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스튜어트 터튼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 희망은 나를 버리고 떠나버렸다. 나는 연옥에 빠졌다. 대체 무슨 죄를 지어 이곳으로 내몰린 것일까? (17) "

 

 제목과 표지 모두 독특한 책이다. 일곱번 죽는다는 것도 알쏭달쏭하고,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듯한, 체스 말이 하나 놓여져 있는 듯한 표지도 인상적이다. 장르를 따지자면 SF미스터리일까? SF고딕? 지금은 책으로 만나지만 아마 곧 영화로도 제작되지 않을까 싶을만한 소재다. 영국에서 주목받는 작가의 첫 소설이었다니,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저자가 읽어온 소설의 작가들이 애거스 크리스티나 스티븐 킹이라는 것만 봐도 독자를 확 끌어당겨 정신없이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만들만한 야심작인 것 같아 기대됐다.

 

 이 두터운 책은 혼란으로 시작된다. 기억을 잃은 남자가 전해주는 불확실한 정보를 전해받은 독자는 서둘러 작가가 깔아놓은 조각들을 주워모으려 한다. 전달해주는 정보를 가지고 반전에 휩쓸리지 않고 한걸음 앞서 나가는 독자가 되고싶다는 오기가 생긴다. 서배스천이 애나라는 이름을 떠올리듯이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리고 동시에 독자는 작가가 걸어온 게임에 들어섰음을 느낀다. 문장은 다소 올드하다고 느껴지지만 순식간에 소설안에 독자의 자리를 만드는 능숙함이 제법 흥미롭다.

 

 " 한때 나와 호스트들 사이에 버티고 있던 장벽은 거의 완전히 허물어졌다. 래시턴의 삶과 내 삶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431) "

 

 같은 사건을 각기 다른 호스트들을 통해 풀어나간다는 것을 두고 '라쇼몽'을 떠올렸는데, 각자의 입장과 시선이 가리키는 바가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포함해서 몸의 주인과 비숍이 동화되는 점들은 또 이와 달리 독특했다. 시간을 넘나들고 몸이 뒤바뀌는 과정 동안 한걸음 앞서 나가려다가 오히려 전개를 따라잡기에 바빴다. 두권으로 충분히 나눠질만한 분량을 한권으로 묶은 것이 흐름이 끊기지 말라는 배려처럼 느껴진다. 책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에이든의 발목을 잡는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겠지 싶을때도 아직 뭐가 더 남아있었던거야? 싶은 관문을 남긴다.

 

 빨리 비밀을 다 풀어내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어내려갔는데 성향에 따라서는 내용이 복잡하니만큼 인물들을 기록하고 꼼꼼히 따져보느라 시간을 들여 읽어나가게 될 수도 있겠다. 사람의 본성과 정의라는 오래된 가치가 심어져있는 주제의식도, 고딕 분위기도 약간은 고루하지만 개성있게 봤다. 이미 출간된 후속작도 곧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렇게 복잡하고 정교한 데뷔작에 이어 또 한번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탄탄한 구성과 매력적인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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