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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특별판)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특별판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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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아르바이트 하여 번 돈으로 ‘트레바리’의 고전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첫 모임으로 읽게 된 <데미안>은 개인적으로 세 번째 시도였다. 앞선 두번은 실패… 그러나 다행히도 이번엔 완독에 성공하였다. 처음 두 번의 시도는 번역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책을 읽던 당시의 내가 너무 어리고 미성숙하여 <데미안>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걸까.(물론 지금이라고 그렇게 성숙해진 건 아니지만…)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을 통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감이 아예 오지 않아 책장을 넘기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래도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바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찌질한 소년 싱클레어의 치열한 성장 분투기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여러 은유적인 개념을 차용하여 이 주제를 여러 차례 드러내고 있었다.

🗣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7p, 131p)



싱클레어는 ‘크로머’에게 몹시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으나 ‘데미안’의 도움으로 벗어난다. 하지만 이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에게 이르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이 계속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절대 쉬울 리 없는 법, 싱클레어는 다시금 방황하는 내적 격동의 시기를 겪게 되는데 이때 데미안이 그에게 응원이자 위로가 될 만한 쪽지를 건넨다. 이것이 바로 그 <데미안>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이라 할 수 있는 표현인

🗣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나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125p)

이다.



데미안은 이 문장을 왜 싱클레어에게 건넸을까? 앞서도 말했지만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바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아프락사스’라는 엄청난 은유를 활용한 문장이 바로 데미안의 쪽지인 것이다. 너무도 어려운 비유를 썼다고 작가 본인도 생각한걸까, 이 소설에서는 위의 문장을 설명하는 다른 문장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를테면,

🗣 “친애하는 싱클레어, 우리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야. 그 신은 신이며 동시에 악마지. 자기 안에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아프락사스는 자네의 생각 그 어느 것도, 자네의 꿈 그 어느 것도 반대하지 않아. 이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게.” (150p)

라며 ‘아프락사스’라는 생소한 개념에 대한 설명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나는 자기 자신의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했다. 즉 긍정적인 측면만을 보려는 것이 아닌, 자신의 어둡고 부정적인 내면까지도 자기 자신의 일부에 해당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 “(…) 우리가 어떤 인간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 모습 속에서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지.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 법이니까.” (155p)

라는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다른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그 무언가를 싫어하는 것과 같다고 보고, 그러지 않기 위해선 본인의 모든 부분을 인정하고 사랑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살면서 누군가를 싫어해본 경험이 없지 않은데, 싫어하는 감정 또한 에너지 소모가 일이라는 생각에 다른 사람을 최대한 좋은 모습만 보고 싫어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 내게 <데미안> 그에 대한 해답이자 방법을 제안해 소설이었다. 타인을 싫어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안좋은 부분이 타인에게서 비치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싫어하지 않아야 타인을 싫어하지 않을 있다고 말이다. 점이 이번 <데미안>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배움을 얻었던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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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알베르 카뮈 소설 전집 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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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작품의 전체 분량이 160페이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이 작품은 한 남성의 독백만으로 가득 채워져있다. 더군다나 알베르 카뮈의 작품이다. 이정도 설명이면 난이도가 얼마나 상당한지 감이 오겠는가. 예전 군복무 시절에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는데, 난데없는 전개에 호되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작품해설을 읽고 나서 작품을 읽어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후기글을 보고선 나중에 재독해야지 하면서 계속 미뤄두고 있는 차에 좋은 기회로 카뮈의 다른 작품 <전락>을 받아들었고, 이 작품 역시나 혼을 쏙 빼놓는 난도를 자랑하는 책이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도 해설을 읽으면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해설 부분을 펼쳤으나, 이게 웬걸 해설이 더 어렵다. 뭔 물의 상징이라느니… ‘전략적 동일화’가 ‘범세계적 보편화’로 도약하여 어쩌구 저쩌구… 쉽게 말하자면 소설 속 주인공의 자기 고백이 모든 인간에게 두루 통한다는 건데, 이 말을 이렇게나 어렵게 풀어놓고 있었다. 그래서 해설은 다시 제쳐두고 작품이나 마저 읽자 하였다.

요약할만한 사건 하나 없어 줄거리라 설명하기도 애매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화자가 다른 사람을 옆에 두고 자기 생각을 5일 동안 끊임없이 말하는 내용인데, 이 주인공의 성격이 심히 나르시시즘 같달지 자아도취에 빠져있달지 초반에는 계속되는 자화자찬에 환멸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한 여성의 자살을 외면한 것을 계기로 내면이 점차 ‘전락’해가는 모습을 보일 때는 조금 안쓰럽기도 하였다. 앞서 보인 자기애의 모습이 후반으로 갈수록 어쩐지 사라지는 듯했기에… 하지만 해설에서 말한 것처럼 이 소설 속 주인공의 고백이 과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살만한 지점이 있는가…하면 나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적어도 나는 작중 화자와 도무지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기에 말이다.

(아.. 내게 쉬운 책이 필요해… 그것도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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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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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언젠가 한번쯤은 ‘햄릿’을 읽게 되리라 생각은 했지만 그게 지금일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셰익스피어가 쓴 거의 대부분의 희곡 대사가 일반적인 문장이 아니라 운율이 있는 시적인 문체이기 때문에 난이도가 상당할 것이라 생각하여, 독서의 내공이 더 쌓인 후에 도전하겠노라 다짐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연유에는 다름아닌 ‘이언 매큐언’ 때문이었다.



평소 잘 보고 있던 북튜브 채널 몇몇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언 매큐언의 <넛셸>이라는 작품을 두고 추천을 하는 영상을 업로드하였다. 출간된 지 몇 년이나 지난 작품이 이렇게 우연히도 동시에 영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가? 싶었으나 때마침 방문한 알라딘 중고 서점에 해당 상품이 최상 품질로 있는 것을 보고 이건 운명이다! 라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갑자기 ‘햄릿’ 리뷰에서 웬 ‘넛셸’ 타령이냐 싶으면 조금만 참아보라. <넛셸>이라는 작품은 바로 작가 이언 매큐언이 <햄릿>을 현대적으로, 그리고 본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쓴 작품이니 말이다! 



그러한 연유에서 <넛셸>을 읽기 전에 그 작품의 원천이 된 <햄릿>을 먼저 읽어보자고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사실 너무나 유명한 작품인지라 줄거리를 대충 알고 있기도 했고, 제목보다도 더욱 유명한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것 또한 알고 있어서 그런지 책장은 술술 넘어갔다. 어려울 것이라는 나의 각오가 무색해지는 난도와 재미를 갖춘 작품이었으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입문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햄릿>을 추천한다는 말을 전하며 이제부터 간략한 내용 소개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얼마 전 불행한 일을 겪었다. 왕인 아버지가 죽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뒤 숙부(아버지의 형제)가 왕비인 어머니와 재혼을 하여 왕위에 오른 것이다. 그런 햄릿 앞에 갑자기 죽은 아버지의 모습을 한 유령이 나타나 자신을 죽인 것이 숙부라고 하며 자기 대신 그에게 복수해달라는 부탁을 전한다. 즉 <햄릿>의 극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는 바로 숙부에 대한 햄릿의 ‘복수극’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햄릿은 숙부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망설임을 더하여 쉽사리 복수를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오죽하면 ‘햄릿형 인간’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이는 ‘생각이 깊고 행동이 지나치게 신중해 우유부단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라 한다. 이 작품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햄릿의 그러한 결정장애(?)적인 행동을 두고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말까지 지어냈을까 싶다. (참고로 당시의 평론가들 또한 햄릿의 행동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논쟁을 펼치기도 했단다.)



그러나 나는 햄릿을 옹호하는 편에 서고 싶다. 물론, 햄릿의 행동에 답답함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매우 무거운 행위에는 얼마간의 망설임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또한 극중에서는 햄릿이 주변 인물을 매우 잘 분별하는 혜안을 지닌 모습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신에게 정보를 캐내려는 ‘길든스턴’에게는 경고를, 아첨꾼 ‘폴로니어스’에게는 조롱을 던지면서도 충직한 부하 ‘호레이쇼’에게는 온전한 믿음을 보인다. 



그래서 나는 햄릿을 나쁘게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즉흥적으로 냅다 복수를 해치워버리는 모습보다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편이 그나마 낫지 않냐는 최종 변론을 끝으로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우리 모두의 내면의 일부에는햄릿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또한 그러하니 왠지 햄릿을 비난하는 것은 자신을 비난하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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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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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페이지 안에서도 총 세 편의 단편이 소설되어있는 이 소설집은 내가 처음으로 읽어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이다. 아무래도 <향수>라는 작품이 가장 유명하겠지만 우리 어머니께서 먼저 읽으신 뒤 ‘너무 찝찝해서 읽다가 집어던질 뻔하였다’는 평을 내게 남기신 뒤로 그 책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아 아직까지 읽지 않고 있었다. 그런 내가 어찌 이 책을 읽게 되었는가 함은… 바로 중고서점에서의 충동구매였던 것이다…



책 자체가 아주 얇은 두께를 지녔기에 당연히 짧은 경장편 (혹은 중편) 분량의 소설일 것이라 생각했건만, 그 안에서도 세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다보니 단편보다 장편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실망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아무 기대없이 펼처들었는데, 전체 분량이 여섯 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첫번째 수록작 <깊이에의 강요>를 읽고 굉장한 충격에 빠졌더랬다. ‘진정한 소설의 정수를 느끼려면 단편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몇몇 전문가들을 보긴 했지만 그 말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 작품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말의 참뜻을 뉘우칠 수 있었다. 뒤이어 수록된 <승부>와 <장인 뮈사르의 유언>도 좋았으나,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표제작 <깊이에의 강요>에 대한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여섯 페이지의 내용을 굳이 적어야 하는가 싶기도 하지만 리뷰를 쓰려면 어찌되었든 내용에 대한 짤막한 요약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아서 간단한 설명을 하고자 한다. 어느 젊은 화가가 평론가에게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을 들은 뒤 서서히, 하지만 단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내용이다. 소묘에 재능을 보이던 유망한 화가였건만, 그녀(화가)를 응원하기 위해 던진 평론가의 한마디가 완전히 그녀를 무너뜨린 것이다.



그저 ‘말의 힘’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천명하기 위해 이 소설이 쓰인 것일까, 결말까지 읽어보면 절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스포일러 주의) 화가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데, 그를 추모하기 위해 적은 평론가의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더랬다. 

🗣 (…)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이고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14p)



깊이가 없다고 말함으로써 화가를 죽인 평론가는 화가의 죽음 이후 자신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화가의 작품에는 삶을 깊이 파헤치고자 하는 열정깊이에의 강요 읽을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면을 읽은 적지않은, 아니 너무도 거대한 충격을 받았다. 사람의이란 것이 이렇게나 가벼웠던 것인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봤던 나로서는 평론가의 말에 휘둘리는 화가로부터 모습이 겹쳐 보였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 화가와 섣부른 언행을 내뱉는 평론가의 모습을 통해 새로이 세상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그렇게 휘둘릴 필요 없다고, 물론 타인의 말을 들을 필요도 있겠지만 무시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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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5
에밀 졸라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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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게 살던 부부 ‘루보’와 ‘세브린’의 관계는 어느 한순간에 나락으로 치닫는다. 바로 아내 세브린이 그녀를 입양했던 ‘그랭모랭 법원장’에게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 루보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성폭행은 결혼 생활이 시작된 후에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었다. 이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루보는 이성을 잃은 채 그랭모랭 법원장을 죽이고자 하고, 세브린과 합세하여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 끔찍한 고통, 그의 가슴 한복판에 찍힌 낙인, 그것은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와 그 작자 사이에 있었던 일인 것이다. 그는 그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 방도가 없다는 무력감에 치를 떨 만큼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41p)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의 살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바로 ‘자크’라는 기관사다. 시체가 발견된 후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들 부부는 자크가 본인들의 살해 장면을 목격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루보는 세브린을 시켜 자크에게 접근하여 자신들이 범인이 아님을 확신시키고자 한다. 

🗣 “잘못 생각하셨어요. 나는 범인이 아니에요.” 그녀가 이 말을 한 것은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녀 자신이 결백해 보일 거라는 점을 그에게 주지시키기 위해서였다. (217p)



하지만 루보의 뜻대로 자크가 세브린의 말을 들을까? 당연히 믿지 않을 거라 생각하였으나 이야기는 뜻밖의 상황으로 전개된다. 바로 자크와 세브린이 사랑에 빠진 것이다…?! 예전에 올린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라는 작품에서 다룬 내용을 조금 차용해보자면, 과연 살인을 공모한 이들이 행복을 꿈꿀 수 있을까? 서로를 믿으며 끝까지 의지할 수 있을까? 루보와 세브린 역시 전혀 그러지 못하였다. 그랭모랭 법원장을 죽임으로써 이들 부부의 갈등의 원천은 제거되었을지 몰라도, 동시에 이들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듯 영원히 멀어지고 만 것이다. 그렇기에 세브린이 자크와 다시금 불륜을 저지르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 그는 자신의 수염에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아직 아침이었다면 그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원초적인 두려움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몸에 전율은 거의 일지 않고 회복기의 나른함이 느껴지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가 사람을 죽였다는, 이제는 확실해진 그 생각이 그녀를 다르게, 대단하게, 예외적으로 보이게 한 것이다. (중략) 그러자 그때부터 그녀가 성녀처럼 보였다. 그것은 그녀가 그에게 불러일으킨 두려운 욕망도 잊게 하는, 어떠한 논리로도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219p)

🗣 그녀가 자크에게 반한 것은, 그녀가 그의 손을 살그머니 쥐었을 때 그의 손이 그녀의 몸을 함부로 더듬지 않는 것을 보고 실감했던 그의 그 부드러움, 그 온순함 때문이었다. (257p)

🗣 그 정신나간 무모함에 그들 둘 다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그들은 본분을 망각했다. (271p)



누군가는 이 작품을 두고 ‘막장’이라 일컬으며 비난의 말을 쏟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막장’이라는 것은 수많은 우연의 일치 등 개연성이 터무니 없이 부족한 전개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인간 짐승>은 절대 ‘막장’이 아니다. 자극적인 사건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맞지만 그 사이사이의 논리적인 개연성을 앞세워 독자들을 확고히 납득시키니 고전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던 것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한줄평에서 <죄와벌>을 언급했던 만큼, 이 작품 역시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풍부하고 깊이 있다. 읽는 동안 너무 너무 재밌었고 짜릿했고 불쾌함에 치를 떨어도 그 또한 쾌감을 주었다. 앞으로의 에밀 졸라 작품 도장깨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도 행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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