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김동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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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를 읽으며 낯선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타인의 일기장 안으로 던져진 느낌이었다. 저자인 김동영 작가는 처음 보는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알기 전에 그 사람의 세상에 갑작스럽게 들어서게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열된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거리감있게 받아들여졌다. 저자는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거리를 좁히려고 하는데, 막상 읽으면서 지나치게 가깝게 다가온 낯선 사람에게서 느끼는 부담을 떠올렸다. 혹시 저자의 다른 책을 먼저 만났다면 이런 느낌이 덜했을까. 에세이를 읽어본 적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어색한 것일까.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감에 당혹스러웠다는 것이다.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조각을 모으는 일 같다. 산책하듯 페이지마다 이리저리 흐트려놓은 타인의 조각들을 살펴보다 때로 마음에 드는 조각을 발견하거나, 나와 닮은 조각이 있다며 반가워하는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 이 에세이는 때로 개인적으로 쓰던 블로그에 올려놨던 나의 조각들을 떠올리게 했다. 아무 날의 어떤 순간에 대해서, 혹은 좋아하는 무엇이나 싫었던 것에 대해 이래저래 적어놓았었다. 장문의 글이 세줄로 요약되길 바라는 흐름에서 블로그가 SNS로 대체되는 변화에서 점차 사용을 줄였었다. 그리고 지금은 몇 달 째 아무것도 쓰지 않고 방치해두었다. 어쩌면 과거의 누군가는 그곳에 남겨놓은 나의 조각을 보았으리라. 그랬다면 어땠을까 책을 읽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읽으면서 상실에 관한 내용이 나올 때면 좀 더 찬찬히 살폈다. 서열 1위였던 케루악에 대한 이야기는 해피엔딩은 아니어도 꽤 따뜻하게 다가왔다. 볼품없고 약한, 슬퍼보이는 모습에 못내 손길이 갔다는 점도, 줄줄이 맞이한 모리씨와 오로라 사이에서 카리스마적인 앞발 펀치로 서열 정리를 끝냈다던 이야기도 아기자기했다. 그리고 그래도 먹어야지 하며 냉장고 앞에서 꾸역꾸역 밥을 먹으며 지나보낸 어머니와의 이별 이야기는 충분히 마음이 아팠다. 상실을 경험한 이후로 상실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는데, 저자의 에피소드가 공감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에 가라앉혀둔 두려움이 일렁이는 느낌을 받았다. 상실이라는 것이 필연적이면서 어떻게든 지나보내야 하는 삶의 영속성 위에 있음을 새삼 의식하게 된다.

 

 아파서 절에 들어갔던 날들, 입원했던 병실에서 들었던 엄마를 찾는 치매 노인의 부름처럼 고통과 연민이 점철된 내용도 있고 여행을 떠나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해 담아놓은 내용들도 있었다. 여행지에서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해서는 안된단 의견에 잠깐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다. 생각해보니 그의 말대로 영어에 대한 과신이었고 오만이었다. 그러던 중 종현에 대한 부분이 나와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 전체적인 흐름에서 조금은 도드라지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라디오에서 인연이 닿았다는 그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그가 맞겠지. 시기적으로 공교로웠을지, 아니면 나름의 추모를 위한 내용이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갑자기 맞닥뜨린 그의 등장에 약간의 의문과 애매함이 남았다.

 

 좀 더 감성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극히 일상적이고 건조한 것 같으면서도 감성적이다. 제목이나 분위기, 에세이라는 장르가 주는 인상이 감성적인 내용이 많을 것이라 예상하게 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의 감성은 감성적이기 위한 감성을 드러내놓은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때로 감성적이다. 아, 뭔가 설명할수록 같은 단어만 반복되서 더 모를 것 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개인적인 내용들이 많은데 또 이상하게도 내밀하진 않다. 자신을 드러냈지만 날 것을 드러내진 않은 느낌이다. 자신을 일정부분 가리고 포장하여 드러낸 것처럼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보여지기 위함을 의식한 내용이라 느껴졌다.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적당한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책이라 생각된다. 무엇이 되고, 되지 않고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당신과 자기 자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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