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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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는 나라, 아노미 상황에서도 그들만의 리듬을 타고 일상을 회복하는 나라, 상식을 뒤집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함을 가르쳐 준 나라가 인도다.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자유롭게 떠나고 싶은 인도 여행에 대한 호기심은 많은 여행기를 가까이하며 인도여행을 가능케 하였다. 배낭여행자들의 메카로 떠오를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인도를 찾은 만큼 숱한 일화들을 둘러싼 여행기는 경험으로 고착화된 상이 깨졌다. 그들이 좋은지 나쁜지는 직접 대면하는 시간 속에 가름이 난다. 내 속에 잠들어 있는 여행 의지를 일깨우며 떠난 인도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속살은 편견을 깨는 부싯돌로 자리했다.

 

 

   궁색한 살림에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대학 생활, 저자의 삶 깊숙이 자리하는 창작 의지는 작가로 살게 하였다. 몸을 뉘고 쉴 수 있는 방 한 칸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보다는 노숙하면서도 저자는 어둠의 층에 씨앗을 뿌린 것이라 여겼다. 감각을 일깨워 청각과 후각을 키워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때가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삶이 열릴 수 있도록 기다리며 스스로를 다듬어갔다. 외부 상황에 대한 지나친 해석으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내면을 실팍하게 채워가는 일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직접 경험으로 자신의 판단력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은 채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절망적인 상황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상황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할 때 변화의 물꼬는 트일 것이다. 힘들 때 진언을 외며 힘을 얻을 때가 있는 것처럼 특정한 음절이나 단어문장을 반복하며 에너지를 불어넣는 방법이 그 예다.

   ‘결국에는 다 잘 될 거야.’

   인생의 만트라를 새기며 자신에게 거는 마법의 주문으로 상처 입은 마음을 축복으로 치환하는 자기 최면으로 난국을 헤쳐 나가고 싶다.

 

   스승인 프로이트와 결별한 융은 호숫가에 돌집을 짓고 내면의 성소로 삼았다. 필요하지 않은 일을 정리하고 만남을 줄이며 소박한 생활 속에 영적인 세계를 창조해 갔다. 피리의 전설로 불리는 인도 피리 연주가 하리프라사드 초우라시아는 짧은 연주를 위해 몇 시간을 연습하며 삶이 자신에게 준 소명에 부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절차탁마의 지혜로 걸어가야 할 길을 걷는 이들은 안일함에 젖어 진부한 길을 걷지 않았다.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안으로 거둬 자아의 본질을 찾아 나서는 명상에서 내면의 평화를 발견하는 길에도 관심이 많은 저자는 길 위에서 만난 영적인 스승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느끼며 살아야 하는지 생각게 한다.

 

   지위와 역할로 자신을 규정하기보다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변화하는 역동적인 존재로 자신을 규정하며 지낼 때 허무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관계에 대한 환멸을 품은 채 삶의 의미를 상실하는 무기력에 빠져 영혼 돌봄에 소홀해서는 안 될 일이다. 마음속에 찾아오는 생각과 감정들을 적으로 여기지 말고 마음 상태를 보살피며 상처 입은 마음을 알아차린 뒤 부드럽게 안아주어야 한다.

   ‘지금의 나는 내게 길을 가르쳐 준 모든 만남과 부딪침의 결과물이다.’

   후배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한마디에 인생의 많은 것을 바꿔 놓게 된 저자의 경험은 불교 잡지 발행하는 일을 맡게 되었고, 이후 출판사에서 명상서적을 소개하는 일로 인도를 드나들며 명상 세계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다. 일련의 일들이 시를 쓰고 문학을 지속하기 위해 경험해야 하는 일들로 여기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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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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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한한 삶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 것이라 여기며 지냈던 나날들이 안타까움으로 채워진다. 다양한 죽음만큼이나 생명이 다한 원인도 각양각색이지만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학생들의 죽음은 잘해 주지 못한 점을 떠올리게 한다. 교실을 벗어나 아름다운 풍경을 접하며 공부하느라 미뤄뒀던 이야기를 나누며 동급생들과 추억을 쌓는 수학여행을 가던 길이 억울한 죽음을 초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른들의 잘못된 판단과 관계자의 직무 유기로 맺힌 꽃봉오리를 채 피우지도 못한 채 세상을 뜬 열여덟 살의 영혼들이 목 놓아 통곡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살아온 물리적 일상이 쌓여간다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늘어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별다른 야망도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티나는 무용수로 일하다 의상 담당자를 거쳐 안무가로 활동하다 쇼를 기획하는 제작자로 역량을 발휘해 갔다. 한편, 그녀의 남편 마이클은 블랙잭 딜러로 일하며 변화를 추구하며 새롭게 시도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관성대로 살면서 현실에 안주하려는 삶의 태도를 보이며 티나가 그의 트로피 아내로 자리하기를 바랐다. 쇼를 기획하는 제작자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티나의 열정을 달가워하지 않던 마이클과의 감정 다툼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 결혼 생활은 파탄으로 이어져 둘은 결별했다.

 

   남편과 헤어진 해의 겨울철 혹한기에 스카우트 캠프를 떠난 대원들이 탄 버스 전복 사고로 탑승자 모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캠프를 떠나는 아들을 배웅한 지 오래지 않아 열두 살 대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신의 훼손이 심각하여 아들의 주검을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장례 담당자의 말을 받아들인 어머니는 관을 덮은 채 아들을 떠나보냈다. 준비 없는 이별로 아들을 만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가 머무르던 공간까지 정리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대형 매직 쇼 공동 연출자로 자신의 잠재된 에너지와 새 역량을 발견하며 막바지 준비에 골몰한 채쇼 비즈니스 성공을 바랐다. 막이 오를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불안감은 커졌지만 오롯이 정신을 집중하며 중심을 잡아갔다.

 

   ‘죽지 않았어!’

   명징한 글씨와 함께 대니의 방에서 시작된 괴이한 소리는 좁은 복도 벽을 타고 계속 메아리쳐댔다. 벽에 걸린 액자가 떨어지고 방문 손잡이는 얼어붙는 등 난방 온도와 다른 양상을 띠는 기이한 흔적은 눈에 띌 정도로 난장판이 되어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티나의 꿈속에서 대니는 생매장당하고 있었고, 잡지 표지 모델로 나온 남자가 꿈에 괴물로 나타나는 등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악몽은 계속되었다. 상실의 아픔과 고통이 크면 사람이 미칠 수도 있다고 여기면서도 죽지 않은 아들이 어딘가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것은 아닌지 회의하며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을 발굴해서라도 유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진행했던 작품의 성공적인 개최로 티나는 잠재적인 능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인생의 전기를 마련할 마법이 펼쳐질 듯하였다. 매직 쇼 성공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티나는 운명처럼 끌리는 엘리엣 변호사를 만나게 되었다. 죽음의 게임을 예상치 못한 엘리엇과 티나는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이와 영결한 아픔의 심연이 자리하였다. 췌장암으로 아내와 사별한 엘리엇은 급작스레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어.’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반복된 소리는 어둠 속에 갇힌 아들이 엄마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티나는 신뢰를 쌓으며 교유하던 엘리엇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종내에는 의혹이 많은 아들의 죽음의 진상 규명을 위한 일에 의기투합하여 나섰다. 티나는 아들의 시신을 발굴한 뒤 최고 병리학자의 재조사를 통해 아들의 사인을 발표하는 순서를 밟아 의혹을 풀고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악몽에서도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고 싶었다.

 

   “밤 자체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밤과 그림자와, 어둠의 눈이요.”

   라고 말하는 티나에게 엘리엇은 기밀 유지를 위한 케네벡의 상관들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예기치 못한 폭행을 당한 엘리엇, 가스실 폭발로 집을 잃은 티나는 생존 위협이 따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였다. 비밀경찰 조직에서 네바다 지국장으로 일하는 알렉산더 일당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은 죽지 않은 아들이 보내는 구조 요청에 부응함으로써 드러났다. 극비리에 진행되는 생화학 연구원들의 실험 대상으로 전락한 대니의 수척해진 몰골을 찾기까지 티나와 엘리엇은 한몸으로 나섰다.

 

   자기 보존 본능은 신이 우리에게 준 강력한 요구라는 사실을 입증하듯 연구실에서 만든 질병을 앓고도 생존한 유일한 생명체 대니와의 극적인 만남은 아들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어머니의 질긴 노력의 산물이었다. 연구원들은 바이러스가 아이를 죽이기 전까지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하였다. 대니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될 때마다 더 빠른 속도로 바이러스를 물리친 아들이 종국에는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말 것이라는 말을 들은 엘리엇은 분노했다. 중국인들은 오로지 인간만을 괴롭히는 우한-400을 이용해 특정 도시나 나라를 궤멸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우한-400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모조리 죽음에 이르는 상황에서도 생존한 대니였다.

 

   우한-400바이러스에 감염되기를 반복한 대니는 극도로 쇠약해지면서도 초현실적인 에너지로 어머니에게 신호를 보냈고, 어머니는 아들의 부름에 답하였다. 아들의 생존 여부를 알기 위해 거대한 힘이 가로막고 있는 비밀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냉철한 판단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엘리엇이 티나 곁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이러스 감염을 반복한 아들을 극적으로 구출한 어머니는 자식의 건강 회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대형 쇼 비즈니스를 성공시킨 것처럼 티나는 마법 같은 손길로 대니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방책을 강구하며 엘리엇과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 나갈 것이다.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상대가 절실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며 기꺼이 힘을 보태는 일은 신뢰를 깊게 하는 일에 선결과제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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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세대 - 그러니까, 우리
이묵돌 지음 / 생각정거장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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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파고스는 중남미 에콰도르 영해에 위치한 군도로 각각의 섬들에 고유한 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다윈은 독자적인 환경을 이루고 사는 생물의 모습에 착안해 갈라파고스를 진화론의 배경으로 선택하였다. 이에서 파생된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특정 집단이나 국가가 세계 시장이나 환경, 흐름과 단절되고 고립된 채 뒤떨어지는 정치 사회적 현상을 가리킨다. 1994년에 태어난 저자는 1990년대 생들이 갖는 각기 다른 성질을 지닌 것 자체가 한 세대의 특징을 함의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는 조직의 구성원으로 자기 몫을 다하며 살기를 바라지만 사회의 큰 흐름에 함께하지 못한 채 고립된 모습으로 지내는 이들을 갈라파고스 세대로 규정하고, 자신과 타인의 삶을 드러내고 있다.

 

   20대 자녀들을 둔 부모들 대부분은 근대화 시대의 산업 역군으로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온 386세대들이 많다. 학업을 잇지 못한 한이 서려 있는 부모는 자식들이 그 한을 풀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마음속에 자리해 공부만 잘하라며 자식들을 학력 경쟁으로 내몰았다. 대학진학률이 높아진 만큼 대량 고학력 실업이 속출하고 있는 때에 맹목적인 대학 진학은 제고되어야 한다. 대학 진학이 아니어도 관심 분야의 지식을 쌓는 일은 랜선을 통해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활고로 학비조달이 어려웠던 저자는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관심 있는 분야의 스타트업 대표로 일했으나 실패로 갚기 버거운 빚을 떠안고 불안과 우울감에 시달렸다. 철없이 선택한 대가의 가혹함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고 극심한 우울은 극단적인 시도로 자신을 욱여넣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며 버티게 되었다.

 

   직장에서의 경력이 없으면 고용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시대에 경제적 자립을 원하는 이들의 각축전에서 생존하려는 90년생들의 위기의식은 커졌다. 비정규직으로 출발해 조직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정규직 전환을 꿈꾸는 다수에 속해 있는 230대를 생각하면 기성세대로 무력감마저 들 때가 있다. 20대 후반인 딸은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새로운 꿈을 실현하기도 전, 코로나19 여파로 비자발적 실업에 놓인 상태다. 예측하기도 힘든 상황에 종잡을 수 없는 휴업으로 무급 휴직에 돌입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SNS 소통이 많은 세대의 특성을 담아 책에 소개된 사례들은 20대의 개별성을 띠면서도 보편화할 수 있는 일들로 추려진다. 내용의 갱신 속도나 시각적인 편의성을 담고 있는 인스타그램을 주로 이용하는 세대들은 자신의 삶을 타인과 공유하며 자신을 드러낸다. 인스타그램에 보이고 싶은 페르소나와 실제로 영위하는 삶이 다를지라도……. 대면하면서 소통하는 시간보다는 카카오 톡이나 페이스 북 메시지로 인간관계를 대수롭지 않게 정리하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대화 부재의 고립된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전화번호도 모른 채 10년 넘게 지내온 고교시절 친구에게 결혼 소식을 페이스 북 메시지로 받고 분노하던 딸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마저 지키지 않는 이들의 방자함에 씁쓸해진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독한 청춘들을 떠올리며 무거운 마음을 나눈다. 언제 끝이 날지도 모르는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참혹한 현장에 던져진 20대들의 암울함을 덜어 줄 소식을 기다리며 외따로 떨어져 소통하며 지내는 이들과의 연대를 바란다. 부모세대보다는 편리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그 삶이 행복한 생활인지는 가늠키 어려운 점을 기억하며 갈라파고스 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이상적인 어른과는 거리가 있지만 제 나름대로 이 사회에 정착하려는 꿈을 품고 지낸다. 이들이 매서운 칼바람에 나뭇가지의 중동이 부러지더라도 뿌리를 뽑히지 않는 나무처럼 흉흉한 시국에도 휘둘리지 않을 용기로 생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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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 내 감정의 주인이 되는 자기결정권 연습
정정엽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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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세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꿈으로써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윌리엄 제임스의 한마디는 고착화된 습관대로 사는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머리로는 변화를 추구하며 새로운 시도를 꾀하지만 현실은 편한 대로 살던 방식대로 살아가려는 경향이 크다.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느라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에게 저자는 잠깐 멈추고 오던 길을 되짚어 보라고 권한다. 무엇을 채울 것인가 고민하기 전에 먼저 마음의 빈 공간을 점검하며 심리학적 관점에서 자신을 보며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삶의 결정권을 결정권자인 나에게 돌려주는 일은 주의 편향에서 벗어나 자기감을 찾는 여정의 출발이다.

 

   남편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뒤 일벌레처럼 생활해 온 어머니의 눈에 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며 지내온 시간이 연민으로 다가온다. 부모의 보호 아래 학교를 오가며 맡은 일에 충실한 친구를 부러워하며 자기 연민에 져 지내다가도 집안 살림을 돕고 현실을 수용하며 지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며 어머니의 결정에 따라 지냈던 시절을 벗어나 홀로 생활하며 자유를 누렸을 때의 기쁨은 배가 되었다. 어머니 품을 벗어나 독립된 생활을 이으며 무엇인가를 지키지 못하였을 때에는 죄책감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홀로 지내면서 스스로를 통제하고 조절하며 삶은 지속되는 것이라 여겼다.

 

   생활 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양한 사람들과 종횡으로 만나 교유하며 지내는 동안 감정의 파고는 방어벽을 넘나들었다. 감정은 행동을 유발하고 행동은 감정을 해소시키며 살아가는 지금, 감정을 제대로 만나야 상황에 맞는 올바른 판단이 가능해진다. 아동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하는 스키마는 부모의 가르침과 양육 방식, 외상 경험, 성공과 실패가 주는 경험 등에 영향을 받는다. 타인과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한 경험이 적으면 정서적 박탈감은 더할 테고 안정적 애착을 희구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존재와 욕구를 억압하며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삶을 살기 위해 온힘을 쏟아 왔다면 이제는 삶의 주도권을 자신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유아기를 거치며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과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며 자아 경계를 만들어간다. 이렇게 형성된 자아 경계는 자기감으로 연결되는 만큼 소소한 의사결정 습관을 쌓으며 자기결정권을 형성해 일관성 있는 삶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은 어떤 상황에서도 의미를 찾아 나서는 일에 집중하였고, 절망적 상황에서도 무엇인가를 창조하며 시련을 감내해왔다. 나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으로 목적을 설정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며 극한의 공간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타인에게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 같은 감정을 돌림으로써 자신의 속내를 부정하는 방어기제에서 벗어나는 일은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갈 것인지 결정할 때 생각해 볼 일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기보다는 사회적응에 필요한 심리적 가면을 쓰고 당위성에 휘둘리며 지내는 직장인을 상담·치료한 사례는 공감을 더한다. 자의적인 판단을 거두고 타인의 감정에 맞춰 공감의 방향을 잡고 적절한 타이밍에 조언하는 방법은 상대를 아낀다며 행했던 숱한 충고들이 떠올라 괴란쩍어진다. 잠정적인 이해가 없는 조언이나 충고는 공감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점을 새기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성을 쏟고 싶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데이터화하는 방법을 터득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용기 있게 선택함으로써 남은 생은 나답게 살아가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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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 창비세계문학 41
하야시 후미코 지음, 이애숙 옮김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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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화가 한창인 때,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농사를 지으면서 철마다 행상을 다녔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생필품을 팔던 어머니는 막차가 끊기면 아는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할머니와 함께 퇴락한 집을 지키며 제 할 일은 스스로 행하며 가족 누군가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쌀이 귀하여 보리에 감자와 고구마를 섞어 지은 밥을 주식으로 삼아 먹으며 귀한 손님이라도 오는 날에는 쌀밥을 맛볼 수 있었다. 쌀밥은 씹을수록 입에 착착 달라붙어 얼른 한 그릇을 비우고 할머니가 한 숟가락 덜어주는 밥까지 비우면 행복감은 밀려들었다.

 

   먹을 것이 많은 지금은 밥을 배불리 먹어보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담고 있는 이들이 흔치 않다. 후미코의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려 가족으로서 한 집에서 살아갈 기능마저 앗아 가버렸다. 집을 나온 후미코와 어머니는 돌아갈 곳 한 군데 없는 숙명적인 방랑자로 이 골목 저 골목을 전전하였다. 혼자 딸을 키우는 일이 녹록치 않아서인지 후미코의 어머니는 행상을 하는 새아버지를 만났지만 싸구려 여인숙을 전전해야 했다. 이들은 잘 팔리는 품목을 갈아타며 행상에 나섰지만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해가 넘어가도 돌아가 편히 쉴 곳 없는 신세라 여인숙에서 지난한 생활을 잇고 있어도 튼튼한 몸만 믿고 열심히 일을 하자고 다짐하지만 곤궁한 현실의 벽은 철옹성처럼 견고했다. 광부를 상대로 장사를 하였지만 돌아갈 고향도 없이 돈벌이를 찾아 헤매야 하는 후미코 가족의 비루한 삶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빌린 문짝을 엎고 그 위에 속옷을 늘어놓고 20전 균일 팻말을 걸고 장사를 하면서도 그녀는 책을 읽었다. 야시장 노점을 전전하는 행상의 고된 노동은 그녀의 자신감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렸지만 바보처럼 주눅 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지금 누군가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을까?’

   좀체 헤어나기 힘든 가난의 굴레에서 가난을 구제해 줄 누군가를 갈구할수록 현실은 엇박자를 놓으며 희망적 삶에서 멀어져 갔다.

 

   여느 사람들처럼 조촐한 밥상을 앞에 두고 편안히 밥을 먹는 일상적 삶조차 누릴 수 없는 그녀였지만 심미적 체험을 고양하는 시작(時作)을 멈추지 않았다. 창작 활동은 곤핍한 현실로 지쳐 있는 자신을 구원하며 고양된 영혼으로 황폐화된 삶을 넘어서는 탈출구였는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시를 쓰며 밥벌이를 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후미코의 시는 밥 한 끼를 선물하지 못하였다. 문예지에 원고를 투고하고 받은 고료는 평가 절하되어 무명작가의 감성마저 갉아먹기 일쑤였다. 후미코는 돈이 들어오는 일거리를 찾아 직업소개소를 전전하며 일을 하지만 돈은 자신에게로 오지 않았다. 카페 종업원으로 일하며 손님이 없는 날에는 동화를 써 받은 원고료 중 일부를 어머니에게 송금하며 부모를 부양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았다.

 

   일자리를 찾아다니면서 비틀거리며 살아내느라 기운을 소진하며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지만 그녀는 비루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 남녀 사이의 인력이 작용해서인지 그녀 역시 몇몇 남자와 인연이 있었지만 다른 방향의 길을 걸어야 했다. 고향이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그녀를 반대하는 남자의 부모도 있었지만 원망하지 않았다. 한 몸 눕힐 공간도 없이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물질을 앞세워 그녀와 함께하려는 남자의 고백을 거절하였다. 그 후 그녀는 혼자도 버거운 생활에 글을 쓰는 노무라와 함께 지내며 그의 질책과 폭력을 견디기 힘들어져 그와 헤어졌다. 생계를 위해 나서는 의지가 희박한 새아버지는 도박에 빠져 하던 일도 내팽개쳐 빚만 늘어났다. 내 집에서 편안하게 쉬고 이튿날 아침 밥상을 마주하는 평온한 일상이 요원한 현실에서 야반도주라도 해야 살겠다는 어머니를 보면서 헤어나기 힘든 가난의 굴레에서 그녀는 숙명적인 방랑을 떠올렸을 것이다.

 

 

   비자발적인 방랑으로 살아온 후미코는 떠돌이 생활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죽을 때까지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동화와 야사를 써 생활고를 해결하려 안간힘을 쓰지만 가난은 몸과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일하며 받은 돈으로 동경하는 작가 체호프와 톨스토이의 삶이 드러나는 작품을 헌책방에서 구매함은 비장미를 더한다. 조용한 관조로 일상을 돌아보며 소박하지만 자기 나름의 멋진 글을 쓰고 싶은 바람은 책을 읽으며 더 강렬해졌다. 띄엄띄엄 받은 원고료와 일한 대가를 모아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도 있지만 후미코는 필요한 이들에게 돈을 전하는 온정주의자로 남았다.

 

    시인으로 살고 싶은 이상을 드러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밥벌이가 안 된다며 말린다. 피로를 풀고 쉬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방 한 칸이 없는 이가 시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누적된 생활고에 굴하지 않는 기개를 필요로 한다. 후미코는 밥 한 그릇 제대로 먹는 게 특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시 창작에 심혈을 기울인다.

   후지 산이여!

   너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 여자가 홀로 여기 서 있다.

   너를 비웃는 여자가 여기 있다.

 

   후지 산이여 후지여

   활활 너의 불꽃 같은 정열이

   으르렁으르렁하며

   고집 센 이 여자의 목을 꺾을 때까지

   나는 즐겁게 휘파람을 불며 기다리리. (142)

   살아남기 위해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냈던 후미코는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창작의 열정은 일본의 최고봉인 후지 산에 고개 숙이지 않는 당당함으로 그려져 비장감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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