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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전쟁 - 제국주의, 노예무역, 디아스포라로 쓰여진 설탕 잔혹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하니포터11기
이번에 하니포터 11기로 받아 읽게 된 『설탕 전쟁』은 제목을 보고 약간 놀랐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설탕’과 ‘전쟁’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다소 이질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커피에 넣는 설탕 한 스푼, 과자 속에 들어 있는 달콤함은 사실 수백 년간의 제국주의, 노예제, 식민지 약탈과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설탕 전쟁』은 설탕이 귀족과 왕족의 전유물이었던 시대에서 산업혁명 이후 대중적 식품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여정을 추적한다. 특히 카리브해와 남미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에서 혹사당한 흑인 노예들의 이야기는 설탕의 역사에 드리운 폭력과 비극을 선연하게 보여준다. 값싼 설탕의 달콤함은 결국 그들의 고통과 죽음이 밑에 깔려있던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니 어쩐지 ‘달콤하다’라는 일상적 표현이 더 이상 단순하게만 느껴지진 않는 것 같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와의 접점까지 끌어내는 데 있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주한 한인들의 이야기는 설탕 산업이 곧 한국인의 근현대사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전까지 나는 하와이 한인 이민사를 독립운동이나 민족 공동체의 형성과 같은 키워드로만 기억했는데, 그것이 ‘설탕 농장 노동’이라는 구체적인 현장과 결부되어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세계사 속 설탕의 흐름이 곧 우리 민족의 역사와 교차하고 있었다는 점이 이 책의 중요한 발견이었다.
무엇보다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우리가 소비하는 음식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초콜릿, 커피, 바나나, 설탕 같은 상품은 여전히 저임금 노동과 불평등, 환경 파괴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일상의 달콤함을 누리면서도 그 뒷면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현대인의 무심함일지 모른다. 『설탕 전쟁』은 바로 그러한 무심함을 일깨우는 책이었다.
읽고 난 뒤, 나는 단순히 설탕을 피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 달콤함은 어떤 역사를 품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오늘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달콤함의 이면에 숨겨진 폭력과 불평등을 마주하게 만든 이 책은, 우리의 식탁과 소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설탕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것은 곧 인간의 탐욕과 권력, 그리고 그 속에서도 살아남으려 애쓴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