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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도서협찬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 이토록 부담스럽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 책에서 그리고 있는 이시봉의 모험 속으로 완전히 빨려들어가 순식간에 완독했던 소설이었다. 이기호 작가를 ‘타고난 이야기꾼’이라 부르고 싶게 만드는 이유는 이것 하나만이 아니다. 소설을 읽어가다보면 뭔가 결말을 암시하는 듯한 복선이 툭툭 등장하는데, 그 조각들이 후반부에 들어서 하나의 완전한 결말로 맞아떨어질 때 드는 쾌감이란… 여간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는 만 스무 살 남성 ‘이시습’이다. 그에게는 키우고 있는 개 한 마리가 있다. 이름은 시습-시현 남매의 이름을 이은 ‘이시봉’. ‘시봉아’라 부르면 오지 않고 반드시 성을 붙여 ‘이시봉’이라 불러야하는 똑똑한 만 네 살 수컷 비숑이다. 평범한 일상을 지내던 어느 날, 이시봉은 ‘앙시앙 하우스’라는 곳에서 뜻하지 않은 연락을 받는다. 주인공이 데리고 있는 이시봉이 바로, 지금은 사라진 ‘후에스카르’ 계열의 비숑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소설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이시습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시봉을 원하는 앙시앙 하우스와의 서사. 그리고 또 하나는, 이시봉의 조상견 ‘베로’의 서사. 위의 이야기가 현재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다면, 베로의 서사는 180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소설은 전혀 다른 두 시공간이 독립적으로 펼쳐지고, 또 중간중간에 새로운 인물들과 그의 서사가 등장하여 이야기가 한없이 확장되는 듯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기호 작가는 이를 무책임하게 벌려놓기만 하지 않는다. 사실은 이게 이렇게 이어지고 또 저게 저렇게 이어지는…(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내용은 여기까지만!)
이렇듯 나는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없는 삶』을 읽으면서 천명관 작가의 『고래』 생각이 많이 났다. 『고래』처럼 이 작품 또한 서사가 정말 촘촘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쩐지 『고래』보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없는 삶』이 더 좋았다. ‘훨씬’ 더 좋았다. 인물들이 너무 불행하거나 험하게만 다뤄지는 『고래』는 그 몰입감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인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내면의 아픔과 불행을 분명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서사의 방향은 상승 곡선, 즉 구원과 회복의 성질을 띠고 있기 때문에 얼마간의 뭉클한 여운까지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좋았던 점 또 하나. 이 책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하고 웃게 되는 유머 코드가 있으면서도 반려인들의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감동 코드까지 다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나는 애완동물을 키우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무해한 존재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건지를,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선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얼마나 감동스럽게 느껴질지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하… 이기호 작가, 다시 생각해도 글 정말 잘 쓴다. 두껍긴 하지만, 이번 휴가 기간에 시간을 내어 이 책 한번 정주행하는 것은 어떨지, 조심스럽고도 간곡하게 제안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