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좋은 추리소설은 설사 누군가 마지막 장을 찢어 버렸더라도 읽게 된다는 것입니다. ˝ (1947년 12월 16일)
필립 말로 시리즈로 유명한 하드보일드의 거장 레이먼드 챈들러는 독특한 문체와 특유의 직유로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를 자신의 영웅이라 말했고, 스티븐 킹도 챈들러를 읽으며 문체를 공부했다고 한다. 폴 오스터, 마이클 코넬리, 하라 료 등의 수많은 작가뿐만 아니라 마틴 스콜세지, 코언 형제 등 유명 감독들 역시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 책은 레이먼드 챈들러가 쓴 편지를 발췌해서 편집한 서간집이다. 챈들러는 자신의 이력에 대해 어느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력 따위를 원하는 걸까요? 그게 왜 중요해요? 그리고 왜 작가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논해야만 합니까? 그저 지루할 뿐인 것을. 나는 일리노이 주의 시카고에서, 너무 오래 전이라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싶은 언젠가 태어났습니다. ˝ (1950년 11월 10일)
1888년 7월 23일 생인 챈들러는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가 1939년 51세의 나이에 첫 장편 소설인 「빅 슬립」을 출간했다. 이후 시나리오 작가로도 큰 성공을 거둔 챈들러는 1945년 무렵 《챈들러리즘》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소설가로서 큰 인기를 누렸다. 생전에 그토록 명성을 누렸지만 장례식엔 고작 십여 명만 참석했을 정도로 평생 주거지 없이 떠돌며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챈들러가 남긴 수많은 어록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심플 아트 오브 머더」 중의 바로 이 문구이다.
˝그러나 이 비열한 거리로 한 남자는 걸어가야 한다. 그 자신은 비열하지도 않고, 타락하지도 않으며, 두려움도 없는 채로. ˝
챈들러에게 스타일이란 -
˝힘을 잃지 않으면서도 섬세함을 얻는 것, 그것이 관건이죠. ˝ (1939년 2월 19일)
˝좋은 이야기는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추출해야 하지요. 아무리 말을 아껴도 장기적으로 보자면 글쓰기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스타일이고, 스타일은 작가가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입니다. ˝ (1947년 3월 8일)
챈들러가 생각하는 스타일이란 개성을 반영한 것이고, 개성을 반영하려면 먼저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스타일에 집착한다고 해서 스타일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것, 글의 특색이란 작가의 감정과 통찰의 본질에 따른 산물이라고 말이다.
˝내가 얻은 지혜란, 글쓰기 기술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빈약한 재능이나 재능이 전혀 없음을 드러내는 확실한 표시일 뿐이라는 믿음과 다소 상통하니까요.˝ (1947년 3월 8일)
표절에 관하여 -
˝대개는 누군가의 결점만 훔칠 수 있을 뿐입니다. ˝ (1948년 9월 4일)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
˝스스로 터득할 수 없는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배움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
˝글을 쓰기 전에 아주 세세하게 플롯을 구상하는 작가들이 있지요. 하지만 나는 그런 작가가 아닙니다. 나에게 플롯은 만드는 게 아닙니다. 자라나는 거지요. 플롯이 자라나길 거부하면 그 작품은 버리고 다시 시작합니다. ˝ (1951년 7월 2일)
스타일이 모방되거나 심지어 표절되다 보면 -
˝마치 내가, 나를 모방하는 이들을 모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오거든요. 그러니 그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가야만 하는 겁니다. ˝ (1952년 5월 14일)
글을 쓰는 법을 알려 달라는 이들에게 -
˝과거에 이룬 성과가 무엇이든, 작가는 지금 현재 하려고 하는 일 앞에서 다시 아이가 됩니다. 아무리 상투적인 기교를 많이 익혔다 한들, 작가에게 지금 도움이 되는 것은 열정과 겸손함뿐입니다. ˝ (1957년 3월 26일)
레이먼드 챈들러의 편지에는 쓰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당장 알만한 작가들에 대한 독설이나 칭찬들도 등장한다. 애거서 크리스티, 제임스 케인, 대실 해밋, 헤밍웨이, 서머싯 몸, 오스틴 프리먼, 존 딕슨 카 등등 그들을 향한 신랄 또는 경탄의 생각들이 담겨 있다. 그의 편지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나 헤밍웨이도 독설을 피하지 못한다. 그중 챈들러가 생각하는 피츠제럴드의 매력은 이렇다.
"그는 문학사적으로 아주 드문 자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바로 '매력'입니다. ˝
˝잘 쓰거나 스타일이 깔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일종의 은은한 마법이에요. 절제되고 우아하며, 현악 4중주를 듣고서나 느낄 무엇 말입니다. ˝ (1950년 11월 13일)
시나리오를 쓴 경험 때문인지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많이 등장하는데 작가로서 할리우드에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글 그 자체에 집착하는 건, 좋은 영화에는 치명적인 일입니다. 영화는 글을 위한 매체가 아니에요. ˝
˝내가 쓴 영화 속 최고의 장면들은 실질적으로 단음절로 구성된 장면들이었습니다. 내 생각에 내가 쓴 가장 짧은 최고의 장면은, 한 여자가 매번 다른 억양으로 ˝으음˝ 하고 세 번 내뱉는 장면이었어요. ˝ (1951년 11월 7일)
챈들러의 캐릭터 필립 말로에 대한 이야기 -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타락한 사회에서 괜찮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입니다.˝ (1949년 10월)
˝필립 말로와 나는 상류층 사람들이 욕조에 몸을 담그고 돈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경멸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그 사람들을 경멸하는 이유는 그들이 위선적이기 때문입니다. ˝ (1945년 1월 7일)
그리고 그의 소설에서 다 표현하지 못한 필립 말로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다. 독자의 편지에 대한 답변의 글인데 말로가 태어난 곳이나 학력, 경력, 취향, 사는 집, 사무실 전경, 소지하고 있는 총의 종류 등등 상세한 설명을 해주는 답장의 말미엔 이렇게 덧붙인다.
˝이 정도가 지금 당신한테 말해 줄 수 있는 전부입니다만, 또 알고 싶은 게 있다면 다시 편지해요. 문제는, 당신이 나보다 필립 말로에 대해 정말로 더 많이 아는 듯하다는 겁니다. 당신이 나한테 묻기보다는 내가 당신한테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 (1951년 4월 19일)
이렇게 독자 한 개인에게 상세한 답장을 해주는 작가가 또 있다면 나도 당장 편지를 보내고 싶어진다. 챈들러의 소설은 「기나긴 이별」밖엔 읽지 않아서 필립 말로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하드보일드 문체임에도 서정적인 문장에서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꼈었다. 알고 보니 「기나긴 이별」을 쓸 당시 그의 아내는 폐 섬유종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훗날 편지에서 챈들러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내가 조금씩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봤고, 그 사실을 안다는 고뇌 속에서 내 최고의 책을 써야 했으며, 그럼에도 써 냈습니다. ˝
˝나는 서재에 들어가 눈을 감고는 생각을 모아 스스로를 다른 세계로 이끌었지요. 그러는 데 적어도 한 시간은 걸렸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 (1957년 2월 11일)
「기나긴 이별」은 챈들러의 최고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열여덟 살 연상이었던 그의 아내는 이 책이 출간된 후 사망했다. 유일한 친구이자 든든한 지원자이기도 했던 아내와의 사별 후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고, 술을 끊지 못했으며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었단다.
˝작가들이란 모두 자기 중심적이기 마련입니다. 마음과 영혼을 소진하며 글을 쓰다 보면 결국 자기 안으로 파고들게 되니까. 최근에는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칭찬을 너무 많이 듣는 데다, 너무 외로운 삶을 살고 있고, 이제 다른 어떤 희망도 없기 때문입니다. " (1957년 5월 16일)
글을 쓰기 위해선 주변의 말들에 귀를 열어 놓을 필요도, 일정 부분 닫아 놓을 필요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작가들 중엔 스스로를 고립시키려는 이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쓰기 위해 외로움을 선택하고, 외롭기에 또 쓰며 말이다. 그의 삶을 조금이나마 읽어 본 느낌으론 챈들러는 외로움에 취약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외로움을 추구했던 게 아닐까도 싶지만 희망이 부재한 상태의 외로움은 오직 외로움일 뿐인 것도 같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영향을 주었던 작가들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하지만 인간적으론 연민하게 되는 부분들도 있다. 애초에 읽고, 쓰고자 하는 사람들 중엔 충분히 행복한 사람은 없는 것도 같으니 말이다. 어떤 목적 때문이 아닌, 결핍을 메우기 위해 읽는 사람들이나 자신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는 사람들 역시 자발적인 외로움을 선택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이먼드 챈들러는 그의 말들을 이루었다. 그의 책은 마지막 장이 찢겼다 하더라도 읽었을 테니 말이다.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큰 몫을 했던 그에게 영감을 받는 이들 역시 여전하다. 챈들러 스타일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으로 그의 고독했던 고민들이 보상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