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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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소설을 다 읽자마자 중고 서점에 팔아 치워버렸을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나의 취향과 맞지 않는 불편한 소재를 가지고 전개되며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들 또한 독자(인 나)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까지 전부 읽는 순간, 그 감상은 180도 뒤집힌다. 거대한 규모로 휘몰아치는 여운이 그대로 나를 덮쳐 잠식해버린다. 일순간 멍해지며 홀린듯이 책의 첫번째 페이지를 다시 펴 첫문장을 다시 읽게 된다. 그리고 또 한 번 얼어붙는다. 이런, 이렇게 또 한번 새로운 소설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실제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벌어진 일(실화)들이다. 이 시설에서는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은폐, 감금 및 강제 노역을 당했는데, 이를 당시 가톨릭 교회가 정부와 함께 지원하고 운영해왔다고 한다.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기에 이 시설에서 무슨 짓이 벌어지더라도 이들은 그저 묵살할 뿐이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실제 이 역사에 남을 사건을 전면에 내세운다. 거기에 ‘펄롱’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앞세워 독자들이 이 사건을 처음 들었을 때 겪을 만한 충격과 고심을 ‘펄롱’이 대신하게 한다.

그렇다면 나는 ‘펄롱’의 주저하는 심리에 불편함을 느낀 것인가. 뭐, 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할 만한 고민들이 너무도 비슷하여 그 부분에서 불편함이 느껴진달까. 다만 그보다도 가장 불쾌한 것은 세탁소의 사정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 모두’의 모습이다. 이들은 수녀원의 비밀을 알면서도 쉬쉬한다. 이러한 수녀원의 부정을 완전히 앞세우는 행동은 그야말로 정부에 반기를 드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므로 그런 행동으로 인해 자신에게 피해가 갈 것을 두려워하여 결국 ‘묵인’을 택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납득’이 된다는 점이 가장 불쾌했다. 내가 만약 저 상황이었으면 나 또한 그랬을까봐, 나도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일까봐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펄롱’이 선택한 결심은 가슴이 뭉클하다 못해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짜릿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글쎄, 이렇게 글을 적으면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애초에 지금 이 글을 올리는 시점이 ‘뒷북’이라 하지 않을 수 없기에 다들 이 책을 읽었을 거라 생각하여 죄책감을 덜고 이 글을 올린다. 덧붙여 앞선 첫 문단에서 ‘첫문장을 다시 읽게 된다, 그리고 또 한 번 얼어붙는다’고 말한 배경에는 옮긴이의 말에 그 전후 사정이 담겨 있으므로 내가 이를 설명하기 보다는 책에서 직접 읽어보기를 바란다. 클레어 키건… 이 작가 천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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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1-29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듯해요. 지금도 별반 다른지 않은 것 같아요. 범죄혐의가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직언하지 못하고 내 밥그릇만 챙기려는 엉터리 정치인들이 대표적인 케이스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