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 평생을 살았던 이스탄불은 내게 논쟁의 여지가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이 운명에 관한 것이다. ˝ (p21)

 

 

 

1952년 터키 이스탄불 태생의 작가 오르한 파묵은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고요한 집>, <하얀 성>, <검은 책>, <새로운 인생>, <내 이름은 빨강>, <눈> 등을 집필했고 유수의 유럽 문학상들뿐만 아니라 2006년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이스탄불」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청년기까지 도시와 자신의 추억을 담은 자전적 회고록이다. 파묵은 이스탄불의 역사에서 가장 나약하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변방이자, 가장 고립된 시기에 태어났다. 부유한 대가족 속에서 성장한 파묵은 태어난 날부터 시작해 오십 년간 살았던 집과 거리, 마을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스탄불에 대한 이 예속감은, 도시의 운명도 사람의 성격이 되는 의미이다. ˝ (p20)

 

 

 

이 책의 키워드이자 빈번하게 언급되는 단어는 '비애' 로서 역사적, 문화적인 이스탄불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는데 오르한 파묵은 이를 꽤 집요하게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표현된 비애의 정서는 슬픔과는 다르다고 한다. 가난한 대도시의 무기력과 그곳의 인간 군상을 보며 서양인들이 느꼈던, 외부로서의 감정이 슬픔이라면, 비애는 이스탄불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서 발전시킨 반응이라는 것이다. 그런 비애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들 중 하나는 그들이 대제국의 후손이었다는 것을 슬프게 알려주는 유적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오늘날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애는 이스탄불을 마비시키는 동시에 이 마비의 변명이 된다. ˝ (p146)

 

 

 

시인과 삶 사이에 뿌연 창과 같은, 삶에 맞서 의식적으로 물러나 움츠리고 있다는 의미의 이 감정은 마치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실패와 우유부단, 패배, 빈곤을 의식적으로 자랑스럽게 선택한 이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상실과 결핍의 결과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이유처럼 제시되기 때문이다. 시인에겐 삶 그 자체보다 삶의 슬픈 투영이 더 매력적인 것처럼 말이다. 오르한 파묵은 자기 자신도, 이스탄불의 모든 것들도 세밀한 풍경화를 바라보듯 살피며 이 회고록을 쓰고 있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오랜 시간 관찰했던 부분들을 하나하나 진솔하게 설명해준다. 풍경화의 진짜 주제는 풍경만큼이나 그 풍경이 불러일으킨 감정이라는 것을 상기해 볼 때 그에게 이스탄불은 비애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마음의 정경인 것 같았다. 우울하지만 어떤 면에선 그에겐 행운이었던 비애감이다.

 

 

 

˝몰락하여 붕괴된 제국의 잔재, 잿더미 아래서 무기력, 빈곤 그리고 우울과 함께 퇴색되며 낡아 가는 이스탄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때로 나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곤 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 어떤 소리는 실은 이것이 행운이었다고 내게 말한다.) ˝ (p20)

 

 

 

˝이스탄불에서 비애는 음악의 중요한 분위기이며 시의 기본적인 단어일 뿐만 아니라, 인생관과 정신 상태 그리고 도시를 도시이게 만든 재료의 암시이다. ˝ (p131)

 

 

 

이런 이유로 부정적인 만큼이나 긍정적으로 여겨진 감정이며 파묵이 느꼈던 비애의 출발점은 어린아이가 뿌연 창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느끼는 멜랑콜리가 아니라 자랑스럽게 내면화하고, 한 공동체가 모두 함께 공유한 슬픈 연대와 같은 감정이라고.

 

 

 

˝이스탄불은 하나의 대도시로서 비애를 모두 함께 긍정하며 산다. ˝ (p148)

 

 

 

어린 시절 오르한 파묵은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럽고 귀엽다고 여기는 아이였다. 뽀뽀, 칭찬, 달콤한 말과 함께 이 사람 품에서 저 사람 품으로 옮겨 다니는 똑똑하고 얌전한 아이였단다. 주변을 세밀히 관찰하길 좋아하고,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호기심 많았던 어린 파묵은 기회가 될 때마다 집에서 도망치는 아버지를 대신했던 어머니의 사랑에 형과 경쟁해야 했었다. 대가족과 함께 머물던 5층짜리 가족 아파트는 마치 어두운 박물관 같았고 지루했다. 물건들로 꽉 찬 어둡고 우울한 집, 부모님의 불화, 형과의 경쟁은 어린 시절부터 그를 상상의 세계로 도망치게 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그의 뇌리 한구석엔 자신과 똑같은 다른 오르한이 이스탄불의 어느 곳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단다.



「작가란 무엇인가」에 실려 있는 인터뷰에서도 자신은 터키의 특성인 동양과 서양적 충동 사이에서 두 가지 영혼을 갖는 낙관주의자란 말을 한 적이 있다. 현실과의 관계를 잃을지도 모르지만 정신분열의 상태는 사람을 지적으로 만들어 준다고 말이다. 어쩌면 작가에겐 분열되어 아픈 것보다 하나의 영혼만을 가진 것이 더 비관적일지도 모르겠다. 이스탄불과 오르한 파묵은 서로 닮은 것 같다. 폐허와 현실의 삶이 공존하고, 동양과 서양, 비애와 긍정이 공존한다. 실제로 파묵은 자신을 설명할 때 이스탄불을, 이스탄불을 설명할 땐 자신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엔 다수의 흑백 사진과 그림들이 실려 있는데 그가 고른 사진이나 그림들을 보면서 오르한 파묵의 마음속 정경들을 느껴볼 수 있다. 나의 경우엔 색감이 없는 사진과 그림들을 볼 땐 풍경의 외형보단 이면의 정서를 먼저 느끼게 된다. 그의 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마침표를 쉽게 만날 수 없는 그의 문장은 때로 여섯 페이지에 걸친 쉼표 끝에 겨우 마침표를 만날 수 있었을 정도로 세밀한 기록을 하고 있다. 화려한 수사가 없는, 마치 흑백의 정경 같은 그의 글은 자신의 정서를 꾸밈없이 진솔하게 드러낸다. 책 속의 낯선 흑백 사진들은 내가 살아 본 경험이 없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점차적으로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상상력을 발전시키는 행복한 외로움의 정경을 보는 듯 말이다. 그 느낌의 근원은 바로 회화적 정경의 아름다움이었던 것 같다. 영국의 예술 비평가이자 작가인 러스킨은 '우연성'에 의한 건축의 회화적 아름다움대해 이야기했었다고 한다.

 

 

 

어떤 건축물이 창조된 지 수백 년이 지난 후 그 주위에 나타나는 담쟁이덩굴, 풀, 식물 같은 자연의 연장선과의 조화로 회화적인 아름다움이 이루어진다고 말이다. 처음 지어졌을 때 우리가 보고자 했던 형태가 아니라 역사가 우리에게 부여한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았을 때 나타나는 우연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변두리 마을이나 폐허, 나무 풀 같은 자연의 우연적인 아름다움을 음미하려면 먼저 그 마을에서 이방인이 되어야 한다. 한 발 떨어진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회화적 정경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거기 사는 사람들조차 때로는 도시를 서양인의 시선으로, 때로는 동양인의 안경을 끼고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 (p353)



˝나는 나를 이곳 사람으로도 이방인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최근 오십 년 동안 계속된 이스탄불 사람들의 도시에 관한 생각이기도 하다. ˝ (p393)



˝다른 사람에게서 이스탄불이 비애의 도시라고 듣는 것이 왜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하는 걸까? 왜 나는 나의 모든 삶을 보냈던 나의 도시가 내게 준 감정이 비애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애를 쓰는 걸까? ˝ (p321)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던 오르한 파묵은 가족들의 바람대로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하지만 실상 건축과 관련된 행복한 기억이 없었고, 수업 중 마치 목숨을 건지고 싶은 듯 뛰어나가 이스탄불 거리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고 한다. 벽과 골목을 이미 샅샅이 알고 있는 이 도시를 가지고 언젠가는 무엇인가를 할 거라고 머리 한구석으로 생각했던 이 산책은 파묵에게 감동적인 흔적을 남겼다. 풍경마다 자신의 감정과 결합한 정경들이 생겨난 것이다.

 

 

 

˝어떤 도시의 일반적인 특징, 정신 혹은 정수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해, 우리의 정신 상태에 관해 우회적으로 말한다. 우리 자신들 이외에 도시의 다른 중심부는 없다. ˝ (p475)

 

 

 

역사와 폐허, 폐허와 삶, 삶과 역사가 맞물려 있는 상태. 그 속에서 변질되지 않은 완벽함은 오르한 파묵에게 거부감을 준다고 한다. 그가 이스탄불을 사랑하는 이유도 폐허와 비애, 그리고 한때 소유했던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화가가 되지 않겠어요. 난 작가가 되겠어요. ˝ (p501)

 

 

 

잃어야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다. 잃어버린 곳에선 점차적으로 회화적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그 정경은 우리의 마음속 풍경과 닮은 것 같다.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 자신의 폐허를 바라볼 수 있어야 그 안에 갇히지 않고, 비애를 통해 긍정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보스포루스를 보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아시아와 유럽지구의 경계를 나누고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급류가 있고, 바람이 있으며, 파도가 일고, 깊고, 어둡다. 하지만 파묵에겐 무한한 긍정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이스탄불의 혼과 힘은 보스포루스에서 비롯된다며 말이다.

 

 

 

˝삶이 그렇게 최악일 수는 없어. 여전히 보스포루스로 산책 나갈 수는 있으니까. ˝ (p91)

 

 

 

사람과 장소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로서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은 훌륭했다. 한때 세계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과, 역사의 현장이었던 보스포루스에 대한 뜻 모를 향수를 느꼈고 읽는 내내 이스탄불의 골목들을 누비며 그들의 비애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보스포루스를 찾아 삶을 무한히 긍정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은 사람에게 장소가 주는 의미로서 훌륭했다. 한 사람의 정체성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생각과 정서의 바탕이 되는 '장소'를 가진 사람들이 나는 부럽다. 오랜 시간 애정을 가지고 구석구석 탐색한, 모든 풍경마다 추억이 있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회화적 아름다움을 지닌 장소라면 더욱 그렇다.



개인적으로 사람이나 장소에 관한 이야기들을 무척 좋아해서 관련 다큐멘터리들을 꼭 챙겨보는 편이다. 특히 자연경관 위주보단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보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어쩌면 내가 책을 읽는 이유도 그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나 자신을 포함한,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진짜 공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실망할 것조차도 없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었던 경우를 제외하곤 어느 저자의 저작들 중 단 한 권만 읽는 경우는 드물다.



절대적으로 긍정할 수 있는 것을 찾기보단 한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는 모든 경험적 요소들을 얻음으로 나 스스로에게 좀 더 다양한 시선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모든 이의 글에선 나름의 성향이 드러난다. 옳고 그름의 문제에 앞서 자신의 기질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런 다양함을 읽어가는 와중에 자신의 기질적인 단점을 더 부각시키거나 또는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한 사람의 '태도'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나는 지식에 앞서 지혜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찾은 마음의 장소에서 잠시 머물며 사색하다가 다시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나는 일상을, 나는 그래서 좋아한다. 파묵에게 보스포루스가 있듯 내 마음속 보스포루스를 찾는 여정이 있는 한 삶이 최악일 리는 없으니 말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8-05 2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파묵의 소설 <순수 박물관>이 좋았어요. 파묵이 도시 전체를 생생하게 묘사했고, 주인공이 물건에 집착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었어요. 파묵이 쓴소설 중에 <순수 박물관>이 유일하게 읽은 작품입니다.

물고기자리 2015-08-05 22:33   좋아요 0 | URL
저도 읽어 보고 싶어요 ㅎ 오르한 파묵이 물건이나 책, 지식 수집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는데 이스탄불을 산책하고 돌아올 때마다 특이한 물건들을 하나씩 챙겨왔다고 하더라고요. 하다못해 벽돌 조각 같은 것도요 ^^ 파묵의 글이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계속 읽게 될 것 같아요 ㅎ

AgalmA 2015-08-06 0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풍경이 불러일으킨 감정˝은 풍경이 간직하고 있는 감정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죠. 이스탄불의 정서와 풍경은 그곳에서만 가능할 테니 말입니다/ 창조적으로 바꾸는 건 바라보는 자에 따라 또 달라지겠지요....오르한 파묵 같은 작가?

물고기자리 2015-08-06 01:12   좋아요 1 | URL
오랜 역사가 있는 장소에선 대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걸 보면 장소에 시간이 남긴 감정이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좀 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겐 그 풍경과 융화되는 구체적인 어떤 요소들이 있지 않나 싶고요 ^^ 도시가 파묵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고, 파묵이 도시에서 글을 이끌어내는 환상적인 조합이 저는 참 부러웠어요. 본다는 것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에게 시간과 장소가 주는 선물이겠죠?ㅎ

AgalmA 2015-08-06 01:28   좋아요 1 | URL
본다는 것의 의미라 존 버거 생각나는데요. 그도 시간, 순간의 의미를 참 잘 알고 있었던 듯...
꼬리의 꼬리를 무는 작가 퍼레이드ㅎ?

물고기자리 2015-08-06 01:33   좋아요 1 | URL
존 버거, 처음 듣는 분인데 찾아 보니 그런 제목의 책이 있네요 ㅎ 아무래도 이건 운명 같은데 읽어 봐야겠어요~

AgalmA 2015-08-06 01:44   좋아요 1 | URL
번역은 그닥 좋지 않아요...[동문선]이 좀 그렇잖아요(날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진 않겠지;;;) 감안하세요~
존 버거 신간 <사진의 이해>는 좀 나을라나 싶군요^^; 처음 만나는 저자라면 좀 예쁘게 만났으면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