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엄청 길기도 하고 알라딘에도 많이 보이고 해서 이 작품에 대해 엄청 궁금해졌다. 책을 읽기 전에 그 책에 대한 정보나 리뷰를 찾아보는 것을 꺼리는 나지만 이 책은 미리 검색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동성애를 다룬 퀴어 소설이란 것을. 이러한 점이 이 책을 중고 서점의 매대에 많이 오르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 일부는 분명히 불편함을 어느 정도 느꼈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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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두 권의 퀴어 소설을 읽었다. <그해, 여름 손님>은 동성애 보다는 청소년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었고, <대도시의 사랑법>은 제대로 된 동성애를 다루긴 했지만 표현이 상당히 직설적이고 적나라하여 재미는 있었지만 불편한 감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두 작품과 전혀 다른 성격을 가졌다. 책의 뒷면에 나와있는 최은영 작가님의 추천사를 보면 이 책을 보다 더 적확하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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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두려움과 고통, 용기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런 용기 있는 마음을 끝까지 거절하는 세상의 폭력에 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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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만약 내가 작가로서 동성애를 다룬 소설을 쓰게 된다면 이런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총 두 장으로 나뉘어져있으며, 1장은 주인공 ‘강은성(공상표)’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시점이, 2장은 ‘강은성’의 연애를 소재로 만든 작품의 시나리오와 ‘강은성’의 인터뷰가 교차되어 전개된다. 내가 재밌다고 느꼈던 부분, 아니 많이 씁쓸하고 울컥했던 부분은 바로 1장에서 나오는 ‘강은성’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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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성’은 ‘공상표’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로, 성소수자인 본인을 계속해서 부정하고 숨기지만 모종의 사건을 겪으며 커밍아웃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만은 기필코 막겠다는 매니저 역할의 엄마와 누나의 말과 행동이 강은성을 공격하고, 이에 강은성은 아예 잠적해버린다. 강은성 본인도 그동안 자신의 성적 취향을 스스로 부정해오며 거짓된 가면을 쓰고 살아왔지만 더이상은 너무 힘들고 버겁다고 토로하지만, 강은성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마음을 귓등으로 듣지 않는다. 처음엔 심리 상담 치료를 받으라고 하고, 마지막엔 너가 게이인 거 존중겠으나 제발 세상에 공표하지는 말아달라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스스로를 부정당하는 그런 말들을 숱하게 들으면서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남자’라는 성별이 버겁다는 것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가 동성애자는 아니기에 ‘공감’을 하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그에게 ‘감정 이입’해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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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강은성의 주변인물들처럼 굴었던 적이 있지는 않았나, 입밖으론 그들을 존중한다 말하지만 정녕 속으로도 그런 생각을 하는가, 이 작품처럼 그들의 용기를 거절하고 무시하고 부정하지 않았나, 이유없이 그들을 멸시하지는 않았나, 그동안을 살아온 나에 대한 많은 반성을 할 수 있었다. 최은영 작가님의 말처럼 이 책은 자기 자신으로 살고픈 주인공 ‘강은성’의 내적 갈등, 그 갈등을 이겨낸 용기와 ‘세상의 혐오’의 외적 갈등이 나와있다. 이 책을 쓴 김병운 작가님은 세밀하지만 묵직한 문체로 이 작품을 집필함으로서 성소수자 분들에게는 사과와 위로의 메세지를, ‘세상’을 대변하는 독자들에게는 반성하라는 교훈의 메세지를 전달하신 것 같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호불호가 갈리다보니 이 책을 쉽게 추천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