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쪽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대한민국 도슨트 8
한진오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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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구경하지 못하고 별 다른 요동 없이 흐르는 섬진강을 하염없이 보며 지낸 까닭인지 가없이 펼쳐진 바다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배를 타고 처음으로 가본 대학 졸업여행지인 제주도는 배 멀미로 신비로운 자연 환경에 녹기는커녕 자리에 누워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30여 년 전 멀미약은 왜 그리도 독했던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안정적으로 사회생활하면서 한 해에 두 번은 제주도를 찾았다. 항공편으로 한 시간 거리도 안 되는 제주에서 보낸 사나흘은 뭍에서 보기 힘든 비경에 곳곳이 경험하지 못한 빛깔로 여행자 눈길을 끌었다. 어쩌면 눈에서는 잡히지 않는 비현실적인 공간 제주도는 지칠 때 떠나고 싶은 환상의 섬이었다.

 

   계절마다 다른 빛깔의 옷을 입고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그 지역 특유의 자연은 제주도를 찾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따스했다. 하지만 이런 비경에 취해 황홀해하는 것조차 송구하게 여겨지는 것은 제주의 풍경 이면에 담긴 속살의 아픔이었다. 투명한 빛깔의 수채화 같은 제주의 풍경 에 감탄하며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의 신산한 삶을 간과하여 온 점을 되짚으며 제주 동쪽의 내밀한 삶을 들여다본다. 바다로 떨어지는 정방폭포를 배경으로 찍은 단체사진은 앨범 속에 멈춰 있지만 이곳 역시 4·3학살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니 희생당한 영혼들의 아픔이 서려 있는 듯하다. 남원 지서 근처와 멀리 정방폭포까지 70여 명을 끌고 와서는 인정사정없는 학살을 자행해 홀치기 사건으로 불릴 정도라니 바다로 바로 흘러가는 폭포수는 원한 맺힌 이들의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의 결정인 지도 모르겠다.

 

   제주의 상징 중 하나인 성산은 조천읍, 구좌읍, 우도면, 성산읍, 표선면, 남원읍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제주에 애착이 강한 저자는 제주 굿판에 홀려 성산을 수시로 드나들며 제주 동쪽에 서려 있는 역사, 문화적 자원을 발굴하여 독자들에게 전한다. 제주의 동과 서를 가르는 한라산은 땅속으로도 깊은 화산 활동이 일어나 곳곳에 동굴을 만들었고 물줄기를 이뤄 이색적인 경관을 낳았다. 한라산은 백록담과 더불어 360여 개에 이르는 오름은 지닌 화산의 군집으로 세계가 인정한 세계자연유산으로 자리한다. 4~5천 년 전, 바닷속에서 마그마가 분출해 형성된 수성화산인 성산 일출봉은 천혜의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만 이곳 역시 4·3항쟁 당시 무고한 이들이 죽어간 곳이라니 처연한 슬픔이 더한다.

 

   제주도 창조주인 설화 속 설문대 여신은 바다를 도랑처럼 넘나들며 섬을 만든 뒤에 일출봉 기슭에 앉아 해진 옷을 기우는 바느질할 때 등잔을 올려놓은 바위라는 등경돌 너머 만곡의 해안선을 끝없이 펼쳐내는 광치기 해변이 펼쳐진다. 관치기라고도 불리는 광치기 해변은 해난 사고를 당한 무연고 시신들이 떠밀려 와 관을 짜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이 잦았다니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이들의 애 끊는 시름이 깊었을 듯하다. 낙향해 우도 개간의 뜻을 세운 김석린은 교육에도 힘을 써 지금의 우도를 찾게 하였다. 우도 속의 섬인 비양도 들머리에 있는 돈짓당은 해녀들이 섬기는 바다의 신인 요왕할망과 선왕신을 모신 곳이다. 이곳에는 바람의 신으로 알려진 영등신이 머물러 겨울 모진 바람을 몰아내고 훈훈한 봄을 알리는 촉매로 자리하는 듯하다.

 

   성산읍 동쪽 끝 마을인 신천리는 수백 마리 마소가 뛰어 놀던 목장이 있어 드넓은 초원의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봄부터 가을까지 푸르렀던 들판이 겨울에는 귤껍질을 말리느라 누런 들판으로 변한다니 그 광경을 한번은 보고 싶다. 용궁으로 가는 길이라 불리는 용궁올레에 얽힌 전설은 바다라는 대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기를 바라는 신의 당부는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듯하다. 지질 트레일 코스로 유면한 김녕리는 용암이 타올라 바다와 만나 굳어져 웅덩이를 만들었고, 썰물 때라야 살짝 머리를 드러내는 수중의 갯바위인 두럭산은 백록담을 닮아 이를 신성시하였다. 섬과 바다, 오름을 함께 품은 아름다움의 정점인 마을 종달리는 제주에서 귀한 소금을 만드는 마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많은 소녀들은 물질을 운명으로 여기며 파도에 몸을 싣고 제주 바다 곳곳을 누비고 있다. 물질을 잘하는 정도에 따라 상군·중군·하군 해녀로 나뉘는 해녀들은 애기 잠수의 망사리에 해산물을 나눠 주며 어린 해녀를 배려하였다. 제주에서 해안선이 가장 긴 마을인 하도리는 제주에서 해녀가 가장 많은 마을이다. 해녀 박물관 건립 이후 해녀들의 땀이 밴 삶터인 숨비소리길을 조성해 바다를 생업 터전으로 삼아 온몸으로 이뤄낸 해녀들의 강건한 삶의 의지를 담았다. 곳곳에 뿌리 내린 나물들이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숲을 이뤘고, 머체왓의 편백 군락지도 조성되어 짙은 피톤치드 향을 풍기며 오욕에 찌든 몸과 마음을 씻어줄 듯하다. 숲에서 시작해 숲으로 끝이 난다는 머체왓숲길을 걱정 없이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조선 세종 때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수산진성의 옛터에 자리를 잡은 수산초등학교의 담벼락은 철옹성처럼 단단하여 육백 년이 지났어도 학교 담장 구실을 하고 있다니 놀랍다. 절제의 미를 갖춘 백동백나무가 운동장에 있는 수산초등학교에는 진성 완성의 제물로 희생된 아이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는 진안할망당이 있다니 이색적이다. 제주에서는 드문 리아스식 해안을 자랑하는 오조리의 식산봉은 108종의 식물을 품고 있는 비밀의 화원으로 불리는 해발 60미터의 작은 오름이다. 오름이 많고 평지가 적은 제주 동쪽은 척박한 환경에 농사를 짓다 보니 소의 힘을 빌려야 했다. 이에 따라 전문적으로 소를 치는 테우리가 있어 자연적 환경에 적응하며 지역민들만의 고유한 풍습을 이루었다. 자연재해와 목민관의 수탈 등으로 곤욕을 치르면서도 초자연적인 힘에 기대어서라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제주도 사람들의 고단한 시간은 설화 속에 융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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