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일곱인 어머님을 뵈러 갈 때마다 노년의 삶이 길어지는 게 축복이 아님을 깨닫는다. 1주일에 세 번 도우미가 와서 청소를 돕고 밑반찬을 만들어주고 있지만 혼자서 모든 일을 원활히 수행할 수 없어 탄식할 때가 늘어난다. 넷째 아들이 20분 거리에 살고 있어 어머니 집을 자주 왕래하고 있지만 경제적 여력이 없는 어머니는 아들이 애써 번 돈을 자신 때문에 축 내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며 일찍 죽어야 하는데 숨이 왜 이리 질긴지 모르겠다는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아들은 어머님을 봉양하는 일은 인륜지도의 근본으로 여기며 지내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질병의 고통은 커질 것이고 큰돈은 더 많이 들 것이라 걱정이 앞선다.

 

   NHK 스페셜 제작팀이 펴낸 노후파산-장수의 악몽에 따르면 일본 홀몸노인 수가 600만 명에 달하고, 그 중 절반은 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 종국에는 노후 파산에 이르고 말 것을 예상하고 이를 대비하는 노후 설계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외동아들을 먼저 보낸 부부는 서로 상실의 아픔을 위무하며 견뎠으나 남편이 세상을 뜬 뒤 의지할 대상을 잃은 아내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였고 질병의 고통 속에서 힘든 노후를 보내고 있지만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국민연금 생활자라도 예금 등의 자산이 없으면 생활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질병으로 큰돈이 들어갈 수 있으니 예금 통장을 쉽게 헐 수 없는 상황에서 고령자 노인의 생활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후생 연금 없이 국민연금인 65만 원으로 광열비와 보험료 등을 지출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어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며 식비를 줄이는 노인은 한 달을 살아내는 일이 힘에 부쳤다. 병이 악화되면 목돈이 들어가니 의료비를 절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금해 둔 돈을 지출하다 보면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 노후파산에 몰리고 만다.

   ‘정든 내 집에서 죽고 싶다.’

   수중에 남은 예금이 유일한 버팀목인 가와니시 씨는 집을 매각하여 생활보호를 받기보다는

주택연금 제도를 통해 사후 집을 처분하는 편을 택하겠다며 예금이 바닥날 때까지 오래 살고 싶지 않다며 장수가 악몽인 시대를 말하고 있었다.

 

   고령자가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면 노후파산은 엄습하여 그동안 지내 온 삶의 질서를 파괴하고 만다. 함께 했던 이들과 떨어져 고립된 채 노년을 보내는 여든의 노인은 까마귀 같은 새들이 유일한 친구라니 언론에서 보도하는 무연고 고독 사라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가난한 농민인 기타미 씨는 자급자족을 위해 밭에 채소를 기르고 주변에 나는 채소를 이용하지만 이 역시 무한으로 이용할 수 없는 일이라 안심하며 지낼 수는 없다. 죽고 싶어도 논이 있으니까 죽을 수 없다는 노인의 땅에 대한 애착은 가난한 농민의 애환으로 비춰져 처연함이 더한다

   

   햇수를 거듭할수록 고령자들의 기억력은 퇴화하여 이들이 치매에 걸리는 경우도 흔하니 정신이 있을 때, 성년후견인 제도에 따른 절차를 밟아 돌연한 사태를 준비하는 일은 과제처럼 여겨진다. 길어진 노년의 삶에 가족에게 돌봄의 책임을 다하라고 할 수 없는 일인 점을 감안하여 창설한 돌봄 서비스 제도를 적절히 이용할 때 가족들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다. 길어진 노년을 재앙으로 치부하며 세금 부담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기보다는 노후 파산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적절히 강구하여 노후파산의 재생산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 역시 고령화 문제에 따른 노후 파산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길어진 노년을 안정적으로 지내기 위한 방안을 찾는 일에 주력하여 사회 문제로 파생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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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리스 2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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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운 호텔에서의 은밀한 모임은 서로 다른 비밀을 간직하고 모여든 인물들 간의 불안은 도처에 자리하여 시선을 외부로 향하게 한다. 진상 규명을 위해 호텔의 남자들은 다양한 가설과 분석을 내놓으며 궤도를 이탈하지만 이들은 우주의 궤도에 따라 명멸하는 행성처럼 제자리를 조금씩 찾아간다. 광부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호키티카를 찾은 무디는 에머리 스테인스와 크로스비 웰스 관련 사건을 확실히 매듭을 짓지 않으면 다른 일을 착수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 아래 그의 활약은 빛을 발한다. 신중한 무디는 자신의 수하물과 뒤바뀐 로더백의 트렁크 속 편지들을 꺼내 읽으며 정치인 로더백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사생아로 불운한 삶을 살고 있던 웰스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가족의 품을 그리워했으나 끝내 소식은 닿지 않았고, 이복형인 로더백에게 자신의 근황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할 때도 있었지만 그는 동생의 서신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형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게 되자 체념한 웰스는 살아갈 방도를 찾다 기적 같은 요행이 따라 탐광자로 더 이상의 도움은 필요치 않다는 편지를 보냈지만 형은 무응답이었다. 혈연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동생의 마음을 짓밟은 로더백은 동생의 아내와 놀아난 파렴치한으로 욕망을 충족하려는 야망은 정치인의 행보를 확장해가는 모습을 띈다.

 

   악랄한 프랜시스 카버의 손에 죽은 아버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복수를 다짐하는 아 숙은 아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혼미한 정신으로 지내다 자기 파멸을 당기고 말았다. 프랜시스 카버는 크로스비 웰스의 행세를 하기 위해 그의 출생증명서를 훔쳐 형제인 것처럼 꾸미기에 이르렀다.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은 채 실종 상태인 스테인스의 영혼을 소환하려는 리디아의 계략은 그의 생존을 예견하고 벌인 강령회로 집약되었다. 12궁에서 가장 오래되고 마지막을 점하는 물고기자리에 와서야 완전한 자아를 획득하는 점을 들어 스테인스 씨는 죽지 않았기에 돌아올 것이라 확신한 리디야의 마무리처럼 그는 웰스의 오두막에서 생존해 있었다.

 

   총상을 입고 길을 잃은 스테인스는 생명에 위협적인 상황인데도 금을 묻어놓은 곳을 찾아 가야 한다며 자신의 안위에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에서 금광 시대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이들의 음울한 단면을 보는 듯하였다. 토지를 소유하고 건물을 손에 넣으려는 이들은 재화로 치환할 수 있는 금을 확보하기 위해 술수를 가리지 않았다. 스테인스가 돌아온 뒤 그는 사기와 횡령, 태만 혐의로 수감되어 재판을 기다려야 했고, 오래 전 연인 같은 내밀함이 전해지는 안나 역시 풍기 문란과 위조로 수감돼 심문을 받아야 했다. 변호사였던 무디의 심문은 오두막 사건의 진상을 뒤덮고 있는 비밀의 더께를 조금씩 벗겨내며 은폐된 진실은 여명의 새벽에 희망의 빛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진상을 규명하려는 무디는 강요와 사칭, 사기를 통해 갓스피드 호를 획득한 프랜시스 카버가 동일한 수법으로 웰스 씨의 금을 훔쳤고, 옆에서 이를 도운 리디아의 술수가 한몫했음을 밝혔다. 안나 웨더렐에게 유대감을 강하게 느낀 에머리 스테인스는 빚과 아편 중독이 아니었다면 수십 명의 남자들에게 수십 가지의 제안을 받았을 것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려 한다. 정보에 따라 아라후라 골짜기로 출발하는 카버를 비롯한 열두 명의 남자들은 각기 추구하는 방향을 찾아 길을 떠나갈 때 은둔자의 영혼은 하늘로 표표히 올라가 별들 사이에서 지구에서의 슬픈 운명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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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너와 나를 이어주고 힘듦을 나누며 소통하는 이들이 있어 행복한 인생이다.

아끼는 제자가 다녀갔다. 그녀와는 고2때 만났으니 햇수로 9년째다. 학교 다닐 때는 피상적으로 흘렀던 관계가 지난한 시간 속에 두터운 정으로 맺어진 우리다. 삼수로 교대를 졸업하고 임용에 합격하여 교단 생활 1년을 보내고 앞에 선 제자의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남달랐다. 제자는 아이들의 일기에 댓글을 늘 달아주면서 교감했던 시간이 소중하였던 모양인지 이제는 그 아이들의 일기를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고 하였다. 스물 한 명의 아이들을 말하며 이 아이는 엄마가 없어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말하며 마음이 유독 쓰였다고 했으며,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데다 절제력이 떨어진 아이, 학습력은 떨어지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에게 용기를 주는 등 참 어엿하게 교단 생활을 잘 잇고 있는 듯해 덩달아 신이 났다. 

   언제 전화를 걸어도,

  "그래, 얼굴 보자. 시간 없는 네 시간에 맞춰서 봐."

   라고 화답하게 되는 제자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오늘도 누군가에게 희망의 빛을 투사하는 교사이고 싶다. 긴 봄 방학이지만 병원을 오가느라 시간을 소진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한 기간이었지만 이제는 건강을 회복해 생기 있게 활동하며 살아갈 일만 남았다.

 

 3월 2일은 입학식과 시업식이 있어 분주해질 것이라 이왕이면 해결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짓는 게 우선인 시간이다. 에세이를 읽는 이유 중 하나가 저자가 쓴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전율하고 공감하는 시간 속에 사실성에 기초한 의미가 커보이기 때문이다. 진정성 있는 통찰로 크고 작은 일깨움을 전해주는 2월의 에세이들 역시 눈길을 끄는 책들을 자의적으로 꼽는다.

 

     

‘기록되었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체념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것은 라우흐 알 마흐푸즈(al-lawal-maḥfūz, 보호받은 서자()판) 위에 기록된 신의 교리와 ‘지상에서 일어나는 재난과 너희에게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드러내기 전에 이미 기록된 것이라 실로 그것은 하나님께 쉬운 일이라…’(57:22)와 같은 코란 구절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지식백과 사전>>발췌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코엘료의 신작 에세이가 나와 마음을 끈다. 종교는 달라도 신의 섭리를 따르며 그 안에 변호를 끌어내는 지혜의 힘을 모으려 할 때 저자의 책은 함께 했다.

 

 

 

 

 

  어려서부터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였다. 할머니는 어린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을 즐겼다. 이야기 소재는 친근한 동네 할머니들에서부터 이웃 동네 할아버지의 무용담까지 곁들여 흥미로움을 더했다. 이야기 속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고 현상 이면에 숨어 있는 인생살이의 신산함과 다복함까지 읽어내는 힘이 필요함을 알았다. 이야기꾼은 천명대로 살다 하늘로 떠났고 남은 이는 책 속의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지내야 했다. 공동체적 삶이 무너지고 잔인한 이기심이 팽배해져 극악무도한 짓을 서슴지 않는 시대에 가치관의 혼란은 가중된다. 솔닛은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서 목격한 일들을 일상성에 융해하여 고독한 군중들의 연대를 공고히 할 필요를 역설한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바른 것인가?

물음을 던지며 살고 있는 중년이다. 속박되는 삶이라 여기는 제도권을 이탈하여 자유롭게 살고 싶은 열망이 강해질 때마다 미답의 공간을 찾아 길 위에 서는 꿈을 키워왔다. 지금의 정황에 걸맞은 소유격 다음의 호칭보다는 오롯한 자신으로 일상을 보내는 삶은 생각만 해도 짜릿해진다. 나를 찾아 떠나는 길은 열려 있는 가능성의 길이지만 어른으로 책임지고 살아야 할 것들이 많아졌을 때는 언감생심이라는 비탄만 늘어난다.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그래도 쉽게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부럽다. 언젠가는 나만의 길을 찾아 떠나는 길 위에서 잊고 지낸 자신과 맞다뜨리게 되겠지.

 

 

   엘리트를 지향하는 교육의 대열에서 이탈하여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빈민가 학생들의 학습을 도우며 공동체 교육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교육에 한결같이 정성을 쏟는 교육 운동가 김중미 선생님의 신작이다. 어떻게 성장할지 가늠하기도 힘든 아동들의 곁에서 그들이 경제적인 소외 계층의 자녀라는 숙명으로 희망까지 꺾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식을 외국 유명 대학에서 수학하게 만든 엘리트 연예인 부부들의 교육 방식을 방송하는 프로 안내를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으로 실의에 젖을 다수를 고려하지 않는 민영 방송의 기획이 달갑지 않은 것은 극소수의 금수저들에게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는 힘을 얻고 소소한 기쁨을 같이 느끼는 공동체적 삶을 바라며 <<괭이부리말 마을 아이들>>에 이어 김중미 작가의 산문을  만나고 싶어진다.

 

  유럽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복지혜택이 잘 되어 있는 선진국이다. 동남아 국가를 여행하며 우리보다 못한 환경에서 지난한 삶을 견디고 그자리에서 충실한 그네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알게 모르게 우월감에 젖기도 하였다. 이와는 달리 서유럽을 여행했을 때는 부러움과 질시, 열등감이 자리하여 위축되기 일쑤였다.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다음 해 동유럽 여행을 앞두고 스펜인어 공부를 다짐하지만 아직 실천하지는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다. 드넓은 국립공원에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책을 보는 유럽인들의 여유로운 삶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닐진대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국한하여 생각하는지 반성해본다. 여럿이 모여 걷다 보면 길이 형성되고 막혀 있던 것도 통하고 만다. 사유하는 철학 걷기를 좋아하는 만큼 그들을 따라 유럽의 바깥을 걸어보고 싶다.

 

 

   바람의 향기를 맡고 봄바람에 미소를 지으며 햇볕 아래 자유로이 걸을 수 있는 일상이 선생님께는 허락되지 않은 시간이 근 20년 세월이었다. 정치범으로 몰려 수감 생활을 오랫동안 한 후유증이었는지 선생님은 햇볕을 오랫동안 보지 못해 생기는 암으로 영면하셨다. 처음처럼이라는 글씨체에 홀려 생전에 재능 기부한 회사의 술을 자주 마셨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평생 올곧은 신념으로 살다 가신 선생님의 부음을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였다. 한 제자는 술을 마시고 울면서 전화해서는 선생님의 죽음을 애도하며 영적 스승을 잃었다며 탄식했다. 극악무도한 정신적, 물리적 폭력으로 치닫는 척박한 세상에 선생님의 어록은 희망의 빛을 투사하는 잠언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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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3-01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성지님, 골라주신 에세이들 모두 눈길 갑니다. 내일부터 정말 새로운 시작이네요. 보람된 날들 되길 소망합니다.

자성지 2016-03-01 20:45   좋아요 0 | URL
예. 새 출발을 기념하여 조금 이른 시간에 읽고 싶은 에세이로 모았답니다. 김중미 작가의 책을 먼저 접하고 싶어요.
 
발길 머무는 곳 생각 멈추는 곳엔 늘 네가 있더라
노은아 지음, 이인호 사진 / 강단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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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감수성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나를 사랑하고 더불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일상을 바라며 시를 가까이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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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리스 1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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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의 공출 정책으로 경제적인 궁핍에 시달리던 농민에게 자신이 부치는 밭에 금이 묻혀있다고 하면 농작물을 갈아엎어서라도 금을 손에 넣으려고 할 수 있다. 극한적인 궁핍으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몸부림치던 영식이 금을 캐겠다고 콩밭을 뒤엎는 허망한 행위를 보며 물욕으로 생계까지 잃고 마는 어리숙함과 대면하는 금 따는 콩밭이 떠올랐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길을 떠난 이들이 현재의 곤란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금광을 찾아 관련 정보를 얻으려던 무디는 휴식을 위해 들른 크라운 호텔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맞닥뜨리며 생각하였던 방향과는 달리 노선을 변경해야 했다.

 

    배가 드나드는 항구 도시답게 금이 실려 나가는 배에 관심이 많은 만큼 호키티카에 배를 정박하는 게 위험하다고 혹평이 날 정도로 악명이 높은 도시이기도 했다. 오두막에서 홀로 살아가던 은둔자 크로스비 웰스의 죽음과 길 한복판에서 발견된 창녀 아편쟁이 안나, 남쪽 금광지대에서 최고의 부자라 불리는 에머리 스테인스의 실종을 둘러싼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12명의 사람들은 모였다. 갖가지 일화를 들려주며 자신의 인생 이력을 드러내는 이들은 환경에 지배를 받으며 지내던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삶을 찾아 가는 도정에 놓인 이들이었다. 의문의 죽음과 실종, 자살 미수로 판가름나버린 사건을 명쾌히 해결하기 위해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 듯 이들은 뉴질랜드의 호티키카 크라운 호텔의 흡연실의 자욱한 연기 속을 헤집고 서야 했다.

 

   은둔자로 살던 웰스의 오두막에서는 어떤 문서 하나 발견되지 않아 상속인이 없었던 그였다고 판단한 정부 산하기관에서는 유산을 국고에 귀속하였지만 미망인 리디아 웰스의 출연으로 재산 상속 분쟁을 예상하게 되었다.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는 그녀의 삶과 연루된 남성들의 이면의 삶은 덮어져 있어 의구심을 더했다. 수완이 좋은 야심찬 정치인 로더백이 선거 운동을 위해 이 지역을 지나던 길에 들른 웰스의 집에서 막대한 양의 제련된 금을 발견한 것도 이 사건과 관련 있어 보인다. 국고에 환속된 재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은행원, 중개상, 호텔경영인, 교도소장 등이 수수료와 토지 매입 등을 고려해 혜택을 나누어 가졌지만 법적인 배우자의 돌연한 개입으로 이들은 난관에 봉착했다.

 

   수감되었던 창녀 안나는 깨어나 자신의 드레스 솔기에 숨겨진 많은 금이 있음을 드러내며 벌금을 회수하기 위해 교도소에 들른 법원 서기에게 자신을 도와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녀가 입고 있던 드레스뿐 아니라 외의 4벌의 옷 속의 금은 오로라 광산 마크가 찍힌 제련 금덩이로 바뀌어 있었다. 그 금은 여러 손을 거치며 다시 사라졌고, 그 사라진 금이 죽은 웰스의 집에서 발견되었다. 누군가가 금을 빼돌려 돈으로 새로운 인생을 사서 귀향하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였고, 부정적인 방법으로 축적한 귀향금으로 재창조의 기회를 삼으려는 이의 야합이 현상 이면에는 자리한다. 사악한 의도로 죄를 저지른 범인은 아편 상용자인 안나를 이용한 것은 범죄를 은폐하기 쉽다고 판단해서였을 것이다

 

   말로 전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편지를 전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몰두하는 이들은 새로운 정보를 접하며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단서를 찾아가지만 범인은 쉽사리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제일가는 최음제인 재산은 돈에 눈독을 들이는 이들에게는 집중 공략의 대상이라는 말과 함께 오로라 광산의 소유권을 공동으로 취득한 직후부터 오로라의 이익이 떨어지기 시작한 점을 발견한 프로스트는 또 다른 배후를 지목하며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 것 같더니 사건은 또 다시 베일에 가려진 채로 오리무중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이는 차이나타운의 경계를 넘어 오키티카의 경계까지도 넘나드는 강도짓을 꾸몄는지 모른다는 호텔 경영인의 판단에 힘이 실린다.

 

   연감을 읽어내는 전문가인 서류상의 미망인 리디아는 달이 구름 위에서 차오르고 있음을 말하며 보름달이 뜬 뒤 이지러지는 자연의 법칙을 들어 초하룻날 과거와 현재의 시각이 만나는 지점을 들어 사건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크로스비 웰스가 휴식처로 삼은 벗은 실종되거나 수장되어 증인으로 나설 수도 없는 점을 감안한다면 인물들의 친소 관계까지 꿰뚫은 이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안나의 빚을 갚아주고 그녀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데 도움을 주겠다는 리디아는 탄로 날 일을 미연에 방어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고 볼 일이다.

 

   던스탄에서 크게 성공한 크로스비 웰스나 가난한 청년 에머리 스테인스가 호키타키의 거부로 등극한 점을 들어 운이 좋다고들 말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실상은 이들의 생명은 끊어졌다. 사건이 일어난 114일 밤 뉴질랜드에 첫발을 디딘 무디의 행보 역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모임에 가담하게 되었고 이제는 문제 해결을 위한 흡연실 모임에서 벗어나기도 힘들어졌다. 탐광자 스테인스가 부를 걸머진 운은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지만, 광산촌 창녀 안나는 뭇 남성들의 공공재라는 판단이 미치자 그녀를 이용하여 야욕을 충족하려는 범인의 행각으로 좁혀졌다.

 

   금을 찾아 떠나온 무디는 갓스피드호를 타고 이 마을에 들어오던 중 배는 폭풍을 만나고 흔들리는 배 안의 화물칸에서,

막달레나, 막달레나, 막달레나

를 부르는 남성의 절박한 부르짖음을 상기하며 그날 목격한 기괴한 사건을 주변인들에게 말하며 사건의 단서를 제공하였다. 동업자를 상자에 가둬 죽이는 방식을 택한 범인의 술수임을 말하며 물과 공기 없이 13일이나 버틸 재간이 없는 점을 들어 스테인스의 죽음을 예견하며 범인을 떠올리지만 격렬한 파도에 모래톱에서 침수된 갓스피드 호를 말하며 사건은 또 다른 형국으로 치달아 궁금증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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