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마음으로
임선우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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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 3위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볼 이유는 충분했다. 수록된 모든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울린 작품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 두 편에 대한 감상을 남길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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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마음으로]

어느 날 갑자기 문득 나와 똑같은 모습의 유령이 내 눈 앞에 나타난다. 유령은 자신을 두고 유령이 아니라 ‘너 자신’이라고 하지만 주인공의 눈에는 그저 유령일 뿐이다. 이 유령은 왜 갑자기 나타난 걸까. 

사실 주인공에게는 2년 째 의식불명인 상태로 병실에 누워있는 남자친구가 있다. 주인공은 매주 토요일마다 남자친구의 병실을 방문하기를 2년동안 반복하고 있는데, 그 마음은 무엇일까, 아니 어떤 상태일까. 남자친구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2년을 그렇게 꾸준히 매진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랑도 분명 있었겠지만 그 또한 점차 무뎌질 것이고,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고선 도리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유령은 그래서 주인공 앞에 나타났을 것이다. 무거운 마음을,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지금껏 속에 담아두기만 해왔던 주인공이기에 그 마음을 대신해서 감당해주기 위해서. 그렇게 주인공의 마음을 조금은 덜어주고 싶어서, 그리고 바깥으로 표출해주고 싶어서. 실제로 이 작품에는 주인공이 느낄 법한 감정들을 유령이 대신해서 느끼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렇기에 주인공이 가지고 있던 감정의 압박을 점차 훌훌 털어내는 모습을 보며, 독자인 나로서는 행복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는 단단하게 살아갈 주인공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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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나지 않아요]

인간을 해파리로 변하게 만드는 ‘좀비 해파리(?)’라는, 다소 파격적인 소재를 담은 이 작품은 앞선 <유령의 마음으로>와는 다르게 분위기가 조금은 무겁다. 처음에는 인간과 해파리의 치열한 투쟁을 그린 이야기일까 싶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서울에서 밴드를 하다가 잘 안돼서 도망치듯 해변가 마을로 오게 된 백수 남녀이다. 공과금이 밀리고 생활비도 빠듯하게 살아가야하는 이들에게 ‘좀비 해파리’의 등장은 그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해주는 구실이 되었다. 남자는 죽은 해파리들을 치우는 미화원이 되었고, 여자는 더이상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해파리로 만들어주는 직업이었다… 읽는 동안 나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만든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 살기에는 지쳤고 죽기에는 억울한 사람들은 해파리만큼이나 많았다. (48p)

작품의 후반부 내용이나 결말은 스포일러가 듯하여 말을 삼가겠다. 다만 척박한 사회를 살아가는 너무도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작품을 읽으면서 자꾸만 그때의 내가 떠올라서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했다는 것과, 그럼에도 사회를 살고 싶은 마음을 (‘미련이라 있을까) 다시 한번 깨닫게 되어 역설적으로 위로를 받기도 했다는 점은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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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나무 숲 - 완전판
하지은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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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나무 숲>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두 천재 음악가의 대결’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소재로 전개되는 소설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일례로,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을 당시 올해의 책으로 꼽을 만큼 정말 재밌게 읽었다.) 어떤 부분이 나의 취향을 저격하였는지는 뒤에 이어서 설명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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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두 명의 주인공, 음악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들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바옐’이라는 인물의 경우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자기 자신도 본인의 그런 뛰어난 재능을 자각하고 있다. 반면 ‘고요’라는 인물은 자기 자신의 재능에 대해 한없이 낮게 평가하여 위축되어 살아가는 피아니스트이다. 재능을 타고난 점은 분명하지만, 자기 자신은 그걸 모르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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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엄청난 재능을 가진 만큼, 이 둘은 서로에 대해 깊은 열등감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열등감을 표출하는 방식 또한 판이하게 다르다. ‘고요’의 경우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바옐’을 존경하고 추앙(?)하기까지 하지만, ‘바옐’은 ‘고요’에게 모진 말을 내뱉으며 괴팍한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렇게 전혀 다른 주인공들의 심리나 행동들이 <얼음나무 숲>에서 아주 치밀하게 서술되어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그 마음에 공감하는 재미도 있고, 응원하는 재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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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초중반까지는 그렇게 천재 음악가들의 심리와 성장 과정을 보는 재미가 출중했는데 중반을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갑자기 바뀐다. ‘악마’(?)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판타지스러운… 환상문학 장르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판타지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터라, 처음부터 환상문학 같은 분위기가 중심을 잡고 전개되었다면 모를까 중반에 갑자기 분위기가 반전된 것처럼 느껴져서 뭐랄까,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 점이 살짝 아쉽게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재밌게 읽었다는 사실 하나 만큼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큰 기대를 품고 하지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정주행 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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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명 버튼 위픽
김동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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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 재밌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군 복무 중일 때 후임이 내게 <회색 인간>을 추천해주기도 했고, 감명깊게 읽었던 에세이 <소년을 읽다>에서도 김동식 작가님과 관련한 부분이 나오기도 해서 호기심이 많이 갔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까지 김동식 작품을 피해왔던 이유는, 전반적인 분위기나 결말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는 말을 동시에 같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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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작가에 대한 추천을 들을 때마다 항상 같이 듣게 되는 말들이 있다. ‘어둡고 찝찝하며, 빠른 전개 속에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지면서 이야기를 끝맺는다’ 등등. 여기서 ‘어둡고 찝찝’한 것은 나의 취향과 거리가 멀게 느겨졌고, ‘생각할 거리를 던지면서 이야기를 끝맺는다’는 것 또한 어쩐지 열린 결말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나는 아주 ‘꽉’ 닫힌 결말을 선호한다.) 하지만 서점에 갔을 때 어쩐지 이 책이 눈에 띄었고, 단편 하나만 수록한 ‘위픽 시리즈’로 김동식 작가에 입문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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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명 버튼>을 읽고 나니, 앞선 설명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백 명 버튼’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이 버튼을 100명이 누르면 그 중 2명이 실패하고 1명이 성공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악마’가 이 버튼을 들고 와서 대한민국 정부와 판매 계약을 하며 벌어지게 되는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과정에서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참…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어둡고 찝찝’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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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그런 느낌이 왠지 싫지 않았다. 작가가 상상하는 인간의 본성에 따른 이 이야기의 전개가 상당히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기발한 소재와 개연성 있는 전개가 만나 훌륭한 시너지를 발휘된 듯하여 읽는 동안 딴 생각 없이 온전히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말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는 것이 ‘열린 결말’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궂은 본능을 일말의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결말로 인해 상당히 씁쓸하고 묵직한 여운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런 류의 결말이라면 나는 독자로서 대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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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김동식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듯하다. 다만, <백 명 버튼>의 경우에는 작품 하나만 수록되어 있어서 작품이 선사하는 여운의 크기와 무게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으나, 다른 작품집을 읽게 되면 어쩐지 버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온라인 서점에서 김동식 작가님을 검색해보니 해피엔딩 이야기만을 수록한 작품집 <인생 박물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호호. 다음으로 읽을 김동식 작품은 이 놈(?)으로 찜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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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5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초기 작품에서 일주일만에 사랑할 순 없다 정도까지 추천드립니다.
 
서독 이모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1
박민정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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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선 서독과 동독의 통일과 관련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려나… 싶었다. 보통의 한국문학에서는 흔히 접할 수 없는 ‘서독’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갔으므로 (중고서점에서 아주 깨끗한 상태의 절반 가격인 상태였던 건 덤으로) 이 책을 구입하였다. 물론 그런 부분들이 아주 없진 않다. 다만, 이 작품에는 그 외에도 더 많은 주제들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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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주인공은 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 교수의 압박에 못 이겨 브레히트의 번역되지 않은 원문을 토대로 논문을 써야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물론 이 대학 교수가 성착취를 한다거나, 악의적으로 주인공을 괴롭히기 위해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주인공은 힘들어한다. 악의 없는 순수한 호의가 더욱 괴로운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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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할 수 있었으나, 이 작품은 그 외에도 해외 입양아의 문제도 다루고 대학원생의 성폭력 문제(주인공의 지도교수와는 다른 인물), 서독 이모의 개인적인 서사까지 다루고 있다. 각각의 주제와 서사를 깊이있게 다루기 위해선 분량이 어느정도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싶지만 이 작품에는 100페이지 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심지어 판형도 작고 자간도 넓은 ‘핀 시리즈’이다보니 일반적인 소설책들과 비교하면 분량은 100페이지보다도 더 줄어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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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서독 이모> 읽으면서 이야기에 공백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하는 생각이 바로 장면이 전환된다던지, 몰입이 깊어질 즈음 이야기가 끊긴다던지워낙 짧은 분량이라 앉은 자리에서 바로 완독할 있었지만, 아쉬운 느낌을 지우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 <미스 플라이트> 추천 받긴 하였으나, 솔직히 때문에 호기심은 동강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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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질의 사랑 - 천선란 소설집
천선란 지음 / 아작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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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천선란 작가님의 작품들을 모두 사서 읽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천 개의 파랑>과 <나인>을 연이어서 읽었는데, 두 작품 모두 내게 큰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이어 읽었던 작품들은 내게 썩 좋은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랑과 나의 사막>은 생각보다 가독성이 떨어져서 조금 실망했고,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는 너무 재미없어서 읽다가 중간에 덮어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작가님에 대한 나의 사랑(?)은 식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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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앞서 말한 두 작품이 별로였던 것은 나의 독서 컨디션이 좋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SF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읽어왔기 때문에 SF에 물렸을(?) 수도 있고… 뭐 어쨌든 그래서 한동안 SF 장르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SF에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순수 한국문학이나 세계문학전집들만 골라서 읽어왔다. 하지만 사람은 아주 간사한 동물인지라, 계속 그런 것들만 읽다보니 새삼스레 SF로 머리를 리프레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책장에 꽂혀있던 이 작품이 눈에 들어와 바로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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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잃어버렸던 천선란 작가님에 대한 나의 애정이 다시금 살아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톡톡 튀는 소재들이 매력적인 작품도 있었고, SF적인 색채가 강하지는 않지만 먹먹한 감동을 주는 작품도 있었다. 심지어는 4페이지 정도의 아주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강력한 임팩트를 남긴 작품도 있었으니, 이정도면 아주 만족했던 독서였다는 다했지 않은가. 천선란 작가님의 최근 작품이라고 있는 <노랜드> <이끼숲> 살까 말까 계속 고민하다가 끝까지 구매욕구를 참았는데, 책으로 인해 어쩔 없이 나의 지갑이 다시 한번 열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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