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일곱인 어머님을 뵈러 갈 때마다 노년의 삶이 길어지는 게 축복이 아님을 깨닫는다. 1주일에 세 번 도우미가 와서 청소를 돕고 밑반찬을 만들어주고 있지만 혼자서 모든 일을 원활히 수행할 수 없어 탄식할 때가 늘어난다. 넷째 아들이 20분 거리에 살고 있어 어머니 집을 자주 왕래하고 있지만 경제적 여력이 없는 어머니는 아들이 애써 번 돈을 자신 때문에 축 내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며 일찍 죽어야 하는데 숨이 왜 이리 질긴지 모르겠다는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아들은 어머님을 봉양하는 일은 인륜지도의 근본으로 여기며 지내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질병의 고통은 커질 것이고 큰돈은 더 많이 들 것이라 걱정이 앞선다.

 

   NHK 스페셜 제작팀이 펴낸 노후파산-장수의 악몽에 따르면 일본 홀몸노인 수가 600만 명에 달하고, 그 중 절반은 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 종국에는 노후 파산에 이르고 말 것을 예상하고 이를 대비하는 노후 설계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외동아들을 먼저 보낸 부부는 서로 상실의 아픔을 위무하며 견뎠으나 남편이 세상을 뜬 뒤 의지할 대상을 잃은 아내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였고 질병의 고통 속에서 힘든 노후를 보내고 있지만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국민연금 생활자라도 예금 등의 자산이 없으면 생활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질병으로 큰돈이 들어갈 수 있으니 예금 통장을 쉽게 헐 수 없는 상황에서 고령자 노인의 생활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후생 연금 없이 국민연금인 65만 원으로 광열비와 보험료 등을 지출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어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며 식비를 줄이는 노인은 한 달을 살아내는 일이 힘에 부쳤다. 병이 악화되면 목돈이 들어가니 의료비를 절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금해 둔 돈을 지출하다 보면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 노후파산에 몰리고 만다.

   ‘정든 내 집에서 죽고 싶다.’

   수중에 남은 예금이 유일한 버팀목인 가와니시 씨는 집을 매각하여 생활보호를 받기보다는

주택연금 제도를 통해 사후 집을 처분하는 편을 택하겠다며 예금이 바닥날 때까지 오래 살고 싶지 않다며 장수가 악몽인 시대를 말하고 있었다.

 

   고령자가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면 노후파산은 엄습하여 그동안 지내 온 삶의 질서를 파괴하고 만다. 함께 했던 이들과 떨어져 고립된 채 노년을 보내는 여든의 노인은 까마귀 같은 새들이 유일한 친구라니 언론에서 보도하는 무연고 고독 사라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가난한 농민인 기타미 씨는 자급자족을 위해 밭에 채소를 기르고 주변에 나는 채소를 이용하지만 이 역시 무한으로 이용할 수 없는 일이라 안심하며 지낼 수는 없다. 죽고 싶어도 논이 있으니까 죽을 수 없다는 노인의 땅에 대한 애착은 가난한 농민의 애환으로 비춰져 처연함이 더한다

   

   햇수를 거듭할수록 고령자들의 기억력은 퇴화하여 이들이 치매에 걸리는 경우도 흔하니 정신이 있을 때, 성년후견인 제도에 따른 절차를 밟아 돌연한 사태를 준비하는 일은 과제처럼 여겨진다. 길어진 노년의 삶에 가족에게 돌봄의 책임을 다하라고 할 수 없는 일인 점을 감안하여 창설한 돌봄 서비스 제도를 적절히 이용할 때 가족들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다. 길어진 노년을 재앙으로 치부하며 세금 부담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기보다는 노후 파산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적절히 강구하여 노후파산의 재생산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 역시 고령화 문제에 따른 노후 파산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길어진 노년을 안정적으로 지내기 위한 방안을 찾는 일에 주력하여 사회 문제로 파생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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