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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몰퍼스 ㅣ 시-LIM 시인선 3
김해솔 지음 / 열림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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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으면서 제 머릿속을 계속 뒤덮고 있던 한줄평이 바로 ‘언어를 이렇게도 가지고 놀 수 있구나!’였어요. 시인만의 독특한 감성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대충은 감이 오실까요. 그런데, 보통은 이런 느낌이면 어렵기만 하고 지루했을 텐데, 『아몰퍼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치 미술관에 온 느낌이었어요. 아니,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시인이 그려놓은 그림 속 세계에 풍덩 빠져서 여기저기 마음껏 구경하고 돌아다닌 기분이었달까요? 무척이나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그와중에 맥락과 위트, 감성과 재미를 챙기고 있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던 것 같아요.

‘너와 싸운 날 // 언어 도둑이 나타났다 그는 세상의 모든 언어를 훔쳤고 가격을 달아 팔기 시작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 씨발 1원 / 사랑해 1억 // 사랑은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었고 세상은 씨발이 되어 갔다’(시 「창조적 퇴화」 일부)

‘야 // 네가 한마디만 해 보라고 해서 / 한마디만 하려고 하는데 아니, / 한마디만 하려고 하면 백 마디는 하고 싶어지는 게 / 사람 심리 아니겠니? 싶어서 하는 말인데 아니,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 왜 살지’(시 「제2법칙」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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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문어 모자를 다시 쓰다 ㅣ 시-LIM 시인선 2
서호준 지음 / 열림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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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자체를 어렵지 않게 쓰려고 노력하신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읽는 동안 이해가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거의 없었어요. 굳이 장황하고 와닿지 않는 비유를 곁들여 말하고자 하는 바를 겹겹의 포장지에 쌓아 숨겨두는 듯한 시인이 있잖아요? 근데 서호준 시인님은 아니었습니다. 본인이 느낀 바 그대로를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시적 언어가 가진 매력을 고유히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너무 좋았죠. 이를테면,

‘요즘에는 다녀온 뒤 또 다녀오고 또 다녀온 사람도 많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꼭 전해 달라고 쓴 수기도 유통되어 만만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모험이라는 건 죽음을 옆구리에 끼고 다음 기수에게 전달하는 것이라는 말은 꼭 해야겠다.’(시 「아울베어.예티」 일부)에서는 씁쓸한 사유가 좋았고요,

‘쉽지 않았어. / 너를 욕하는 사람 앞에서 가만히 / 듣고만 있는 게’(시 「그러나 8월에라도」 일부),

‘그러나 어렵사리 껍질을 벗기고 / 끓인 물을 부어도 / 그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 그런데 좋았다’(시 「불안한 살인마와 너의 식탁은」 일부)를 읽으면서는 서호준 시인만의 사랑이 느껴져 참 애틋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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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의 시절 - 2026년 제71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김상혁 외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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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시’라는 장르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시집을 꾸준히 읽어오면서 나름 시 읽는 법을 터득하기도 했고, 좋아하는 시인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독자의 존재를 잊은 듯 시인 자기만의 감성에 심취해 쓰인 시를 만날 때면 여전히 혼란스럽고 속상한 마음이 저를 덮칩니다. 그래서인지 여러 시인이 쓴 시가 한곳에 모인 앤솔러지가 꽤 도움이 되더군요. 저의 감성과 맞는 시인과 맞지 않는 시인을 한 권에서 분별하고, 이후 그 시인의 책을 따로 찾아 읽을 수 있으니깐요.

​

​

그런 의미에서 『2026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역시 좋았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현대문학상’의 후보작인 만큼, 작품이 담고 있는 문학적 성취는 어느 정도 보장된 것이라 믿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좋고 나쁨을 판별했던 기준은 어디까지나 ‘취향’이었습니다.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시도 분명 있었지만, 수상자 김상혁 시인의 작품을 비롯해 제 마음에 와닿는 시를 적지 않게 만났습니다. 그런 시를 읽을 때면, 저는 역시나 행복해지더군요.

​

​

11강 ‘모더니즘과 모더니티’ 교안 준비 중

교무팀 연락이네요. 봄학기로 강사

임용이 만료되며 재계약은 어렵다고요.

획 떠나지 말고 김 선생이 고르고 키운

학생들 보게 게시글 하나 남기라는 학과장님

권고사항입니다. 가르치는 나도 시가 잘

안 돼요. 열정이 떨어진 느낌? 데뷔하고 나서는

쓰고 송고하고 한참 뒤 파일 열면 거기에 들인

시간부터 떠올랐지요. 요즘은 나보다 늙은

선배가 아직 시간강사라는 사실 그러므로 내게

찬스가 있다는 생각을. 그러니 여러분 학생일 때

시 쓰기 바랍니다. 괜히 선생을 괴롭게 만들지

마세요. 자기소개는 Q&A 게시판에 말고

부탁합니다. 앱으로 알림 오고 내가 답변을

남겨야 해서요. 안녕하세요? 하면 안녕

하세요 답하는 순간이 매번 기쁨이었음

합니다. 시인은 고향이 없다는 말 기억

하지요? 수시모집 실기심사 2회 들어갔고

6년간 재밌었네요. 졸업생도 볼 수 있게

자유게시판에 쓰고 말 예정. 혹시 딴 선생께

다르게 배우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정답을

배웠다 믿기를요. 후회는 안 합니다. 하나

걸리는 거 날씨 좋아 야외수업 하자는 말들

외면했지요. 우리의 시간이었으나

그래도 되는지 방침을

내가 알 수가 없어서요.

​

시 「퇴임사」 전문

​

김상혁 시인의 작품 대부분이 어렵지 않은 시어와 표현들로 쓰여 있어서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저는 「퇴임사」라는 시가 가장 좋았습니다. 제가 지금 대학생이어서 그런 걸까요? 시에 쓰인 배경과 상황들이 제가 다니는 학교와 겹쳐 보여 무척이나 잘 그려졌어요. 물론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계약직 시간강사’로서의 설움과 씁쓸함, ‘시’를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유머, 그리고 ‘야외수업’을 가지 못해 토로하는 아쉬움까지. 다채로운 감정을 넘나들며 시적 정취를 풍부히 느낄 수 있어 무척 좋았습니다.

​

​

그 외에도 ‘집에 있으면 학원 가기 싫고 학원 가면 집에 오기 싫은 / 앞일 같은 거 잘 모르겠고 좋은 것 싫은 것 한데 모아 두고 싶은 마음인 것’(시 「한 세계」 일부) 구절에서는 웃픈 공감이 갔고, ‘귀여운 척한 적 없어요. 귀엽다는 말에 혹할 만큼 어렸던 적 없어요.’(시 「물 흐르게 물건 떨어지게」 일부)에서는 냉담한 현실 속 한 개인의 서글픈 심정이 느껴졌습니다. 감탄하며 읽었어요. 고작 한 구절에 불과한 문장인데도 이렇게 묵직한 울림을 전하다니,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시를 읽을 때마다 매번 놀라곤 합니다. 좋았던 다른 시인의 시도 있었지만, 김상혁 시인의 시집을 꼭 찾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저는 앞으로도 현대문학상 수상시집을 꾸준히 찾아 읽을 것 같습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론,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이 책으로 시의 세계에 도전해보시는 건 어떨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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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ㅣ 민음의 시 308
김경미 지음 / 민음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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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에 미장원엘 가서

머리 좀 다듬어 주세요, 말한다는 게

머리 좀 쓰다듬어 주세요, 말해 버렸는데

​

왜 나 대신 미용사가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취급이라면」 부분

삶을 사는 게, 살아내야 하는 게 가끔씩 갑갑하고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우울’과는 다른 감정이다. 너무 열심히 달려와서 지쳐버린 ‘번아웃’과도 다르다. 음… 버겁다는 표현이 조금 더 알맞은 듯하다. 앞으로 내가 헤쳐나가야 할 인생의 단계랄지 장벽이랄지 그런 것들을 떠올려 볼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 숨이 턱 막혀온다. 그런 내게 위의 시 구절은 생각지도 못하게 큰 울림을 주었던 것 같다. 처음에 저 구절을 읽었을 때 뭔가 감동이 느껴지긴 하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서 되게 혼란스러웠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제는 그 연유를 조금 알 것 같다.

​

​

​

​

어느 날 혼자 버스를 타고 가다가

일 초 전

친구와 절연했다는 걸 깨달았다

​

깨달음이 있으므로

입과 귀에서 그 친구를 없애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

​

그 친구가 내게

나 또한 그 친구에게

우리는 서로 지나쳤으리라

멀리 온 정거장처럼 도를 넘어섰으리라

​

네가 억울하고 후련하듯

나도 후련하고 억울하리라

​

너는 나 없이도 친구가 많고

나는 친구 없이도 하늘이 맑으니까

​

아무리 생각해도

또 지나치지 않도록 버스에서

창밖을 본다

창 속에 말 없이 앉아 있는 나를 본다

​

멋진 밤이다

​

「지나치다」 전문

친구와 절연해본 경험이 다들 한번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딱 한 번 있다. 그 친구와 너무도 명징하게 ‘손절’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거대한 파급력을 끼쳤던 경험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영향이 긍정적이지는 않았기에, 언제나 나는 그때의 경험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할 때마다 애써 외면하고 도망치려 했다. 그리고 이 시를 만나니 그때의 나를 이제야 비로소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

그 친구와 나는 서로 ‘도를 넘어섰’다. 그 애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 ‘억울하고 후련’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또다시 도를 ‘지나치지 않’기 위해 시적 화자처럼 나 또한 ‘창밖을’ 보고 그에 비친 ‘나’를 봐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과거의 나 자신을 반추하게 하는 시, 시를 읽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 아닐까?

​

​

​

말하고 싶지 않아서

말이 피가 될까봐

피가 씨가 될까봐

차라리 말을 할 수 없는 곳으로

한마디도 못 알아들을 루미니아로

​

(…)

​

말이 많아도

피가 튀지 않는 입들

​

한동안 루마니아를 사랑하기로 했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루마니아에 말을 내려놓기로 했다

​

「늦가을 루마니아」 부분

​

(…) 내가 속았다 쾅! 내가 속였다 쾅! 실패했다 콰쾅! 너는 못났다 콰콰쾅! 끝장이다 콰콰쾅! 네가 싫다 쾅 콰콰쾅! 그 소리 막느라 한사코 청춘을 다 바쳤다 (…)

​

「피아노 소리」 부분

이 외에도 크나큰 울림이 느껴지는, 적잖은 감동을 주는 시들이 참 많았다. 현대시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이 시집이 요즘 역주행하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무수한 이미지들만 나열해놓고 어디 한번 느낄 수 있으면 느껴보라지 하는 젊은 시인들에게, 이 시집을 보고 좀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독자들을 배려하는 시를 오랜만에 만난 것 같아 너무도 행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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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42
나희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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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주의자』, 『시와 물질』 등의 시집으로 나에게 ‘믿고 읽는 시인’이라는 키워드가 붙은 나희덕 시인의 또다른 시집을 읽었다. 이전 두 시집과 비교하였을 때, 뭔가 전하고자 하는 사회적 메세지는 덜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점이 나희덕 시인의 매력이라 생각해서 조금 아쉬운 감상이 없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나희덕 시인 만의 시적 표현은 참 묵직하고도 아름다웠다. 어떤 시인이 그랬다. 시집 한 권 중에 한 문장이라도 마음에 와닿는 것이 있다면 성공한 독서라고. 그렇다면 내게 나희덕 시인은 성공만을 안겨주는 시인일 터이다.



호모 파베르이기 전에

호모 루아, 입김을 가진 인간


라스코 동굴이 폐쇄된 것은

사람들이 내뿜은 입김 때문이었다고 해요

부드러운 입김 속에

얼마나 많은 미생물과 세균과 독소가 들어 있는지

거대한 석벽도 버텨낼 수 없었지요


오래전 모산 동굴에서 밤을 지낸 적이 있어요

우리는 하얀 입김을 피워 올리며

밤새 노래를 불렀지요

노래의 투명성을 믿던 시절이었어요

노래의 온기가

곰팡이를 피우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몸이 투명한 동굴옆새우들이

우리가 흘린 쌀뜨물에 죽었을지 모르겠어요


입김을 가진 자로서 입김으로 할 수 있는 일들

허공에 대한 예의 같은 것


얼어붙은 손을 녹일 수도

유리창의 성에를 흘러내리게 할 수도

후욱, 촛불을 끌 수도 있지만

목숨 하나 끄는 것도 입김으로 가능해요

참을 수 없는 악취

몇 마디 말로

영혼을 만신창이로 만들 수 있지요


분노가 고인 침으로

쥐 80마리를 죽일 수 있다니,

신의 입김으로 지어진 존재답게 힘이 세군요

그러니 날숨을 조심하세요

입김이 닿는 순간 부패는 시작되니까요


<호모 루아> 전문




그들은 더 이상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연극이 끝났으므로


분장 인물을 자신보다 더 사랑한 사람들


다리 저는 여자, 순정한 매춘부,

사랑에 빠진 남자, 잔인한 살인청부업자,

교활한 상점 주인에서 천진한 소년에 이르기까지


누구라도 될 수 있고

비로소 아무도 아니게 될 수 있는 곳


무대에서는 널빤지와 걸레도 소품이 된다

그러나 무대 밖에서는

다시 널빤지와 걸레로 돌아가야 한다


연극보다 더 극적인 삶이 벌어지는 뒷골목에서

운명이 흘리고 간 빵가루를 주워 먹으며

때로는 우두커니 서 있는 그들

포충망 속의 나비처럼 파닥거리는 그들


모든 게 연극에 불과하다면

삶은 지퍼백처럼 얼마나 간편할 것인가

하지만 막이 언제 열리고 닫힐지

다음에 누가 등장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투명한 비닐 속에서

여전히 진지하게 대사를 읊조리는 등장인물들


그러나 그들의 말은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는다

연극 같은 삶이 끝났으므로


<등장인물들> 전문




그러나 그녀의 발은 알고 있다

삶은 도약이 아니라 회전이라는 것을

구멍을 만들며 도는 팽이처럼

결국 돌아오고 또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러나 그녀의 손은 알고 있다

삶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에 가깝다는 것을

가슴에 손을 얹고 몇 시간째 서 있으면

어떤 움직임이 문득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동작의 발견>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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