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김동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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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를 읽으며 낯선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타인의 일기장 안으로 던져진 느낌이었다. 저자인 김동영 작가는 처음 보는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알기 전에 그 사람의 세상에 갑작스럽게 들어서게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열된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거리감있게 받아들여졌다. 저자는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거리를 좁히려고 하는데, 막상 읽으면서 지나치게 가깝게 다가온 낯선 사람에게서 느끼는 부담을 떠올렸다. 혹시 저자의 다른 책을 먼저 만났다면 이런 느낌이 덜했을까. 에세이를 읽어본 적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어색한 것일까.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감에 당혹스러웠다는 것이다.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조각을 모으는 일 같다. 산책하듯 페이지마다 이리저리 흐트려놓은 타인의 조각들을 살펴보다 때로 마음에 드는 조각을 발견하거나, 나와 닮은 조각이 있다며 반가워하는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 이 에세이는 때로 개인적으로 쓰던 블로그에 올려놨던 나의 조각들을 떠올리게 했다. 아무 날의 어떤 순간에 대해서, 혹은 좋아하는 무엇이나 싫었던 것에 대해 이래저래 적어놓았었다. 장문의 글이 세줄로 요약되길 바라는 흐름에서 블로그가 SNS로 대체되는 변화에서 점차 사용을 줄였었다. 그리고 지금은 몇 달 째 아무것도 쓰지 않고 방치해두었다. 어쩌면 과거의 누군가는 그곳에 남겨놓은 나의 조각을 보았으리라. 그랬다면 어땠을까 책을 읽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읽으면서 상실에 관한 내용이 나올 때면 좀 더 찬찬히 살폈다. 서열 1위였던 케루악에 대한 이야기는 해피엔딩은 아니어도 꽤 따뜻하게 다가왔다. 볼품없고 약한, 슬퍼보이는 모습에 못내 손길이 갔다는 점도, 줄줄이 맞이한 모리씨와 오로라 사이에서 카리스마적인 앞발 펀치로 서열 정리를 끝냈다던 이야기도 아기자기했다. 그리고 그래도 먹어야지 하며 냉장고 앞에서 꾸역꾸역 밥을 먹으며 지나보낸 어머니와의 이별 이야기는 충분히 마음이 아팠다. 상실을 경험한 이후로 상실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는데, 저자의 에피소드가 공감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에 가라앉혀둔 두려움이 일렁이는 느낌을 받았다. 상실이라는 것이 필연적이면서 어떻게든 지나보내야 하는 삶의 영속성 위에 있음을 새삼 의식하게 된다.

 

 아파서 절에 들어갔던 날들, 입원했던 병실에서 들었던 엄마를 찾는 치매 노인의 부름처럼 고통과 연민이 점철된 내용도 있고 여행을 떠나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해 담아놓은 내용들도 있었다. 여행지에서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해서는 안된단 의견에 잠깐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다. 생각해보니 그의 말대로 영어에 대한 과신이었고 오만이었다. 그러던 중 종현에 대한 부분이 나와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 전체적인 흐름에서 조금은 도드라지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라디오에서 인연이 닿았다는 그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그가 맞겠지. 시기적으로 공교로웠을지, 아니면 나름의 추모를 위한 내용이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갑자기 맞닥뜨린 그의 등장에 약간의 의문과 애매함이 남았다.

 

 좀 더 감성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극히 일상적이고 건조한 것 같으면서도 감성적이다. 제목이나 분위기, 에세이라는 장르가 주는 인상이 감성적인 내용이 많을 것이라 예상하게 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의 감성은 감성적이기 위한 감성을 드러내놓은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때로 감성적이다. 아, 뭔가 설명할수록 같은 단어만 반복되서 더 모를 것 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개인적인 내용들이 많은데 또 이상하게도 내밀하진 않다. 자신을 드러냈지만 날 것을 드러내진 않은 느낌이다. 자신을 일정부분 가리고 포장하여 드러낸 것처럼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보여지기 위함을 의식한 내용이라 느껴졌다.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적당한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책이라 생각된다. 무엇이 되고, 되지 않고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당신과 자기 자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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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시 - 힘 빼고, 가볍게 해내는 끝내기의 기술
존 에이커프 지음, 임가영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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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내용의 책을 연말-연초를 거쳐 읽는다는 것은 좀 민망한 일이다. 시기를 많이 의식한 느낌이 든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가장 정력적인 성향을 가진 친구가 지나가듯이 다이어리와 새해 맞이 계획을 물어오기에,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부질없음을 표하며 넘겨버린 날이 있었다. 그는 이런저런 일도 많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스타일이어서 아마 사적인 얘기를 적거나 이래저래 꾸미지는 않더라도 다이어리로 자신의 스케줄을 관리할 것이고, 올해에는 무엇이라도 좀 해보자며 계획을 세운 것도 있으리라. 물론 나 역시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입버릇처럼 체중조절을 위해 식이조절과 운동을 할거라 하기도 했고, 다이어리는 최근까지도 꽤 꼼꼼한 업무용으로 썼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어떤 계획이나 결심을 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것이 지속된 적이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모 커피 전문점에서 연말에 몇 잔 이상의 커피를 마셔 모은 쿠폰으로 받은 다이어리들은 기념품처럼 책장에 꼽힌 채 한번도 펼쳐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를 몰아세우듯 뭔가를 결심하고 또 어느새 실패해서 자책하게 되는 이 이상한 행위를 더는 반복하고 싶지 않아졌다. 문제는 '결심'인 것 같았다.

 

 다산북스에서 나온 존 에이커프의 '피니시'는 그런 내용이다. 끝내지 못한 목표들을 어떻게 해야 끝낼 수 있을까 방향을 제시하는. 자기계발서 특유의 정형화 된 어조가 강하게 느껴져서 초반부터 읽는데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나름의 밝은 에너지로 빠른 템포를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거를 것은 거르며 공감할 것은 공감하고 가볍게 읽어나가면 금방 읽게 된다. 전체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시작의 중요성'에서 '끝내기의 중요성'으로 관점을 옮겼는지에 대한 경험을 시작으로, 높은 목표와 완고한 완벽주의가 끼치는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보통 목표를 세울 때 하루에 1시간씩 달리기, 팔굽혀펴기 100번,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 같은 구체성을 갖고 계획한다. 처음 3일 정도는 무리를 해서라도 의식적으로 이 목표를 지킨다. 그리고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지날 때 예상 외의 일이 생기거나 원래대로의 자신으로 돌아오려는 관성-게으름-으로 이 목표를 지키지 못하게 된다. 완벽하게 이루어졌던 일정에 구멍이 생기는 순간 애초에 세웠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그 뒤로 망쳐진 목표에 더이상 노력을 기울이려 하지 않게 된다.

 

 "불완전함은 잽싸게 찾아온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대개 그만두고 만다. 그래서 더 이상 완벽하지 않은 날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그날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모든 목표의 달성 여부를 좌우한다. 조깅을 하루 건너뛴 다음 날, 일찍 일어나는 데 실패한 다음 날, 도넛을 하루에 딱 한 개만 먹겠다고 결심한 다음 날이 바로 그날이다. '더 이상 완벽하지 않은 날'은 시작만 하는 사람과 끝까지 완주하는 사람을 결정짓는 날이기도 하다. -p.30 피니시"

 

 그는 책에서 그런 순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가 자신의 목표를 향해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바로 그 구멍이 생기는 날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매순간 편함과 타협하려는 자신을 경계해야 함을 강조한다. 매사에 꼼꼼하고 자신의 성과에 예민한 친구가 있는데, 나보다는 그 친구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혹시 어쩌면 그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목표 달성에 추진력을 더하는 방법으로 수치를 측정하는 23개의 예시를 드는데, 그 중에 SNS팔로워의 수가 있다는 것은 좀 뜨악했다.'인적 네트워크 형성'이라는 말과 함께 새로운 인맥 등등을 꼽은 것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생각이랑 달라 아쉬웠다. 다만 그가 SNS에 사용한다는 독서 관련 해시태그는 좀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곧 내용을 조금 바꿔서 사용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유형을 크게 선호하는 편이 아니지만, 연말과 새해에 지키지 못해 아쉬웠던 목표가 있었거나, 앞으로 새롭게 세운 목표가 있다면 심기일전 용으로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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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타일러의 진짜 미국식 영어 - 한 마디를 해도 통하는 김영철.타일러의 진짜 미국식 영어 1
김영철.타일러 라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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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을 책들이 몇 권 더 있는데, 호기심에 한 번 펼쳐본 이 책을 그대로 쭉 읽어보게 됐다. 지금은 한 문장 한 문장을 세심히 공부하듯 판 것은 아니라 전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읽어만 본 것이지만, 이렇게 한 번 보고 덮을만한 책이 아닌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영어 공부 좀 해보려고 시도했던 몇 권의 가벼운 책들이 물론 장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랑은 좀 안맞는다 싶은 느낌이 있었다. 너무 기본적이거나 사변적인 내용이 많아서 금세 흥미가 떨어지거나 재미가 없었달까. 아니면 공부가 좀 하기 싫었달까...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또 가벼운 학습서를 한 번 더 도전해봤다.

 

 그래서 이번에 손에 넣은 책은 '김영철 타일러의 진짜 미국식 영어'다. 이 책을 요새 서점이랑 인터넷 배너에서도 종종 보고 해서 어떤 내용일까 싶기는 했다. 약간 볼까 말까한 기분? 영어 학원 광고 같은 걸 보면 실제로 영어 공부 해보지도 않은, 1도 상관 없을 것 같은 연예인들이 '야, 너 공부해봤어?' 또는 '영어가 안되면~'하면서 나오지 않나. 나는 그런 부조리가 싫었다. 하지만 이 책은 김영철씨가 방송에서도 그렇고 영어공부 열심히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어서 그런 면에선 약간 신뢰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가벼운 이미지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회의적인 마음이었다. 이상한 개그치는 내용이 나오면 어쩌지 하고...

 

 물론, 이상한 개그치는 내용이 안 나오진 않는다. 타일러로 삼행시 짓는 머릿말부터 무리수였다. 하지만 그 머릿말 부분부터 킬링 포인트였는데, 김영철씨와 타일러씨의 머릿말 어휘의 갭이 웃겼다. 평소에도 타일러씨 문장이 좋은건 알았지만 두 사람 국적이 바뀐 것 같은 이 어휘 사용은 뭐람. 가벼운 흐름으로 리뷰를 쓰면서도 가책을 느끼게 만든다. 혹시나 이 책을 산다면 머릿말 내용 꼭 한 번씩 넘기지 말고 읽어보길. 아주 짧은 부분이지만 공동저자 두 사람의 온도차를 즐길 수 있다.

 

 책의 장점은 실생활에 사용되는 다양한 어휘와 관용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아주 짧은 표현을 영작하는 꼭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물론 각 꼭지에 해당하는 문장을 우리가 아는 표현으로 만들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소 빈약하거나,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는 문장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어도 저리 잘하는 타일러씨가 무려 모국어로 된 표현을 알려준다면 믿고 쓸만 하지 않겠는가. 거기다 김영철씨가 먼저 만들어 보는 문장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쓸만한 것들이다. 어차피 니나내나한 표현들이지만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보는 약간의 팁이 된다.

 

 또 하나는 팟캐스트를 들어볼 수 있도록 QR코드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MP3파일로도 다운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는 점은 좋다. 구성을 간단하게 했으면서도 효율적인 배려가 잘되어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가끔 QR코드 활용하면 좋을 것 같은 컨텐츠를 다루는 책중에 활용 안 한 책들 볼 때마다 안타깝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진짜 미국식 영어'는 5분 정도되는 내용으로 팟캐스트 분량도 짧고 들으면 공부하는 것 같지 않게 가볍게 들으며 지루함 없이 공부할 수 있다.   

 

 다만 좀 아쉬운 점은 타일러씨가 제시해주는 문장이 하나라는 것이다. 어차피 원어민 아니고 모를만한 구어적 표현들을 알려주는 김에 괜찮은 것들은 몇 개씩 더 제시해주면 좋을텐데 아쉽다. 그리고 딱히 뒷꼭지로 갈수록 더 어렵거나 하는 난이도의 차이가 없다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애매했다. 원래 사람이란게 진도가 나갈수록 좀 더 심화된 것이 나오길 기대하는 습성이 있잖은가. 근데 이 정도 진행이 됐는데 갑자기 이런 표현이 나오나? 싶은 부분이 있었다. 갈수록 어려워만지면 하다 포기하게 될 거면서도 그런 욕심이 좀 있었다.

 

 영어에 좀 도움이 되려나 싶어서 관심있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책이 잘 나왔다. 타일러씨는 늘 그렇듯이 건승하시고, 김영철씨는 다시보게 되었다.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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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백제 - 백제의 옛 절터에서 잃어버린 고대 왕국의 숨결을 느끼다
이병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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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어떤 분야가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 오타쿠의 기질을 보인다고 한다. 연예인을 좋아하듯이 왕들을 파고, 숨겨진 디테일에 앓는 애정을 보인다. 가끔 위인전이나 교과서에서는 알 수 없었던 '세종은 고기를 좋아하여...' 에 얽힌 일화 등을 간략하게 소개한 글들을 보면 순전한 애정으로서 역사를 공부한 것이 아니라 팠구나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내가 사랑한 백제'는 분량도 적지 않고, 자줏빛을 띄는 연한 표지부터, "백제의 옛 절터에서 잃어버린 고대 왕국의 숨결을 느끼다"라는 카피까지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성덕의 기운이 몰려오는 책이었다. 백제에 대한 저자의 그득그득 들어찬 애정 뿐 아니라, 애정만큼 밀접하게 다가가 풀어낸 빛나는 결정체라고 할까. 개인적으로 이처럼 백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저자의 열정에 휘말려 읽었다.

 

 백제라는 키워드와, 살짝 두툼한 두께가 독자를 압도하는 것과는 달리, 속내용은 상당히 친절하다. 이 책에 대해서 알려면, 이 책을 쓰는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저자의 배려로 우리는 처음부터 백제란? 이란 질문을 마주하는 당황스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남녀노소 안심하고 읽어보길. 저자가 어떻게 백제를 연구하게 되었는가를 따라가다보면 한결같은 저자의 목표의식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이건 그냥 백제가 저자를 간택한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싶어진다. 고향 땅의 영향이라고 해도, 어린시절부터 확고한 꿈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해나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읽어보면 담담하게 서술하여 놓았는데도 저절로 대단하게 여겨진다. 개인적으로는 얼마전에 순천을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일정 상 낙안읍성을 가지 않은 것이 아쉬워졌다. 게다가 조류독감으로 순천만에서 볼 예정이었던 낙조마저 놓쳐서 아쉽고 분한 마음에 순천에 당분간 갈 의향이 없어졌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보니 낙안읍성도 그렇고 날이 풀리면 다시 찾아봐야겠다 싶어졌다.

 

 재미있을까 의문을 품고 시작한 것에 비해 꽤 재미있게 술술 읽혔다. 아마도 저자가 백제에만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며 얽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제를 향한 '방망이 깎는 노인'과도 같은 깊은 장인정신을 드러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모습에 매료되어 버린다. 마치 박물관의 24시간 같은 코너처럼 관찰하듯이 바라보는, 직접 일하지 않고는 모를 박물관에 대한 내용도 곁들여 있어서 그 점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초등 고학년부터 중학생 이상 정도면 충분히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같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상당히 매력있게 읽었기 때문에 인상이 다소 딱딱해보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책의 맨처음 "목표나 의미"를 얘기하던 저자가, 그것을 이루며 살아왔음을 동경의 눈으로 감탄하며 책을 덮었다. 정말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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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
이현우 지음 / 책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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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는 예술 감염론이라는 걸 얘기합니다. 작가나 예술가가 가진 감정이나 사상이 작품이란 매체를 통해서 독자나 관객 같은 수용자에게 전달된다는 겁니다. 작가가 가진 감정이 독자에게 옮겨지는 것, 어떤 사상이 옮겨지는 것, 그래서 같이 감염되는 것. 같이 환자가 되는 거죠. 톨스토이즘이라는 어떤 아이디어가 있다고 한다면 독자를 톨스토이즘의 신봉자로 만드는 것이 예술 감염론입니다. - p.217 4강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

 

 이 책은, 굳이 장르를 분류해놓자면 해설서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왜 우리 어린시절에 보던 전과나 참고서처럼, 문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해설서. 이런 구성으로 되어 있는 책들을 좋아하면서도 읽기 꺼려하는 편이다. 보통 차마 다 소화하지 못한 부분이나 알아채지 못한 점들까지도 잡아낸 깊이 있는 내용이 많아, 읽다보면 재미있는데 한편으로는 주입식 독서법으로 '이건 이렇다'고 교육받는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텍스트로 한번 접한 해석의 결이 마치 옳고 유일한 해석인 것처럼 여겨져 나 자신의 감상으로는 나아가기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닐까 염려된다. 사실 혼자서는 그만큼도 확장될 여력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문학을 철학과 함께 분석하여 엮어낸 저자 - 이현우, 로쟈- 분의 이 신간은 "철학"이란 키워드를 품음으로써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작품을 읽어내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철학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다소, 너무나,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장점은 많은 부분을 세세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작품들을 묶어 나름의 가이드로 독자를 안내하는 형식의 글들은 많은 독자들의 환대를 받는 편일 것이다. 우리가 작품을 읽을 때 자칫 오독하게 되거나, 저자가 이스터에그처럼 숨겨놓은 글 안의 숨겨진 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리거나, 불행하게도 끝까지 다 읽기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 이 해설서는 고전이라 이름 난 좋은 작품들을 우리 개개인이 마주하였을 때 본인의 힘 만으로는 다 채울 수 없는 작품과 해석의 여백을 친절히 메워주며 더 다채로운 감상의 길로 인도하여 주는 역할을 해준다. 어떤 의미로는 이 내용을 이렇게까지 깊이 있게 사유하고 학습한 타인의 결과물을 엿보고 마치 자신도 체화한듯한 착각,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는 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극히 개인적인 예이지만 이런 해설서를 통해 알게 된 책들이 큰 감명을 주었더라도 원문을 찾아 직접 완독해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이 흥미롭고 친절한 안내서는 원문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도 작품의 내용과 의미를 쉽게, 그야말로 떠먹여주듯이 전달해주고 있다. 때문에 목록들을 보고, 이 작품에 대해서 모르는데도 괜찮을까 염려됐더라도 읽기를 망설일 필요는 없다.  

 

 가장 인상깊었던 문구로 꼽은 맨 위의 인용구는, '문학 속의 철학'을 읽으며 만나게 되는 작품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면서 만약 이들 작품들과 교감하고 그것이 "감염"되는 상태로 전달될수만 있다면 기꺼이 감염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즐겁게 읽었기 때문이다. 이는 유명한 영화 '일 포스티노'의 명대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네루다 선생님 큰일났어요, 전 사랑에 빠졌어요. 너무 아파요."
"그것은 심각한 병이 아니야. 치료약이 있거든."
"치료약은 없어요, 선생님. 치료받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전 사랑에 빠졌어요."

문학과 철학에 새롭게 빠지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감염의 상태에 머물고 싶은 여운이 남았다. 읽을수록 저자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토록 조심스러운 접근방식으로 미숙하고 서툰 독자를 놀라지 않게 사로잡을 내용의 책을 발간해주다니. 두 분야에 관심이 있지만 어렵지는 않을까 부담되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좌절했던 경험을 가진 독자라면 기쁜 마음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사실 저자는 '로쟈'라는 이름으로 A인터넷 서점에서 매우 활발히 활동하는 분이고, 그 서점을 자주, 많이, 종종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저자의 글과 소식을 접할 일이 많았다. 때문에 마치 사람들이 길에서 연예인을 보면 친숙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이름을 부르며 알은 체를 하듯이, 저자의 신간을 보며 익숙한 느낌에 일방적인 알은척? 반가움이 들었다. 더불어 책을 읽고 섣불리 어떠한 평이나 의견을 올리는 일이 어색하게도 느껴진다. 혹시나 보실까봐. 혹시나지만, 좋은 독서가 되었다는 감사의 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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