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십대제자 - 경전 속 꽃미남 찾기
조민기 지음 / 맑은소리맑은나라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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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가 아는 대로 진실만을 말하라. 주고받는 말마다 좋은 말을 하여 듣는 이에게 편안함과 기쁨을 주어라.’ <잡보장경>

   불법을 널리 전하는 불교방송 사옥 건립을 위한 만공회 불사에 동참하고 난 뒤부터 받는 문자 메시지로 감사한 아침을 맞는다. 오전 75분 어김없이 배달되는 오늘의 부처님 말씀을 출근길에 확인하며 세세생생 불법의 인연을 맵고 부처님께 귀의하는 불자로 살아갈 수 있어 고마운 인생이다.

 

   서른을 앞두고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둔 저자는 작가로 살고 싶은 서원을 세우고 부처님 앞에 섰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정리하며 좋은 작가가 되겠다며, 유능한 사람으로 세상을 바르고 행복하게 하는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였다. 글을 써서 부처님께 보시하겠다는 서원으로 쓴 부처님의 십대제자 이야기는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번다한 일들로 평정심을 찾지 못할 때마다 불교방송 청취는 고요한 마음으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촉매로 자리한다. 욕심 없는 마음으로 타인의 마음에 귀 기울이며 통찰력 있게 안분지족하는 일상에 삶의 지혜는 깃들 것이다. 방송 중에 초대된 저자가 부처님의 수많은 제자들 중 아라한과를 증득하여 불도를 성취한 십대제자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끌어 전율케 했다.

 

   카필라국의 정반왕은 아들을 잉태하기 위해 기도해 온 마야 왕비가 임신과 출산은 만인의 축복 속에 이뤄졌다. 싯다르타가 자신의 곁을 떠날까 노심초사한 정반왕은 야소다라 공주와 결혼을 시키고 세상과 차단된 성 안에 세 개의 궁전을 지어 주었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기 위해 태자의 지위를 버리고 깊은 밤을 틈타 궁을 나온 싯다르타는 6년의 고행을 마치고 깨달음을 얻은 뒤 불법을 전하는 스승으로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실천하였다. 출가 수행자의 삶이 어떠한 지도 모르는 12살 소년 라훌라는 아버지를 보러 왔다 출가한 뒤 수행을 시작한다. 최초의 사미인 라훌라는 갖가지 괴로움을 수행으로 묵묵히 견디며 밀행제일의 제자로 자리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법은 인연을 따라 났다가 인연을 따라 멸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또 모든 것은 덧없어서 나면 멸하는 법이며, 났다가 멸하는 일이 끝나면 고요한 경지를 낙으로 삼는다.’

   는 말을 들은 사리불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이치를 깨닫고 부처님과 인연을 맺었다. 다섯 가지 신통력을 얻은 목건련은 천안통으로 아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음력 715일 음식과 과일, 향과 초, 가사 등을 장만하여 우란분재를 올렸다. 지옥에 간 어머니를 제도했던 목건련의 마음과 행동은 궁극의 효를 실천한 전범이다.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사리불과 목건련은 절친한 친구로 평생에 걸쳐 우정을 나눈 도반으로 서로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며 부처님 곁을 지켰다.

 

   승가 안에서는 공평하게 출중함을 인정받으며 존경을 받았던 이들의 출가 전 신분은 바라문에서 수드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석가 족의 머리와 수염을 깎는 일을 하던 미천한 신분인 이발사 우바리는 세세생생에 걸쳐 세운 서원들이 모여 아라한의 지혜를 증득하고 율법에 통달하였다. 우바리는 부처님의 열반 이후 부처님의 법문을 토대로 계율과 경전과 경론을 하나로 결집한 계율제일 제자로 역할을 수행했다.

   꽃보다 화사한 미모로 교단을 대표하는 꽃미남 아난은 부처님과 사촌지간으로 부처님의 젊은 시절을 많이 닮았다고 한다. 아난의 수려한 외모는 의도와는 달리 여인들 욕망의 틈바구니에서 소란이 일기도 하였지만 불제자로 부처님의 외호 아래 비구니 스님들이 교단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부처님이 직접 마중하여 맞은 유일한 제자 마하가섭은 부처님 열반 후 의발제자로 교단을 이끌었다. 부처님 열반을 지킨 아난은 부처님 다비식 진행 중 관을 열 수 없다며 마하가섭의 간절한 바람을 물리쳤다. 마하가섭의 서원이 부처님에게 전해졌는지 관 밖으로 나온 부처님의 두 발에 마하가섭이 이마를 대고 예배하자 불이 붙지 않던 관이 타오르기 시작했다니 놀라웠다.

   무성한 말밭에서 생활하다 보면 필요 이상의 말로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은 돌아보며 회의가 들 때가 있다. 구업을 많이 짓고 사는 직장인으로 십 대의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반문하며 생각한 대로 움직이려 애쓴다. 혈기 왕성한 아이들의 언행에 감정의 파고를 탈 때도 있지만 중도를 견지하려 한다. 서로의 마음에 평안을 찾아 적정 바라밀을 얻을 수 있는 길에 팔만 사천이 넘는 부처님 가르침을 경외하며 자리이타를 실천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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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
다스슝 지음, 오하나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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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일이 평범한 중년, 부음을 들을 때마다 70대 후반인 어머니가 생각난다. 고령의 나이에도 계절 따라 농사를 짓고 밭일을 하며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애쓰는 어머니의 휜 다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려온다. 지금은 자식들 곁에서 이런저런 소식을 전하지만 언젠가는 이 세상에 없을 어머니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장례식장을 찾아 망자(亡者)를 애도하고 상주의 슬픔을 함께하며 예를 갖춰 조문하는 시간은 유한한 인생을 회향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잦은 도박과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아버지를 홀대하지 않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저자는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하였다. 그는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을 간병하며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보면서 존엄성을 지키며 품위를 잃지 않는 삶이 쉽지 않음을 절감하였다. 친구도 없이 놀기 좋아하다 도박에 빠질 것이라는 아버지의 판단이 전적으로 맞지 않았다며 장례식장에서 근무하며 겪은 일화를 모아 아버지 영정 앞에 놓고 싶다는 저자의 후기는 부자간의 거리를 가늠케 한다.

 

   장례식장에서 일하게 된 날, 새벽녘 순찰을 돌다가 도움을 요청하는 누군가의 손을 무서워 뿌리치고 도망쳤다가 이튿날 쓰레기 치우는 할머니로부터 버르장머리 없는 청년이라는 꾸지람을 들으며 장례식장 일에 적응해갔다. 유가족들을 불러 서류를 작성한 뒤 시신을 냉동고에 넣는 일을 앞두고 용기를 내야 했다. 보디 백을 열어 시신에 이름표를 두르는 일은 섬뜩한 일인데 오랜 시간이 지난 발견된 시신은 훼손이 심해 시각과 후각의 충격이 컸다. 외할머니의 충만한 사랑과 관심을 고마워하는 저자는 할머니 죽음에 특별한 감정이 일어 눈물 짓는 일이 많았다. 연로한 이들 중에는 다음을 기약할 수도 없는 일들이 흔한 편이라 안부를 전할 때에는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지금 바로 연락하는 일이 옳음을 되새긴다.

 

   “밤에 잘 자고 뒷날 누운 채로 죽으면 좋겠다.”

   라며 어머니는 몹쓸 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더라도 연명 치료는 하지 마라며 신신당부하였다. 살아날 가망 없는 이의 명을 끄는 것은 천명을 거스르는 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설 연휴를 앞두고 미장원에서 머리하고 나오다 쓰러져 그 길로 세상을 뜬 이웃 할머니, 마루에 앉아 있다 힘이 없다며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가 죽음에 이른 고모 등 죽음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나이 들수록 편안하게 죽는 것을 큰 복으로 여기며 기도에 정진하는 이들도 있다. 미수를 넘겨도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오늘도 불경을 독송하는 노보살의 모습은 이승에서의 삶에 대한 원망과 미련을 없애는 일로 비춰져 숭엄해진다.

 

   살다보면 차라리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겠다고 여기다가도 마음속 고민을 털고 일어나 일상을 시작한다. 왕따를 당한 학생의 투신자살, 고독사한 지 오래 되어 부패한 주검 등 여러 유형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변사체의 경우 관할 경찰의 현장 보존 아래 감식반의 현장 감식이 끝나면 시신을 보디 백에 담아 온다. 사고사의 경우 훼손된 시신을 복원하여 화장을 마친 뒤 냉동고에 보관한다. 유가족의 사정대로 위패를 만들어 향을 피우고 경을 읽는 애도의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있지만 경제적 여력이 없으면 이를 생략한다.

 

   오늘 저녁에는 중학교 동기가 지병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떴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오십 대 중반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서둘러 이승을 뜬 친구의 황망한 죽음은 참혹함을 더한다. 후덕한 성품으로 동기회 모임에 정성을 다하던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질병의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 한 친구는 코로나 19로 병문안도 한번 못 갔는데 이렇게 황급히 서둘러 갈 줄 몰랐다며 회한을 토로했다. 태어난 자는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이탈한 채로 영생할 수는 없다. 단지 삶을 마감하는 날이 언제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탈한 일상을 이으며 보고 싶은 이들과 만나 회포를 풀고 서로 소통하며 지내는 시간이 그리워진다. 슬픔으로 북적일 장례식장, 산 자와 죽은 자의 마지막 접견실에서 의미 있는 삶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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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해빙 -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
이서윤.홍주연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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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를 타고 퇴근하기 위해 한 정거장을 걸어가는 길,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까르르 웃다 재잘거리며 걸어가던 여고생들은 뒤따라 걷던 선생님을 보고 반색하며 걸음을 멈췄다. 평소 책 이야기를 전하는 이를 보고는,

   “선생님, 오늘 제가 도서관에서 끌어당김의 법칙을 읽었는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에너지를 얻었어요. 선생님도 끌어당김을 한번 해보세요.”

   상기된 표정으로 말하는 학생은 노력한 만큼 성적이 안 나온다고 투덜대던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긍정성으로 무장해 보는 이도 의욕을 돋웠다.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더 해빙>>을 읽으며 12년 전 의욕 넘치는 여학생이 떠올랐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이루며 살기 위해서는 바라지 않는 모습은 차단하고 바라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며 불안감을 떨쳐 버리는 데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음을 알아차린다.

 

   2002년 한 카드회사 TV 광고를 보며 씁쓸함이 더했던 적이 생각난다. 설원을 뛰어가던 여성이 빨간색 털장갑을 끼고 시청자들에게 외치는,

  '여러분 부자 되세요.'

   한마디는 소비를 부추기며 부자로 살아가라고 하니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어디 있느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적절한 소비로 충족감을 더하는 일도 있으니 재화를 얻기 위해 소비하는 경제 행위에 깃든 의미를 발견하는 데 기인한다. 돈이면 다 된다는 배금주의 사상에 빠져든 이들이 늘고 있는 자본주의 시대에 내 꿈은 건물주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상가 건물 혹은 꼬마 빌딩을 취득한 지 1년 만에 몇 억을 벌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건물주는 부를 거머쥐는 열쇠로 여겨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적 스승인 구루로 불리는 저자는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홍 기자의 아버지는 가장으로 식구들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며 살다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하고 싶은 일은 가슴에 묻어둔 채 돈을 모으느라 안간힘을 써온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본 딸은 돈에 구애받지 않는 부자로 자유롭게 인생을 즐기고 싶은 바람이 컸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던 홍 기자는 오래 전 서윤을 만나 인터뷰했던 때를 떠올리며 그녀에게 메일을 보낸 뒤 만남을 약속한 뒤 부자가 되는 법은 바로 ‘Having’에 있음을 일깨운다. 부를 끌어당기는 힘을 발현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더 많은 부를 향해 돈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하고, 돈을 쓰는 순간 가지고 있음충만하게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현재 자신에게 있는 돈을 대상으로 삼아 없음에서 있음으로 초점을 옮겨 긍정적 감정이 생기도록 ‘Having’스위치를 켜는 것이 우선이다.

 

   같은 노력을 해도 훨씬 쉽고 효율적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행운의 흐름을 타는 법을 아는 데에 있다.

   ‘우리 뇌는 어떤 명령을 입력 받느냐에 따라 그에 맞는 운의 흐름을 선택하게 된다.’

   자신이 아는 것보다 많은 능력과 자원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평가절하한 채 부정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내 안에 잠든 거인을 일깨우지 못하며 지낸다. 돈을 쓰는 순간 불안감에 휩싸이기보다는 소비로 얻은 물건이 있어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때의 충족을 만끽하며 있음을 늘려 간다. 작년 친구들 모임에서 함께 본 오페라의 유령으로 그동안 모은 곗돈 백만 원 넘는 돈이 나갔지만 오리지널 팀의 공연을 관람하며 우정을 돈독히 할 수 있어 만족감은 컸다. 흉측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지하에 숨어 사는 천재 음악가 '유령'과 프리마돈나로 급부상한 '크리스틴', 크리스틴의 약혼자인 귀족 청년 '라울'의 사랑 이야기는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로 농밀함을 더했다.

 

   진짜 부자들은 ‘Having’을 삶의 일부처럼 실천하며 지낸다고 한다. 지금 내가 돈을 썼지만 해빙을 품을 때는 돈의 에너지가 내게로 들어오는 흐름을 타고 있으므로 머지않아 돈이 들어옴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적은 돈이라도 지금 나에게는 쓸 수 있는 돈이 있음에 집중한 뒤 돈을 쓸 때, 걱정과 불안의 노예에서 벗어나 돈 쓰는 순간을 즐기면서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하루를 보내며 감사 일기를 작성하며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 속에 행복이 깃들 수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처럼 해빙일기를 쓰라고 권한다. 해빙 감정이 증폭되어 충만한 나를 만나고 돈의 흐름이 나에게로 향하게 하는 방법의 물꼬를 틀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선택의 총합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인생이 달라진다. 직장인으로 일하며 틈틈이 적금을 부어 마련된 목돈을 들고 미답의 공간으로 떠날 계획을 자주 세운다. 10년 전 수백만의 돈을 들여 걷고 싶은 길 밀포드 사운드 트레킹을 다녀온 뒤 가고 싶은 곳을 더 찾고 싶은 마음에 현재에 충실하였다. 시간을 내어 책을 읽고 앎을 충전하였고 아는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 오르기도 하였다. 편안하고 행복하게 돈을 쓰며 어떤 일을 할 때 스스로 행복한지 묻는다. 소소한 행복을 일상에서 발견하며 자존감을 회복하여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Having 신호등을 켤 때를 판단하며 지낸다. 부와 행운을 끌어당겨 부자로 지내고 있는 이들의 일화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지금 있음에 집중하며 살아갈 때 행운은 나에게로 향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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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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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향해 마모되어 가는 불확실한 인생이지만 햇수가 늘어날수록 자신만의 언어로 집을 만들며 살아간다. 노화의 진행과 함께 일어나는 퇴행은 중년의 삶에 서글픔과 회한을 더한다. 낮달만 만나는 해는 밤에 뜨는 반달을 모르듯 경험하지 않은 시간을 이해하며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타인에게는 싹싹하면서 아버지에게는 야박하게 구는 딸을 보며 명덕은 모르는 영역이 많은 가족을 떠올린다. 딸과는 달리 감정의 오르내림이 전혀 없던 전처를 떠올리며 함께 지내도 모르는 영역이 많은데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은 딸과는 서로 친밀해질 시간조차 많지 않았다. 가까이 지내도 서로의 마음을 모른 채로 마음결을 살피지 못한 채 지내다 스러져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르지만 남은 시간 스스로를 다잡고 살아야 할 명분은 있다.

 

   ‘손톱은 슬플 때마다 돋고 발톱은 기쁠 때마다 돋는다.’

   는 속담처럼 우리 삶은 슬픔이 기쁨보다 더 많다는 말처럼 손톱의 소희는 참혹함 속에서도 집 나간 언니를 기다린다. 그녀는 판매원으로 일하며 한 달에 번 돈 중 일정액을 저축하며 계획적으로 생활한다. 엄마가 언니의 돈을 들고 집을 나간 것처럼 언니도 동생의 적금을 들고 집을 나갔다. 옥탑방 보증금 걸었던 대출금을 먼저 갚을 요량으로 고단함을 감내하며 아껴 쓰고 저축하는 일에 골몰하였다. 하지만 손톱이 깨져 염증이 생기고 덧나 냉동치료를 해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 그마저도 포기하고 손톱 없어도 된다고............

   ‘내가 어쨌다고? 내가 뭘, , ? ? ?’

   외쳐보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그녀의 가슴을 후려칠 뿐이다

  

   악행과 악덕이 횡행하는 폭력을 받아들이며 현실의 부조리를 견디는 일이 다반사로 이어지는 삶은 사회적 약자들의 일상과 흡사하다. 부정한 사회 구조에 편승해 사는 이들에 맞서 항변조차 못하는 비정규직 직장인들이 있다. 두 달 동안 임시교사로 일하는 N너머공간에 짙게 드리워진 패악을 목도하며분노에 휩싸였다. 학급의 뒷문이 고장 나 수리를 부탁하는 N교사를 향해 기사가 어디 있냐며 주무관이라 부르라는 고압적인 태도는 주객이 전도되는 광경을 떠올리게 한다. 요양 병원에 있는 어머니를 방치한 간병인의 가증스러운 태도는 잡급직에 대한 경계를 허물고 간병인을 대했던 자신의 우둔함을 탓해야 했다. 어째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물을 수도 없고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지 알기도 힘든 마음은 희박한 마음에도 드러난다.

 

   가족이라는 생물학적 범주로 서로를 묶어 불편한 도리를 강조하며 형제 들은 서로를 힐난하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고받는다. 자식으로서 고령의 어머니가 피안의 세상으로 떠나는 날까지 잘 모시자고 하면서도 각기 다른 생각을 고집하며 불화하는 경우가 흔하다. 어머니는 원하지도 않는 일을 감행하는 큰아들은 다른 형제들의 생각을 수용할 생각조차 않는 위압적 태도로 일관한다. 어머니 뜻까지 거스르며 아버지 묘를 파헤쳐 유골을 화장한 뒤 평장하려는 송추의 가을속 맏형의 고압성은 가족 내 서열에 따른 불평등 구조의 심화를 드러낸다.

   예상 밖의 일들을 겪으며 낯선 환경에 노출되어 적응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2020년은 코로나블루로 절망적인 시간을 견디며 지내는 이들이 늘고 있다. 별 일 없이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만나 소통하고 교감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었는지 떠올리게 한다. 창문 너머 맑은 하늘을 쳐다보고는 일상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며 하루를 시작하는 내가 있다. 생로병사의 법칙 아래 놓인 우리는 늙고 병들어 지난한 시간을 보내다 영면에 든다.

 

   전학이 얼마나 힘든데……. 전학 가면…… 불쌍해, ……불쌍해선 안 돼.’

   ‘친구속 민수는 가해 학생들의 폭력 아래 상습 자해로 스스로를 망가뜨리면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여성용품 마케터로 일하는 해옥은 아들의 상처를 알지 못한 채 학교에서도 친구가 많은 아들로만 여겼던 것이다. 전학을 많이 다녔던 민수는 익숙한 환경에서 지내고 싶은 욕구가 컸다. 폭력을 일삼는 아이들의 행동을 장난이라고 치부하며 낯익은 공간에서 살고 싶었다. 엄마에게 사실을 은폐하고 가해 학생의 폭력을 문제 삼지 않음으로써 더 큰 폭력은 연쇄적으로 일어나 걷잡을 수 없는 일로 비화될 수도 있었다. 폭력을 장난으로 미화하여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진실한 태도는 차별과 억압의 사슬을 끊기 위한 문제 제기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기댈 곳도 없고 아무 쥘 것도 남지 않은 이제 와서야 비로소 겉돌던 세상의 틀 속에 겨우 들어앉게 된 기분

   을 느끼며 살아날 가망 없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의 주인공은 불안을 공허함으로 덮는다. 잠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가 흉측한 벌레로 변한 변신이야기를 해충으로 규정하며 주인공 역시 불투명한 수술을 앞두고 지난 시간을 반추한다. 자신의 병을 알고 민지를 데리고 나가버린 아내는 저세상으로 갔고, 민지를 돌보던 이모 역시 고단한 중년을 보내고 있어 연락이 끊긴 민지에게 관심을 계속 두지는 않았다. 보호자 없이 수술대에 오를 주인공은 불확실한 결과에 충실해야 할 이유를 찾고 있었다.

 

   곤궁, 차별, 불공정 등의 이유로 불행을 겪으면서도 슬픔을 견디고 힘을 빼는 행위는 생의 감각을 살려내는 몸짓에 해당한다. 흡인력 있는 말로 좌중을 전율케 하던 전갱이의 맛속 그는 성대 낭종 수술을 받고 묵언함으로써 목소리를 지켜낼 수 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말로 먹고 살 것이라 여기던 이가 목소리를 잃고 사서 일을 대안으로 여기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돌연한 일들에 짓눌리게 되더라도 아직은 남은 시간이 있으므로 지레 겁먹고 삶의 의미를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직 멀었다는 말은 함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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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 수짱의 인생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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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 불혹(不惑)이라는 나이 마흔은 인생의 무게를 더한다. 해가 바뀌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도 중년에 편입되는 나이 마흔이 주는 씁쓸함은 지금껏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회의하는 물음을 던진다.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새로운 나이를 먹으며 마흔을 넘기고 오십을 넘긴 지금은 온전한 정신으로 건강하게 잘 살다 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살아온 시간이 쌓여 나를 형성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가끔은 정해진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열망에 휩싸이는 자신과 맞닥뜨리며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마흔 번째 생일을 맞은 수짱은 어린이집 조리사로 일한 지 3년이 지났다. 허드렛일을 담당하고 있지만 음식 재료를 꼼꼼히 손질하며 아이들에게 산지식을 전하며 맡은 일을 열심히 해내고 있다. 마흔 해가 되도록 혼자 살면서 결혼과 육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배재하지 못한 채 지내서인지 그 나이에 드는 고민이 있다. 수짱과 만난 자리에서 마흔 다섯 살 사와코는 내 인생을 사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며 나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지 대화하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청춘 시절의 패기는 점점 사라지고 곡예를 하듯 위태로운 현재를 직시하며 위축되는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한 번도 걷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은 막연한 불안을 낳고 불안은 긍정적인 생각을 갉아먹는다. 수짱은 이대로 시간이 흘러 의지가지없는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소소한 일상의 의미를 발견하며 기분 좋아질 일들을 찾아 언행으로 옮겼다. 그녀의 생일에 미도리 선생은 젓가락을 선물하며 맛있는 것 먹으며 행복을 발견하기를 바랐다. 고형식을 섭취하기 힘든 직원들에게 수프를 끓여 전하며 사랑을 전하였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찾은 수짱은 옆 침상에 앉은 환자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를 지켜본 병원 직원은 그녀에게 경청하는 능력이 있음을 발견하고 경청 자원봉사를 권하였다. 순식간의 시간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 쌓여 이뤄낸 공과가 일생을 형성한다며 조바심내기보다는 지금 나를 변화시킬 일들을 찾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3년의 공백 끝에 우연히 재회한 서점 직원과 차를 마시고 중화요리를 나누며 일순 설렘에 빠지기도 했지만 유부남인 그와 적정 거리를 유지하였다.

 

   여러 형태로 발현돼 영향을 미친 지나온 시간은 그리움과 회한의 대상이다. 별 일 아닌데 눈물이 나면서 애틋해지는 시간이 많아지는 중년은 하고 싶은 일보다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해야 함을 나이로 일깨운다. 추억을 반복해 더듬어보는 것도 그 사람에게는 소중한 일이기도 하니까 나이 듦을 슬퍼할 필요는 없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할머니가 되어버린다면 안타까움이 더할 수 있으니 품위 있게 사는 할머니가 되자고 마음먹으니 홀가분해진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 또 하나의 세계를 살아갈 수 없으므로 내게 주어진 시간 스스로 생각한 대로 움직이며 지내야할 이유가 있다. 스냅완두콩 안에 각기 다른 방을 부리고 사는 콩처럼 우리는 우리만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선생님 구순을 추가하러 도쿄를 찾은 아버지는 딸과 조촐한 음식을 나누며 사는 이야기를 나눈 지 오래지 않아 이승을 뜨고 말았다. 급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은 지금 나답게 살아갈 일들을 찾아 나서기에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마흔임을 일깨운다. 언젠가는 피안의 세계로 떠나며 미련이 덜 남게 결이 고운 이들과 교감하며 이 순간 정성을 기울이며 살다 보면 긍정적인 변화의 씨앗은 싹을 틔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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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kang1001 2021-07-18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번뿐입니다. 인생을 두 번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 내일은 오늘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날이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화이팅!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