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쁜 일 오늘의 젊은 작가 37
김보현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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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다리 위를 두 남녀가 거리를 둔 채 걷고 있다. 그러다 여자가 다리 난간 위를 넘어 밑에 있는 강으로 뛰어내리고, 뒤이어 남자도 겉옷을 벗은 채 여자를 따라간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남자는 그곳에서 빠져나온다. 여자 없이, 홀로.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어떤 한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이 사건이 있은 뒤 3년이 지난 어느 날, 이 남성은 자신을 찾아온 아내를 보지 못한 채 어떤 여성을 따라가고, 그 뒤로 연락이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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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은 <가장 나쁜 일>의 극초반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외도나 불륜, 뭐 이런 거 아닐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아내는 사라진 남편을 추적할수록 그 뒤에 심상치 않은 음모와 사건들이 엮여있는 것을 점차적으로 알게 된다. 소설의 중후반부가 전개될 때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관계성들이 발견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인물들도 등장하면서 서사의 규모는 초반보다 훨씬 거대해져 간다. 그 과정이 긴박하고 스릴있게 전개되기 때문에 추리, 스릴러 장르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정말 최적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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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그런 부분들이 너무 힘들었다. 순수문학이나 고전문학들을 읽을 때에는 그저 소설이 전개하는 이야기를 독자로서 순순히 따라가면 되었는데, <가장 나쁜 일>을 읽을 때에는 결말이 대체 무엇일지, 이 사건에서 숨겨진 내막이 대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읽기 때문에 계속 전전긍긍하게 되고 읽는 내내 기가 빨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는 추리소설‘만’ 읽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읽었는지 지금은 전혀 알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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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러므로 작품 자체는 정말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주저 없이 추천할 있을 같다. 다만, 앞으로의 독서 생활에 있어서 당분간 추리 소설은 읽지 않을 같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진이 빠지는 경험을 했으므로이제는 추리소설을 놓아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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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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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밝은 밤>이야말로 이미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베스트셀러가 아닐까 싶다. 나도 이 책을 사두고선 계속 책장 속에 묵혀두다가 북클럽 문학동네 웰컴키트로 받은 ‘소설가가 뽑은 올해의 소설’에서 최은영 작가님 작품을 다시 읽으며 그제서야 <밝은 밤>을 집어든 것이다. 예상했던 만큼 좋은 문장들이 가득했고, 예상했던 만큼 먹먹한 여운에 젖어들 수 있었다. 다만 기대했던 만큼 슬프거나 눈물을 펑펑 쏟아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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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나 줄거리 설명이야말로 이런 베스트셀러의 뒤늦은 후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으므로, 거두절미하고 바로 나의 감상부터 말하도록 하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밝은 밤>에 대해 겨울서점을 비롯한 여러 북튜버들이 입을 모아 눈물을 펑펑 흘릴 정도로 슬펐다고 하길래, 혹시 나도 책을 읽으며 눈물을 쏟는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음, 아니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왜 그럴까,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야기가 조금 작위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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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에 걸친 여성서사가 주를 이루는 이 작품에서, 남성은 그야말로 ‘악’하게만 비춰진다. 정말 말이 안될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인물(증조부)도 나오고 현실에서 흔하디 흔한 인물(남편)도 나온다. 이 작품의 여성은 주로 남성들에게 피해를 받는 입장으로만 나오는데, 꼭 이렇게만 인물을 그려냈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굳이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삶을 이끄는 여성 인물이 나왔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그래도 아주 오래전의 우리나라에선 여성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엔 너무도 무리였던 ‘유교’사회 였기에 납득을 할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감상이 없어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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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그래도 <밝은 밤>은 너무 좋은 여성 소설이자, 역사 소설이자, 휴머니즘 소설이기 때문이다. 증조모와 새비 아주머니의 가슴 아린 인연부터 주인공과 할머니의 서로를 위하는 애틋한 마음까지… 읽으면서 가슴이 따뜻해지고, 먹먹해지는 건 절대 부정할 수 없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코 끝이 찡해지는게,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많이 울었겠구나’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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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새비 아주버니의 죽음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이 부분을 설명하기엔 미천한 나의 글솜씨가 한없이 부족하여 관련한 문장 몇 줄을 옮겨 적으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혹여나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쯤은 시간내어 읽어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 (123-128p)

 - 희자 어마이, 내레 더이상 기도를 못하겠어. 천주님, 그때 뭐하고 계셨어. 어린아이들, 죄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찢겨 죽어가는 동안 뭐하고 계셨더랬어.

 - 희자 어마이, 전지전능한 천주님이 왜 손을 놓고 계신 기야. 나는 슬프기만 하는 천주님께 속죄하고 싶지 않아. 천주님 앞에서 내 탓이오, 내탓이오, 말하고 싶지 않아. 천주님이 정말 계신다면 그때 뭐하고 계셨느냐고 따지고 들고 싶어. 예전처럼 무릎 꿇고 천주님, 천주님 감사합니다, 말하고 싶지 않아. 기래, 나를 살려주셨지. 기래서 감사하다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 목숨은 뭐가 되나.

 - 첨엔 마음도 편치 않았다. 희자 아바이가 천주님에게 사과받고 싶다고 화내는 기를 보는 마음이. 내레 겁이 많잖아. 그런데 아니야…… 희자 아바이가 진짜 천주님을 버렸다믄, 화도 내고 사람들이 하란 대루 종부성사도 받았을 기야. 천주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믄 기냥 미적지근하니 미사 가서 앉아 있다 왔을 기야. 그런 고집 부리지도 않았을 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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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살인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0
최제훈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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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살인마>는 첫 세 장부터 네 명의 피해자가 연달아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첫번째 피해자가 말단 조폭, 두번째 피해자가 아이돌 사생팬, 세번째 피해자가 광신도 노파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사건들의 연관성이 언론에서 주목되지 않았다는 점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살해당할 만한 동기가 있었으므로… 하지만 네번째 사건이 결국 터지면서 전국이 발칵 뒤집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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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두 사건에서는 주목되지 않았던 점이 세번째, 네번째 사건에 들어서서 조명을 받은 것인데, 그것은 바로 사건의 순서만큼 피해자의 손가락이 잘려있었다는 점이다. 실시간 검색어에는 손가락을 끊는다는 의미의 '단지()' 살인마 라는 별칭이 1위를 굳건히 지키며 모든 경찰 수사가 총동원되고 온갖 전문가들이 나서서 사건 피해자들의 연관성을 추측하지만 딱히 알맞는 가설은 도출되지 않는다. 이때, 방구석에서 홀로 틀어박힌 채 일할 수 있는 전업 투자자인 주인공 ‘영민’은 살인범의 논리를 파악해내는데 성공한다. 그것은 바로 성경에 나오는 ‘십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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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은 본인이 알아낸 이 사실을 역으로, 학창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원수에게 복수하는 방법으로 활용한다. 즉, 모방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완전 범죄를 저지르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 그는 몰디브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본인의 삶을 다시금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그때, 영민의 기분을 완전히 박살내는 문자가 한통 오게 된다.

🗣 ‘단지 살인마, 전화 요망, 010-XXXX-XXXX’ (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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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주인공이 연쇄 살인의 논리를 알아냈을 방구석 탐정이 활약하는 추리소설인가 싶었다. 전혀 아니었다. 여지껏 추리소설을 적지 않게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모방범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단지 살인마>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정도로 상당히 신선했고, 또한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추리소설 특성상 마음 한켠을 깊이 울리는 감동이나 교훈 같은 것은 없다만, 그래도 한번쯤은 읽어보기에 괜찮은 (아니, 아주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도 예상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결말 또한 이런 식으로 끝날 줄은 몰랐다. 호불호가 갈릴까? 모르겠다. 그래도 읽었을 읽을만하다 감상은 남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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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꿈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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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을 적을 때 깊은 고심에 잠겼었다. 손보미 작가님의 작품을 이 책으로 처음 접하는데,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도 같고 오히려 없는 것도 같고… 아무튼 나 스스로도 꽤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 남기는 글보다 더 어수선하고 두서없을 수 있다. 모쪼록 많은 양해 바라며 후기를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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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손보미 작가님의 작품이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불장난>이라는 작품이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은 다른 수상집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옛스러운 표지를 아주 오랫동안 유지해와서 그런지 서점에 가면 눈길을 상당히 끌곤 한다. 그중에서도 ‘불장난’이라는 제목이 대상 수상작으로 떡-하니 표지에 크게 박혀있는 게 더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제목에서 오는 호기심과 처음 접해보는 작가님의 시너지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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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이 작품집에 <불장난>이 수록되어있다는 말을 듣곤 바로 서점에서 집어들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실물로 접해보니 ‘연작소설’이라는 점도 놀랐고 수록된 소설 한 편마다의 분량이 거의 중편에 육박한 점도 놀랐다. 살짝 두려운 마음이 일었지만, 그래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왜냐하면 띠지에 ‘젊은작가상 최다 수상작가’라는 타이틀이 또 한 번 내 마음을 훔쳤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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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래서 다 읽고 난 뒤의 내 심정은 반반이다. 소설 한 편 마다의 감상은 좋은데, 소설집 한 권으로 크게 보면 별로라는 것. 일단 나는 소설 한 편 한 편을 꽤 재밌고 흥미롭게 읽었다. 인터넷 서점 후기를 보면 작가님의 문체가 별로였다는 말이 많은데 나랑은 꽤 잘 맞는 듯하다. 뭐랄까, 너무 장황하지 않고 적당히 담백하면서도 적재적소에 주인공의 심리는 촘촘하게 묘사되어있어서 소설 속의 상황을 쉽게 상상해가며 읽었고, 덕분에 가독성과 몰입감을 높여서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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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쉬운 점은, 수록된 소설들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점이다. ‘연작소설’이어서 그런 걸까, <사랑의 꿈>은 ‘정우맨션’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공유하는 여섯 편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읽을 당시에는 각각의 서사에 몰입하여 읽었지만 책을 덮은 뒤에는 여섯 개의 서사가 머릿속에 혼재되어 있어서 각각의 정확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안좋게 말하자면 ‘거기서 거기’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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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작가님의 다른 소설집에 대한 리뷰에서도 나와 비슷한 감상을 남긴 사람들이 많았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괜찮은데 모아놓고 보니 단편들이 비슷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을 정리하자면, ‘앞으로 손보미 작가님의 소설집을 읽어보진 않겠지만, 장편소설은 한번 읽어보고 싶다 것이다. 그래도 작가님의 문체와 서사 진행 방식, 그리고 전반적인 작품의 분위기 등이 취향과 맞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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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부탁해 소설x만화 : 보이는 이야기
박서련 지음, 정영롱 만화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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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영화나 드라마로 재창작하는 경우가 많다. 고전문학을 영화화하기도 하고, 웹소설을 드라마화하는 등 이러한 작업의 범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방대하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소설을 영화화했을 때, 소설 혹은 영화 둘 다 충분히 만족했던 경우는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글로 쓰인 장면들을 영상으로 만들어진 작업물을 보았을 때 나의 상상과 다르게 표현된 부분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소설에서 가장 재밌다고 생각하여 기대가 되는 장면이 영화에선 생략되어 볼 수 없었을 때에는 거부감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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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이를테면 ‘영화화된 소설’의 경우에는 똑같은 이야기를 두 가지의 방식으로 그려냈다면, <제사를 부탁해>는 소설과 만화 둘 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이 되는 인물을 달리 하여 다른 시점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다른 시점, 다른 입장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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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부탁해>의 이야기 속 두 인물은 살아있는 ‘수현’과 죽은 ‘정서’이다. 정서는 죽기 전 제사 코디네이터인 수현에게 본인의 제사를 챙겨줄 것을 부탁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고, 수현은 친구의 유언 격의 부탁을 받들어 제사를 차려주게 된다. 이 중 박서련 작가님의 소설은 ‘수현’의 입장에서 전개되고, 정영롱 작가님의 만화는 ‘정서’를 유령의 모습으로 등장시켜 다른 이들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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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분량의 짧은 이야기여서 그런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듯한 감동은 없었지만, 그래도 기대했던 박서련 작가님 특유의 통통 튀는 느낌과 따뜻한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있었다.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남아있는 자에 대한 그리움 … (특히 후반부에 등장한 정서의 딸이 나오는 그림 컷이 가장 압권이다) 사실 얼마 내게 책태기로 인해 모든 활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책은 그럼에도 읽히는 작품이었다. 책태기를 겪는 분이나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고 싶은 분께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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