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쪽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대한민국 도슨트 8
한진오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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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구경하지 못하고 별 다른 요동 없이 흐르는 섬진강을 하염없이 보며 지낸 까닭인지 가없이 펼쳐진 바다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배를 타고 처음으로 가본 대학 졸업여행지인 제주도는 배 멀미로 신비로운 자연 환경에 녹기는커녕 자리에 누워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30여 년 전 멀미약은 왜 그리도 독했던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안정적으로 사회생활하면서 한 해에 두 번은 제주도를 찾았다. 항공편으로 한 시간 거리도 안 되는 제주에서 보낸 사나흘은 뭍에서 보기 힘든 비경에 곳곳이 경험하지 못한 빛깔로 여행자 눈길을 끌었다. 어쩌면 눈에서는 잡히지 않는 비현실적인 공간 제주도는 지칠 때 떠나고 싶은 환상의 섬이었다.

 

   계절마다 다른 빛깔의 옷을 입고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그 지역 특유의 자연은 제주도를 찾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따스했다. 하지만 이런 비경에 취해 황홀해하는 것조차 송구하게 여겨지는 것은 제주의 풍경 이면에 담긴 속살의 아픔이었다. 투명한 빛깔의 수채화 같은 제주의 풍경 에 감탄하며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의 신산한 삶을 간과하여 온 점을 되짚으며 제주 동쪽의 내밀한 삶을 들여다본다. 바다로 떨어지는 정방폭포를 배경으로 찍은 단체사진은 앨범 속에 멈춰 있지만 이곳 역시 4·3학살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니 희생당한 영혼들의 아픔이 서려 있는 듯하다. 남원 지서 근처와 멀리 정방폭포까지 70여 명을 끌고 와서는 인정사정없는 학살을 자행해 홀치기 사건으로 불릴 정도라니 바다로 바로 흘러가는 폭포수는 원한 맺힌 이들의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의 결정인 지도 모르겠다.

 

   제주의 상징 중 하나인 성산은 조천읍, 구좌읍, 우도면, 성산읍, 표선면, 남원읍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제주에 애착이 강한 저자는 제주 굿판에 홀려 성산을 수시로 드나들며 제주 동쪽에 서려 있는 역사, 문화적 자원을 발굴하여 독자들에게 전한다. 제주의 동과 서를 가르는 한라산은 땅속으로도 깊은 화산 활동이 일어나 곳곳에 동굴을 만들었고 물줄기를 이뤄 이색적인 경관을 낳았다. 한라산은 백록담과 더불어 360여 개에 이르는 오름은 지닌 화산의 군집으로 세계가 인정한 세계자연유산으로 자리한다. 4~5천 년 전, 바닷속에서 마그마가 분출해 형성된 수성화산인 성산 일출봉은 천혜의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만 이곳 역시 4·3항쟁 당시 무고한 이들이 죽어간 곳이라니 처연한 슬픔이 더한다.

 

   제주도 창조주인 설화 속 설문대 여신은 바다를 도랑처럼 넘나들며 섬을 만든 뒤에 일출봉 기슭에 앉아 해진 옷을 기우는 바느질할 때 등잔을 올려놓은 바위라는 등경돌 너머 만곡의 해안선을 끝없이 펼쳐내는 광치기 해변이 펼쳐진다. 관치기라고도 불리는 광치기 해변은 해난 사고를 당한 무연고 시신들이 떠밀려 와 관을 짜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이 잦았다니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이들의 애 끊는 시름이 깊었을 듯하다. 낙향해 우도 개간의 뜻을 세운 김석린은 교육에도 힘을 써 지금의 우도를 찾게 하였다. 우도 속의 섬인 비양도 들머리에 있는 돈짓당은 해녀들이 섬기는 바다의 신인 요왕할망과 선왕신을 모신 곳이다. 이곳에는 바람의 신으로 알려진 영등신이 머물러 겨울 모진 바람을 몰아내고 훈훈한 봄을 알리는 촉매로 자리하는 듯하다.

 

   성산읍 동쪽 끝 마을인 신천리는 수백 마리 마소가 뛰어 놀던 목장이 있어 드넓은 초원의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봄부터 가을까지 푸르렀던 들판이 겨울에는 귤껍질을 말리느라 누런 들판으로 변한다니 그 광경을 한번은 보고 싶다. 용궁으로 가는 길이라 불리는 용궁올레에 얽힌 전설은 바다라는 대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기를 바라는 신의 당부는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듯하다. 지질 트레일 코스로 유면한 김녕리는 용암이 타올라 바다와 만나 굳어져 웅덩이를 만들었고, 썰물 때라야 살짝 머리를 드러내는 수중의 갯바위인 두럭산은 백록담을 닮아 이를 신성시하였다. 섬과 바다, 오름을 함께 품은 아름다움의 정점인 마을 종달리는 제주에서 귀한 소금을 만드는 마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많은 소녀들은 물질을 운명으로 여기며 파도에 몸을 싣고 제주 바다 곳곳을 누비고 있다. 물질을 잘하는 정도에 따라 상군·중군·하군 해녀로 나뉘는 해녀들은 애기 잠수의 망사리에 해산물을 나눠 주며 어린 해녀를 배려하였다. 제주에서 해안선이 가장 긴 마을인 하도리는 제주에서 해녀가 가장 많은 마을이다. 해녀 박물관 건립 이후 해녀들의 땀이 밴 삶터인 숨비소리길을 조성해 바다를 생업 터전으로 삼아 온몸으로 이뤄낸 해녀들의 강건한 삶의 의지를 담았다. 곳곳에 뿌리 내린 나물들이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숲을 이뤘고, 머체왓의 편백 군락지도 조성되어 짙은 피톤치드 향을 풍기며 오욕에 찌든 몸과 마음을 씻어줄 듯하다. 숲에서 시작해 숲으로 끝이 난다는 머체왓숲길을 걱정 없이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조선 세종 때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수산진성의 옛터에 자리를 잡은 수산초등학교의 담벼락은 철옹성처럼 단단하여 육백 년이 지났어도 학교 담장 구실을 하고 있다니 놀랍다. 절제의 미를 갖춘 백동백나무가 운동장에 있는 수산초등학교에는 진성 완성의 제물로 희생된 아이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는 진안할망당이 있다니 이색적이다. 제주에서는 드문 리아스식 해안을 자랑하는 오조리의 식산봉은 108종의 식물을 품고 있는 비밀의 화원으로 불리는 해발 60미터의 작은 오름이다. 오름이 많고 평지가 적은 제주 동쪽은 척박한 환경에 농사를 짓다 보니 소의 힘을 빌려야 했다. 이에 따라 전문적으로 소를 치는 테우리가 있어 자연적 환경에 적응하며 지역민들만의 고유한 풍습을 이루었다. 자연재해와 목민관의 수탈 등으로 곤욕을 치르면서도 초자연적인 힘에 기대어서라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제주도 사람들의 고단한 시간은 설화 속에 융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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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의 고독 -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토르비에른 에켈룬 지음, 김병순 옮김 / 싱긋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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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원이 귀하고 부족하던 시절, 농사를 짓고 사는 궁벽한 시골 살림살이에서 아이들은 농사짓는 어른들 일손을 거들었다. 이른 새벽부터 남아들은 꼴을 베어 소여물을 주고 여아들은 빨래터로 가 빨래를 씻어 넌 뒤 학교를 향하였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때는 퇴비증산을 위한 울력에 온 동네 사람들이 나서야 했다. 두 발로 걸어 양손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풀을 베고 모으는 일에 나서야 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걷고 움직이는 일상을 들여다본다.

 

   느닷없이 쓰러져 정신을 잃고 병원 응급실로 간 저자는 뇌전증 진단을 받고 의사의 권고대로 운전면허증을 반납하였다. 지금껏 차를 운전하며 생활했던 이에게 운전 금지는 여러 불편함을 가중시킬 수 있었지만 저자는 생각을 달리하여 이동 방법을 바꾸었다. 직립 보행으로 원하는 일들을 처리하며 지냈던 석기 시대의 수렵·채집 생활을 떠올리며 생필품을 사러 갈 때에도 걸어서 다녀오는 방법을 고수하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오고간 길을 되짚어 걸으며 문명의 이기에 짓눌려 생각지 못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저자는 걷는다.

 

   부모와 두 여동생이 함께 오두막에서 지냈던 유년 시절, 보금자리가 깃든 숲 속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던 남매의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울울창창한 숲 사이로 난 외길에 선 남매는 배낭을 메고 서로 손을 잡고 집 뒤쪽 숲속으로 걸어갔다. 길을 걷다 보면 목이 마를 수도 있으니 물과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기는 일은 길을 떠나는 자녀들을 위한 부모의 마음을 담았으리라....... 지금은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며 사느라 자주 만나기는 힘든 남매이지만 그 시절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 한 장에는 가족의 서사가 깃들어 있다.

 

   처음부터 있던 길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말을 되새기며 길을 찾을 때가 있다. 산길을 걷다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잡목으로 우거져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길로 빠졌을 때 두려움이 밀려든 경험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출구를 찾기 힘든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길을 걸어 평지와 이어지는 길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곱절로 든다. 저자는 친구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노르웨이 하르당에르고원을 가로지르는 옛 산길을 탐사하며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에 매료되었다. 험한 산길을 걷는 아이들 역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걸음으로 저마다의 보폭을 유지하며 걸었다. 벼랑에 난 틈새에 쌓아올린 돌무더기는 주위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표식으로 이정표 기능을 하였다.

 

   저자는 탐사 중 떠오르는 중요한 생각을 메모하며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걷기를 즐겼다. 오슬로 인근의 노르마르카숲을 걸을 때에는 문명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길을 택해 기존의 탐방로가 아닌 길을 찾는 모험도 감행하였다. 개울은 저항을 최소한으로 받는 길을 따라 쉼 없이 흘러 강에 이르고 바다로 흘러간다. 누구든 산길을 걸었다 다시 걸어 돌아오는 길, 힘에 부쳐 주저 않고 싶은 순간이 올 때면 반환점을 지났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산길 중간을 넘어섰다는 말은 하산할 때와 멀어졌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숨이 턱에 닿을 듯 힘이 드는 순간, 너럭바위에 앉아 오던 길을 내려다본다. 오랜 시간 속 풍화를 견딘 표적은 바위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돌 틈에 피어난 이름 모를 야생화의 원색적 빛깔은 자연 속에 함께하는 설렘을 선물한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시름이 깊을 때면 동네 뒷산을 찾는다. 특별한 장비 없이 황톳길을 걸으며 마음을 어지럽힌 일들을 불러내 내적 소통을 꾀하며 한 걸음씩 움직인다. 인기척에 놀라 소나무 위로 내달리는 청설모에게 따스한 한마디를 건네며 가슴속에 남은 감정의 찌꺼기를 떼어 낸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들이 새롭게 들어오는 경험은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이들에게 주는 통찰의 힘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들판으로 가는 길, 길가에 우거진 풀숲은 짧게 자른 남동생의 머리처럼 민숭민숭함을 드러내며 진한 풀냄새를 풍긴다. 모내기를 끝낸 들판에는 연두 빛깔의 벼들이 청초하게 자라나 걷는 이의 마음을 싱그럽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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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테의 놀라운 여행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3
댄 거마인하트 지음, 이나경 옮김 / 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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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탈한 일상이 고마운 줄 모르고 지내다 평범하게 여기며 지냈던 일들을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타인과의 거리를 두고 지내는 팬데믹 시대에 책은 길동무로 자리한다. 세 자매와 부모로 구성된 가족은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며 추억을 새기느라 한정된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었다. 서로 좋은 점을 담은 쪽지, 사진, 편지, 작은 보물들, 함께한 삶의 조각들이 담긴 추억 상자를 공원의 그늘진 구석에 묻었다.

   ‘나중에 다시 오자.’

    던 엄마의 말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공원에 추억상자를 묻고 돌아오는 길 가족은 자동차 사고를 당하였다. 찰나의 사고로 엄마와 언니, 동생을 잃고 남은 둘째 아이에게는 세 자매와 엄마가 함께한 추억만이 남았다.

 

   예기치 않은 일로 아내를 잃고 두 딸을 떠나보낸 아빠는 남은 딸과 함께 새로운 길에 섰다. 가족으로 묶인 이들을 잃어버린 상실은 온 가족이 정을 나누며 지낸 공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지내는 방법을 찾게 하였다. 아빠와 딸이라는 호칭 대신 로데오와 코요테라는 새 이름을 지어 부르며 길 위를 달렸다. 일정한 시간, 학생들 등하교를 돕는 스쿨버스를 구입하여 방을 꾸미고 좋아하는 책들도 함께 뒀다.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일들과는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길, 주유소에서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공급받으며 또 다른 주유소를 찾아 이동하였다. 스쿨버스 예거에 기름을 넣고 휴게소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등 기본적인 삶의 욕구를 채우며 새로운 길동무를 만나 동행하였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이반

   을 좋아하는 코요테는 선물 받은 고양이에게 아이반이라는 이름을 붙여 줬다. 코요테 속마음을 알아차린 로데오는 내걸었던 조건을 해제하고 딸에게 아이반과 함께 하는 시간을 허락하였다.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법을 소중한 존재를 아끼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랑하는 사람들을 태워 목적지에 닿게 하였다. 휴대폰으로 엮이고 싶지 않은 로데오였기에 코요테는 매주 토요일 공중전화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하였다. 손녀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할머니와 통화하며 코요테는 집 근처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접하였다.

 

   아픔의 눈물이 일렁거리는 과거와는 단절한 채 앞으로 나아갈 길만 생각하며 지내자던 로데오의 뜻을 코요테는 존중하였다.

   ‘너희 집 블록 끝에 있던 작은 공원이 없어질 거란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코요테는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비밀과 추억을 간직한 숲이 사라지기 전 숲 그늘 아래 묻은 추억상자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으로부터 멀리멀리 달려온 길에서 우회하여 진정한 목적지 포플린 스프링스로 가는 길은 동승한 이들과의 공조가 필요했다. 상실의 아픔이 남긴 참혹한 슬픔을 떠올리며 마주하기 힘든 줄 알면서도 코요테는 엄마의 딸로, 동생이자 언니로 세상을 뜬 이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가정 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살바도르와 그의 엄마, 사랑 대신 음악가로 살아가는 꿈을 선택한 레스터, 동성애자를 이해 못하는 부모를 피해 나온 밸은 하나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제1바이올린 수석으로 자리하는 살바도르의 연주회가 예정된 날, 그의 엄마는 휴가까지 받았지만 아버지의 폭력으로 연주회에 참석은커녕 낯익은 곳을 떠나야 했다. 살바도르와 코요테는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며 친구의 바람을 들어준다. 가족과의 추억이 깃든 목적지로 가는 길에서 코요테는 일행과 함께 기지를 발휘하여 살바도르가 그의 엄마를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게 도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아빠와 딸로 부르지 않으며 오 년 전 먼저 떠난 가족과 과거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칙을 깨뜨려야 하는 때가 와버렸다. 로데오에게는 비밀로 부치고 엄마와 세 자매의 추억이 묻힌 곳을 찾아가는 여정에 돌발 상황은 복병처럼 자리하여 공사 시행일을 넘기고 말았다. 레스터와 로데오가 교대로 버스를 운행하는 도중 브레이크 결함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였지만 브레이크를 손 봐서 다시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밤새 달리면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집 근처 공원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듯 또 다른 걸림이 자리하였다. 보안관 지시에 따르며 조사를 받고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지체할 시간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에는 남은 선택지가 자연스럽게 최선이 되는 것이라는 아빠는 딸에게 운전을 가르쳐주었다. 속력을 내어 예거를 몰고 보안관을 따돌린 코요테는 살바도르와 함께 공원에 도착해 공사가 시작된 숲 그늘 아래 구덩이로 들어가 삽질을 하였다. 진정한 눈빛으로 추억상자를 찾아야 한다는 소녀의 간절함은 인부들 마음까지 움직여 함께 구덩이를 파게 되었고, 마침내 묻었던 추억을 꺼내었다. 오 년 전 아픔이 자리하는 공간에서 꺼낸 추억상자를 열어 가족의 마음을 확인한 아빠와 딸은 지금껏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거부하던 삶을 수정하였다. 추억을 들추며 하늘의 별이 된 이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집을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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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차를 마십니다 - 건강한 약차, 향긋한 꽃차
김달래 감수 / 리스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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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은 읍내 거리를 돌다 보면 영업 중인 커피 전문점을 여럿 보게 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면 코끝에 스미는 커피 향에 끌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주한다. 분위기에 끌려 커피를 마셨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라 불편함이 더한다. 커피를 마시는 횟수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미미하지만 녹차를 마신 지는 35년이 넘어섰다. 차 동아리 회원으로 만난 녹차는 지친 영혼을 달래며 삶의 여유를 선물하였다. 녹차는 성난 기운으로 차오르는 감정을 가라앉혀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오늘도 차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글을 쓰고 나를 돌보고 살피는 시간은 자아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에 함께한다.

 

   매일 적당량의 물을 마시는 습관이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데 기본이라는 말과 함께 성인은 하루 2리터의 물을 마셔야 한다는 정설이 내려온다.

   ‘하루에 어떻게 물을 마셔야 하나?’

   신진 대사가 원활하지 못한 이들은 물을 많이 마시지 말고, 무를 마실 때에는 천천히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 하루 생수 2리터를 마시기 힘든 경우, 카페인 없고 체질에 맞는 곡물이나 약재로 끓인 차를 마셔 수분을 섭취한다. 내 몸에 더 좋은 기능을 갖춘 물 한 잔으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 도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차를 마신다.

 

   내가 먹은 음식이 내 몸을 만드는 것처럼 자신에게 맞는 차를 마시며 건강을 지키는 습관 형성은 필요하다. 한 잔의 녹차가 내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찻잎을 채취하여 차를 덖고 비벼 말리기를 반복하는 수고가 함께한다. 정갈한 마음으로 우려낸 한잔의 녹차에는 그 차를 만든 사람의 정성까지 합해져 깊은 맛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개인의 입맛과 체질, 건강 상태에 맞는 재료를 골라 손쉽게 차를 끓여 마시며 효험을 볼 수가 있다. 가족의 건강을 위한 약차 40가지, 눈과 코, 입으로 세 번으로 즐기는 꽃차 20가지는 몸에 좋은 향기로운 습관을 갖도록 이끈다.

   항온동물인 사람들은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냉기를 달래고, 더울 때는 시원한 성질을 가진 약재나 곡물로 냉차를 끓여 마시며 열을 식힌다. 차를 꾸준히 마셔 노폐물을 배출하여 몸속 유해성분을 제거하고, 혈액순환을 원활히 하여 면역력을 기를 수 있다. 차에 함유된 비타민C는 피로를 풀고 감기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주고, 차에 함유된 카테킨은 바이러스를 약화시킨다. 만병의 근원이라 불리는 스트레스 줄여주는 차는 머리를 맑게 하고 힘을 북돋워 활력을 제공한다.

 

   태음인은 비만이 되기 쉬운 체질로 혈압이 높고, 당뇨병이나 동맥경화 등 성인병 발병률이 높은 편이라 녹차, 귤껍질차, 도라지차, 작두콩차, 국화차, 율무차, 연잎차, 칡차, 오미자차, 오디차 등을 마시는 것이 좋다. 티백이나 가루는 침출법으로 우려 마시고, 다양한 기능이 있는 차 탕기를 이용해 일정 온도로 약재를 넣어 차를 끓여 마실 수 있다. 요리하다 남은 채소들을 말린 후 덖어서 뭉근히 끓여 차를 마시며 몸 안에 쌓여 있는 독성 물질을 제거해 면역력을 높인다. 겉보리를 볶아 물에 넣고 끓인 고소한 보리차는 무기질이 풍부하여 몸속 전해질의 균형을 맞춰 준다. 몸속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제거해 주는 우엉차는 껍질에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하므로 우엉 껍질까지 사용하는 것이 좋다.

 

   목을 많이 쓰는 직업에 종사하는 이로 도라지와 생강, 배를 넣어 만든 차를 즐겨 마신다. 도라지의 사포닌 성분은 기관지의 점액 분비를 촉진하여 가래와 기침을 완화하므로 알레르기 비염이나 천식 등이 있는 경우 도라지차를 꾸준히 음용하면 좋다. 맵고 쓴맛이 많은 도라지를 차로 끓일 때에는 생강과 배를 함께 넣고 푹 달이면 온 가족이 먹기 좋은 차가 된다.

디톡스 용으로 유명세를 탄 레몬차는 항산화 효과가 탁월하여 염증을 없애고 면역력을 강화하며 노화를 막는다. 차로 끓여 마시면 신맛이 줄어 마시기 편한 레몬청을 만들 때에는 레몬을 잘 닦아야 한다.

 

   5월 중순인데도 한낮에는 기온이 올라 때 이른 더위로 땀을 흘리며 지낸다. 노출의 계절이 다가올수록 비만한 사람들은 여름 나기가 고역인 터라 본격적인 여름을 앞두고 다이어트에 나서는 이들에게 도움 될 차가 있다. 천연 인슐린으로 불리는 돼지감자의 이눌린은 칼로리가 낮은 다당류로 비만과 당뇨를 예방한다. 편으로 썬 돼지감자를 말린 후 이를 볶아 여름철에는 찬물에 우려 시원하게 마시면 구수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볶은 팥에 물을 붓고 팔팔 끓인 뒤 팥알을 거르고 물을 마시는 팥차는 사포닌과 칼륨이 많아 혈압 조절, 붓기 완화, 노폐물 배출에 탁월하다.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 바이러스 대유행 시대를 살아내느라 고단한 때일수록 정신 건강에 좋은 차는 심신을 인정시켜 준다. 뇌파를 자극하는 성분이 있는 오미자차는 정신을 이완시키고 머리를 맑게 한다. 선명하게 붉은 오미자를 골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오미자와 설탕을 동량으로 준비하여 밀폐용기에 켜켜이 담아 100일 후 알맹이를 걸러낸 액을 물에 희석해 마신다. 녹차와 홍차의 중간 성질을 가진 우롱차는 우울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 된다. 우롱차의 폴리페놀 성분은 강한 항산화작용으로 활성산소를 없애고, 세포 조직의 재생을 촉진해 노화방지에도 도움을 준다.

 

   기초대사량이 줄고 호르몬 변화가 오는 중년 여성이 앓는 갱년기 증후군으로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머리를 맑게 하고 신경을 인정시켜 두통을 가라앉히는 계피차는 혈액 순환을 도와 수족 냉증을 완화해 준다. 향이 뛰어나고 새콤달콤한 과육인 석류는 고혈압과 동맥경화를 예방하고, 갱년기 증상인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 설탕에 재어둔 석류를 소독한 유리병에 담아 밀봉한 뒤 7일간 냉장 보관하였다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면 좋다.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야뇨증을 없애고 골격을 튼튼하게 하는 산수유차, 눈이 밝고 시원해지는 결명자차 등을 음료처럼 마시게 하면 좋겠다.

 

   사계절 피는 꽃이 다양한 만큼 꽃차로 음용할 꽃들이 즐비하다. 저마다 다른 색과 향, 맛으로 과다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귀한 꽃차이다. 꽃차를 우릴 때에는 경도가 낮은 연수를 이용하고, 팔팔 끓는 물로 우려야 풍미가 좋아진다. 특별한 날 선물을 보내 온 황국화차를 마시며 어지러운 마음을 진정한다. 끓인 물을 다관에 붓고 황국을 넣고 5분 정도 우려 마시니 뒷머리가 당기던 것이 조금 덜했다. 마법에 걸린 날이면 생리통으로 힘들어하는 딸에게는 작약꽃차를 선물하고, 위염으로 고생하는 조카에게는 캐모마일 꽃차를 준비해 건네야겠다.

    

   몸에 좋은 약재와 곡물, 꽃을 이용하여 만든 차의 종류가 다양하여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만성 질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체질에 걸맞은 차를 마시는 것이 한 방편이다. 차를 여러 종류 구비해뒀다 시의 적절히 차를 끓여 마시며 오늘도 건강을 챙긴다. 이른 저녁을 먹고 황국화차 한 잔을 마시며 장 건강을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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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생존 도시 - 만능 백신은 없다
홍윤철 지음 / 포르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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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15 00시 기준 확진자 발생이 680명으로 좀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사태는 국경을 초월하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개인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함께할 사람들과의 만남은 끊어지고 가상 세계에서나 모임이 이뤄지는 비대면 시대에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는 피하게 된다. 인구 밀집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집과 직장을 거쳐 집으로 움직이는 건전한 생활인들이 늘어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조용한 감염으로 확진 판정을 받은 이가 생겼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바이러스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환경을 지배하고 축적된 자원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사는 문명의 시대가 도시 중심으로 이뤄졌다. 도시 간 교역의 발달, 지역 간의 활발한 전쟁 등으로 주민들은 전염병 감염에 취약해졌다. 전염병 역사상 피해가 막심했던 페스트 대유행은 1330년대 중앙아시아에서 발병해 1830년대 종식될 때까지 500년이나 지속되었다. 산업화와 함께 도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데다 불량한 상태의 주택이 증가하면서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환경을 초래했다. 위생 상태가 나쁜 주거 환경이 180년대 뉴욕의 폐결핵을 일으킨 주된 원인이었다. 도시화가 수반하는 생활양식의 변화와 도시가 갖고 있는 환경의 영향들이 건강상 위험을 기중시켜 왔다. 도시에 몰려 사는 바쁜 현대인들의 식생활습관이 서구화되면서 심혈관질환이 급증하였고, 수많은 화학 물질 노출로 만성 질환에 시달리며 면역체계의 불균형은 심화되고 있다.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도시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건강한 도시를 만들어가는 데 힘을 모은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대규모 노동자들이 도시로 모여들었고 제대로 된 시설에서 생활하지 못하는 이들은 건강 격차를 벌인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수도권에 양질의 의료 자원이 집중돼 있어 의료 이용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의료서비스의 잘과 의료에 투입되는 재정의 개선이 지역사회에서의 의료체계 강화와 같이 이뤄져야 한다. 지역사회의 보건의료체계를 개선하고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와 형평성 있는 공급 시스템을 달성해 미래 도시의 의료 기반을 다져나가야 한다. 바이러스 감염 질병 유행을 예방하기 위한 도시 건설은 스마트 도시 건설과도 연결된다.

  사람들이 집중되는 도시화가 야기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도시계획 수립으로 주민들의 삶이 질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도시 환경을 조성하여 가야 한다. 고층 건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한 에너지 사용 절감이 한 예이다. 편의성 위주의 교통 정책에서 탈피해 목적지에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대기오염을 줄여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는 탄소 배출이 적고 지속 가능한 교통 체계를 확립하여 주민들에게 안전한 접근성을 제공하는 도시를 만드는 일은 도시 재생 사업과도 맥을 함께한다.

  다양한 재화들이 늘어서 있는 공간, 욕구 충족을 위한 위락 시설, 교육 시설과 문화적 향유 공간의 집중 등 도시가 갖는 매력은 크다. 궁벽한 농촌에서 생활하다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서울에 갈 때면 자본으로 유지되는 거대한 조직이라는 생각에 아찔할 때가 있다. 편의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도시인들에게 돌봄과 보살핌을 제공하는 일은 도시 외양을 가꾸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노인 인구 급증으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늘어난 만큼 지역사회 복지시설과의 긴밀한 네트워크 활성화로 사회적 돌봄 체계가 구축돼 노인 돌봄이 가족 중심으로 이뤄지느라 파행되는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

   코로나 19 사태는 그동안 살아왔던 형태의 생활방식에 변화를 주도하였고, 당혹스런 현실에서도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정책을 따르며 전염병 시대를 함께해 왔다. 필요에 의해 종성된 도시 공동체가 문명 생활을 이끌어가면서 질병을 일으키는 진원지,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는 질환의 온상으로 직시되고 있다. 지난 4월 통계자료에 의하면 경기, 서울 지역의 인구수가 남한 인구수의 40%이상이 모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구 밀집이 높은 지역으로의 인구 유입을 줄이기 위해서는 소도시에서도 질 높은 의료 서비스, 교육, 일자리 등의 수요가 충족되어야 한다. 도시에 사는 인구가 늘면서 도시 내 지역 간 불평등 문제가 커져 주민들 간의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어 인구 분리를 위한 도시계획을 시행하였다. 지속적으로 건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환자가 거주하는 지역사회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구조로 재편성해야 한다. 미래의료의 중심축이 병원에서 환자 혹은 집으로 옮겨가는 구조이다. 의사들은 이를 바탕으로 환자를 대면하지 않고도 전달되는 의료 플랫폼 정보로 환자의 건강을 확인하고 진단하는 자족적 형태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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