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운 게 뭔데? 창비청소년문고 43
저스틴 밸도니 지음, 이강룡 옮김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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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돼, **떨어진다.’

   는 말을 서슴지 않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오빠가 밥상이라도 들고 부엌으로 가서 주섬주섬 그릇을 개수대에 담을라치면 역정을 내며 여자기 몇이나 되는데 장손에게 부엌일을 시키느냐고 항변했다. 세 살 아래인 맏딸인 나는 속으로 그럼 남자는 밥 먹고 밥상머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는 게 옳다는 말인지 푸념하며 세제를 풀어 그릇을 씻는다. 때로는 설거지할 때 큰소리가 난다고 야단을 맞을 때도 있어 적잖이 억울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산업화가 한창인 시대를 거쳐 인공지능이 밀려드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남성 중심의 특권 의식은 곳곳에 자리한다.

 

   모름지기 남자는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고, 분석적 지능이 뛰어나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어야하며, 멋있어 보여야 한다는 말을 따라야 한다는 소리가 지배적이었다. 저자는 경험을 바탕으로 남자다움’ ‘남성성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양성이 동등한 위치에서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상호 발전하는 관계 형성을 지향한다. 남성성이란 규칙이나 규범이 아니라 세대를 거듭하면서 전해져 내려온 메시지에 지나지 않음을 역설한다. 더 나아가서는 남성적아거나 여성적이라는 이분법적인 범주로 나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름을 존중받을 때 가치 있음을 확언한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몸이 느끼고 행동하려는 대로 움직이며 반응할 때 인간성 회복은 서서히 일어날 것이다.

 

   남성성을 중시하는 이들은 두려움을 인정하자는 요구를 묵살하고 무모한 일이라도 용기 있게 도전할 때 남자는 남자다워진다고 말한다. 남자라면 자신의 감정과 필요와는 거리가 멀어도 용감하게 덤빌 줄 알아야 한다는 관습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굳어졌다. 최초의 사회라고 불리는 가정에서부터 남자다운 역할 수행을 위한 지침을 따르며 보여 주기 두려웠던 부분을 감추며 가식적으로 행동하여 왔던 지난시절을 돌아보며 저자는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길을 열기 위하여 실천하였다. 여자애 같다는 말을 두려워할 필요 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용기 있게 의사를 표현하는 훈련을 해나갈 때 고착화된 남성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국립국어원이 2014년 신어로 선정한 뇌색남은 주관이 뚜렷하고 언변이 뛰어나며 유머러스하고 지적인 매력이 있는 남자를 가리킨다고 정의 내렸다. 남자는 똑똑해야 한다는 말에 유머감각까지 겸비한 능력자 이면에는 분석적 지능 못지않게 실용적 지능, 감성 지능 등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물음을 던진다. 모든 측면에서 뛰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각자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부족함을 채워가는 과정 속에 자존감을 키워나가면 더 좋을 것이다. 배우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시청자의 구미에 맞는 연기로 이름을 알려온 과거를 돌아보며 정체성을 찾기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 점이 눈에 띈다. 육체적인 상처를 입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할 줄 알고, 답을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으며,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뛰어들지 말아야 한다는 등을 실천하며 남성성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회가 후천적으로 만든 성정체성인 남자다움이나 여지다움의 젠더적 성향의 궤도를 수정하여 신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남녀 서로 온전한 인간으로 바라봐야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걷어낼 수 있다. 생활에 편한 혜택을 누리는 특권이 몸에 배여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혜택만 누린다면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어도 타인이 상처를 입었다면 이를 인정하는 걸음부터 뗄 수 있어야 한다. 이중 잣대를 대며 사느라 놓친 부분은 회한으로 남는다. 좋은 일만 있는 인생이 아니기에 슬픔과 과절, 기쁨과 성취 등의 경험이 어우러질 때 우리 삶은 더 풍성해진다. 보이즈 클럽은 없고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 감정을 나누는 남자들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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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홍콩 여행지도 - 수만 시간 노력해 지도로 만든 홍콩 여행 가이드 총정리, 2024-2025 개정판 에이든 여행지도
타블라라사 편집부.이정기 지음 / 타블라라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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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보지 않은 곳을 찾아 떠난 도시, 한 번 갔던 곳을 다시 찾고 싶은 공간, 코로나19 이후 떠나지 못한 세계로 나아가려는 몸짓은 여행서적을 읽게 한다. 용기가 없어 혼자 떠나기는 두렵고 여행 상품대로 움직이는 여행의 단점을 피하고 싶을 때 함께 떠나는 배낭여행으로 인도와 네팔을 다녀왔다. 인도 북부를 여행하기 전 론리 플래닛의 인도 100배 즐기기 시리즈를 사서 읽었고, 책을 분권하여 필요한 지역의 정보가 담긴 부분을 배낭에 넣고 짐을 꾸리던 시간이 떠오른다.


   에이든의 홍콩 여행지도 나에게는 생소하지만 자유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도라는 생각이 든다. 가벼우면서도 필요한 정보를 세밀하게 담은 지도라니 상자를 열고 들여다보니 취향대로 움직이며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돕는 홍콩 여행 지도이다. 홍콩 전체 여행 지도를 모두로 구룡반도, 란타우섬, 아이들이 좋아하는 디즈니랜드, 침사추이, 셩완&센트럴 등을 지도에 조밀하게 담았다. 간편 지도에서부터 구체적인 명소까지 곁들인 상세 지도가 함께 실려 있어 큰 그림을 그린 뒤 찾고 싶은 곳을 찾는 데에도 유익한 에이든 홍콩 지도이다.

 

   원하는 품목을 쇼핑하기에 적합한 홍콩답게 지역의 명품 매장까지 담아 사려다 미뤘던 상품을 찾기에 그만인 지도이다. 체크 리스트에서는 홍콩에 갔다면 해야 할 목록을 담아 체크하며 메모하는 여행이 가능한 에이든 트래블 노트는 아날로그 감성을 톺아보게 한다. 나른해지기 십상인 오후 세 시에는 애프터눈티 세트를 가까이 두고 휴식을 취하며 홍콩의 야경을 즐길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하여 차 한 잔과 함께 달콤한 디저트를 맛보고 싶다.


   한때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책이 선풍적으로 읽히던 때가 있었다. 지구본을 책상 위에 두고 세계 여행을 꿈꾸었다는 여행자의 말은 가슴 뛸 때 떠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가벼운 지도 한 장을 들고 홍콩으로 향하는 마음을 끌어당긴다. 먼저, 피크트램을 타고 센트럴에서 피크 타워까지 올라 마천루를 보는 경이를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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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 보면 인생의 본질을 외면한 채 겉치레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반문할 때가 있다. 값진 내용보다는 형식에 편중되어 가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가 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마음은 가지 않지만 조직의 원만한 운영을 위하여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능을 중시하며 살아온 시간이 회한으로 남는다. 거절을 잘 못하는 성미라 싫어도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고는 후회할 때가 왕왕 있었다. 타인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소리를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손해를 볼 때도 있지만 이해와 아량으로 넘기다 이제부터는 호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연고주의와 유교 중심의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의 폐쇄적 구조는 나이와 성별에 따른 기능과 역할을 중시한다. 결혼한 배우자에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시가에 의무를 강요하다 이혼 당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불효자도 결혼하면 효자 흉내를 내는 남편 때문에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기 힘들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셀프 효도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닌 듯하다. 상대의 마음을 생각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을 관철하는 이들은 쌍방향의 의사소통을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함께 사는 이에게 고통을 전가한다. 사랑하여 결혼한 부부가 성격 차이로 갈라선다는 말 이면에 감춰진 비밀은 우리라는 대명사가 빠져 있음을 드러낸다.


   너와 나 사이에 진정한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은 일인칭인 나를 쓰기보다는 3인칭인 우리를 많이 사용한다. 고마움을 바탕으로 한 우리는 과거현재미래에도 함께하는 뜻을 더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우리라는 소속감을 안고 서로를 배려하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가운데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를 발산할 때, 진짜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실존적 외상을 입었더라도 의미 있는 타인과 긍정적인 경험을 누적할수록, 내 삶의 부정적인 요소는 줄어들어 회복탄력성을 더한다.


    나와 결이 같은 사람들만 만나 살 수 있으면 별 무리가 없을 수 있지만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 대부분은 결이 달라 정신의 공명이 이뤄지지 않는 사람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부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자식이 어머니를 불쌍히 여기며 효에 대한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나 역시 20대에 혼자 된 어머니가 오누이를 다른 데 보내지 않고 키워준 은혜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이제 여든인 어머니가 점점 노쇠하여 지팡이 없이는 거동조차 힘든 상황이 안쓰러워 연민의 감정을 앞세웠던 적이 많았는데 자신을 옭아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인간관계의 주고받음이 균형을 잃으면 어느 순간 주는 쪽부터 지치게 된다. 직장에서 소모임을 하는 경우 입만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땡전 한 푼 안 쓰면서 남이 사는 모임에는 꼭 참석하여 음식을 먹고는 이내 자리를 뜬다. 고마움을 모르고 은혜를 입고도 베풀 줄 모르는 사람과는 더 이상 인연을 지속할 필요가 없다. 서로가 서로를 들여다봐주고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며 서로의 성장을 돕는 관계 형성을 위해서라도 주고받음의 균형은 잡혀야 한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감정노동자로 고객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전락할 때가 많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상식선을 지키지 않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고칠 생각이 없는 자아 비동조적인 태도를 지닌다. 사람 뜯어 고쳐 쓰는 것 아니지 않느냐는 민원인의 말을 듣고 생각한다. 타인을 뜯어 고쳐 쓰지 못하면 자신을 고쳐 쓰면 될 것을 대부분은 이를 고려하지 않고 행동한 대로 생각하며 지낸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인식의 틀인 세계관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처를 적극적으로 당당히 드러내 타인과 세상을 향해 손을 뻗으며 자신을 지지하고 사랑하며 성장하는 서사를 쓰기 위하여 나의 삶에 정당성을 부여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때 우리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공명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양가감정을 들어 누군가가 자신을 조정하려 든다면 과감하게 관계를 끊고, 나의 생각과 감정을 중시하며 어떤 판단과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에 집중하여 성취의 기쁨을 더할 필요가 있다. 주변인 모두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소수의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진짜 관계에 집중할 때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공명하는 시간을 이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잘해줘도당신곁에남지않는다#전미경#가제본#진짜관계#서로의성장을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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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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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수를 거듭할수록 물리적 공간 이동에 따른 만남의 유형은 다양해진다. 스쳐 지나는 일회성 만남에서부터 만남의 서사를 이루는 특별함이 시공간의 궤를 함께하는 인연이 있다. 와타나베는 독일 함부르크 공항에 막 착륙한 비행기 안에서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고 자신을 꼭 기억해 달라고 갈구한 여인,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는 운명 속 여인을 불러낸다. 죽음으로 현세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나오코에 대한 기억을 가슴속에 쟁여 빗장을 채우고 살아갈 뿐이라고 스스로 달래며 지냈지만, 선율을 타고 넘나드는 사랑의 추억을 사장한 채 지낼 수는 없었다.

와타나베는 고등학교 시절 나오코를 만났다. 길 위를 나란히 함께 걷던 나오코는 들판의 우물 이야기를 와타나베에게 전하며 초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시원의 힘을 믿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갑자기 없어질 정도로 몹시 깊은 우물 이야기로 나오코는 죽음과 동행하는 시간 선택을 예비한 것처럼 언제까지고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고 와타나베에게 당부하였다. 생사 필멸의 이치를 채 깨닫기 전에 가까이 지내던 이를 예고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이별은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슬픔의 심연으로 이끈다. 죽음은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 중 하나이지만 준비 없는 이별은 걸음을 잘못 떼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헤어나기 힘든 상황에 육신을 가둔다. 삶 속에 동행하며 잠겨 있는 죽음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슬픔의 골을 깊게 한다. 잊히지 않을 기억을 끌어안고 사는 일은 필연적으로 감내해야 할 몫을 해결하며 생존케 한다.

와타나베는 고등학교 시절, 막역한 친구 기즈키, 그의 여자 친구 나오코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기즈키는 와타나베와의 당구 경기에서 승리한 후 아무런 신호 없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죽은 자는 삶이 멈춘 때로 남지만, 소통하며 우정을 쌓던 기즈키를 잃어버린 와타나베는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열아홉 살 와타나베는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이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슬픈 기억이 불에 탄 잔상으로 얼룩얼룩한 고향을 떠나 도쿄의 한 사립 대학에 진학했다. 나오코 역시 도쿄로 올라와 둘은 기즈키를 잃은 슬픔을 공유하며 일상의 희로애락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다.

기즈키의 죽음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한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육체적 관계를 맺었고, 말도 없이 연락을 끊고 자취를 감춘 나오코는 요양원에서 와타나베에게 편지를 부쳤다. 나오코가 있는 곳을 알게 된 뒤 와타나베는 그녀와의 만남을 재개한다.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기거하는 요양원으로 그녀를 찾아 일상을 나누고 생각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감정이 사랑임을 확신하고 그녀가 일상을 회복하기를 바랐다. 그녀는 어떤 징후를 보이지 않고 유언도 없이 자살한 열일곱 언니의 마지막을 덤덤히 말하고 있지만 서늘한 죽음의 이면에 자리한 불안은 그녀를 감싸고 휘돌아 마음의 병을 돋우었다. 나오코와 함께 생활 중인 레이코는 성숙한 어른으로 유약한 이들과 함께하는 요양원 생활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레이코는 클래식 음악을 기타로 연주하며 자기 삶을 치유하며 나오코의 동행인으로 요양원 생활의 만족도가 컸다. 셋이 요양원 뒷산을 오르며 함께 나눈 이야기는 각자 지닌 삶의 무게를 감내하며 외부 생활과는 단절되었지만, 요양원에서 생활인으로 안착하며 지내는 삶에 공감했다.

20대의 초입에 선 와타나베는 여성의 신체가 내뿜는 아름다움에 끌리기도 하면서 본능대로 움직이며 욕망을 충족하는 생활과는 거리를 두려 애쓰는 편이었다. 그는 군중 심리에 휩쓸려 술자리에서 만난 여자와 잠을 잘 때도 있었지만, 이내 중심을 잡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려고 애썼다. 와타나베의 도쿄 생활에 변화를 일으킨 미도리는 나오코와는 달리 생기발랄한 20대로 역동적이다. 둘은 같이 듣는 수업으로 자연스레 어울리며 소소한 일상을 함께 나누며 설익은 스무 살을 살아간다. 말하기보다는 쓰기를 좋아하는 와타나베는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나오코에게 편지를 쓰며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문장으로 공유한다. 자신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편지에 썼고, 나오코의 편지 답신을 기다리며 평범하지 않은 세계를 접하며 사람 사는 어느 곳이든 개인의 역사를 새롭게 써간 사실을 확인하였다.

개학하여 학교로 돌아온 와타나베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나오코를 향한 마음은 커갔다. 그는 들어가서 요양하는 것보다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길이 쉽지 않은 공간에 떨어져 있는 그녀에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하였다. 학교에서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가끔은 야한 영화를 함께 보던 미도리가 학교 수업에 빠지는 날이 잦아졌다. 연유를 몰라 답답해하던 찰나 뇌종양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학교에 나오지 못한 사정을 알고, 간병하는 그녀를 잠깐 쉬게 하려고 와타나베는 간병인을 자처하였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녀의 아버지는 점점 죽음으로 향하더니 종국에는 한 줌의 재로 화하였다.

아버지를 여읜 자매는 가족이 함께 살던 공간을 정리하고 자매가 함께 살 거처를 마련하여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미도리는 조금씩 평정을 찾았고, 함께하는 시간이 축적될수록 와타나베가 그녀의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으나 그는 여전히 나오코를 사랑하였다. 하지만 사랑의 화살은 과녁을 빗나가 나오코의 병세를 악화시켜 전문의의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절망적인 현실에 위축된 그는 방황하며 미도리에게 심경을 토로하였다. 한편, 와타나베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미도리는 외모에 변화를 주었지만 그마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에게 실망하여 소통을 단절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저녁 나오코가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을 하였다는 비보를 듣고 와타나베는 길 위에서 방황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길 위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낸 한 달 여행은 와타나베의 마음을 잡아주지 못하였고, 나오코의 죽음에서 촉발된 충격을 덜어 주지도 못했다. 길 위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살던 집과 학교로 돌아왔지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좋아하던 남자친구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허무의식은 더했을 테고, 어린 시절 영민한 언니의 자살을 목도한 나오코 곁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던 듯하다. 죽음과 동행하는 삶이 현세적 시간이라면 생을 마감하는 날이 살아가는 날과 함께하게 될 터이다. 절박함으로 자신의 능력을 연마하는 노력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피력하며 성취를 보인 나와사키는 반듯하면서도 모범적인 하쓰미와 교제를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겠다며 여러 여자를 전전한다. 몸을 헤프게 쓰는 나와사키인 줄 알면서도 그의 곁을 쉽게 떠나지 않던 하쓰미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였지만 결혼 생활을 잇지 않고 목숨을 끊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는 와타나베는 만나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다. 동성애자인 영특한 소녀와의 만남에서 금단의 영역이 새롭게 눈을 뜨고 성적 에로티시즘을 맛본 레이코의 고백은 생경하면서도 여러 유형의 성적 사랑을 보여준다. 기괴한 장소에서의 성적 유희, 금기시하던 사랑의 일면을 여러 차례 보이며 삶과 죽음의 길 위에서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발아할 환경이 조성됨을 확인한다. 한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던 사랑이 돌고 돌아 마침내 함께하게 되는 교점에서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건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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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 노년내과 의사가 알려주는 감속노화 실천법
정희원 지음 / 한빛라이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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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수명과 건강 수명이 크게 증가했음에도 사회적으로 노인은 65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지만 생물학적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해를 거듭할수록 연령대별 신체 기능은 사람마다 다르다. 넓은 의미의 노인은 노화에 따른 고장이 어느 정도 쌓여 신체 기능이 떨어져 허리가 굽고 걷는 속도가 느려지는 등의 모습이 나타나는 시점부터라고 정의 내린다. 숫자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노쇠의 정도이며, 개인의 내재역량 정도가 경제적 가치 이상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을 열어둔다. 사람의 노화 속도에도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나 100세에도 헬스장에서 운동하며 자신을 관리하는 사례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음식, 휴식과 수면, 움직임, 스트레스 등에 따라서 노화의 속도는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한다. 만성질환의 목록은 성인기를 거치면서 스스로 살아온 삶의 결과라는 전문가의 의견은 식습관뿐 아니라 몸에 배인 생활습관이 시간의 흐름과 상호작용하여 유기체에 일으키는 구조와 기능의 변화를 초래한다는 뜻이다. 노쇠의 진전을 최소화하며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시간을 줄여 가는 과정은 길어진 노년에 삶의 질을 유지하는 전제조건이다. 가속노화의 원인인 흡연, 비만, 운동 부족, 음주, 부적절한 식사 등을 줄이는 일상은 감속 노화를 위한 방편이다.

지난해 친정엄마는 자식들을 마중하러 일어서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증으로 고생을 많이 하였다. 골다공증이 심한데다 엉덩방아를 크게 찧는 바람에 고관절 골절이 발생하여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였다. 정형외과를 찾아 며칠 입원하며 근원적인 치료를 받으면 통증이 완화될 것이라 믿었는데 뼈의 골밀도가 너무 낮아 시술조차 힘든 상황이라 통증을 완화하는 주사만 두 대를 맞고 퇴원하였다. 퇴원 후에는 실내에서도 지팡이를 짚고 생활할 정도로 삶의 질이 떨어졌다. 걸음을 떼지도 못한 채 영영 못 일어나 침상에 누워 지내면 어쩌나 하는 염려는 엄마의 건강 회복과 함께 줄어들었지만 우려가 크다.

하루에 한두 끼를 먹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언제 먹느냐에 따라 우리 몸의 건강 상태가 달라진다. 본인의 건강 상태를 분석한 다음 적절한 식습관을 갖는 것이 노화를 늦추는 건강 습관의 기본이다. 몸이 대사율을 떨어뜨리며 찬수화물이 지방 형태로 저장되는 일을 촉진하는 과당 섭취를 제한하고, 대사 증후군을 악화시키는 술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매일 먹는 끼니가 누적되어 내 몸의 특성을 만드는 만큼 목표에 맞는 식단을 선택하여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단순당이 많이 들어 있는 음료, 단순당과 정제 곡물이 여러 식품첨가물과 버무려진 초가공식품은 금하는 것이 좋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먹는 순서를 바꿔 섭취하는 방법이 있다. 채소를 포함한 식이섬유→고기ㆍ생선 등 단백질→찬수화물 순서가 한 예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 자녀의 결혼, 갱년기를 거치며 비만에 머물러 울울함이 더하다. 살을 뺄 생각을 잊은 채 하루하루 버티며 지내온 시간이 많아서인지 어느새 몸은 통증 신호를 보낸다. 건강검진을 마치고 의사와의 상담에서는 살 빼라는 소리를 수십 년째 듣고 있다. 그 때에는 대사 질환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살을 빼야겠다고 의지를 다지지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이래저래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필요 이상 섭취할 때가 있다. 회식을 하더라도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까지 있지 않으려는 약속을 이행하는 실천력이 담보될 때 건전한 일상은 건강한 신체기능과 함께 회복 기미를 보일 것이다.

가속 노화를 막을 수 있고, 치매 등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낮출 수 있는 MIND식사를 위한 식단 구성은 건강한 생활 습관 유지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외에도 꾸준한 걷기는 만성질환 예방, 뼈와 관절 건강,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줘 노화를 예방한다. 산을 오르기보다는 일상에서 걸을 기회를 찾아 걷기를 습관화하고, 적절한 스트레칭으로 유연한 몸을 만드는 일은 스스로 루틴처럼 만들어갈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신에게 맞는 코어와 둔근 운동으로 일상생활의 기능성을 높일 때, 노년의 시간은 평정심을 갖고 흐를 것이다.

50대 후반에 치매를 앓던 사촌 오빠가 예순 셋에 세상을 떴고, 중증 치매 로 전문병원에서 돌봄을 받던 팔순의 이모가 세상을 떴고, 아흔 다섯의 시어머님은 요양 병원에서 생활 중이다. 길어지는 노년 인지기능 저하 없이 오롯한 정신으로 살다가는 일이 멀게 느껴진다. 치매약보다 더 효과 있는 생활습관 개선은 충분한 수면에서부터 시작된다. 뒷날 각성제 없이도 활력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잠을 자는 것이 일상 회복에도 도움을 준다. 궁극적으로는 지금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서 좋은 만남을 지속하며 사회에 도움 되는 시간을 영위하이 위하여 중년부터라도 내재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느리게 나이 들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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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2024-03-15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사순서까지 알려주네요. 건강도서라 정독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