 <소망없는 불행(1972)> 첫 문장을 읽어버렸다.

다행히 엄마의 자살 이후 인생을 되돌아보며 쓴 자서전 격인 글이었다. 그래도 한트케 형님이 1970년대 이후로 서사로 턴했다고 소문이 났던데..군데 군데 문장에서 다시 날 안드로메다로 보냈다.

엄마의 자살은 1971년, 그리고 첫번째 부인과 이혼한 것도 1971년.. 한트케 형님 최고의 힘든 시절이었지 아닐까?

이혼 후 갓난아이 딸 '아미나' 를 키우면서 겪는 어려움과 행복을 <아이 이야기(1981)>에 담았다.

개인적으로 2가지 이야기 중에 <아이 이야기(1981)>에 많은 공감을 받았다. 특히 글을 쓰는 사람이 동시에 아이키우는 일에도 매달리는 것 자체가 어느쪽 하나도 온전히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이.(내 경험으로 보아 집중해서 책 읽을 때 아이가 옆에서 놀아달라고 하면..무조건 두 개중에 한개는 완전히 포기해야 된다..늘 반성하는 부분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여자들이 독립된 방을 갖지 못하고, 온갖 잡다한 집안일에 몰두하며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또 같은 이유로 제인오스틴은 이 테마에 대해 당시의 사회제도 속에서 얼마나 고민하며 글을 써 왔는가..

이러한 명제가 바로 홀로 딸아이를 키우는 한트케가 직면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글을 읽으며 떠오른 또 한 사람의 작가가 있다.

바로 천재의 광포한 이기주의에 빠져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낸 루소..아~그렇게 비난받고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를 처절히 옹호했건만..2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욕을 먹고 있다.

그의 변명을 들어보자.


"자식들을 고아원에 넣었다는 데 대한 비난이 약간의 말재간으로 쉽게, 아이들을 싫어하는 몹쓸 아버지라는 비난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기로 결심한 까닭은 바로, 다른 방도를 취했을 경우 훨씬 더 나쁘고 피하지도 못할 내 자식들의 운명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자식들의 장래에 보다 무관심했더라면, 직접 캐울 수 없는 내 처지로서는 아이들 버릇을 망쳐놓을 아이들 엄마와 괴물로 만들어놓을 외가 친척들이 기르도록 맡겨야 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오싹해진다.(...)

아이들에게 가장 덜 위험한 교육이 고아원 교육임을 알고 있었기에 아이들을 보냈던 것이다."

- 문학동네: 장자크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아홉번째 산책 146쪽


아무리 루소가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고 있던 바로 그 시기가 정열을 바쳐 자신의 일을 할 나이였지만,

루소 자신이 <에밀>에서 주장하고 또 이행을 회피하는 자에 대해 강력이 비난하고 있는 바로 그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게을리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의 과오에 대한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속죄'라는 말을 사용하며 과거의 그 행위를 참회하고 있다.

<에밀>에서 아버지로서의 중요함을 밝힌 대목을 보자


"참된 유모는 어머니이듯이 참된 가정교사는 아버지이다. 교육 방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역할의 순서에서도 부모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라. 어머니의 손에서 이어 아버지의 손으로 옮겨가게 하라.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선생보다는 평범하지만 분별이 있는 아버지에 의해 아이는 더 훌륭하게 교육될 것이다." - 한길그레이트 출판사 : 장자크루소 <에밀> 82쪽



한트케는 프랑스 최고의 천재라 일컫는 루소가 실천하지 못했던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

물론 한트케와 루소를 동등하게 비교하는 것은 무리한 구석이 있다.

또한, 누가 더 잘 했고, 잘못했고 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위대한 일을 해낸다는 것은 반드시 예술이나 문학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일상'의 겸허한 의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트케의 작품은 워낙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지만,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된 2가지 사건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라 말하는 문학동네판 <긴 이별에 대한 짧은 편지(1972)>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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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0-15 0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트케고 루소고 뭐고 간에 정말 ....서재 정말 으리으리합니다 압도적이닷! 진짜!

북프리쿠키 2019-10-15 08:4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님.
가진 거라곤 달랑 서재밖에 없는데 일케 칭찬을 해주시니 기분이 참 좋으네요. ^^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리라이팅 클래식 15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p.192

결국 좋은 꿈과 나쁜 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은 그 자체로 몸과 마음의 병리적 표현인 셈이다.

따라서, 건강하고 청정한 삶을 위해서 꿈은 사라져야 한다.

(...)

그럼 어떻게 해야 꿈이 없이 푹 잘 수 있을까?

동의보감에선 그 방법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잘 때 모로 누워 무릎을 굽히고 자면 심기를 도울 수 있다. 일어날 때 기지개를 켜면 정신이 흩어지지 않는다.

반듯하게 누워 자면 마귀와 귀신을 부르게 된다. 공자가 시체처럼 반듯하게 누워 자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낮잠을 자면 안 되는 것은 기가 빠지기 때문이다......사람이 잘 때는 하룻밤에 늘 5번씩 돌아누워야 한다"

결국 침대 광고에 나오듯 똑바로 누워 자는 것은 오히려 몸에 해로운 셈이다. 하긴 아이들의 경우 자면서도 얼마나 왕성하게 움직이는가? 그런 맥락에서 "손을 가슴위에 얹으면 가위에 눌릴 수 있다(159쪽)고 한다.

 

 

 

p.196

음성은 뼈고 뼈는 마음이다는 것이 핵심 요지다.

뼈를 담당하는 장기 역시 신장이다. 소리-뼈-신장이 하나의 계열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p.259

연애만 시작되면 두통이나 소화불량, 몸살 등을 주기적으로 앓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감정의 기복이 심해져 장기들의 순환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p.313

요즘 청소년들은 땀구멍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에어컨에 노출된 탓에 땀을 흘릴 일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 대가가 바로 아토피다. 역시 우주에는 공짜가 없다.

 

 

 

p.318

히포크라테스도 음식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음식의 핵심은 곡식이다. 정(精)과 기(氣)의 글자에 모두 쌀 미(米)자가 들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p.364

남자는 양기라 운행시키고 여자는 음기라 머물게 한다.

해서, 남자는 너무 써서 병이 생기고, 여자는 너무 쌓여서 병이 된다.

그래서 "모든 병에 남자는 반드시 성생활을 살피고, 여자는 먼저 월경과 임신을 물어야 한다:(잡병편 '변증' 926쪽)

 

 

 

p.379~381

14세에 천계가 열리면서 초경이 시작되고, 49세에 천계가 닫히면서 폐경이 된다.

이게 여성의 몸에 흐르는 자연의 리듬이다.(...)

폐경기가 되었는데도 계속 이전처럼 월경을 하거나 심지어 양이 많아진다면 그 또한 병증이다.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남성들의 폐경기는 64세이다.

 

 

 

p.392~393

즉, 분만의 통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진통은 그 나름의 리듬과 속도를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리고 우리의 한계를 넘어선 절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통과 함께하고 진통이 우리를 휩쓸어 버리도록 내버려 두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크리스티안 노스럽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348쪽)

(...)

한마디로 자연적인 통증은 진통제와 마취로 해결하고, 병원에서 제공하는 만성적인 통증은 대책없이 감내해야 하는 전도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p.400~403

- 어릴 때 식견과 지혜가 뛰어나면 대부분 요절한다.

- 남의 의도를 미리 알아 빨리 대응하는 아이도 요절한다.

- 일찍 앉거나 일찍 걷거나, 치아가 일찍 나거나, 말을 일찍 하는 것은 모두 성품이 나쁘니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

(잡병편 '소아' 1842쪽)

(...)

요컨데 빨리 뭔가를 터득하는 것은 성품이나 기질, 수명 등에서 아주 불리하다는 것

(...)

빠르고 늦고는 아이의 체질과 체형, 그리고 근기에 따라 다 다르다. 중요한 건 남보다 빨리 하는 걸 능사로 여기는 사고의 습성이다.

 

 

 

p.426

그리고 반드시 환기해야 하는 것은 이 검진들의 신뢰도다. 실제로 "미국의사협회 홈피에 보면 CT나 MRI의 유효율이 4%정도밖에는 안된다"(최종덕, '인문의학'1집 145쪽)

또 얼마 전 통계에 따르면 유방암 확진율이 0.68%라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말하자면 안 해도 되는 검진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받고 있는지, 더 정확히 말하면 검진을 받도록 강요(직,간접적으로)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이터인 셈이다.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해서 엄청나게 비싼 검진비를 챙기고 있는 것이다.

정말 국민건강을 위한 예방조치라면 마땅히 무료거나 무료에 가까워야 한다.

(...)

결국 일찍이 이반 일리히가 예견한 바대로, "병원이 병을 만드는"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p.427

병의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음식와 운동, 칠정과 관계, 이것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다.

(...)

식습관을 바꾸고, 적절한 운동을 시작하고 감정의 회로를 관찰하고 노동의 질과 양을 조절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어떤 치유책도 별 의미가 없다.

 

 

 

p. 431

박노해 시인은 우리 모두가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p.434

삶을 결정하는 건 관계와 배치이지, 어떤 학문의 실체와 내용 자체가 아니다.

 

 

 

p.435

글쓰기는 본디 지성의 정점이다. 삶과 세계를 언어로 구조화할 수 없다면 아직 지성의 주체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지성인이 된 이 시대에 가장 결락된 기술이기도 하다.

(...)

먼저 독서의 밀도가 높아져야 한다.

(...)

글이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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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께와 스케일, 낯선 용어 때문에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던 동의보감의 입구에 발을 딛게 해 준 고미숙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열하일기에서 들뢰즈/가타리를 놓고 박지원 지성의 요체와 유쾌함을 논할때와 동의보감에서 푸코를 놓고 허준 사유의 힘을 접목시키는 고미숙 작가의 해석에서 놀라운 공부량과 글쓰기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한달 여동안 조금씩 읽어나간 책 중에 이 정도의 애착을 갖고 읽었던 책이 있었나 할 정도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느끼고, 아는 만큼 살아간다. 고로 앎은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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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 2019-10-03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북프리쿠키 2019-10-04 14:49   좋아요 0 | URL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